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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방붕이여서 스캇은 없다. ㅈㅅ




"어이! 빨리 출발하라고!!"


아래층에서 짜증이 섞인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에~ 갑니다, 가요…"


나는 형식적인 목소리로 대답하며 옷을 마저 갈아입었다.


나는 문을 열고 길가로 나왔다. 내 앞에는 짐을 잔뜩 실은 나귀가 대기하고 있었다. 짐 위에는 쪽지가 놓여있었다. 쪽지에는 안에 들어있는 물품이 부셔지지 않게 취급을 조심하라고 써져 있었다. 틀림없이 성가신 고객의 요구임이 틀림없었다. 나귀를 타고 멀리 가야하는데 그걸 일일히 신경쓰는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쯤에서 내 직업이 짐작이 갈 수도 있겠지만, 나는 배달부이다. 이 대도시 위버랜드에서 주변의 온갖 장소로 배달을 하며 먹고 사는게 내 인생이다. 보잘것 없어보일지도 몰라도 솔직히 모험가랍시고 던전에서 싸우면서 하루 벌고 하루 먹고 사는 것 보다는 낫다고 본다.


이번 배달은 몇 시간 정도 떨어진 에버렌이라는 마을이었다. 가는데 며칠씩이나 걸리는 다른 도시들보다는 나은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마을이다보니 길이 그렇게 잘 닦여있을 것 같지는 않은 예감이 들었다.


‘잠만, 에버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이었다. 예전에 설화 같은데서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었는데…

생각을 하다보니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술집에서 무심결에 들은 듯한 기억이 났다. 한 수염난 대장간 아재가 뭐라고 시끄럽게 지껄이길래 나도 곁에서 들은 모양이었다.


에버렌은 수십 년 전에 한 비극이 있었던 마을이라고 한다. 원래는 평범한 마을이었던 에버렌 근처의 숲에서 영원의 샘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샘물을 마신 마을 주민들을 아름다운 미모와 영원한 젊음을 얻었고, 온 국가에 그 마을의 이름이 퍼졌다고 한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마을에 어떠한 저주가 내려졌고, 이후 몇 년간 당시 위버랜드의 통치자였던 브리엔느 여왕과 에버렌의 촌장이었던 엘프 티렐이 힘을 합쳐 저주를 풀기 위해 노력을 하였고, 그녀들의 숭고한 희생 끝에 저주를 봉인하는데에 성공했다고 들었다.


적어도 그게 내가 들었던 이야기였다.  정확한 경위는 에버렌 외부 사람들을 잘 모르는 듯 하였다. 설화처럼 퍼진 이 이야기는 사람들마다 말하는 결말과 세부적인 사항이 달랐다. 누구는 그녀들이 희생하여 저주를 봉인하였다고 했고, 누구는 저주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하였고, 누구는 그녀들이 아직도 샘물 덕분에 아직도 왕국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한다.


아무튼 그 후로 몇십년이 지났고, 지금은 다시 평범한 마을이라고 말은 들었다. 그래도 듣기로는 샘물의 효과는 정말로 사실이었는지, 에버렌에 가면 그렇게나 예쁜 미녀들이 많다고 했다. 특히 매년 열리는 미녀 대회에 가보면 정말 대단한 경험을 할 것이라고 예전에 한 모험가가 말해주었다. 맨날 일하면서 돈 걱정에 시달리던 나에게는 때마침 좋은 소식이었다.


그렇게 예쁜 누나들을 만날 생각에 잔뜩 들뜬 나는, 늙은 나귀를 이끌고 에버렌 쪽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나서기 시작했다. 그 설화 중 얼마가 진실이고 얼마가 허구일지 궁금해 하면서 말이다.


몇 시간이 지났다. 분명 이른 오전에 출발했건만 어느새 해는 중천을 넘어 서쪽 하늘에 있었다. 그리고 흙으로 된 길을 따라 가던 나는 마침내 앞에 마을을 봤다. 취급 주의라는 배달 옵션 때문에 쓸데없이 시간을 더 많이 쓴 듯 하였다.


마을 입구에 들어선 나는 수신인의 집 주소를 찾아 이리 저리 둘러보았다. 마을의 분위기는 꽤나 시끌벅적하였다. 길을 따라 걷던 나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연례 에버렌 미녀 대회"


설마 했던 그 미녀 대회가 하필이면 오늘 열리는 날일줄은 몰랐다. 얼른 배달을 끝마치고 대회를 구경하러 가기 위해 나는 나귀를 부추기며 서둘러 배달해야 하는 집을 찾아 나섰다.


