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헤론 박사]


144기지에서 격리 실패가 발생했고, 해당 개체는 144명의 사상자를 발생시켰으며, 격리 실패 발생으로부터 14시간 후 겨우 제압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간단한 수준의 기억소거만 있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상황이었기에, 상부에서는 담당자의 태업이 있었으리라 판단하였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해당 연구원은 정식 절차를 따라 기억소거 절차를 요청했음이 밝혀졌다.


우선 일러두는데, 해당 사건의 관련자들은 기억소거를 요청했던 담당 연구원을 제외하고 모조리 합당한 절차를 거쳐 징계 처분되었다. (징계의 상세가 결정되었을 때 살아있던 인원에 한해서 말이다.)


이하의 내용은 이번 사태의 조사를 맡았던 내가 발견한 문서들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이 일을 정리하여 공개하는 이유는 재단 인원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물론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을 일이지만, 이 망할 놈들의 전례가 있으므로 혹시나 하여 공개하도록 하겠다.


부록: 조사 과정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메모한 것과 조사 이후 사건을 정리하며 추가된 것이 함께 첨부되어 있으니 필요하다면 참고할 것.




[문서 ■■144DK: 코모란트 박사의 제안서에서 일부 발췌]

제목: 기억소거제 고갈의 대책: SCP-■■■■의 활용에 대한 제안


우리 재단이 기억소거제를 매우 유용히 사용하고 있음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사실은, 이것이 결코 유한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재단이 꾸준히 변칙 개체를 확보하고, 또한 세계 오컬트 연합에서 파괴하고 있으나, 오히려 발견되는 변칙 개체의 보고는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기억소거 처리가 필요한 사건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으며, 별첨한 자료를 보시면 특히 A급 기억소거제의 소모량이 작년에 비해 올해 17% 증가하였습니다.

작년의 통계조차 그 이전과 비교했을 때 23% 상승한 값이니 그 심각성은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여겨집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제게 아주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아이들 중에 SCP-■■■■가 도움이 될 겁니다.


번호보다는 뿔토끼라는 표현이 더 기억하기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나중에 그 뿔은 비변칙적인 피부암에 불과하다는 게 밝혀지긴 했습니다마는, 그래도 저희 연구팀에서는 귀여운 그 별명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에 관련된 개념을 먹어버리는 걸 제외하면 아주 무해한 녀석입니다.

유의미할 정도의 물리력을 행사할 수가 없으니, 사실상 반투명한 토끼 유령인 셈이지요.


그래도 특수 합금으로 만든 격리실만큼은 효과가 있으니 참 다행인 일입니다.


유일한 문제점이라 해봐야 보통 토끼 이상의 번식력 때문에 이 귀요미들이 마구마구 늘어나고 있다는 점 정도입니다.


물론 유령이니까 설령 격리실이 꽉 차도 서로 겹쳐질 수 있어서 큰 문제는 아니지만요.

지금만 해도 격리실 부피의 1200배 정도 되는 뿔토끼가 내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직접 계측해본 건 아니고 번식 속도를 감안한 수학적 계산 결과입니다.)


저희 제안은 바로 이 뿔토끼를 기억소거 처리에 이용해보자는 것입니다.

이 녀석들은 ■■■에 대한 개념을 먹어버리니, 마찬가지로 ■■■와 관련된 기억 역시 지워버립니다.


■■■는 학살로 인해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아프리카 소수 부족에서 구전되던 아주 희소한 ■■입니다.

또한 독자적인 조사 결과 ■■■는 최근 30년 간 고작 12회 언급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즉, 뿔토끼의 격리 조치가 해제된다고 해도 이 녀석들은 그 어떠한 개념도 먹지 않을 겁니다. 먹을 게 없으니까요.

(아주아주 무해한 친구라는 소리죠!)


반대로 ■■■라는 개념을 이용하면 우리는 뿔토끼들이 특정 기억을 먹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번식력을 감안했을 때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뿔토끼는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게 될 테고, ■■■의 개념이 주입된 기억을 곧바로 지워버리겠죠.


