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아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진다.

무대 위에는 부스 안에서 서로를 노려보다가, 이윽고 헤드셋을 쓰는 남자와 여자.


"대망의 결승전! 노장의 화려한 부활이냐, 신예의 화끈한 신고식이냐!"


캐스터의 고양된 음성이 경기장을 울렸고

관객들은 손에 치어풀과 풍선을 흔들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자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1경기! 시자아아악! 하겠습니다아아아!!!"


모두가 손에 땀을 쥐고

두 선수의 뛰어난 경기력을 기대했다.



결과가 이미 정해진 것도 모른 채로.






후순이는 게임을 좋아했다.

고전 게임도 좋아했다. 신작 게임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오락실 아니면 피시방에서 살았다.


부모님은 후순이를 말릴 수 없었다.


'너 다음에 전교 10등 안에 들기 전까지는 피시방 못 간다' 고 말하면 진짜 10등 안에 들어왔다.

'전교 1등 해와' 같은 무리한 목표는, 실패하면 울고불고 난리를 치면서, 거실에서 드러누워 떼를 썼다.


곧, '차라리 게임을 미끼로 공부를 시키는 게 이득이다' 라고 판단한 후순이의 부모님은

후순이에게 얘기했다.


"전교 1등하면 100만원짜리, 2등하면 90만원짜리, 3등은 80만원... 이렇게, 전교 10등하면 10만원. 11등부턴 없어."


"뭘 살 건데요?"


"너 게임기."


후순이는

부모를 끌어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처음엔 전교 7등이었다. 40만원으로 그래픽 카드를 샀다.

다음엔 전교 6등이었다. 50만원으로 콘솔 게임기를 샀다.


공부를 해 가면서 게임기 스펙을 올렸고

곧, 후순이는 방에만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부모님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밖에 나가 나쁜 짓 하는 것보다야 낫기는 나은데..."

"에휴, 저거, 데려갈 사람은 있으려나?"


데려갈 사람은

곧 나타났다.




"XX프로게임단의 코치 후붕입니다. 혹시, 여기가 MissEvaSSevA 닉을 쓰는 분의 집 맞나요?"


"... 네?"


양복을 입은, 처음 보는 남자가 하는 알 수 없는 말에

후순이의 부모님은 굳어버렸다.


"아, 연락이 안 됐나요? 오늘 집에 방문한다고 연락 드렸는데..."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모르는 말에 부모는 우물쭈물했고


"아, 주소를 잘못 전달받은 모양이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요! 저에요! 제가 걔에요!"


방구석에 쳐박힌 딸이 튀어나오면서

부모는 한번 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신이 섭외하러 온 선수가 여자라는 것에

후붕이 역시 굳어버렸다.




"아니, 나이랑 집주소만 물어보셨잖아요! 성별은 안 물어보셨으니까 말 안 했는데요!"


후순이와 부모님과 코치의 4자 대면.

말이 4자 대면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님 앞에서

후순이와 후붕이는 투닥거리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한데, 여자 선수는 못 뽑아."


"지금 여자라고 차별하는 거에요?"


"아니아니, 그게 아니고, 프로게이머가 거의 다 남자잖아. 숙소를 남성용으로만 지어놔서, 여자 프로게이머 뽑으면 투자비용이..."


"아, 거 참 말 많네. 실력으로 다 쓸어버리면 되죠!"


"거기다가, 남초 판이라서 여자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가능성..."


"자기네 선수 케어 하나 못 해줘요? 거기다가, 여자 선수면 스타성 빵빵하잖아요!"


"우리가 그럴 정도로 대기업이 아니야... 저기 통신사나 자동차, 항공사, 화약 회사랑은 다르게, 우리는 소기업이라서 힘들어..."



후순이는 꼭 기회를 잡고 싶었다.


게임을 돌리다 보면 가끔 프로를 만났다.

"우와! 저거 XX선수 닉 아냐? 와! 팬이에요!"


