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쓰려고 묵혀둔 001 아이디어, 스카의 제안 확장판임.

외계인의 존재에 관련해서 페르미 역설이라는게 있다.

대충 뭐 저명한 수학자 물리학자 이렇게 모여서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 입 털다가, 외계인은 있다로 대화가 결론 남. 그 때 페르미가 무심코 던진 말.

그래서 걔네 어딨지.

그 페르미 역설에 대입되는 요소 중 하나에, 대여과기라고 있다. 다른 말로 그레이트 필터.

카르 뭐시기 척도가 있거든. 그 척도 기준으로 인간 문명은 0.78 단계 수준의 문명임. 그리고 우리의 기술력으로는 항성계와 은하를 망라하는 2단계 문명까지 관측이 가능함.

근데 없잖아. 아무것도.

그래서 제시된 개념이 저 대여과기다. 우주의 무언가 알 수 없는 요소로 인해서, 그러한 수준의 종이 탄생하는 것을 극도로 어렵게 하고, 그 대여과기를 만나게 된 종에게 파멸적인 결과, 대부분 멸종을 하게 한다는 거임.

그래서 대여과기의 후보가 무엇이냐 하면 여러 개가 있는데

어쩌면 무생물에서 생물로 변환되는 과정이 극도로 어려운 걸 수도 있고,

어쩌면 단세포 생물에서 다세포 생물로 진화하는 과정이 극도로 드문 걸 수도 있고,

어쩌면 그 행성을 지배하는 고등 지능을 얻은 생물체가 등장하는 것이 인간 말고는 없었을 수도 있음.

어쩌면 지금 우리가 있는 과정인 어떤 종이 행성을 지배하게 되는 순간, 그 종은 행성을 자기가 살기 좋게 바꾸는데,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들이 그 종이 필연적으로 멸망하게 하는 걸 수도 있지.

현실에서 마지막으로 제시된 그레이트 필터를 넘어선 종은 없음.

하지만 재단 세계관에서는 많잖아.

그래서 최종적인 대여과기는 변칙의 존재라는 것임.

SCP는 아무리 외우주 지부 이런게 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지구 기반의 단체이기 때문에 그 개체들을 살펴 보면 대부분 인류에게 적대적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치명적인 결과를 줄 수 있는게 대다수다. 몇몇은 아예 인간을 기반으로 하기도 하고.

관점을 바꿔 보면, 재단 세계관에는 외우주의 종교인 하이토스라는게 있다. 걔네 중에서 태양계에 유일하게 접근한 비인간종은 SoI-002임. 걔네들의 행성에는 분명 그 종에게 적대적이고, 유해하고, 그 종을 기반으로 하는 변칙들이 수두룩하게 많을거다. 그래서 외우주에서 생물을 찾고 싶으면 변칙의 밀도를 찾으면 되겠지.

이제까지 재단과 직접적으로 접촉한 모든 외부차원, 외우주의 것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그 우주랑 우리의 우주가 기본적인 수학의 전체, 혹은 일부분을 공유한다는 것임. 완전히 어긋나는 수학을 지닌 우주가 우리의 우주와 접촉하면 뭔가 심한 문제가 생길테니까.

만약에 우리 우주의 모든 지적 종이 수학(정상) 및 초상을 최대한의 단계로 발전시켰다 했을 때, 그 모든 종들이 변칙으로 지정할 개체들은 모두 같을거임. 왜냐하면 같은 우주고, 같은 수학을 하니까.

변칙은 총 3가지로 정의될 수 있다.

1. 그냥 변칙

2. 초상(수학에 위배되지만, 특정한 변칙들끼리 모여 자체적인 수학을 할 수 있음.)

3. 초상, 혹은 정상에 속하지만 그걸 분류한 종이 아직 그 초상이나 정상을 변칙이라 분류할 수준에 놓여 있음. 혹은 사회적 총의로 인해 변칙으로 지정됨.

그래서 변칙이 왜 마지막 대여과기인가 하면, 위에서 말했듯이, 특정한 종이 있는 곳에서는 그 특정한 종에게 적대적이거나, 유해하거나, 그 종을 기반으로 하는 변칙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종의 수가 많아질 수록, 그 종을 기반으로 하는 변칙의 수도 같이 증가하겠지. 만약 어느 시점에서, 그 종이 자신 주변의 변칙을 통제할 수 없는 정도가 되면, 마지막 대여과기가 찾아온 거지. 종의 종말.

기본적으로 스카의 제안과 비슷하다. 우주는 살아있는 것을 싫어한다. 어쩌면 살아있지 않아도 별이나 행성처럼 "살아있는" 것들을 싫어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존재는, 우주를 포함해서 필연적인 종말을 맞게 되어있다. 그리고 우리 인간과 지금 살아있는 모든 지구의 종, 그리고 외부차원, 우주의 종은 그 대부분의 종말 위험성을 피했다. 변칙을 제외하고는. 하지만 그 종말은 스카의 제안처럼 외우주의 거대한 에너지 폭풍이 아니라, 그냥 지금 곁에 있는 사소한 정체 모를 초파리와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