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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ll Never Walk Alone. 위르겐 클롭.






마인츠의 레전드 선수, 감독인 남자. 뮌헨을 꺾고 도르트문트에게 분데스리가 2연패를 안겨준 남자. 중위권으로 추락했던 리버풀을 화려하게 부활시킨 남자.











위르겐 클롭에 대한 말. 말. 말.



(클롭이 최대 라이벌인 것은) 우리가 10억번 정도는 맞붙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로는 그는 나를 많이 패배시켰고, 그를 상대하는 것은 언제나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계속, 계속, 계속해서 마주한다는 것은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존경한다. 적어도 나는 그를 엄청나게 존경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난 그가 나를 패배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서로를 마주한 시간의 양, 그리고 그를 패배시켰을 때의 기쁨으로 볼때에 그는 나의 가장 큰 라이벌이다. 그를 패배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두들 알기 때문이다.

(클롭의 리버풀 사임 소식을 듣고) 난 더 편히 잘 수 있을 것이다. 리버풀과 경기하기 바로 전의 날들은 거의 악몽과도 같았다. 물론 그를 그리워할 것이다. 나는 뉴스를 보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나는 마치 맨시티의 일부분이 떨어져나간 것처럼 느꼈다. 우리는 우리의 시대를 클롭과 리버풀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정의할 수 없다, 그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우리의 최대의 라이벌이었고, 개인적으로 내가 바이에른에 있고, 그가 도르트문트에 있을 때부터 그는 나의 최대의 라이벌이었다.


마인츠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춤을 배울 수 있는 코스를 제공하곤 했다. 클럽의 회장 하랄트 슈트루츠는 그의 부인과 참여했고, 나는 내 부인 마리아네와 함께 참여했었다. 그 클래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클롭이었다. 사실 우리는 그의 춤실력을 그리 신뢰하지 않았다. 그의 축구실력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보니까 확실히 축구장에서 공 차는 것보다 춤을 더 잘 췄다.

스벤 데만트[21]

마인츠에서 선수생활을 할때에 시니어팀 그리고 주니어팀으로 나뉘어 연습경기를 치른 적이 있어요. 클롭은 시니어팀이고 저는 주니어팀이었어요. 주니어가 7-1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서로를 할퀴었어요. 저와 클롭 둘 다 몹시 흥분한 상태였어요.저는 클롭에게 꿀밤을 맞고 클롭의 목을 졸랐습니다. 당시에 주장이었던 골키퍼 디모 바케가 골대에서 달려와서 또 우리 사이에 뒤섞이고 엉망진창이 됐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그 사건을 떠올리면서 하루종일 미친듯이 웃었어요.


기억에 가장 오랫동안 남아있는 건 그와 함께 나누었던 전화통화이다. 그때가 아마 2001년 3월 카니발 월요일이었을 것이다. 그때 마인츠는 재정적인 위기를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감독을 교체해야만 했다.나는 집 소파에 앉아 고민을 거듭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서 당분간은 감독 없이 훈련하라고 말해놨었다. 그당시 클롭은 팀의 전술적인 리더였다. 그때 클롭은 현역이어서 선수들과 훈련장 근처에 머물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호텔방으로 전화를 걸어서 감독을 바꿀 건데 네놈이 한 번 맡아보라고 말했다. 바깥이 축제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가 혹시 술취했냐고 물어볼 줄 알았는데 그는 의외로 5초도 지나지 않아서 감독직을 수락했다. 그렇게 해서 선수였던 위르겐 클롭이 그 다음날부터 바로 감독 위르겐 클롭이 되었다. 그리고 그 녀석은... 이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


위르겐이 나를 1군 훈련장으로 불러들인 것은 내가 17살 때의 일이다. 그는 그자리에서 나와 면담을 했고 자신감을 심어줬다. 나는 그 날 들은 이야기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르트문트에서 분데스리가에 데뷔했다. 내 어린시절에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것은 내게 큰 축복이었다. 그는 내게 축구의 아버지와 같으며 내게 성공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 은인이다.


