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은 용사의 기억 속에 들어왔다. 풍경을 보아하니 낡은 감옥이었다. 감옥 안엔 녹슬고 날카로운 쇠사슬에 온몸이 묶여 조여드는 고통에 신음을 흘리는 용사가 보이고, 그런 용사를 비웃는 용사의 파티원들이 보였다.
용사 : “으그으윽…. 으아아….”
마법사 : “소아성애자에겐 이 정도로도 부족하죠.”
기사 : “거기다 타인의 재물 파손과 약탈까지…. 전 이 작자가 좀도둑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용사 : “난…. 아이에게…. 손대지…. 않았어…. 로잘린….”
마법사(로잘린) : “네네~. 손은 안 댔겠지. 아이가 협박당했다고 다~ 자백했으니까. 모르모트 정도면, 특별히 봐준 거야.”
용사 : “에아…. 물건을 훔친…. 게…. 아니라고…!”
기사(에아) : “시끄럽습니다. 이참에 제가 국왕 폐하를 대신해 심판해드리죠. 더는 남자 구실을 못 하게 말이죠.”
기사는 몽둥이를 들고 용사의 성기를 박살 내며 깔깔 웃었고, 마법사는 마력을 가지지 않은 대상으로 한 연구 자료가 필요하다면서 약물을 계속 주입하며 실험을 강행했다. 용사는 그런 적 없다면서 계속 부인했지만, 저들은 같은 동료가 맞긴 했나 싶을 정도로 용사의 말을 무시했다.
마왕이 용사 파티의 잔인함에 치를 떨고 있을 때, 기억의 움직임이 멈추며 각자의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용사 : (내 말을 들어달라고! 로잘린, 난 그 아이를 본 적도 없고, 애초에 다른 아이들에게도 험한 짓을 하지 않았단 말이야! 그리고, 그 물건은 에아 네가 필요하다고 해서 양해를 구하고 잠시 빌린 뒤에 다시 돌려드렸잖아! 기억 안 나?! 제발 부탁이야, 풀어줘! 풀어달라고!)
마법사(로잘린) : (감히 어중이떠중이 주제에, 내게 대들어? 난 마법학회의 권위자라고! 내 말이 곧 진리인 것을, 굳이 캐물어 가면서 부정하려 들어? 미천한 것 주제에…. 마침 네놈에게 불리한 상황이네. 잘 됐어. 마왕도 잡았고, 세계는 평화로워졌으니, 용사 따윈 필요 없잖아? 거짓 증언이든 뭐든 상관없어. 마력이 안 통하는 체질인 만큼 연구 가치는 있을 테니, 감옥에서 썩는 동안엔 열심히 굴려주지. 내게 대든 죄로 넌 더 고통받아야 해.)
기사(에아) : (용사가 왕국에 돌아간다면 필시 나보다 높은 자리에 앉겠지. 그럴 순 없어.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기사단장 자리는 내 것이야. 내 몸을 팔아서까지 얻으려고 한 자리라고! 아, 그래. 녀석에게 불리한 증언을 몰래 만들어내자. 그걸로 녀석을 각종 죄목을 부여한다면, 나는 이런 더러운 놈을 데려가고도 마왕을 잡았단 소문이 돌 테고, 고결한 기사 같은 수식어가 붙으면서 내 입지는 더욱더 높아지겠지. 후후후…. 쓸모를 다 했으니 이제 사라져줘야겠어, 영웅 나으리~.)
마왕 : “처음 기억부터 어질어질하구나…. 그러고 보니 용사만 적극적으로 싸우고 나머진 뒤에서 눈치만 보더니만, 이런 거였나…. 우매한 벌레 놈들이…!”
마왕은 화가 나지만 참고 이 진실을 돌아가서 용사에게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음 기억으로 넘어갔다.
이번 기억은 무너진 자신의 성 앞이었다. ‘아마 날 이기고 난 후겠구나.’라고 생각한 마왕은 용사의 다른 동료들의 행각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용사 : “커흑! 사제님, 무슨…!”
사제 : “이때만을 기다렸어요. 당신의 힘을 얻는 날을.”
