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라는 이정비를 보았다.
 그것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가의 잡초 속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내 뒷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시작된 대화를 나는 들었다.


―『무진기행』, 김승옥, 1964년




전라남도 무진시. 안개가 자욱하기로 소문난 해안의 도시. 


무진의 총 인구 수는 어림잡아 7만명 정도로,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다. 무진은 넥서스(Nexus) 중에서도 흄 준위가 가장 낮다고 여겨질 정도로, 매년 흄 준위는 최저치를 갱신했으며, 지역 내에서 벌어지는 변칙 사례들 또한 타지역에 비해 잦다. 무진의 주민들은 이러한 일들을 그저 개인적인 경험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서론은 이쯤하고, 지금부터 무진 카논에 기반한 작품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작품들은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선정되었다. 


대상의 변칙적 효과는 아침 또는 저녁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을 때 발생한다.


바다를 향해 뻗어나온 상태가 좋지 못한 제방, 1970년에 얼위쿨옛 예술가가 만든 대지미술 작품이다. 

아침 또는 저녁, 안개가 자욱한 날에 제방 위로 올라가 바다를 향해 걸어가면, 무슨 짓을 해도 제방의 끝으로 갈 수 없게 된다. 

짧고, 읽기 쉬우며, 독자에게 무진 특유의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무진 카논의 입문작으로도 손색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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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P-052-KO - 폐쇄된 산부인과

"이번엔 아들을 낳아야 해. 딸만 넷이잖아."  


서서히 훼손되가는 패쇄된 산부인과, 병원 안에선 시각적, 청각적 환각이 나타난다. 

여러모로 시대 상의 씁쓸한 과거를 꼬집으면서, 현실적인 공포까지 전해진다. 

개인적으로 충격적으로 읽은 작품들 중 손에 꼽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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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매미

바다 매미 소리 들어봤어?

무진에서 있었던 일을 다루는 스레드 형식의 테일. 

갠적으로 바다매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난데, 으스스한 이야기를 남들에게 들려준다는 콘셉트는 물론이요. 가벼운 이야기에서 시작해 점점 무서워지는 스토리에 새벽에 읽다가 소름 돋았을 정도로 재밌다.

다만 스레드 형식을 빌려와서 그런지 일본 번역체 같은 문체로 글이 진행되는데, 이 점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갠적으로 흰간이란 테일을 만드는 데 많은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 한번 쯤은 꼭 소개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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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P-678-KO - 공포를 직면하고 안개를 걷어내라

"…공포의 근본을 찾으려 했지만, 어쩌면 공포 그 자체가 위험이 아니었을까."

무진시 순천만의 앞바다 일부에서 발생하는 현상. 이 곳은 다른 무진의 지역보다도 안개가 짙게 깔린다.

범위 내 수영을 하거나 선박을 타서 바다를 건너려고 할 경우, 그 사람은 결국엔 실종되고 만다. 

다른 지역보다 안개가 짙은 마을과 실종자의 관계. 그리고 재단은 실종자가 모인 곳을 찾아내게 된다. 

작품에 달린 댓글을 인용해, 일본 괴담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등대가 보이는 안개 자욱한 바다를 상상해서 읽으면 더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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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P-935-KO - 안개 낀 도시는 저편으로  

안개가 섬뜩하다. 무진이 안개로 유명한 도시지만 평범한 안개가 아니야

무진이란 도시가 지구에서 사라진 사건. 다른 시민들은 밈적 영향으로 무진시가 파괴된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무진을 소재로 활용하다 못해 아예 지역 자체를 파괴시켜버리는 파격적인 구성이 매우 흥미롭다. 흥미진진한 서사가 자칫 뇌절 같은 아이디어를 탄탄하게 잡아줄 뿐만 아니라, 재미마저 확실하게 잡아준다. 무진시에 갇힌 7만명에 인구와 재단 인력들, 

누가 무진시를 파괴시킬 생각을 했을까? 다시 생각해도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아직 나도 무진에 모든 작품들을 읽어본 건 아니다. 그렇기에 선정된 작품이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이라고 다시 얘기하고 싶다. 무진 특유의 공허하고 붕뜬 분위기는 확실히 매력적이고 즐길 거리가 다분한 요소다. 한위키는 두 카논(능구렁이는 삭제됨)이 나온 이후로 한동안 정체되고 있었는데, 최근에 새로운 카논을 만든다는 얘기가 많이 오가고 있다. 꼭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각설하고 이제 가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