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 “어서 나와라! 용사여! 본좌와 아직 결판이 안 나지 않았느냐!”
마왕은 용사가 잠적한 외딴 숲의 집 앞에서 외쳤다. 한동안 용사에게 나오라고 하는 마왕. 그러나 반응이 없자 마왕은 문 앞에 다가선다.
마왕 : “훗. 내가 이른 시간에 왔나 보군. 상관없다. 기다려주지. 네놈이라면 도망칠 리 없으니.”
아침부터 기다리던 마왕은 저녁때서야 인기척을 느꼈다. 아, 용사다. 이 기운은 틀림없는 용사다. 저 영혼. 다른 이들을 지키겠다고 자신이 다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저돌적인 녀석. 다시 이렇게 볼 수 있다니….
마왕 관점에서 용사는 비열하고 치졸한 인간 중에서 유달리 순수하고 고결한 영혼을 지닌 인간이었다. 자신의 것을 베풀고,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 그래서 마왕이 유일하게 벌레 취급하지 않는 인간이다. 그런 인간에게 계속해서 호기심을 보인 마왕은 어느 날, 한 시골 마을에 인간 모습으로 잠입해 용사를 슬쩍 떠봤다.
케스펠 마을. 왕국과는 좀 떨어져 있는 시골 마을. 이곳에 용사 파티가 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마왕은 따로 떨어져 있던 용사에게 접근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를 하며 물어봤다.
마왕 : “당신은 무엇 때문에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저 왕국을 지키나요? 저 왕국 사람들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우리 마을이 가난해졌어요. 매일같이 도적 떼가 나타나 약탈해가고, 가뭄은 끝나질 않아요.”
그러자 용사는 말했다.
용사 : “지금 사람들은 여유가 없어. 살아남는 데만 급급하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어. 난 바꿀 거야. 마왕을 토벌하고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이타심과 배려심을 전파하고 싶어. 나 혼자서는 안되지만, 내 동료들과 함께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 협동과 조화. 이 마을도 부유해지게 만들고, 너도 다시 행복하게 만들 거야. 용사로서가 아니라, 남자로서 약속할게.”
바보 같은 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왕은 만족했다. 이 용사는 전대 용사들과도 다르다. 진정 고귀한 사람.
그렇기에 모든 일에 밋밋했던 마왕은 용사에게 호승심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언제나 외로웠던 마왕은 용사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언제나 정점에 있던 마왕은 용사의 성장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사랑을 몰랐던 마왕은 용사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용사이고, 자신은 마왕이기 때문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운명. 마왕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자신과 용사의 운명을 멋대로 정한 여신 베스텔을 저주하며 힘을 키우고 있었다.
용사는 특이하게도 마력 자체가 없어서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이 세계의 마법은 마력이 있는 자들에게만 통하는 대 마력 병기. 지금 만나고자 하는 용사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겐 마력이 흘렀다. 그렇기에 문제없이 싸웠던 마왕이었지만, 이 용사만큼은 순수하게 육체적인 힘으로 싸워야 했다. 그래서 마왕은 숨어서 준비했다. 신체의 스펙을 올리는 마법을 배우기도 하고, 마검을 완벽히 통제할 정도로 성장을 하며 육탄전에도 완벽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용사 파티가 자신의 성문을 부수고 들어온 그 날, 용사와의 대결과 그 어떤 결과라도 받아들이기로 한 마왕은 치열한 혈전을 펼쳤다. 처음에는 압도적으로 짓누르며 싸웠지만, 용사가 성검과 ‘총’이라 불리는 무기를 동시에 쓰기 시작하면서 비등비등해졌고, 그러다 용사에게 너무 신경 쓰느라 허점을 보여 당했었다. 하지만 치명상은 아니었기에 분신으로 눈속임을 해 벗어났다. 이후 근 1년간 힘을 길러 다시 왕국을 점령할 준비가 마쳤을 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용사를 찾아봤다. 그리고 수소문 끝에 혼자 있다는 용사. 지금은 오직, 1대1로서 싸우는 환경이기에 마왕은 충분히 이길 수 있단 자신감이 넘쳤다. 그렇게 마왕은 들뜬 마음으로 외쳤다.