“허억...허억…”


미녀 대회를 보겠다는 일념만으로 나는 에버렌 마을을 한바퀴 돌아 드디어 수신인의 집을 찾았다. 작은 마을 주제에 길에 쓸데없이 골목들과 작은 샛길들이 많은 탓이었다.


똑-똑


“계세요?” 


인기척이 없는 듯 하였다. 평소였으면 그냥 문 앞에 놓고 가던가 했으면 되었지만, 발신인이 수신인이 직접 수령해야 한다고 하였기에, 나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면 묻기라도 할 수 있었지만, 다들 미녀 대회라도 보러 같는지 거리에 사람들이 보이지를 않았다.


이렇게 잠자코 기다리고만 있다가는, 미녀 대회도 보지 못하고 바깥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다가 끝날게 분명했다. 나는 나귀를 수신인의 작은 집 옆 울타리에 묶어둔 후, 미녀 대회가 열린다는 마을 광장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네에~ 그러면 마지막 선수까지 잘 보았습니다! 이제 남은 건 투표 뿐이군요! 다들 자신들만의 공정한 심사 기준으로 투표에 많은 참가 부탁드립니다!!”


젠장, 뛰어서 마을 광장에 도착했지만, 어느새 사회자가 마무리를 하는 듯 하였다. 그렇게 예쁘다는 미녀들은 이미 무대 밑으로 내려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근처 농장에서 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 소똥 냄새 같은 악취만 코 근처를 스쳐갔다. 마을 주민들 및 멀리서 온 듯한 관광객들은 저들마다 투표를 하러 투표 부스 쪽으로 가고 있었다.


이번 배달로 돈도 좀 쥐고 온 김에 예쁜 미녀들도 볼 기대를 했지만, 영 운수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이왕 이렇게 된거, 투표 부스에 있는 미녀들 그림이라도 보기 위해 나도 투표 부스 쪽으로 몸을 옮겼다.


투표 부스 안에 들어선 나는 열댓 명 정도의 미녀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슬쩍 봐도 ㅗㅜㅑ 소리가 나오는 미녀들이었다. 풍만한 가슴, 잘 빠진 허리, 튼실한 엉덩이… 보아하니 몇몇 참가자들은 엘프 종족인 것 같기도 했다. 특유의 길쭉한 귀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듣기로는 마을 근처에 있는 헤세이아 숲에 엘프들이 살고 있다고는 들었다. 아마 설화에서 나오는 영원의 샘이라는 것도 거기에 있던 것 같았다. 마치 목욕탕을 훔쳐보기라도 하는 듯, 나는 눈으로 각 사람들의 그림을 흝었다. 그런데 다들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막상 투표를 하자니 고민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을 보니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들 거의 바로바로 표를 찍고 나오는 듯 하였고, 그나마 고민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몇 초 정도만 고민하는 것 같았다.


‘여기 사람들은 그렇게 미의 취향이 확고한건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항상 미녀들에 둘러싸인 마을이다 보니까 그런걸 수도 있겠다. 더 이상 부스 속에서 고민하고 있다가는,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민폐일 것 같아, 나는 그냥 가슴이 제일 커보이는 엘프 참가자에게 표를 찍고 서둘러 부스 밖으로 나왔다.


부스 바깥으로 나와보니 아까보다 이상한 냄새가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했다. 농장 주인이 도대체 동물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궁금할 정도였다.


악취도 나고, 어차피 대회도 끝난 겸, 나는 다시 집 주인이 돌아왔는지 보기 위해 발을 돌렸다. 그리고 길을 나서려는 찰나, 내 눈에 숲 쪽으로 향하는 듯한 사람의 형체가 눈에 띄였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내 직감 상 지금 돌아가도 집주인은 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숲 쪽으로 향하며 나는 눈에 띄이지 않게 형체의 뒤를 밟았다. 애초에 지금 시간대에 숲에 간다는 것부터 뭔가 숨기고 싶은 수상한 짓거리를 하는 짓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머리 속으로 온갖 상상을 펼쳤다. 혹시 어떤 도적단의 비밀 소굴을 발견한다면, 또는 보물을 묻어놓은 곳, 아니면 설마 범죄 현장 같은걸 은폐하려는 건가? 어찌되었든 나중에 왕립경비대에 신고하면 나에게 들어올 몫 같은게 있을 수도 있었기에, 나는 계속해서 형체의 뒤를 밟았다.


얼마 가지 않아 형체가 움직이는 속도가 느려졌고, 이윽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미행이 들킨건가 싶어 나는 서둘러 근처 수풀에 몸을 숨기고 숨죽인 채 형체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어엇...저 사람은..?’