클롭은 이미 그때 감독이었고, 숙소에서는 나와 잔드로 슈바르츠가 방을 함께 썼다. 난 밤이 되면 배가 몹시 고파서 뉘른베르거 소세지를 시켰다. 좀 이따가 누가 방문을 똑똑 두드리길래 문을 열었더니 내가 레스토랑에 주문한 음식을 클롭이 들고 미친듯이 웃고 서 있었다.

미하엘 터크

2002년 마지막 경기에서 마인츠는 우니온 베를린을 상대로 1-3으로 패하는 바람에 승격에 실패했다.승격까지는 단 1점이 모자랐다. 승점 단 1점이. 감독이었던 클롭은 크게 자책했고, 그에게는 심리적으로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 이듬해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우리는 승격까지 단 한 골이 부족했었다. 우리는 브라운슈바이크를 상대로 4-1로 이겼지만, 프랑크푸르트는 로이틀링엔에게 6-3으로 이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들은 클롭이 락커룸으로 뛰어들어가서 앉아 있는 걸 봤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가 혼자 있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가만히 두었다. 딱 하루가 지나자 그는 팀을 이끌고 팬들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 우리는 다시 일어날 겁니다. 절대로 부숴지지 않습니다. 우리 팀 말고 다른 팀을 올려줬던 호의는 이제 두 번 다시 누구에게도 베풀지 않을 겁니다. > 이러한 순간들이 기초가 되었기에 2004년의 승격이 가능했다고 본다. 감독으로서 매순간 사람을 매료시키는 그의 태도는 배운다고 해서 배워지는 게 아니다. 클롭은 마인츠에서 하나의 모토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세계 축구계에 널리 퍼지고 있다.

하랄트 슈트루츠 前 마인츠 회장

클롭은 언제나 정직한 단어들을 찾아냈어요. 난 그것들이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그는 내게 이런 식으로 인사를 했어요. < 여기서 모든 것을 불태우게 될 거야. 전력을 다하라고, 이 멍청아! > 그는 나를 비틀거나 바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대해줬어요. 그리고 어느날 도르트문트 재정 문제 때문에 나를 완전이적시킬 수 없다고 직접 말하더라구요. 저는 그때 펑펑 울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내가 넘어졌을 때 내 두 발로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게 만들어준 클럽이었고, 많은 친구들이 있었으니까요. 저는 클롭을 인간으로서 그리고 트레이너로서 높이 평가해요. 그는 선수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팀들이 그와 함께하는 거고 언제나 전력을 다하는 겁니다.


내 선수 시절에 위르겐과 함께한 특별한 순간들이 많았어요. 그 중에 하나를 꼽기가 힘들 정도로 믿지 못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2013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둔 어느날 클롭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비디오 한 편을 보여줬어요. 그 비디오는 도르트문트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담은 영상이었습니다. 최고의 순간들, 감격적인 순간들이 영상으로 펼쳐졌어요. 아마 그는 리버풀에서도 그런 일을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팀에게 어마어마한 힘을 주니까요.


2007년에 함부르크는 4명의 감독을 눈여겨보고 있었고 그 중에 위르겐 클롭도 있었다. 클롭이 2007-08 시즌을 마치고 마인츠를 떠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스카우터들은 후보자들이 어떻게 팀을 훈련시키고,  선수들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 심지어 복장까지 주도면밀하게 관찰했다. 그런데 클롭은 청바지를 입고 출근을 했다. 그의 구멍 뚫린 청바지가 당시 우리 눈에는 좀 거슬렸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클롭을 제외하고 마틴 욜을 택했다. 그리고 2008-09 시즌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하지만 위르겐 클롭이 왔더라면 아마도 함부르크는 지금과는 다른 길을 걸었을 거다.