곧, 자주 프로를 만나게 되었다.

"아, 또 프로게이머네. 이번 판도 점수 쪽 빨리겠네."


나중엔, 프로밖에 만나지 않았다.

"아니, 밥먹고 게임만 하는 새끼들을 씨발 내가 어떻게 이기라는 거지?"



그리고 이제

자기도 밥먹고 게임만 할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다.

아니, 밥도 안 먹고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저, 말씀 중에 죄송한데..."


후순이의 어머니가 대화에 낀 건 그 때였다.


"안 될까요? 애가 이렇게 하고 싶어하기도 하고, 얘기 들어보니까 실력도 괜찮은 것 같던데..."


"여보. 아까 얘기 못 들었어? 숙소래잖아. 애가 위험하면 어쩌려구. 거기다가 고등학교도 그만둬야 한다는데 되겠어?"


"당신, 우리 후순이가 이런 일 아니면 앞으로 사람 구실은 하고 살 거 같아?"


"..."


어머니의 압도적인 설득력에

아버지는 말을 잃었다.

딸도 순간 이게 실드를 치는 건지, 실드로 치는 건지 구분이 안 가서 벙 쪘다.


곧, 후순이의 어머니는 다시 코치에게 머리를 숙였다.


"잘 부탁드려요."


"어... 그... 네."


될 대로 되라는 마음가짐으로

후붕이는 결국, 후순이를 스카웃했다.




후순이는 슈퍼 스타였다.


여성 프로게이머가 전례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FPS 쪽에서 활동하거나, 아니면 여성부 리그를 만들어 줘야 할 정도로 실력차이가 나거나 했다.


RTS 판에서, 실력으로 남자와 대등한, 아니 그 이상의 여자 프로게이머는 전례가 없었다.


후순이는 약속대로

실력으로 모두를 다 쓸어버렸다.



곧, 후순이에게 코디가 붙었다.

광고 요청이 들어왔다.


후순이는 게임을 연습하면서도, 광고, 인터뷰, 화보 촬영, 예능 출연 등 방송 쪽에도 얼굴을 들이밀었다.




"... 재미 없어."


4강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후순이는 짜증냈다.

자신이 프로게이머인지, 예능 패널인지 구분도 안 될 정도로 소속팀에선 후순이를 뺑뺑이를 돌렸다.


"아, 씨발. 하... 진짜 게임 존나게 안 되네."


8강에서 탈락하며, 후순이는 욕설을 내뱉었다.

악플은 늘어났다. 특히, 여자라는 이유로 성희롱성 악플이 더 많아졌다.

운빨 우승이라느니, 빈집털이라느니, 상대를 꼬셨다느니 등등.





무엇보다도

놀이가 아니라 일이 되어버리면, 그 어떤 취미도 재미없어진다는 것을

후순이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응? 자신감 가지고."


코치인 후붕이만이

후순이의 멘탈 케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소속팀에서 뺑뺑이 돌리는 것도 어떻게든 막으려 했다.

다른 선수들과의 연습 대전도 어떻게든 잡아왔다.


"넌 부활할 수 있어. 데뷔할 때, 내가 너 스카웃할 때 생각해봐. 그 때 그 패기면 다 할 수 있어."


후순이의 유일한 위안거리는

후붕이의 멘탈 관리였다.




"있잖아요. 코치님. 우리 사귈까요?"


"푸어엌! 뭐라고?"


캔커피를 화려하게 뱉어내며

후붕이는 후순이에게 되물었다.


"에이, 씨, 더럽게! 뭐 하는 거에요!"


"아니, 뭐 하는 거냐고는 내가 물어봐야지!"


사레가 들러 켁켁대는 코치 후붕이를 바라보며

후순이는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냥... 멘탈 케어가 필요하기도 하고... 외롭고..."


"아니, 그게, 저기, 뭐냐, 선수가 코치랑 그러면..."