정정하자면 사람이 아니였다. 엘프였다. 하긴 근처의 헤세이야 숲에 엘프가 산다는 건 들었는데 두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엘프들은 맨날 자연과 교감한다 어쩌구 하면서 숲 근처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위버랜드 같은 대도시에서는 볼 일이 없어서이다.


그리고 저 엘프, 어디선가 본 듯한 외모였다. 대부분의 엘프들은 젊고 아름다운 편이지만, 특히 저 엘프..흰 색 드레스 같은 옷에 꽤나 큰 가슴, 확실했다. 아까 전에 내가 한 표를 주었던, 미인 대회에 참가한 그 엘프였다. 그런 엘프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미인 대회에 참가했다면 행사장에 있어야 하는게 아니였나?


그러나 그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내 눈 앞에서 벌어졌다.



뿌루루루루룩!!  부스으으으으우웃~~!!!



방귀 소리였다. 그것도 아무 방귀 소리가 아닌, 내가 들어본 방귀 소리 중 가장 더럽고 천박해보이는 소리의 방귀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나는 뻥찐 채로 수풀 사이에서 멍하니 있었다.


“휴우….”


엘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오랫동안 참아온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미녀 대회 중에 방귀를 뀌는것은 치명적일지도 모르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나는 전혀 이후에 올 일을 예상하지 못하였다.


이윽고 그녀는 엉덩이를 살짝 뒤로 내빼더니, 배에 힘을 약간 줌과 동시에 엄청난 짓을 하였다.



뿌와아아아아아악!!! 푸드드드드드드득!!!

프쉬시시시시식~

부르르르르르르르르륵!!!



방금 전의 방귀는 애들 장난으로 보일 정도의 엄청난 방귀가 뿜어져 나왔다. 이제는 더러운게 아니라 경이로울 정도였다. 저렇게나 많이 참고 있었다니… 이 정도면 이 엘프는 숲과 교감하는게 아니라 숲을 살해하는게 아닐까 의심되었다.


‘으읏…!’


그 놀라운 소리에 신경을 안 쓰고 있던 찰나, 내 코에 방금 전의 엄청난 방출의 여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무의식적으로 코를 막게 하는 정도의 악취였다. 코를 막아도 조금씩 새어오는 악취는 그야말로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였다.


‘도대체 뭘 쳐먹은거야…?’


나는 속으로 욕하며 생각했다. 분명 엘프라면 맨날 풀떼기나 먹으면서 사는게 아니였나? 무슨 썩은 풀을 먹었기에 저런 냄새가 나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쿨럭! 쿨럭!!


아뿔싸, 나도 모르게 기침을 큰 소리로 해버리고 말았다. 저 썩은 내 나는 가스를 폐가 배쳑하는 작용이었나보다. 나는 다급히 입을 막았지만, 이미 늦은 듯 하였다.


“까아앗…!! 누...누구세요…!!”





엘프는 깜짝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이랬다가는 들키는건 시간 문제일 것 같았다. 지금 와서 뒤로 도망치려 했다간 엘프가 들을깨 분명할 것이었다. 그들은 귀가 민감하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렇다면 애초에 내가 숨어있던걸 왜 눈치채지 못했던 것일까? 그 정도로 방귀가 마려웠던 것일까?


“누...누...누구 있으세요?!”


그녀는 계속해서 다급히 주위를 향해 외쳤다. 아무래도 계속해서 주위를 수색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들키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나는 그냥 숨어있던 수풀에서 그대로 일어섰다.




뿌오오옹~



“으앗…! 깜짝이야..!”



귀여운 방귀와 함께 그녀는 날 보고 깜짝 놀랐다. 냄새는 전혀 귀엽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마을 분이셨구나….놀랐어요, 무슨 짐승이라도 되는 줄 알아서…”


뭐? 나는 당연히 자신의 방귀 뀌는 모습을 본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변태 치한 소리를 예상했지만, 뜻밖의 반응이었다. 이렇게까지 마을에서 먼 곳까지 와서 방귀를 해결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였을까 싶었지만, 그녀는 방귀를 뀐 것을 들킨 것 자체에는 딱히 신경을 쓰는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하하...죄송해요… 냄새가 좀 심하죠? 올해 대회에서는 리디아 씨의 특제 포션의 효과가 되게 좋았던 것 같았네요."


리디아? 리디아가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말하는 것을 보아 무슨 연금술사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포션을 대회에서 썼다니, 그리고 그 부작용이 독한 방귀라니,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궁금증은 불어나기만 했다.