마왕 : “용사, 너로구나! 마침내 우리의 싸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겠구나! 각오는 되어…?”
마왕은 점점 말꼬리를 흐리더니, 이상함을 눈치챈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본 것은 분명히 용사의 고결한 영혼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매우 너덜너덜해지고, 깨져가는 모양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마왕은 입이 벌어져 있었다.
용사 : “…….”
마왕 : “용사…?”
용사 : “……. 집 앞에 오래 세워둬서 미안하다. 들어오겠나?”
용사의 목소리가 힘이 없다는 것을 안 마왕은 이전의 투지가 무색하게 무척 당황해하고 있었고, 용사는 지팡이와 자신의 몸을 벽에 기대어 오른팔을 덜덜 떨면서 겨우 문을 열었다. 먼저 들어간 용사는 차를 꺼내며 말한다.
용사 : “미안, 손님은 오랜만이라…. 차밖에 없군. 양해 부탁하지.”
계속 미안하다고 말하는 용사를 이상하게 느끼지만, 분위기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 앉은 마왕. 또 한동안 말없이 차만 홀짝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제야 용사에게 경고했다.
마왕 : “허튼수작 부리지 마라. 조금이라도 이상한 짓을 한다면 명예롭지 못한 최후를 맞을 거다.”
용사 : “……. 명예라…. 명예 따윈 들쥐한테나 줘버렸다. 차라리 죽여줘….”
마왕 : “뭐?! 무슨 수작이지!?”
참다못한 마왕이 용사의 목을 잡고 올리며 로브를 벗기자 용사의 알몸이 드러났다. 그리고 마왕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아예 사라진 왼팔, 약물을 주입받았던 주삿바늘 흔적들과 상처투성이인 오른팔, 고름이 터지고 흉측하게 뒤틀린 양 다리, 화상이 몸 전체를 덮은 전신, 수많은 고문의 흔적과 낙인, 왼쪽 눈을 포함한 얼굴 대부분을 붕대로 감아도 알 수 있는 흉터들, 그리고 짓뭉개져서 알아볼 수도 없는 성기. 그야말로 한 인간에게 모든 악의를 쏟아부은 것만 같은 모습에 마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왕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혐오스러운 것을 봐서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목을 잡힌 용사가 고통스러워 보이는 모습을 하고도 아무런 표정 없이 자신을 보는 모습을 봐버린 것을 후회했다. 왜냐,
마왕은 아직도 용사를 죽여야 하는지를 고민했기 때문이다.
마왕이 증오하는 것은 왕국과 여신이지, 용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왕은 용사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을 놓고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피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용사는 마왕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듯 로브를 다시 두르며 자리에 앉았다.
용사 : “추하지 않나? 네가 그렇게나 싸우고 싶어 하던 용사는, 이제 없어. 여기엔 오직 비루한 산송장이 있을 뿐.”
마왕 : “성검은 어쨌지? 네가 들고 다니던 이상한 무기도 있지 않았나?”
용사 : “내 무긴 너와의 결전에서 부서졌고, 성검은…. 강탈당했다.”
마왕 : “동료들은 어디 있지? 이 주변에서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만.”
용사 : “왕궁에 있다. 지금쯤이면 나 같은 건 잊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겠지.”
마왕 : “내가 아는 너는 가장 앞에서 당당하게 싸우자고 말하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게 뭐지?”
용사 : “…. 결판을 낼 수 없어 미안하군, 마왕.”
마왕 : “미안하다고 그만 말해라! 그딴 걸 물어보는 게 아니지 않느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용사 : “….”