"에이 씨, 야! 후붕아! 우리 사귀자! 따라 와 임마!"




연애는 좋았다.

프로게이머는 연애를 하면, 보통 연인 때문에 멘탈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후붕이는 언제나 후순이의 멘탈을 책임져 주었고

좀 더 적극적으로 후순이가 연습에 매진할 수 있게 도왔다.


비밀 연애라서, 연습실에서 단 둘이 남았을 때 아니면 달콤한 말도 못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후순이에겐 충분히 위로가 되었다.



곧, 후순이의 성적은 다시 올랐다.


안정적인 4강급 전력.

하지만, 우승은 너무나도 멀었다.




"나이가... 문제겠지?"


20대 중반. 사람으로서는 최고 전성기지만 게이머로서는 피지컬보다 노련함으로 승부를 봐야 할 나이.


어느덧 후순이도 노장이라 불리는 프로게이머였다.


"하... 어릴 때 우승 몇 번 더 해놨어야 했는데..."


"미안해. 내가 스케줄만 잘 컷 해줬어도."


"아냐아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고마운데 뭐."


침대에 누워서

둘은 다정히 얘기를 나누었다.


"괜찮아. 마지막으로 한번 더 화끈하게 불태워보고, 은퇴를 하던가 해야지. 은퇴전 정도는 우승 해 먹어야지! 다 나오라 그래!"


"그거, 패배 플래그 아니야?"


"참 좋은 인생이었다!"


"푸흐흡... 미친... 흐흐흡..."


곧, 둘은 다시 입을 겹쳤다.





어두운 유혹은 그럴 때 찾아왔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아니 뭐, 싫으면 말고."


방송국 PD가 자기를 잠깐 보자는 말에

후순이는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따라나갔다.


거기엔, 검은 양복을 입은 수상한 남자 두셋과

다른 프로게이머 몇몇이 있었다.


"우리도 너 부활하는 거 보고 싶거든. 화려한 부활의 신호탄! 여제의 부활! 멋지잖아?"


"... 그렇다고 이런 짓을 해요? 승부 조작은 범죄잖아요!"


후순이는 빽 소리쳤다.


"당신들이 안 그래도 내가 실력으로 다 씹어 먹을 거거든요!?"


"해 보던가. 요즘 많이 힘들잖아? 나이도 그렇고."


"아니..."


"걱정 마. 안 걸려. 맵만 좀 뜯어고칠 뿐인데 뭐. 너만 조용하면, 다 괜찮아."


"못 들은 걸로 할게요."


후순이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뒤에선 PD가 웃고 있었다.


"저, 괜찮을까요?"


"괜찮아, 괜찮아. 곧 넘어 올 거야."




예선전에서 대형 신인이 등장했다고 했다.

압도적인 경기력, 준수한 외모.


후순이 역시 상대를 분석하기 위해 모니터링을 했고

절망을 느꼈다.


"저거 씨발 심리전이 사람새끼가 아니라 컴퓨터 급인데?"


"진정해, 후순아. 쟤도 인간이야. 너와 같은 인간이야."


"아니, 쟤가 인간이 아닌 거 같은데? 와, 저걸 어떻게 이기지?"



혼자서 게임을 돌리다가

그 신인을 만났다.


후순이는 두려움을 느꼈다.

상대방이 너무나도 신인답게

방송에서의 그 경기력이, 카메라 때문에 떨면서 나온 경기력이었다는 것을 깨달아서.


연습 경기는 정말 벽을 느낄 수준이었다.

전성기 때의 자신도 상대가 안 될 수준의.


이대로라면

우승은 상대의 것이었다.





"진짜, 안 걸리는 거죠?"


"에이, 내가 이 짓 한 두번 하나? 안 걸린다니까? 자, 일단 착수금 좀 받고."


통장에 돈이 입금되는 것을 보면서

후순이는 한숨을 쉬었다.


꼭, 우승하고 싶었다.

