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면 일주일, 보통 사흘에서 나흘. 빠르다면 이틀.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이라고 대중적으로 여겨지는 시간이었다.


전세계에 퍼진 화산재는 자욱하며, 숭고했다.


살아남은 중남미 일부 국가들과 화산재가 뒤덮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칠레에서 일어난 첫 폭발 이후부터 국가를 포기한 상태였다. 이 사람들은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향하려고, 혹은 장벽을 넘어 미국으로 향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 모습은 전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세계는 좀비 사태 대신 난민 사태에 봉착했다. 이 문제를 선진국들은 회의를 통하여 환경 변화에 예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개발도상국에게 책임을 끼얹었다. 긴박한 상황에서 더욱 이기적으로 변하는 인간의 모습을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동아시아에도 난민들이 몰려왔으며, 주로 캘리포니아에서 추방되어 배를 타고 요코하마항까지 온 중남미 난민들이었다. 수는 많지 않았으나, 동아시아 사회가 난민을 바라보는 시각이 으레 그러하듯, 그들은 자연재해에 대한 분노를 돌릴 유용한 과녁이 되었다. 난민들이 한바탕 세계를 뒤집어 놓은 후, 사람들은 이후에 일어날 다른 많은 일들에 대해 오히려 둔감해지기 시작했다.


미 항공 우주국(NASA)는 전 세계가 자연재해로 인하여 위험한 상황이며, 과학계는 해결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어떤 이들은 종말이 가까이 왔다고 여겼으며, 어떤 이들은 평상시와 같은 삶을 살았다. 종말론자들은 사람들을 부추겼지만, 별 소득을 얻지 못했다. 양치기 소년이 너무 일찍 늑대가 왔다고 말했던 탓이었다.


양치기 소년의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의 소망과는 다르게,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일어난 이번 폭발에, 언론은 "환태평양 화산대의 활성화"와 같은 단어가 들어간 과학적인 기사를 내놓는다. 알 수 없는 용어들에 사람들은 미지의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것은 mRNA니 단백질 변이니 하던 이전의 코로나바이러스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것은 비가시적이었지만 이번의 것은 매우, 매우 가시적이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전체를 적은 양이지만 희뿌연, 눈에 아주 잘 보이는 화산재가 덮었다. 거의 모든 지질학자들은 "지구는 멸망하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을 뉴스를 방송할 때마다 하는 인터뷰에서 말했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안정을 주었다. 그러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상황은 달랐다. 익명을 자처한 지질학자들은 지구가 곧 멸망한다고 했으며 이 특수한 공간 속에서는 그것이 정설처럼 여겨졌다. 인터넷의 신세대와 오프라인의 기성세대, 혹은 인터넷의 기성세대가 첨예하게 맞섰고 이는 곧 세대갈등으로 이어졌다. 서동이 아이들에게 서동요를 부르고 다니라고 한 것처럼 인터넷에 익숙했던 아이들 역시 지구멸망을 제창하고 다녔다.


세 번째 폭발은 태평양에서의 두 번째 폭발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인도양에서의 폭발은 인류에게 더 큰 공포를 주었다. 이 폭발은 화산재를 대륙적인 규모로 퍼뜨렸으며 세계멸망의 종을 울리는 듯한 대포 소리로 약 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그 소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들릴 수준이었다. 세계 멸망이라는 단어가 이제 희미하지 않게 되었다. 세 번의 폭발이 모두 우연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는 드물었으며, 이것이 인류에게 큰 시련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양심적인 지질학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 멸망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문가였고 이것이 사회에 얼마나 혼란을 줄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는 이미 혼란스러워졌다.


개미들이 홍수를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난민이 아닌 평범한 인간들 역시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라도 화산재가 퍼지지 않은 지역으로 도망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것을 난민이라고 제창하여도 큰 무리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개미와의 차이점을 찾자면, 나무로 올라간 개미들이 무슨 운명을 맞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 인간과 개미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그들의 유전자에 각인된, 생존 의지를 다시금 뼈저리게 확인할 수 있었다. 화산재가 퍼지지 않은 지역이라고 알려진 북유럽과 러시아 지역에 난민들이 몰려들었고, 러시아 당국 및 인접국들은 국경을 완전 폐쇄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밀입국을 시도하는 외국인을 사살하기 시작했다. 붕괴되지 않은 사회를 그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으며 밀입국자들은 미개한 국가에서 온 것이라는 생각을 그들은 은연중에 하게 되었다. 도덕은 더 이상 예전에 우리가 알던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한 달 전이었다.


나는 개미 중 하나였다.


두 번째 폭발, 즉 아직 국경이 폐쇄되기 전에 유럽으로 갈 것을 마음먹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개판이 됐으니 이 참에 유럽여행, 뭐 그런 맥락이었다. 짐을 챙겨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고, 내가 탄 기차가 마지막 기차였다는 것을 기차에 탄 직후 알게되었다.