도적 : “나도 이 성검을 비싸게 팔아먹을 날을 기다렸지!”
용사 : “ㅁ, 무슨 생각이십니까…. 성검은 용사 아니면 사용할 수 없고, 용사의 힘은 곧 여신님께 돌아갈 겁니다! 사제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잖습니까!”
사제 : “제가 언제부터 진실을 말했다고 생각한 거죠?”
용사 : “네…? 그럼 설마…. 아냐, 아냐…. 율리아, 거짓말이죠?”
사제(율리아) : “순진한 건지 호구인 건지. 제가 당신과 가까이 있던 건 언제고 당신의 힘을 가져가기 위해서였어요. 당신 같은 꼭두각시에게 뭐하러 사랑과 자비를 줍니까?”
용사 : “그래서 이렐과 같이 작당한 겁니까? 언제부터?”
도적(이렐) : “네 성검을 훔치는 시늉을 했을 때부터. 네가 대담하다면서 파티로 끌어들여 줘서 일이 더 쉬웠지. 안 그랬어도 율리아가 날 구인했다는 식으로 들어왔었겠지만. 꺄하하하!”
이후 도적은 힘을 잃은 용사를 구타하다 왼팔을 잘랐고, 사제가 힘을 받아 성녀가 되는 장면을 보며 용사는 기절하기 직전까지 숨죽여 울고 있었다.
마왕 : “이들은 내가 정말 죽었다고 생각했나 보군. 잠깐 후퇴한 사이에 용사에게 각자의 본색을 드러낸 건가…. 추악한 년들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구나!”
그리고 다시 한번 기억의 움직임이 멈추며 속마음이 들려왔다.
용사 : (율리아…. 당신을 믿었어. 먼저 스스럼없이 다가와 준 당신이 정말 고마워서, 이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날 도와줘서…. 믿었는데…. 당신이 바라본 건 제가 아니라 용사의 힘이었군요. 그리고 이렐…. 널 재밌는 친구라고 생각했어. 근데 그냥 돈이 미쳤구나…. 돈만 되면 불법이든 뭐든 해버리는….)
사제(율리아) : (하아. 이제 됐어. 성녀가 되는 데 성공했어. 용사 새끼가 호구라 다행이었지. 으으, 역겨워. 그나저나 이제 우리 교단, 아니, 내 교단이 세력을 늘리면 어린 소년들도 막 들어오고 그러려나? 후후후…. 몸이 달아오르네~. 신의 대리인의 명으로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겠어.)
도적(이렐) : (헤헤헤. 이거 얼마쯤 할까? 아니, 가짜 버전도 만들어서 진짜처럼 속여서 팔까? 아, 그래! 진짜로 눈속임하고 가짜들을 파는 거로 하자! 그리고 왼팔은 인육을 취급하는 식당에 최고급 재료라고 말하고 팔고~. 용사의 팔이라면 존나 비싸게 팔리겠지! 이히히히~.)
마왕 : “이…! 벌레라고 부르는 것이 벌레에게 미안해질 정도구나!”
결국, 마왕은 격분해 기억의 사제와 도적에게 공격을 가했으나 그 기억의 모든 것들이 노이즈가 끼는 것처럼 흩어지다 다시 형체를 만들어가며 다음 기억으로 넘어갔다. 이번 기억은 노인의 시체 앞에서 오열하는 용사와 용사 파티의 또 다른 두 동료가 있었다.
전사 :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면 기분이 참 좋지. 안 그래?”
궁수 : “후후후.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나.”
용사 : “왜! 왜 그러는 건데! 이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궁수 : “잘못이 없다고? 이 세계에 온 널 받아들이고 도와준 게 잘못이지.”
용사 : “루루!”
궁수(루루) : “그 역겨운 입으로 내 이름 부르지 마!”
전사 : “그만해, 언니. 저딴 놈에게 감정 소비하기도 아까워.”
용사 : “메이벨…. 왜 날 안 죽이고 주변 사람들만 죽이는 건데. 그것만이라도 알려줘.”