마왕은 자신도 모르게 울 것만 같은 얼굴로 용사를 쳐다봤다. 그런 모습을 본 용사는 말을 하려다 말고 문득 일어나더니 주방에서 풀잎 여러 개를 가져왔다.
용사 : “이게…. 뭔지 알고 있나?”
마왕 : “환각초. 하,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이 차에 그 독초를 탔다고 자랑하는 거냐? 내겐 그런 허접한 독 따윈 안 통한다는 걸 용사인 네가 가장 잘 알 텐데?”
용사 : “아니. 안 탔어. 이건 내가 먹을 거거든. 술 따위론 이 이야기의 고통을 감내할 수 없으니까.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이 고통을 잊고 잠들려면 이젠 술이 아니라 환각초를 씹어야 하니까.”
마왕 : “뭐라고?”
용사 : “말 그대로다. 이건 이름 그대로 환각 작용을 강하게 일으키지. 그래서 로젠탈 왕국의 뒷골목에서 유통되는 마약의 주성분이기도 하고. 그리고 난…. 이게 없으면 지금 해주려는 이야기 도중에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내릴 거다….”
마왕은 아까 쏘아붙인 말을 후회하고 있었다. 용사가, 지금 죽은 눈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려 한다. 얼굴엔 고통스럽단 표정을 지을 만도 한데,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듯이 변하지 않았다. 마왕은 환각초를 먹고 덤덤하게 이야길 꺼내려는 그를 막아야겠단 생각으로 용사를 안았다.
마왕 : “…. 그만해주게.”
용사 : “마왕, 어째서….”
마왕 : “괜찮다. 이야기하기 힘들다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네 이야기는 내가 네 기억을 보는 거로 하지. 이 능력은 네가 동의만 한다면 마력이 없는 자에게도 쓸 수 있으니. 그러니 그 독초 당장 버려라.”
용사 : “아냐…. 제발, 그러지 마…. 그딴 식으로 내게 희망 고문하려 하지 말고, 그냥 빌어먹을 마검이나 꺼내서 날 죽여줘…!”
마왕 : “닥쳐라! 그런 말 하지 마라! 본좌는, 지금 그대와 싸우고 싶지 않다.”
용사 : “시끄러워! 너도 결국엔 날 이용할 생각뿐이잖아…!”
마왕 : “믿어다오. 그대의 이야길 듣고 싶다. 자비나 기만이라고 생각해도 좋으니까….”
용사 : “……. 흑…. 흐극…. 흐으읍…. 히끅…. 으아아…. 흐아아아아!!!!”
용사는 생각지도 못한 마왕의 말에 결국 감정의 댐이 터지며 고장 난 듯이 오열했다. 그리고 마왕은 용사를 감싸 안아주며 계속 옆에 있어 줬다.
얼마나 안겨 있었을까, 용사는 눈물을 그치고 마왕에게 그대로 안긴 채 말한다.
용사 : “추태를 보였군. 많이 역겨웠을 텐데.”
마왕 : “딱히. 본좌는 그대에게 화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까는…. 닥치라는 말은 말버릇이라…. 미안하다.”
용사 : “…. 후후후. 넌 참 이상한 마왕이야.”
마왕 : “…?”
용사 : “그래서, 정말 보겠단 거냐.”
마왕 : “난 봐서는 안 될 수많은 것들을 보았다. 그런데도 멀쩡히 살아있잖나?”
용사 : “…. 알았어. 더는 말리지 않겠어.”
용사는 환각초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마왕에게 가까이 갔다. 마왕은 용사의 얼굴에 손을 대며 주문을 외웠고, 용사는 눈을 감으며 작지만 또렷하게 마왕에게 말했다.
용사 : “…. 고마워. 내 이야길 들어준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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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실 이번꺼 까지가 미리 써놨던 분량임
그래서 다음화 부턴 조금 늦을지도
하지만 연중 생각 읎다 이말이야
이런 똥글이라도 봐줘서 고맙다 후붕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