그러나 행운아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종말이 온다면, 가장 나중에 죽는 것뿐일 거다. 라는 생각만 갖고 있었다.


가족이라고는 할머니가 전부였지만, 이미 돌아가신지 오래였다. 화산재가 꿉꿉하게 낀 하늘을 보며 할머니를 얼마 뒤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애매한 감정이 뒤섞였다.


기차는 모스크바로 향하지 않았다. 중간에 이름 모를 도시에 멈춰 선로가 테러로 인해 끊겼다는 짧은 안내만을 마치고 승객들을 내쫒았다.


자국민들이 외국인을 보는 걸 곱게 여기지 않아서겠지. 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노보시비르스크까지 운좋게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었다.


도착한 도시는 매우 평화로웠다. 이곳이 정녕 세계멸망을 걱정하는 행성 위에 놓인 도시인지 나는 궁금해졌다. 어쩌면 세계멸망이라는 개념이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소망을 은연중에 품게 되었다. 어쩌면 이 사람들은 그래서 평화로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다시 떠올렸다. 서울 하늘을 뒤덮은 화산재를. 한밤중에 일어난 지진으로 아파트 주민들이 주변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 텐트를 치고 자던 일주일을. 이들은 그런 광경을 TV로만 봐서 이렇게 평화롭고 정렬된 것일까?


내가 양치기 소년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우선 잠을 잘 곳을 구해야 했다. 하루 정도는 밤을 새며 도시를 구경할 수 있겠지만, 며칠동안 노숙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밤을 새 가며 도시를 돌아다닌 다음 날, 나는 게스트 하우스를 장기 숙박으로 구할 수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 안에 있는 손님은 모두 나와 같은 여행객이었다. 그 중엔 나와 같은 기차를 탄 한국인 여행객도 있었고, 반대로 여행을 왔다가 국경이 막혀 도시에 고립된 프랑스인 여행객도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사람이 고려인 3세라는 걸 알게 된 나는 은근히 반가웠다.


TV에서 네 번째 폭발에 관한 뉴스를 본 것은 러시아 말을 몰라 관광 아닌 관광을 한 다음날 저녁이었다. 러시아 말로 쓰여있었지만 더 큰 폭발이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돌아다니던 중에 들은 폭발 소리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다른 성격의 폭발이었다. 핵폭발이었다.


나와 같이 온 한국인-러시아 말을 할 줄 안다-은 나에게 대략적인 상황 설명을 해주었다.


네 번째 폭발의 정체는 바로 북한에 떨어진 핵폭탄이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본보기'였다. 본보기치고는 조금 가혹하지만, 전세계의 난민 증가를 걱정한 미국이 쏘았다는 정도만 알 수 있었다.


내 나름대로의 추측은, 북한의 '메리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은 ICBM으로 핵탄두를 싣고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없다. 그 이유는 화산재로 인하여 미사일을 쏘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투기를 이용한 일방적인 타격이 가능해진 셈이다. 또한 우방국이고 뭐고 화산재랑 난민 때문에 눈에 뵈는게 없는 상황에서 가장 만만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전세계는 이제 인간과 자연 모두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다섯 번째 폭발은 다시 예상하던 대로 태평양에서 일어난 두 번째 폭발이었다. 뉴스는 마그마가 굳어 몇 십 제곱킬로미터의 섬이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더 큰 폭발에도 이전만큼의 임팩트를 느낄 수 없었다. 자연재해에 둔감해졌는지도 모른다.


여섯 번째, 일곱 번째 폭발이 연이어 일어났음에도 나는 감흥이 없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폭발 직후 유럽으로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어디로 갔는지 정말 궁금해졌다.


과학자들은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활성화를 경고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 이상 종말론자에 동조하거나 이민을 가고 폭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시간이 갈 수록 사회는 평화로웠다. 어느 나라는 국경을 열고 계엄령을 해제한 후 일상생활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은 결코 사람들이 종말에 체념해서가 아니었다. 너무 오래 걸리는 종말에 그만 지쳤기 때문이었다. 만약 첫 번째와 두 번째 폭발에 세계가 멸망했다면 영화 '2012'와 같은 아포칼립스가 나타났겠지만, 이들은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르고 있다. 나 역시 러시아의 국경 봉쇄가 풀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은연중에 바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북한에 떨어진 핵폭탄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세계 대전이 아닌 정상적인 생활로의 복귀를 꿈꾸는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어쩌면 세상이 미쳐돌아가는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종말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이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했고,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스물여섯 번째 화산 폭발 소리가 들리고, 스물일곱 번째 폭발 소리는 그로부터 약 5분 후에 들렸다. 우리는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