전사(메이벨) : “내가 왜? 사람들 피해 다니게? 꿈 깨. 넌 창관에 끌려가서 학대용 노예가 될 거니까. 살려주는 이 자비로움에 감사라도 해.”
궁수(루루) : “시간 됐어. 슬슬 가자 메이벨.”
마왕은 창관으로 무력하게 끌려가는 용사를 보고 울었다. 마치, 제 슬픔인 듯이 울었다. 정신없이 울었을 때 기억은 이미 멈춰 있었다.
용사 : (루루, 메이벨. 왜 날 죽이지 않는 건데? 왜 내 주변인들만 죽이고, 날 몰아넣으려는 건데? 창관에다 날 팔았다고? 내가 너희에게 그렇게 가르쳤었니? 아니면, 내가 싫어서 가르친 행동에 반하는 거니? 내 신념을 꺾고 싶기라도 한 거니? 너희도 그렇고 로잘린도, 에아도, 율리아도, 이렐도…. 왜?)
전사(메이벨) : (아, 드디어 짐짝 치웠네. 스승? 웃기시네. 지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막말이야? 뭐, 용사 파티였다는 꼬리표는 달아줬으니 그건 고맙지만. 덕분에 루루 언니랑 같이 다른 파티에 안 들어가도 충분히 놀고먹을 수 있겠어. 그러고 보니 루루 언니가 내게 좋은 유흥거리를 알려준다고 했었지. 루루 언니~ 이제 한동안 방해물도 없으니 유흥이나 즐기자~.)
궁수(루루) : (방금 용사 녀석을 보낸 창관은 사실 내가 자주 가는 창관이다. 거기서 난 쾌락에 눈을 떴고, 다른 마을의 창관에서도 몰래 밤새도록 거기서 즐기기도 했다. 그런데 내 유일한 낙을 방해하려 해? 용서 못 해. 네놈 때문에 여러 번 재미도 못 보고 마을을 떠났단 말이야. 그러던 차에, 스승이랍시고 나대는 꼴을 못 봐주겠다고 생각한 메이벨과 의기투합했고, 작전은 성공했다. 이제 또 다른 쾌락으로 지겨워지지 않겠네? 오호호.)
마왕 : “미친년들…. 어떻게 하나같이 미친년들 뿐이지….”
기가 찬 마왕. 이젠 화낼 힘도 없어졌다. 이게 인간이 인간에게 할 짓인지 의문만 남을 뿐이었다. 용사로 선택받은 이가 단지 마력을 쓸 수 없어서 차별하는가? 아니면 여신이 용사를 괴롭히라고 신탁이라도 내린 건가?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의 저주? 혼란스러운 머리를 붙잡고 있을 때, 기억들이 흩어지며 순간순간을 빠르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창관에서 전사와 궁수가 남자들과 성관계를 하면서 용사를 구타하고 있었다.
용사는 창관에서 번 돈을 끝까지 지켜내며 자신의 몸값을 다시 지불하고 자유가 됐다.
성녀가 된 사제가 이끌고 온 이단심문관에 의해 구제라는 명목으로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용사는 악착같이 버티며 이단심문관이 고갤 저을 정도로 모진 고문을 견뎌내고 성당을 나왔다.
도적이 용사를 묶고 다리의 살을 저미고 오른팔의 힘줄을 뽑아내며 환희에 찬 웃음을 보인다.
용사는 포기한 척하다가 다리가 어느 정도 회복됐을 때 탈출에 성공했다.
기사는 마을 밖을 나가려던 용사를 자신의 말에 묶어 끌고 다녔다.
용사는 줄이 끊어졌을 때 절벽으로 뛰어내려 기사로부터 도망쳤다.
마법사는 용사가 살아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모르모트로 써먹기 위해 납치했다.
용사는 온몸이 뒤틀리는 고통을 견뎌내며 탑 꼭대기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용사는 거지 행세를 하며 마을에서 푼돈을 모아 약을 사고,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연명했다.
이 모든 장면을 본 마왕은 결국 구역질을 했다.
마왕 : “으욱. 우웨에엑. 케헥. 하아…. 하아…. 어찌 이런….”
