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구절이 진정 마음 깊은 곳에서 숭고한 사상을 일게 하니, 우파니샤드 만큼 유익하고 인간을 고양시키는 사상은 없다... 우파니샤드는 인류 최고의 지혜의 산물이니 이것이야말로 곧 인류의 신앙이 될 것이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우파니샤드는 단 하나의 책이 아닙니다. 

우파니샤드는 힌두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시리즈 중 하나인 베다에서부터 기원하는 서적들로, 베다는 힌두 세계관의 거대한 틀과 우주관, 철학관을 설명하는 방대한 자료라면, 우파니샤드는 일종의 '설명서'에 가깝습니다.



베다의 폐쇄성과 제한성 때문에 백성들에게 이 내용이 전달되기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고, 결국 고대 인도인들은 이 사상을 쉽고 이해하기 편하게 정리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우파니샤드 입니다.

(혹은 마지막 베다란 뜻으로 '베단타'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우파니샤드는 한 사람에 의해 창작된 것이 아닌, 수십, 수백명의 저자들이 만들어낸 시와 이야기들을 총칭합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우파니샤드는 200개가 넘고, 그 중 유명하고 세상에 널리 퍼진 우파니샤드는 18개 정도가 있습니다.



우파니샤드에서는 다양한 진리와 값진 지식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지식이란 경험을 바탕으로하는 일반적인 지식이 아닌, 힌두 세계관 내에서 삶의 순환과 우주와 인생의 비밀을 속삭이는 신비한 지식이었습니다.



따라서 우파니샤드의 현인들은 이 내용들을 스승과 제자의 관계 아래서 조심스러운 지식으로서 전수했던 것입니다.

'우파니샤드'는 '가까이 내려 앉는다'라는 뜻으로 제자백가의 사상가들이 다른 이들에게 자신들의 사상을 전파했던 것처럼 선생과 제자가 가까이 앉아 대화를 통하여 지식을 전수했다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우파니샤드는 주로 대화의 형식으로 전개되며, 우리는 이 진리탐구적인 토론들을 통하여 우파니샤드의 인물들이 힌두 세계관 내에서의 궁극적인 진리와 이를 추구하는 철학적 질문들, 그리고 영생을 바라면서도 묵샤 (해탈)을 바라는 종교적 갈망을 여실히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재밌는 점은 우파니샤드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계급, 즉 카스트들이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브라만 계급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크샤트리아, 수드라, 그리고 여성과 아이들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가부장적이고 계급주의적인 힌두교 내에서 주목할 만한 점입니다.




기나긴 서론을 지나, 우리는 우파니샤드가 말하고 있는 진리를 탐구해 볼 것입니다.



우파니샤드는 단지 힌두 철학에만 속한 것이 아닌, 인간이라면 한 번 쯤 고민해 볼 만한 자기 자신 (self)와 우주의 원리, 그리고 상호관계, 정신세계와 자아추구등에 대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연구한 결과입니다.



고대 인도인들은 자신들이 정립한 힌두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의 운명이란 카르마, 혹은 업의 법칙에 의하여 윤회의 세계에서 끝없는 삶과 죽음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자신의 육체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며, 자신의 삶은 목적없는 무의미함과 고통을 겪는 수단일 뿐이라는 점에 현자들은 고심했고, 어떻게 해야 이 순환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를 고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적인 행위는 무의미했습니다.



무언가를 하는 행위는 그것이 도덕적이든 아니든간에 반드시 추후 내세에 결과를 초래하게끔 되어 있어 인간을 계속해서 윤회의 세계에 속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었습니다. 



선한 업을 쌓아도 이 현실을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은 현자들은 삶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서 행위가 아닌, 우주의 영원하고 절대적인 진리를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파니샤드의 핵심 진리는 "브라만"과 "아트만"의 관계성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게 끝이에요! 

정말로요.



하지만, 여기서 끝내기에는 김이 팍 식으니 우리는 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볼 겁니다.



브라만과 아트만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확인해주세요 -> "힌두 철학의 핵심 정리" 



우파니샤드에서 다수의 저자들은 우주의 궁극적 진리인 브라만을 깨달으라고 합니다. 

