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 하시겠습니까? YES / NO]






현자가 그것을 찾았던건, 모든 모험이 끝나고 용사와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이었다.



대대로 현자의 계보를 이어온 그녀의 가계에는 우수한 마법유물이 많았고, 이번에 찾은것은 지나간 과거를 다시 시작할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었다.



현자는 생각했다.



지금의 생활도 무척이나 행복하지만, 어쩌면 그 이상이 있지 않을까?



용사는 현자를 많이 사랑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 한구석엔 첫사랑이었던, 그러나 모험의 중간에 죽고말았던 성녀가 언제까지고 살아있었다.



현자는 용사의 마음을 바닥부터 천장까지,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가지고 싶었다.



잠시 고민을 거듭한 후에 현자는 유물을 사용했다. 초침이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눈을 떠 보니, 모험의 첫날 아침으로 돌아와있었다.



현자는 환희했다. 이번에야말로 "완전무결한" 행복을 차지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물론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무척 다정하던 용사는 처음 만났을때와 같이 무뚝뚝해졌고, 현자에게 무관심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용사가 사랑을 줄때의 모습을 알고있는 현자는 전부 미래를 위한 일이라며 감내하고 여정을 함께 해나갔다.




처음에는 순조로웠다.



기억하는대로 여행은 이어졌다.



그 가운데 지난 여행에서는 구하지 못했던 사람도 구해내고, 쓰러뜨리지 못해 후퇴해야했던 던전과 마물도 격파할 수 있었다.



모두 지난 여행을 기억하고 있었던 현자의 수완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과거의 시절보다 부쩍 강해진 현자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자는 몰랐다.



지난 여행. 부족했던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헤쳐나간 여행이 얼마나 특별했던 것인지.



서로가 완벽하지 않았기에 그 사이에서 피어난 신뢰와 우의가 더욱 빛났다는 것을.




용사와 전사, 성녀, 도적, 무도가.



용사파티의 일원이며 구세주로 칭해지는 그들도 본질은 사람이었다. 감정이 있는 존재들이었고 달라붙는 열등감을 쉽게 떨칠수 없는 이들이었다.



아무리 목숨을 걸고 싸워도, 현자의 위용에는 미치지 못한다.



아무리 고민을 거듭해도, 현자가 발안한 작전이 우수하다.



왕국의 시민들도, 구해낸 사람들도 모두 현자를 치켜세운다. 자신들은 모두 들러리에 불과했다.



현자가 과거의 여행을 더욱 완벽하게 재구성해가는 기쁨에 취해있는 사이, 그녀는 용사파티에서 깨닫지 못한사이에 천천히 고립되어갔다.




현자가 마침내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던건, 마왕성을 목전에 둔 어느날이었다.



그때 즈음이, 이미 마왕군과의 앞선 전투에서 성녀를 잃고 실의에 빠져있던 용사를 자신이 위로하면서 그녀와 용사의 사이가 깊어지던 시기였다.



허나 이번 여행에서 강박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하던 현자는 성녀의 죽음을 막아낸 뒤에도 여전히 더 완벽한 미래만을 추구하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여관방에서 홀로 방에 불을 켜놓고 마왕성의 진입구조를 고민하던 현자는 문득 옆방에서 용사와 성녀의 목소리가 겹치는것을 들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용사와의 관계 진전을 위한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다는걸 깨달았다.



성녀와 용사가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다는것도 깨달았다.



파티원들 모두가 자신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바보처럼, 당장의 성취감에 취해서



어느샌가 목적과 수단이 뒤집어져 있었던 것이다.



현자가 과거로 돌아온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오직 용사 한명을 바랬기 때문이었다.




현자는 아연해졌다.



틀렸다. 바보같은 행동을 했다. 지난 과거보다 더욱 악화되었다.



대경실색한 현자는 여관방을 박차고 나와 그 길로 파티를 버려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실수했다면, 돌이키면 됀다.



집에는 그 마법유물이 있으니까, 이번에야 말로 "올바르게" 리플레이하자.




몇주간의 여정을 통해 겨우 집으로 돌아온 현자는 창고를 뒤졌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도록 찾아도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몇 날 며칠간 이미 몇 차례나 헤집었던 곳도 핏줄이 불거진 눈으로 쉴 새 없이 훑어대던 현자가 마침내 스스로 깨닫고있던 해답을 받아들였다.



'리플레이' 할 수 있는 유물은, 단 한번 뿐인 물건이라고.



그 유물을 통해 과거로 돌아온 지금, 이 과거에 그것이 존재 할 리 없는거라고.




허탈해진 현자가 허무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할때, 마을에 도착한 왕국의 파발이 마왕이 토벌되었다는 사실을 소리치고 있었다.



현자가 사라진 용사파티는 사선을 넘는 고생끝에 현자 없이도 마왕을 쓰러뜨렸던 것이다.



현자는 마왕성 앞에서 목숨이 아까워 도망친 배신자가 되어있었고



용사를 비롯한 파티원들은 당당한 모습으로 모두의 환호를 받으며 왕성으로 개선행진을 하고있었다.




현자는 모습을 감추는 로브를 깊게 눌러쓴 채, 군중에 섞여, 연인이 되어있는 용사와 성녀의 모습을 초점이 흐려진 멍한 눈으로 바라만 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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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만 모험의 서는 사라져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