은퇴 경기를 우승으로 장식하면서

정식으로 후붕이에게 고백하고 싶었다.



필사적으로 연습해도 벽만을 느꼈고

어차피, 걸리지 않는다는데, 나도 이제 우승 할 실력도 안 되는데

한 번만, 딱 한 번만 일탈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견제를 넣어봤다. 다 반응했다.

꼼수를 찔러봤다. 다 반응했다.


하지만


원래대로라면 막힐 공격이

조금씩 통하고 있었다.


"아! 역시 노장의 노련함인가! 야금야금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경기는 어떻게 되어갈지!"


후붕이는 손에 땀을 쥐고 응원하고 있었다.


관객들도 손에 땀을 쥐었다. 

노장의 투혼을 응원하고 있었다.

신예의 패기를 응원하고 있었다.



곧 큰 전투가 열렸고

승리는 후순이의 것이었다.


3:0. 치열한 경기에 걸맞지 않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후순이는 그렇게 우승을 따냈다.


"후붕아! 나 우승했어! 우리 결혼하자!"


어깨가 축 쳐진 채로, 울고 있는 상대방에게 미안했지만

몸에 남아 있는 죄책감을 털어내기 위해


후순이는 그렇게 당차게 외쳤다.




'경기 복기해보는데, 이거 말이 안 되는데? 원래 이 싸움 이렇게 될 게 아닌데?'

'뭐야, 이거 대회랑 게임이랑 능력치가 다른데?'


하지만

진실이 드러나버렸다.




'씨발 보지년이 그럼 그렇지. PD에게 한번 대주고 맵 바꾼듯?'

'엌ㅋㅋㅋ 주작작 주주작!'

'와, 로열로더 달 수 있었는데 범죄자년 때문에 망친거임?'


PD도 조작에 참가했다.

4강 상대, 8강 상대도 조작에 참가했다.


하지만, 우승자는 후순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비난이 후순이에게 몰렸다.


경찰 조사를 받으며 후순이는 한숨을 쉬었다.

부모님 보기 쪽팔리고, 후붕이 보기 미안했다.





'야, 그러고보니까 코치랑 결혼한 거, 사실 코치도 조작 가담한 거 아님?'

'어? 그러고보니까 둘이 사귄 때랑 조작 시작된 때가? 어?'

'설득력보소 ㄷㄷ'


점점 인터넷에선 후붕이에게도 죄가 있다는 식으로 몰아쳐지기 시작했다.

후붕이 역시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고

하루하루 후붕이는 죄 없이 눈물만 흘렸다.


후붕이에게 무혐의 판결이 내려져도


'무죄 안 뜬거 보니까 뭐 있었나본데?'


하는 멍청이들이 달라붙었고


'야 솔직히 부부끼리 그런걸 숨겼겠냐. 다 알고 했을듯.'


하는 억측도 올라왔다.




경찰조사를 한참 받고 나서

한 달만에 후붕이와 마주앉았다.


"왜 그랬어?"


"미안..."


"왜 그랬냐고! 난 널 믿었어! 그런데 왜! 난 끝까지 아니라고, 그럴 리 없다고 했었다고!"


"... 미안해..."


눈물로 얼룩진 후순이 앞에서

잔뜩 화가 난 후붕이는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난 다신 너 못 보겠어.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 뒤 일은

후순이에겐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이혼을 당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모두가 자신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듯 했다.


게임이 안 되던 그 때보다 더 힘든 나날들이었고


그 때와 달리

이젠 옆에 후붕이가 없었다.




몇 달이 지나고

후순이는 인터넷 기사를 보았다.


'화려한 재기! 후붕 코치의 또 다른 신인 발굴!'

'논란을 이겨낸 후붕 코치의 부활의 신호탄!'


아직도 악플은 달렸지만

후붕이는 다시 달려나갔고


후순이는 그렇게 추락한 채로 무너져내렸다.




소재 제공 및 과거글 모음 : https://arca.live/b/regrets/25502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