"주교님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배신당하는 경험을 한 적 있으십니까?"


나는 고해실 바닥을 쳐다보며 나직이 물었다.


"..."


주교님께선 아무 말도 없으셨다.


"저는...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왜 제가 이렇게 되어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 자신과 주변 인물들을 믿었습니다. 가족, 약혼녀, 친구, 시종과 시녀 등 저와 교분을 나눈 이들을요."


내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요즘은 울 일이 많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고작 모함이었습니다. 그저 제가 술에 찌들어 산다. 방탕하게 산다는 등 그저 그런 추문에 불과했죠.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모두가 저의 무고를 믿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주교님은 계속 묵묵히 내 말을 듣고 계셨다.


"모함은 역병마냥, 사람들의 혀에서 혀로 건너갔고, 얼마 되지 않아 제도의 사람들 대부분이 제가 그런 사람이라고 알게 됐습니다. 갈수록 제 평판은 바닥을 기었고, 주변사람들 사이에서도 제 입지는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냐면서요."

"..."

"그리고... 모함은 모함으로 끝나지 않았고 누명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나는 여기서 말을 잠깐 맺었다.

누명을 쓴 것을 기억할 때마다 가슴이 시리고 아렸기 때문이었다.


"천천히 말씀하십시오. 저는 어디 가지 않습니다."


다시 시간이 좀 흐른 후에야 나는 말문을 열 수 있었다.


"어느 날, 왕궁의 수사부처에 익명의 투서가 날라왔습니다. 그 투서에는 제가 슬럼가에 위치한 범죄조직의 뒷배를 봐주고 있다고 써있었죠. 단순한 투서에 불과했지만 제 평판 때문인지 수사부처에선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증거와 증인을 확보했다고 저를 체포했습니다. 물론, 조작된 것이겠지만요."

"누가 그랬는지는 의심이 가십니까."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를 모함한 사람과 동일인물이거나 뜻을 같이 하고 있겠죠."

"..."

"그 후, 저는 귀족이라는 배경 덕에 감옥까지 가진 않았지만 그보다 많은 걸 잃었습니다. 약혼녀로부터는 파혼당하고, 친구들은 저를 떠났고, 가족들은 저를 집안에서 제명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용병이 되어 대륙을 방랑하며 살다가 용사로 선택받고 이 도시로 오게 된 것입니다."

"그간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주교님은 쓸쓸한 목소리로 나를 위로했다.

사람에게 위로를 받은 게 얼마만의 일인지 몰랐다.

그리고 나는 이 도시에 와서 샐비와 만난 일을 고해하기 시작했다.


"용사로 선택받은 저는 저를 배신한 사람들을 구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이 어떻게 되든 방관하기로 했죠. 기왕이면 그들이 고통스럽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이 도시에서 샐비라는 소녀를 만났습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가면을 판 소녀였죠. 처음에, 그 소녀는 거짓말을 써서 이 가면을 팔았습니다. 축제 기간 동안에는 가면을 써야 한다면서요. 그 다음날에 제 앞에 또 나타나서는 축제 가이드가 되어 주겠다고 해놓고 돈까지 받았으면서 돈이 안 드는 싸구려 공연에만 절 데려갔죠. 참... 무책임한 가이드 아닙니까."


애써 웃으며 웃는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했지만 목울대는 물기를 머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좀 볼만한 서커스나 이런 데는 돈을 지불해야 입장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샐비에겐 부양해야 할 어린 동생이 있었죠. 그래서 샐비는 축제가 열릴 때면 무료로 볼 수 있는 공연만 잘 알았던 겁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솔직하게 말했고, 샐비는 제게 돈을 돌려줬습니다. 이 가면값도 함께요."

"정직한 아이였군요."

"겉으론 거짓말을 하더라도 속까지 그러지는 못한 아이였던 것이죠."

"참 보기 드문 아이군요."

"저 때문에 이젠 찾아볼 수 없게 됐죠."

"신전 앞에서 용사님이 말씀하신 옹졸함 때문이군요."

"간밤에, 마물이 나타났을 때, 저는 샐비에게 이 가면을 돌려주려고 샐비의 집에 가있던 참이었습니다. 저는 마물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샐비와 샐비의 동생을 데리고 안전할 것이라고 여긴 영주성으로 갔습니다. 그러던 도중 오크 세 마리와 마주치고야 말았죠. 샐비는 그곳에서 저를 대신해서 죽었습니다."

"성검의 힘을 쓰신다면 오크 세 마리 정도는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성검을 쓰지 않고 낡은 검을 썼습니다. 용사임을 누구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게 제가 말한 옹졸함입니다.

"그렇게 된 것이군요."

"자, 이제 과거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주교님은 제 과거를 감상하시고 어떤 소감이 드시던지요."


주교님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고는 인자하게 웃어주셨다.


"용사님은 후회하고 계시군요."

"그렇...습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말을 떨었다.

힐난 혹은 동정, 어쩌면 둘 다.

이 둘이 내가 생각한 주교님이 보일 반응이었다.

그런데 주교님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을 꺼내셨다.


"용사가 되긴 싫지만 샐비란 소녀는 구하고 싶으셨겠죠."

"...네"

"원래 사람의 마음이 그런 겁니다. 두 가지 선택지에 놓인다면 갈팡질팡 고민하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리죠. 용사님으로 치면, 용사가 되어 샐비란 소녀를 구하느냐, 용사가 되지 않고 방관하여 용사님을 배신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보느냐겠죠. 용사님은 이 두 선택지 중 하나도 제 때 고르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후회하게 된 것이지요."

"..."

"용사님. 이제 용사님께서 아실 겁니다. 망설임은 후회를 낳는다는 걸요. 그러니 무엇을 하시든지 후회하지 않을 선택만을 하시길 기원합니다. 이게 제가 용사님께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의 조언입니다."


주교님의 조언을 듣자 샐비의 유언이 생각났다.

후회는 한 번으로 족하니 다음부턴 후회하지 말라는 유언.

무거운 죄책감에 눌려 기억하지 못한 유언이 주교님의 조언으로 다시 되새겨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고해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어느 날 밤, 나는 고해실에서 여신님께 용사로 선택받았다.

그리고 나는 고해실에서 용사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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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는 지금까지 쓴 화를 복기+간단하게 주인공의 과거를 소개하는 화입니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간의 디테일한 과거는 그 주변 인물이 나오는 에피소드에서 드러날 예정입니다.


주인공이 주교님께 고해를 하는 장면을 넣은 이유는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 번째, 샐비의 죽음은 주인공이 용사가 되는 계기이지만 동시에 주인공이 죄책감을 느끼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주교님께 고해를 하게 해서 죄책감을 덜기 위함입니다.


두 번째, 주교님과 고해를 함으로써, 샐비와 함께 주인공이 용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입니다.


그리고 이 화를 끝으로 초반부는 끝났고 이제 중반부로 접어듭니다.


중반부부턴 주인공을 배신하거나 떠난 주변 인물들이 에피소드마다 등장할 것이며 주변 인물들이 주인공이 용사임을 알 수 있게 조금씩 단서를 뿌릴 겁니다. 그럼으로써 빌드업을 하다가 후반부에 터뜨릴 예정입니다.


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