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곳은 정할 수 없다. 사람은 하늘이 정해준 운명에 따라서 태어나고, 그곳이 좋든 싫든 태어난 이상 죽지 않는다면 순응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나 또한 그렇다.

 

반도체와 공업, 식품과 엔터테인먼트까지 많은 분야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그룹인 난고그룹. 할아버지가 일구신 이 그룹은 아버지를 거쳐서 나에게 내려오리라 생각했다.

 

"기천혁씨, 일선에서 물러나 주신다면 조용히 넘어가 드리겠습니다."

 

내 여동생한테 배신당하기 전까지...

 

"기천혁씨를 대신하여 기수련님이 차후 우리 그룹의 총수가 되실 겁니다."

 

뒤에서 화가 난듯한, 굳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여동생,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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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중압감에 시달리며 살았다. 기강 회장을 이을 장남이라는 타이틀은 어디로 가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나를 따라다니는 꼬리표. 단순한 학업과 관련된 공부를 비롯한 제왕학, 음악까지 모두 통달하기 위해서 공부해왔다.

 

공부하고, 아버지의 사업 중 조그만 부분들에서 일해가면서 경영을 배워가는 나날들. 이런 삶밖에 살아보지 않은 나는 소위 남들이 말하는 하고 싶은 일을 알지 못한다. 꿈을 좇으라느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느니 그런 말들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저 이런 삶의 선로를 밟으며 살아가는 것만이 나의 운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오라버니,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항상 고마워."

 

그녀는 나의 여동생, 하지만 피가 이어진 여동생은 아니다. 나와는 배다른 남매.

 

"오라버니, 오늘도 간단한 곡 한 곡을 배워왔어요. 쉬는 시간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한번 들어주실래요?"

 

나는 그녀에게만은 나 같은 억압과 통제를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야 그저 운명이니, 하늘에서 주신 일이니 하면서 지내지만, 그녀는 우리 가족이라기에는 멀다. 원하는 일을 하다가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나의 꿈이다.

 

"좋지, 네가 타준 커피도 있고."

 

그녀가 몸집에 맞지 않는 커다란 가방에서 첼로를 꺼낸다. 내 방에 있던 의자에 걸터앉아 첼로를 켜기 시작하는 여동생. 항상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기에 그녀에게는 어머니와 내 이름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배우고 싶다면 학원에 보내고, 개인 교사를 붙이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항상 뭐가 됐던 시켜주었다. 그녀도 크게 엇나가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수한 성적을 보여주고, 언젠가 나를 도와서 경영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하며 경영에 관한 공부도 하고 있다.

 

♩~♬

 

여동생이 첼로를 켜는 소리가 들려온다. 음역을 넘나들며 귀를 파고드는 첼로의 소리. 들으면서 오늘 하루의 많은 일이 씻겨져 나가는 듯한 마음이 든다.

 

♩~♬~♩~♬

 

경영 같은 걸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좇아갔으면 좋겠는데... 피가 이어진 가족조차도 믿지 못하고 나의 성적을 항상 과시해야 하고 그 성적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위협받는 이런 바닥에서 구르는 것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라버니?"

 

그녀의 악기 연주가 끝난 줄도 모르고 사색에 잠겨있던 나는 눈을 떴다.

 

"아.. 미안, 연주가 너무 좋아서 생각하다가 졸아버렸어. 진짜 항상 일취월장하는구나."

 

"헤헷."

 

수줍게 웃는 그녀를 보면서 지금까지 한 생각은 접어두었다.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이 경영이라면 나는 그녀를, 내 여동생을 막지 않겠다. 하지만 그녀가 나처럼 맨몸으로 이런 모든 것을 겪기 전에, 깔끔하게 정리해서 준비해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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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성이 사실이라고요?

 

-아가씨, 다시 들어보시죠.

 

- -----그만해주세요. 흑흑...

 

-아가씨 한번 도련님의 임원들을 만나보시겠습니까?

 

-그러면... 오라버니는?

 

-가족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문제 아닙니까?

 

-오라버니, 이런 추잡한 짓을...