"저어...심사위원들에게는….방금 봤던 거에 대해선….비밀로 해주실 수…. 있을까요..?"


방귀 뀐 것을 비밀로 해달라니, 애초에 그럴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을뿐더러, 그런 걸 걱정한다는 거부터가 이상했다. 이 대회, 도대체 무슨 대회인거지?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말했다.


"저어.., 이제 와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전 이 마을 출신이 아니에요…"


"네엣..?! 그...그럼...혹시 다른 마을에서 오신 관광객이신가요?"


"뭐.., 저기 위버랜드에서 왔습니다."


이제 와서 별 볼일 없는 배달부라고 하기에는 좀 그랬기에, 대충 대도시인 위버랜드라고만 나는 말했다.


"호에에…."


엘프는 갑자기 파들파들 떨며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방금 전에 그녀가 내 코에 한 짓을 보면, 저 반응이 정상적인 반응일 것이다. 나는 이참에 궁금증을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 대회는 단순한 미녀 대회는 아닌거 같은데요?"


"아...네...그게…"


엘프는 잠시 말을 더듬는 듯 하다가,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대충 프롤로그 내용)



그녀의 설명을 듣고 나니, 그제야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미녀 대회에 출전한 그녀는 리디아라는 연금술사의 가스 방출을 억제해주는 포션을 마시고, 심사위원들과 관중들 앞에서 여러 가지 포즈들 및 배를 누르는 등의 고난을 겪고도 방귀를 뀌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고득점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포션의 약효는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않았기에, 약효가 떨어져가는 것을 직감한 그녀는 이후 투표 시간 동안 몰래 헤세이아 숲 쪽으로 도망쳐나왔고, 그걸 우연히 내가 보게 된 것이었다.


"네...그래서 방금 전에 그걸 들킨다면, 틀림없이 엄청난 감점을 당할게 분명해요!"


그녀는 약간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호소했다. 그렇게나 아름다운 미녀가 내 앞에서 부탁을 하니, 당연히 남자로서 마음이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걱정마세요, 전 당신에게 딱히 피해를 주거나 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혹시 성함이..?"


"아, 전 요리엘, 엘프 요리엘이라고 해요."


이름 끝이 -엘 인건 엘프들의 풍속인 게 틀림 없었다. 마치 인간들의 성씨 같은 거지만, 성이 엘 씨 하나뿐인 모양이었다. 


"으음...이제 투표 시간이 슬슬 끝나갈텐데, 다시 에버렌으로 돌아갈까요?"


요리엘이 나에게 말했다. 어차피 나도 빨리 돌아가서 배달을 마무리해야 하고, 그녀도 빨리 돌아가야 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가 이 숲에 남긴 잔향이 너무나도 자극적이었기에 나도 동의했다.


에버렌으로 돌아온 나는 이윽고 요리엘과 헤어졌고, 다시 수신인의 집으로 발을 돌려 걸어갔다. 어느새 해가 기웃거리며 져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투표 결과 및 심사 결과는 다음날 나오는 모양이었다. 방귀를 참는 게 미의 기준이라니, 거참 신기한 기준이었다.


그렇게 요리엘 가슴 생각을 하며 길을 따라간 나는 수신인의 집과 앞에 묶어둔 나귀가 보였다. 수신인의 집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이제야 돌아온 모양이었다. 나는 서둘러 문 앞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문 앞에는 이상한 모자를 쓴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날 보자마자 소리쳤다.


"아니,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에요? 저녁 쯤에 집에 왔는데, 나귀만 매달려있고, 배달부는 온데간데 없고, 배달하는게 얼마나 중요한 물품인지는 아시는거에요?"


일단, 분명히 배달 전에 이 쪽으로 이른 오후 쯤이면 도착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런데 집을 비워놓고서는 이제 와서 뻔뻔하게 나에게 뭐라 하는 건 조금 화가 났다. 하지만 내가 자리를 비우고 요리엘과 한 바탕 소동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나도 어느 정도 잘못이 있었기에, 나는 어금니를 다물고 말했다.


"즈승흡니다아...슨니임...그게...부재 중이셔서…"


"아잇! 아무튼 됐고, 그럼 옮기는 걸 좀 도와주기라도 하던가!"


생긴건 이쁘장하게 생겨서 무슨 50대 아줌마 같은 인성이었다. 원래 배달을 하면 집 앞까지만 옮기면 되는 것이지만, 딱 봐도 자존심 강해보이는 이 손님은 거절했다가는 난리를 피울 것 같았다.