베른트 호프만 前 함부르크 회장

그와 나눈 대화가 기억난다. 2009년의 어느 날이었는데 그가 내게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원래 머리가 좀 모자라냐고. 당시에 나는 매번 제로에서 모든 걸 시작해야 하는 선수였고. 그는 지금 내 수준을 겸허히 인정하고 배워야만 한다고 조언했다. 나 역시 좋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마침내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모든게 잘 되었다. 2011년에 나는 프로 데뷔 이후 줄곧 염원하던 리그 우승컵을 들었고 여름에 도르트문트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수 있었다. 위르겐은 언제나 정직했고,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다. 나는 이 점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


위르겐 클롭과 서로 알고 지낸 건 꽤 오래 됐다. 특히 그가 도르트문트를 지휘하던 시절에 만날 일이 많았다. 당시 도르트문트 선수들이 대표팀에 여러 명 차출되면서 그와의 만남도 잦아졌다. 감독들끼리도 모였고 밤에도 이따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를 만나면 업무적으로만 좋았던 게 아니라 언제나 아주 즐겁고 유쾌했다.


위르겐 클롭과 TV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했을 때 한 주제를 놓고 서로 의견이 충돌한 적이 있다. 나는 그게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고 비교적 편안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처럼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순간들을 경기를 마치고 난 뒤에 카메라 앞에서 종종 경험해 봤기 때문에 평정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언쟁은 내겐 그리 대단한 문제는 아니었고 빨리 잊어버렸다.감정이 남았던 것도 아니고. 클롭이 자신은 이처럼 격렬하게 본질로 다가가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 역시 언쟁 한 번 했다고 삐치거나 하는 어린아이는 아니다.


클롭과의 첫만남은 굉장히 특별했다. 나는 2009년에 도르트문트로 이적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2부리가에서 뛰던 그저그런 선수에 불과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클롭은 첫 면담에서 나를 마치 슈퍼스타처럼 대해줬다. 그는 나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었고, 도르트문트의 컨셉을 설명한 뒤에 내가 왜 이 클럽에 중요한 선수인지를 말해 줬다. 나는 완전히 감명받았고 한시라도 빨리 경기장으로 뛰쳐나가고 싶어졌다. 그 뒤에 클롭은 선수들 앞에서 나를 아주 멋지게 소개했다. 그때 나는 클롭이 나에게서 특별한 퍼포먼스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클롭 감독과 작별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실수였다. 차라리 클롭 감독 한 명이 아닌, 클롭 감독만 빼고 나머지 팀 전체를 보내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2018년 여름 나는 그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겠냐는 말을 했다. 나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 다시 그에게 돌아오라고 강력하게 요청하지 않은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


내 생각에 위르겐 클롭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을 바꾼다면, 내가 생각하기로 2년이나 3년이면 리버풀 선수들이 보여주는 비슷한 모습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에게서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처음 클롭이 왔을때, 우리 모두 리버풀과 그 몇몇 선수들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돌이켜 보자. 그들 모두 다른 수준에 도달했다.


현재 위르겐 클롭은 모든 것의 기준점이다.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가 리버풀에서 어떻게 축구를 하는지, 유연성과 정신력, 불확실성, 아무리 힘든 시기일지라도 골을 넣고 역전을 가능하게 해준다. 위르겐 클롭이 리버풀을 위해 해온 것들을 과장할 수는 없으며, 그는 독일 감독으로서 독일 축구의 간판이다. 그것은 우리를 자랑스럽게 한다.


클롭이 왔을때, 리버풀은(21-22시즌 맨유보다) 더 심각한 상태였고, 그로부터 2.5년뒤 그들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있었다..

클롭이 2015년에 부임한 이래 해온 일들을, 우승을 하고 팬들과 유대감을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것이 리버풀의 팬이라면, 이 특별한 자주적인 모델에 그가 아닌 다른 누가 구단을 맡기를, 내가 원하지 않는 이유이다. 난 펩 과르디올라도 포함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클롭과 펩을 비교하지 마라. 우승 경쟁에선 펩이 더 이겨봤어도 모발과 개그에선 존나 쳐발린다.

펩과 클롭은 취향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