 

-당신의 오빠, 도련님이 당신을 경영 일선에 올리고 싶지 않으신 이유일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이기는 싫으셨겠죠. 인간인 이상, 욕망은 있지 않으시겠습니까?

 

-... 그럼 전 어떡하죠?

 

-당신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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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내 방으로 들어온 여동생. 오늘은 첼로를 들고 있지 않았다.

 

"오늘 하루는 잘 보냈니?"

 

여동생에게 인사를 하며 고개를 들자 약간 수심 깊은 표정이 보인다. 무엇을 고민하고 화가 나는 듯한 표정...

 

"... 오라버니, 오늘은 평안하셨나요?"

 

"아, 항상 그렇지. 최근에 조사하고 있는 건이 있어서. 어머니는 어떠셔?"

 

"저도 이제 경영에 관여해도 되지 않을까요?"

 

"내가 준비하고 있는 사업체가 하나 있어. 깔끔하게 정리되면 너에게 시험 삼아서 건네줄 거야. 네가 19살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지?"

 

"...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죠."

 

여동생이 나를 도와서 사업을 물려받고 싶다고, 나의 짐을 덜어주고 싶다고 말한 것은 13살, 초등학생 때부터였다. 내가 항상 책상에만 앉아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고 생각한 것이었는지 내가 살짝이라도 표정을 찌푸리면 옆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오늘 배운 발레를 보여준다고 칭얼거렸었다.

 

"항상 말하지만 너는 경영에 관여하지 않아도 우리 가족은, 적어도 나는 너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할 거야. 하고 싶은 일을 하렴?"

 

"..."

 

 

이런 말을 하면 항상 나도 오라버니를 돕겠다느니 말을 했는데 오늘따라 그녀가 그 말을 듣고는 찌푸린 표정으로 방을 나가버렸다. 사춘기가 온 것으로 생각하며, 살짝 가슴 구석이 시린 느낌이 들었다. 항상 친남매보다도 가깝게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춘기란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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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한 달 뒤.

 

물밑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임원진 중 몇몇 움직임이 수상하다.

 

"이 영상은 언제?"

 

"어제입니다."

 

올라온 영상과 보고서를 확인한다. 나의 삼촌과 임원 둘, 여직원 하나가 두 차로 나눠서 움직이는 모습. 아버지께 물려받은 사업 중 식품 분야의 임원과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임원.

 

"…"

 

보고서에 올라온 여직원은 최근에 지원사업을 통해서 들어온 신입. 불온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 건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아까 영상에 나온 임원.

 

"기강 회장님이 부르십니다. 지금부터 강남 사옥에서 전체 소집을 하신다는군요."

 

"... 무엇을 꾸몄지?"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끝이라는 건가. 그래도 지금까지 배워온 것을 생각하면 이런 상황을 상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엇을 꾸몄는지는 몰라도.

 

"그럼 저녁에 보도록 하지."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방에서 나갔다.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저딴 인사나 한다니. 나의 실각을 계획해왔던 것이겠지. 젠장할...

 

"도련님..."

 

내 옆에 남은 것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해온 측근인 아저씨뿐.

 

"이미 이렇게 된 건 어쩔 수 없죠. 일단은 사옥으로 가야겠죠?"

 

"... 가시죠."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타고 출발했다. 차 안의 공기는 에어컨으로 건조하고 시원했지만 나는 식은땀이 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내가 실각하게 된다면 나의 여동생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녀가 나를 이어서 이 더러운 정치판에 발을 담그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그 삼촌이라는 작자가 나를 묻기 위해서 이런 수를 펼칠 수 있단 것에 놀랐다. 이미 몇 년 전에 공금 횡령과 마약 복용 등의 이력을 밝혀서 가족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했다. 나는 그 호랑이의 이빨을 다 뽑아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송곳니만 남겨서 나를 이렇게 물어뜯었다니.

 

"하..."

 

하지만 경영 일선으로 올라오는 것은 무리가 있을 텐데? 그런 일을 일으키고도 CEO나 사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무리가 있다. 그놈에게는 큰돈을 쥐여주고 뒤로 물러나게 시키며 조용히 처리했지만 이미 경영에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아는 풍문일 텐데...

 

"..도련님 도착했습니다."