"예에- 알겠습니다아.." 


나는 나귀에서 짐을 내린 후, 짐을 덮고 있던 천을 옆으로 넘겼다. 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유리병에 든 약품들이었다. 취급을 주의하라는게 이 소리였구나, 설마 폭발물이나 독극물 같은건 아니겠지? 내가 유리병들에 눈을 두는 걸 봤는지, 모자 쓴 소녀가 한 마디 했다.


"뭐, 약품들 처음 봐? 내가 누군지 모르나보지?"


그놈의 자존심이 또 도진 모양이었다. 나는 수신인의 문 위에 걸려있는 팻말을 읽었다.



리디아의 마법공방



리디아? 아까 요리엘에게서 들었던 이름이었다. 그렇다면 이 소녀가 연금술사라는 것이었다. 근데 공방도 그냥 공방이 아니라 마법 공방은 또 뭐야?


"그래, 내가 바로 그 유명한 천재 마법사 리디아야! 그리고 지금 물약 제조에 그 약품들이 필요하단 말야!"


일단 천재도 아닌 것 같았고, 마법사는 더욱 아닌 것이 뻔했다. 이 왕국에서 마법사들은 초엘리트 중에서도 초엘리트였다. 이런 촌구석 마을에서 가게나 차려 무슨 방귀 포션이나 팔아먹는 신세가 아니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소녀가 쓰고 있는 이상한 모자도 이제 보니 마법사들의 모자를 따라 만든 짝퉁 모자였다. 즉, 이 소녀는 마법사가 되고 싶지만 그 능력은 안되서 포션이나 만들어 팔아먹는 하급 연금술사 되시겠다.


"호오, 그런데 마법사님께서는 그럼 왜 마법으로 짐을 옮기지 않는 것인가요? 그 정도는 새끼발가락으로도 하실텐데.."


나는 일부러 그녀에게 장난을 치기 위해 말했다.


"그...그건...마..마법 지팡이를 집에 놓고 와서 그래! 이따 할테니까 일단 저 다락방 창고까지만 도와줘봐!"


물론 개소리였다. 애초에 마법사들에게 지팡이는 그저 마법을 더욱 증폭시켜주는 촉매지, 지팡이가 없다고 마법을 못 쓰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이상 놀려먹어봤자 재미도 없을 것 같았고, 나도 얼른 위버랜드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나는 군말 없이 유리병들을 들고 자칭 마법사 리디아 님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집 안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대부분 연금술사들의 집은 온갖 재료들로 더러웠다. 이는 연금술사가 되어 큰돈을 만지겠다고 자기 집에 연금술 실습실을 차린 내 친구에게서 안 사실이었다. 리디아가 다락방으로 향하는 사다리를 내리자, 나는 조심스럽게 사다리를 타고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다락방 위는 약간 곰팡이 냄새가 났지만 그럭저럭 단정했다. 그리고 온갖 이상한 재료들을 볼 수도 있었다. 헤세이아 숲의 버섯들부터, 온갖 짐승들의 털, 사람이 먹으면 급성 식중독으로 죽을 거 같은 그런 재료들이 대다수다. 역시 연금술사들의 인식이 나락인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리디아 씨는 어떤 포션들을 파시나요?"


"후훗, 내가 에버렌에서 제일 잘 나가는 연금술사...아니 마법사인 것에는 다 이유가 있지. 일단 이 마을의 저주에 대해선 들어봤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요리엘이 말해주었던 과거사를 대충 요약해서 읊었다.


"그래, 잘 알고 있네, 내가, 아니 나만이 만들 수 있는 특수 포션은 바로 그 영원의 샘물의 작용을 억제한다고!"


"그런데, 부작용 같은 건 없나요?"


"후훗, 나같이 위대한 연금...마법사들이 만든 포션은 부작용 따윈 없다고! 다만...샘물의 작용이 억제된게 풀리면, 그동안에 모였던 가스들이 한번에 폭발하긴 하지만…"


어쩐지 요리엘의 방귀 냄새가 초월적인 수준이었다. 한마디로 방귀를 억제하는게 아니라, 미래의 자신에게 빚지게 하는 그런 포션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방귀로 고통받는다는 에버렌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한 것은 어느 정도 맞으니, 실력이 없는 연금술사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자 문득 머릿속에 궁금증이 하나 떠올랐다.


"리디아 씨는...이 마을 출신이신가요?"


"나? 물론이지,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여기서 자랐다고!"