마왕은 당장이라도 그만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걸고 엿본 금단의 지식을 보는 게 나을 정도였다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기억이 남아있었다. 그걸 보기 전까진 나갈 수 없었다. 이보다 더한 역겨움이 있을까 생각하며 마왕은 다시 고갤 들었다.
마지막 기억의 배경은 용사의 집이었다. 용사는 덜덜 떨면서 난로 앞에서 몸을 쬐고 있었다. 그리고 정문이 열리더니 이 세계로 용사를 보낸 여신, 베스텔이 나타났다.
용사 : “오랜만입니다. 베스텔 여신님.”
여신(베스텔) : “용사, 당신에게 알려줄 게 있어요.”
용사 : “…. 듣고 있습니다.”
여신 : “당신은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어요.”
용사 : “마왕은 토벌된 것 아닙니까?”
여신 : “아뇨, 살아있어요. 마무리가 허술하더군요.”
용사 : “그렇군요…. 하지만, 여신님께서 보시다시피 저는 지금 마왕과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여신(베스텔) : “제 알 바입니까?”
용사 : “…. 네?”
여신(베스텔) : “사실, 당신은 용사가 되면 안 됐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제 실수죠. 그래도 당신은 전대들보다 나름대로 일을 잘 처리하길래 그냥 뒀지만 뭐…. 애초에 진짜 용사가 아니니 마왕을 쓰러트릴 수 없는 거죠.”
용사 : “…. 허, 그럼 날 다시 원래 세계로 보내고 진짜 용사를 데려오면 되는 거 아닙니까?”
여신(베스텔) : “글쎄요. 그럼 제 실수가 드러날 테니까요. 여태 이룬 제 업적들에 금이 가는 건 싫거든요. 그리고….”
마왕은 여신의 다음 말을 듣고 오늘 몇 번째인지 모를 충격을 받았다.
여신(베스텔) :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도 모른 체 발버둥 치는 게 하찮고 귀엽네요. 그래서 당신을 최대한 불행하게 만들었고요.”
용사 : “…. 동료들한테 무슨 짓을…!”
여신(베스텔) : “설마 세뇌를 생각했나요? 그런 하찮은 짓을 왜 합니까? 저들에게 따로 신탁을 내린 것도 아니랍니다? 저들은 자기 욕망에 찌들어 당신을 본인의 의지로 배신한 거고, 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답니다?”
여신(베스텔) : “재밌네요. 그래도 꼴에 동료라고 먼저 챙기다니.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인간은 본래 추악한 존재. 어느 세계든 간에 싸움만 일으키고 다니는 골칫덩어리죠. 그래서 장난감으로 써먹기엔 최적이지만.”
여신(베스텔) : “아, 그리고 당신이 여기로 오고 난 직후 원래 당신이 살던 세계는, 제가 멸망시켰고요.”
용사 : “…. 씨발…. 빌어 처먹을 개새끼야…! 신이란 작자가 이딴 짓을 벌이는 게 정당하다는 거냐!! 뭘 쳐 웃는 건데!!! 으아아아아!!!!!!”
용사의 처절한 울부짖음에도 여신은 비릿하게 웃으며 수고하라고 말하곤 그대로 집을 나가고, 용사는 불 꺼진 난로 앞에서 울부짖다 지쳐 쓰러져 울고 있었다.
마왕 : “용사…. 동료라고 믿었던 녀석들 말고도 베스텔 그 작자한테도 배신당한 거였어…?”
마왕은 착잡한 기분을 가진 채 기억의 용사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때 마법이 풀리면서 현실로 깨어났다. 눈을 뜨자 자신은 소파에 누워 있었고, 옆에선 바닥에 앉은 용사가 자신의 손을 잡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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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
용사는 파티원들의 이름을 알지만, 파티원들은 용사의 이름을 물어보지도 않았고, 듣고 싶어하지도 않았기에 모름.
너무 상세하게 표현하면 거부감 들것 같고, 내가 필력이 딸려서 못쓰겠음
너무나도 한탄스럽다
새삼 느끼지만 창작 활동하는 사람들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