 

"예, 아저씨 감사합니다."

 

"같이 들어가시죠."

 

사옥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10층을 넘어서 20층. 25층, 회의실에 도착한 나는 이미 의자에 앉아서 준비하고 있는 여러 면면을 보았다.

 

몇몇 임원들, 대주주들,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여동생?

 

"...수련..."

 

"지금부터 기천혁의 은퇴에 대해서 협의회를 열겠습니다."

 

"하하..."

 

어이없는 웃음이 지어진다. 누구의 은퇴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걸?"

 

최대한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으며 허세를 부려본다. 나는 이놈들이 무슨 근거를 토대로 나의 은퇴를 말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제 곧 알게 되겠지.

 

----하지 마세요... 할 수 있을 것 같아? 가만히...

 

----그만해주세요. 흑흑...

 

책상 위 삼촌 앞의 노트북에서 흘러나온 것은 음성. 나의 목소리였다. 음질이 나쁘지만, 나의 목소리인 것은 틀림없었다.

 

"...이게 무슨?"

 

"벌써 증인까지 확보가 끝난 상황입니다. ㅇㅇ식품의 이여직 여직원. 재판에서도 증언하겠다는 동의서까지 받아둔 상황입니다."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이 음성파일은 어떻게 해명하실 거죠?"

 

나는 최대한 해명했다. 나의 경영을 통해서 나아진 부분들, 앞으로의 로드맵 등을 말하며 버텨보았다. 하지만 그 음성 파일은 어떻게 나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정말 모른다고 일관되게 진술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 모여주신 여러분들의 말을 들어보죠."

 

"저는 이런 일을 통해서 우리 그룹의 이미지를 망치는 일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공론화하기 전에 끝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도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아버지조차도 나를 보면서 아무 표정도 짓지 않는다. 저 표정은 변하지 않는구나...

 

"수련아..."

 

"..."

 

수련이의 표정은 싸늘했다. 그녀조차도 이런 거짓말을 믿고 나를 배신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기천혁씨의 은퇴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겠습니다."

 

"무슨..."

 

"다음 의제는 기수련씨의 임명에 관한 건입니다."

 

"뭐?"

 

이게 무슨 말이야?

 

"찬성입니다."

 

"찬성입니다."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서 그녀의 임명을 찬성하고 있다. 나를 실각시키고 그녀가 나의 꼴이 난다고?

 

"수련아, 그 길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지 않아. 더럽고 악한 것들이 사방에 펼쳐져있..."

 

"기천혁씨, 일선에서 물러나 주신다면 조용히 넘어가 드리겠습니다."

 

여동생에게서 그런 말이 들려왔다. 그 순간 나는 머리끝까지 치미는 분노를 느꼈다.

 

"너... 어떻게..."

 

"그렇다면 만장일치로"

 

여동생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삼촌이라는 놈은 웃으며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고 아버지는 살짝 화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기천혁씨를 대신하여 기수련님이 차후 우리 그룹의 총수가 되실 겁니다."

 

"내가... 너는 믿었는데!"

 

"오라버니, 아니 네가 한 짓을 보고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내가 하지 않았어!"

 

"닥쳐, 조용히 물러난다면 법적 조치는 피할 수 있을 거야."

 

"..."

 

나는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허탈한 마음에 문득 말이 나왔다.

 

"... 하고 싶은 일을 해라. 하지만 이제... 나는 너를 지켜주지 못해."

 

"..."

 

여동생은 그 말을 듣고 살짝 놀란듯한 표정을 지었다.

 

"잘 있어."

 

나는 그 방을 도망치듯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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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인데 소설 쓰면서 이것저것 생각해봤는데, 클리셰도 못쓰면서 왜 독창적인걸 쓰려고 하는지 의문이 들어서 클리셰 위주로 써봤어. 새벽에 5시간동안 완결까지 써놨고 후회챈에도 따로 올릴 예정. 엔딩은 얀챈엔딩 후회챈엔딩 따로 나올거임. 완결까지 다 써놨으니 연중없다고. 그냥 내 필력이 딸려서 병신같다고 느껴지면 내 필력이 딸려서그럼. 


ps.후회챈은 용서엔딩 괜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