"그렇다면...리디아 씨도….그…방귀가…"


"푸하하하하하!!! 그래, 나도 한때 그걸로 문제를 겪었었지.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난 리디아 표 특수 포션을 꾸준히 복용한다고!"


처음 들었을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문득 생각해보니 약간 무서운 일이었다. 계속해서 샘물의 작용을 억제한다면, 그 수많은 가스가 계속해서 쌓일테고...혹시라도 포션 먹는걸 까먹기라도 했다가는….


무시무시한 생각이었지만, 아마도 그렇게까지 그녀가 멍청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나는 조바심을 숨기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면, 혹시 마지막으로 뀌어보신게…"


"몰라! 한 몇 주는 되었으려나…하하"


좇됐다. 나는 지금 시한폭탄 옆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녀가 당장 포션 먹는 걸 까먹진 않겠지만, 혹시라도 그랬다가는 에버렌 전체가 폭발해도 이상할게 없었다. 아니면 다들 질식해서 죽던가. 사실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엿같은 일이 일어날 것은 틀림없었다. 나는 애써 침착하게 행동하며 얼른 다락방에서 내려와 이 마을을 빠져나가기 위해 움직이려 했다.


쿵-


불길한 소리다. 그리고 다름이 아니라 불길한 소리가 맞았다. 다락방 사다리를 지탱하고 뚜껑문을 열어놓던 막대기가 왜인지 빠져버린 것이다. 사다리는 미끄러져 떨어졌고, 무엇보다 밑에서만 열리는 뚜껑문이 닫혀버려 나와 리디아는 다락방에 갇혀버렸다.


"이런 망할…!"


나는 다급히 뚜껑문으로 달려가 어떻게든 열어보기 위해 틈새를 손톱으로 긁어보았다. 소용없는 행위였다. 급기야 뚜껑문을 발로도 차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조급해하는거야? 걱정마, 내 조수를 불러 다시 열어달라 하면 되겠지. 조수야아아아!!!!!"


"저기요? 지금 저녁 8시가 다 되어가는데, 당연히 조수고 뭐고 다들 퇴근하지 않았겠어요?"


나는 애써 빡침을 숨기며 그녀에게 말했다. 리디아는 잠시동안 머리가 돌아가는게 멈췄는지, 가만히 있다가 이윽고 상황판단이 되었는지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럼 내일 아침 조수가 올 때까지 이 추운 다락방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고? 싫어 싫어!!"


"후우…."


나는 불안한 눈길로 리디아를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지금 그것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락방을 탈출할만한 수단이 없는지 찾기 위해 좁을 다락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밖은 어두워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름 램프와 부싯돌을 찾아 다락방을 밝힐 수는 있었다. 여기서 어두움까지 더해졌다면 정말로 최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다락방을 탈출할 수단은 없었다. 다락방에는 작은 창문이 있었지만, 성인은 커녕 아기들도 겨우 비집고 나갈 수 있는 크기였다. 리디아는 처음에는 마법사랍시고 마법을 통해 목소리를 증폭시켜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면 될 것이라고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락방의 방음 능력은 너무나 뛰어났고, 결국 쉰 목만 남긴 채 그녀는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그 이후로도 시간이 꽤나 지났다. 밖은 이미 칠흑같이 어두웠다. 나와 리디아는 모두 포기한 채 그저 다락방 한 구석에 각자 자리잡아 웅크려있었다. 나는 종종 리디아 쪽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잠자코 앉아있었다. 어쩌면 약효는 꽤나 긴 모양이었다. 아니면 단지 요리엘이 방귀를 잘 참지 못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비록 하루 늦어졌지만, 그래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꾸르륵….


좇같은 머피의 법칙. 희망찬 생각을 하자마자 희미했지만, 분명 내가 제발 듣지 않기를 빌었던 소리가 리디아 쪽에서 냈다. 리디아는 못 들은 척 가만히 있었다. 나는 그녀를 슬며시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딴청을 부리며 내 눈을 피해갔다.


꾸륵..


또 한 번 소리가 들려왔다. 내불길함이 점점 공포로 변해갔다. 리디아는 눈을 어디 둘지 몰라하는 것 같았다. 아마 내가 눈치챈걸 알고 있지만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쿠르륵!!


이번엔 진짜로 큰 소리가 났다. 리디아와 나 모두 그 소리에 흠칫했다. 나는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약효가….얼마나….가는지…"


"...."


리디아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아까의 자존감 넘치는 대답과 큰 목소리는 개나 줘버렸는지 바닥을 보며 잠자코 있었다.


"저기...혹시 남아있는 포션이 여기.."


"없어."