Neti-Neti (네티 네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이라는 설명을 가진 브라만은 도저히 인간의 단어로는 단정지을 수 없는, 어떤 범주로도 제약하거나 제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것은 우리의 관념이나 범주를 초월하므로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 없고, 무엇으로 표현된 절대자는 이미 진정으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나 자신의 본질이며 참된 자아인 아트만 (Atman)의 개념이 더해지면서, 우파니샤드의 현자들은 이 아트만과 브라만의 존재를 동일시하게 됩니다.



Tat tvam asi

범아일여 (梵我一如)

브라만과 아트만은 동일하다는 사상이 바로 우파니샤드의 진리입니다.



우파니샤드는 여러 비유와 설명을 들어놓으면서 위에 언급했던 브라만과 아트만의 관계를 정립하려 합니다.



예를 들면 거미와 거미로부터 나온 거미줄, 악기와 그로부터 나오는 소리들...

이 비유들이 암시하고 있는 바는 숫자 하나와 다수의 관계로서 하나와 다수는 다른 것이 아니며, 그저 하나는 불변하는 현실, 그리고 다수는 변화하는 현상세계로서 사실은 단지 이름과 형태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파니샤드에서 인간의 참 자아를 아트만이라고 불렀습니다. 

문제는 무엇이 참으로 인간의 불변하는 자아를 구성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파니샤드에서 자아는 인간의 모든 인식과 정신적 활동을 지켜보는 증인과 같은 존재로서 결코 우리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모든 강물이 결국 하나의 바다로 모이고, 소금이 물에 녹아도 물의 어느 부분을 맛보나 짠맛이 나는 것처럼, 아트만에는 아무런 개별적인 차별성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아트만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편재하는 공통된 본질이니, 브라만은 곧 아트만이고 이 진리를 깨닫는 것이 우파니샤드에서 말하는 최고의 지식인 것입니다.

자신이 곧 브라만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사람은 모든 욕망과 두려움에서부터 해방됩니다. 

왜냐하면 자기자신 이외에 따로이 원하거나 두려워할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들은 모든 카르마에서 자유로워지며 죽고 난 이후에는 윤회하는 일 없이 브라만 그 자체로 절대적이고 영원한 삶을 얻습니다.



이 부분에서 서양의 물리학자인 에르빈 슈뢰딩거는 매우 흥미로운 점을 발견합니다.

바로 '통찰로 인한 진실'과 우파니샤드의 '반이분적 사고'가 바로 그것입니다.



슈뢰딩거가 연구했던 양자역학, 그리고 이 양자역학은 관찰자와 관찰된 것의 경계를 허무는 학문입니다. 



우파니샤드에서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들은 '마야' 즉 비현실적인 환각이라 칭합니다. 

인간의 불완전한 감각과 브라만을 깨닫지 못하는 헛것, 인간의 무지함, 제한된 장막때문에 진실을 알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마야의 장막을 걷어내고 모든 것이 하나임을 알게 되는 때, 그 때가 바로 깨달음의 순간인 것이죠. 

"나도 바로 그것이며, 너도 바로 그것이며, 이 모든 것이 브라만이다."



다시 슈뢰딩거와 양자역학으로 돌아와서, 

양자역학에서 파동과 분자는 동일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그저 우리가 '인식'했음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지만 결국에는 동일합니다. 

인간의 미약한 통찰력은 두개의 것이 같다는, 자연적인 진리를 깨닫게 하는 걸 방해하는 거지요.



어디서 많이 본 내용 같지 않나요?



바로 위에서 설명했던 우파니샤드의 내용과 일치한답니다;



아트만과 브라만은 동일하지만 비현실적인 환각 '마야'에 의해 인간은 현재에서 이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파동과 분자는 동일하지만 인간의 불가능한 통찰에 의해 인간은 오랫동안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우파니샤드는 힌두 사상뿐만 아니라 포괄적인 영향력을 전세계로 퍼뜨렸습니다...














 


결론적으로, 건강과 재물, 명에, 권력들을 차지하여 행복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다고 하여도, 욕망을 털어버린 자의 행복감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합니다. 이런 해탈, 묵샤의 경지가 최고의 행복이며....


...이는 곧 브라만의 세계이자 200개가 넘는 우파니샤드가 공통적으로 부르짖는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