리디아가 내 말을 끊었다. 평소라면 기분이라도 나빴겠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리디아는 다시 잠자코 바닥을 본채 앉아만 있었다.


그 이후로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꾸르륵...구륵…

쿠그그그….꼬르룩..


이제 그녀의 배에서 나는 소리의 빈도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나는 조심스레 리디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식은땀을 조금씩 흘리기 시작했다. 이제 부정하는 것은 끝났다. 이제 그녀는 뱃속의 요동치는 폭풍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나는 잠자코 앉아, 그녀의 승리를 멀리서 응원하는 수 밖에 없었다.


"흐으…"


어느새 시간이 더 흘렀다. 리디아는 조심스러운 신음을 내쉬었다. 내가 듣지 않기를 원한 모양이었지만, 예민해질때로 예민해진 내 귀에는 잘만 들렸다. 이제 뱃속에서 나는 소리는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마치 소음이 계속되면 나중에는 그저 배경음이 되어 우리 귀가 자연스럽게 무시하는 것처럼, 몇 시간 째 그녀의 배에서는 소리가 났다.


"흐읏….하으으…."


어느새 바깥은 약간씩 밝아지는 것 같았다. 어느새 새벽이 밝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얼굴을 찡그리며 고통스러워하는게 보였다. 하지만 아직 시간은 여전히 남았고, 갈길을 멀기만 핬다.


"후우..후우...흐으..읏…"


나는 그녀의 신음 소리를 들으며 잠자코 기다리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저기이….저기…."


리디아가 정말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그녀는 반쯤 우는 듯한 목소리였다. 나는 계속 말하라고 고갯짓을 보냈다.


"나아..더...이상은….못 참겠어…...흐읏…..후우….하아…."


"약효가...다 떨어져가는군요.."


나는 암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리디아는 그저 끄덕였다. 이제 말할 힘도 아끼는 모양이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 갑자기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다. 나는 아까 보았던 다락방 창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창문은 사람이 빠져나가기에는 작았지만, 가스가 빠져나가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창문을 열고, 창문 앞에 아까 전에 봤던 작은 책상을 옮겨놓은 뒤, 리디아에게 말했다.


"여...여기...이 창문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겠어요?"


리디아는 나를 잠시 멀뚱멀뚱 바라보더니 물었다.


"어...어떻게..?"


"그..그야...이렇게 엉덩이를 내밀고...이 밖으로…"


리디아의 얼굴이 홍조를 띄었다. 아무리 방귀와 관련해서 에버렌 마을이 관대하다고 해도, 남 앞에서 하기에는 민망한 포즈이긴 했다. 하지만 이 안에서 뀌어댔다가는, 내 폐가 성할 지가 의문이었다.


리디아는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꼬꾸라졌다. 나는 다급히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으으….혼자서...못 움직이겠어….조금만 힘을 줬다가는….흐읏….!"


다리의 힘이 풀릴 정도로 저 치마 밑에 힘을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리디아를 부축하여 조금씩 창문 쪽으로 나아갔다.


"흐으읏….! 더...더 이상은….!"


창문에 거의 다왔을때, 리디아가 한계에 다다르기 직전까지 왔다. 나는 그녀가 몇 초만 더 버티기를 빌며 그녀를 부축해 책상 위까지 올라가도록 도왔다. 이제 몸으로 돌려, 창문에 대고 방출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마침내 이 난처한 상황을 끝낼 때가 온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몇 초 너무 늦었다.


뿌와아아아아아악!!!!!

뿌롸라라라라라라라락~ 푸스스스스스쉬쉬쉬식!!

부오오오오오옹!! 푸드드드드드드드드!!!


얼마나 오랫동안 묵었는지 모를 숙성된 가스가, 그것도 하필이면 그녀를 부축하느라 코 앞에 있던 내 얼굴 앞에서 그대로 살포되었다.


"흐아아아앙♡"


리디아는 신음을 내며 참아왔던 가스를 계속해서 배출하였다. 그녀는 해방의 쾌감에 쩔어 아까 전에 하던 것을 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 내 앞으로 그 많은 가스가 살포되었다. 일단 냄새는 둘째치고 풍압부터가 엄청났다. 예전에 태풍 사이로 배달을 할 때 이상으로 엄청난 풍랑이 나를 휘감았다. 그 직후, 도저히 사람 몸에서 나왔다고 할 수 없는, 아니 지옥에서조차 찾았다고 하면 믿지 못할 수준의 악취가 나를 뒤덮었다. 요리엘의 방귀가 나를 어질어질하고 코를 싸쥐게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그야말로 물리적으로 코를 누가 잡아 비트는 것 같았다. 코 끝이 짜릿하고, 머리를 누가 짱돌로 때린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기절하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쾌감에 절어 미소를 띄며 방귀를 내보내던 리디아였다.





눈을 떠보니 낮선 천장이었다.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일단 죽지 않고 눈을 뜬 것에 나는 신에게 감사하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나무로 된 가구들이었다. 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머리는 여전히 띵하고, 몸은 마치 두들겨맞은 것처럼 뻐근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보였다. 


요리엘이었다.


"어머나, 일어나셨군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아니요...저를...간호해주신건가요?"


"네…한동안 일어나시지 않길래 걱정했어요."


이윽고 나는 요리엘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내가 기절한 이후 상황은 이렇게 흘러갔다고 한다. 몇 주일치 방귀를 뀐 리디아는 그나마 창문 근처에 있었기에 기절하지 않고 방귀를 모조리 내보냈지만, 이윽고 쓰러진 나를 보고 설마 죽지는 않았는지 걱정했다고 한다. 이후 아침이 되어 조수가 출근했고, 조수는 구린내에 찌든 나와 리디아를 다락방을 열어 나오게 했다고 한다. 리디아는 급하게 응급처치를 위한 힐러들을 찾아 나섰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침 미녀 대회의 결과를 기다리며 마을에 있던 요리엘이 그 말을 듣고, 숲 속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나를 데려와 지금껏 간호했다고 한다. 자기 말로는 자연의 힘을 이용하면 상처가 아무리 깊든, 아무리 강한 독에 걸리든, 시간은 걸리지만 회복할 수 있다고 하나.


"아 그리고, 저 올해의 미녀 대회에서 1등했답니다! 하하핫!!"


요리엘이 웃으며 말했다. 방귀를 참아 대회에서 우승한게 그렇게도 좋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를 축하해주며,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아직 회복이 완전히 안되었는지 휘청이는 나를 보자, 요리엘은 다급히 나를 말리며 아직 휴식이 더 필요하다고 하였다. 나는 그녀의 손길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하긴, 가슴 큰 엘프가 나만을 위해 간호해준다는게 한 두번 있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뽀옹~



물론 방귀도 자주 뀌는 엘프이긴 하지만.



요리엘의 집에서 며칠 정도 힐링을 끝낸 후, 나는 다시 위버랜드로 돌아가기 위해 나귀가 있는 리디아의 공방 쪽으로 발을 옮겼다. 집 문 앞에 도달한 나는 문을 두들겼다.


똑똑.


"어서 오시게나, 나는 에버렌 최고의 마법사, 리디..히익…!!"


문을 박차고 열며 자신만의 영업 멘트를 진행하려던 리디아는 나인 것을 알아채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잠깐 동안의 어색한 정적 후, 그녀는 나에게 용서를 빌며 말했다.


"저기, 저번 일은 진짜 진짜, 진짜 진짜로 미안해!! 나..날 용서해줄 순 있겠니…?"


솔직히 매번 말하는게 싸가지 없고 해서 그렇지만, 리디아도 정말로 아름다운 미녀이기는 했다. 그런 그녀가 당장 내 앞에서 싹싹 비니, 마음이 또 약해지긴 했다.


"아..! 물론….내가 잘못한 것은 맞으니...여기..!"


리디아는 잠시 문 뒤로 사라지더니, 이윽고 골드가 가득 담긴 주머니를 내밀었다. 마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연금술사라는 말이 틀린 건 아닌 모양이었다. 주머니 속 골드를 세어보니 내가 1년은 일해야 벌 정도의 돈은 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의 잘못은 맞고, 내게 보상을 해준다는데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리디아와 화해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나는 나귀를 데리고 다시 위버랜드로 향하는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에버렌이라는 작은 마을은 내 뒤로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지난 며칠, 정확히는 기절한 걸 빼면 하루긴 하지만 어쨌든 에버렌에 있던 잠깐 동안의 인연과 사건들을 생각하며 길을 걸어갔다.


'솔직히 저정도 미녀의 방귀를 맡고, 1년치 봉급이라면 나쁘지 않은데?'




쓰고 보니 15000자 정도 되네. 처음에 아이디어 구상한답시고 시간을 너무 많이 써서 대회 마지막 주 되서야 제출함.

원래 방구 자체도 좋지만 시츄 묘사 같은거에 신경을 쓰는 편인데, 이번에도 너무 그래서인지 정작 방구는 별로 나오지도 않는 거 같다.


잘 봤다면 개추한번씩 괜찮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