요컨대 ■■■를 표식으로 이용하자는 겁니다.

지우고 싶은 기억에 표식을 찍으면 이 녀석들이 먹어치우는 식이죠.

다수를 대상으로 하든 소수를 대상으로 하든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라 판단됩니다.


물론 토끼 유령이 세상 곳곳을 돌아다닌다면 그건 아주 큰일일 테죠.

일반인들에게 변칙 개체의 존재가 알려지는 건 막아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듯이 이 녀석들은 개념을 먹어버립니다.


뿔토끼의 겉모습을 먹어치운다면?

실험 결과, 완벽히 투명해진다는 점이 확인되었습니다!


빛을 포함하여 주변에 아무런 물리적 혹은 사회적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우리가 원하는 기억만 먹도록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사냥개가 완성되는 겁니다!


부록: 좋아. 이 계획을 짜면서 아무도 풀려난 뿔토끼가 니네들 대가리랑 공식 문서에 있는 '표식'도 먹어치울 거라고 생각한 새끼가 없었단 말이지? ─헤론 박사.




[코모란트 박사에게 보내진 144기지 담당관의 메일에서 발췌]


상부에 문의해본 결과 귀하의 제안이 승인되었습니다.

빠른 시일 내로 계획을 실행해주길 바랍니다.


부록: 와우, 진짜 이 기지에는 미친 놈들밖에 없었나본데. ─헤론 박사


부록 2: 조사 결과 메일에서 언급된 '상부에 문의해본 결과'는 존재하지 않았음. 그야 당연하지. 어떤 미친 놈이 이딴 일로 격리 절차를 해제하는 걸 승인해줘?




[코모란트 박사가 144기지 담당관에게 보낸 메일에서 발췌]


메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벌써 뿔토끼들을 전부 투명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부록: 여기에 쓸 노력을 조금만 뇌에 돌렸으면 좋았을 텐데. ─헤론 박사


부록 2: 당시 144기지에서 근무하던 연구원의 진술을 확보했다. 그에 따르면 토끼들이 투명해진 것은 승인─물론 기지 담당관의 독자적이며 전혀 공적 효력이 없는─이 내려오기 전, 심지어는 첫 번째 제안서를 올리기도 이전이라고 한다.

정황을 따져봤을 때, 코 뭐시기 박사가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토끼들이 죄다 투명해졌고, 이를 덮기 위한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긴 당연하지. 수도 없이 많은 토끼 유령들 가운데 한 녀석만 끄집어내서 투명하게 만드는 실험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개자식들.




[코모란트 박사가 144기지 담당관에게 보낸 메일에서 발췌]


뿔토끼들에 대한 격리가 해제되었음을 보고드립니다.


부록: 젠장. 격리 실패도 아니고 격리 해제라는 말이 이렇게 간단한 절차로 나올 줄이야. 아니지. 이건 격리 실패가 맞군. 이 개새끼들을 담당 연구원으로 놓은 희대의 실책도 격리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니까. ─헤론 박사


부록 2: 이 메일이 발송된 이후로도 144기지의 지출 항목에 대량의 A급 기억소거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전에 비했을 때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 물론 수색 당시 144기지의 창고에서 A급 기억소거제는 일절 발견되지 않았다. 기지 담당관이 이 망할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를 알겠군. 이 놈이 제일 개자식이다.




[코모란트 박사에게 보내진 144기지 담당관의 메일에서 발췌]


해당 문서에 포함된 12개 항목에 대하여 기억소거 처리를 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부록: 아직 답신을 체크하진 못했지만 안 된다는 데 전재산도 걸 수 있다. ─헤론 박사




[코모란트 박사가 후임 연구원에게 보낸 메일에서 발췌]


이봐. 생각이 잘 안 나서 그러는데 뿔토끼가 잡아먹는 기억이 뭐더라?


부록: 빙고. 진짜 병신들이 따로없구만. ─헤론 박사


부록 2: 우리가 등신에 고지식한 놈들이라서 항상 같은 방식을 고수하는 게 아니다. 변칙을 다루는 데 있어서 항상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해야 한다. 당연하지만 나름 그럴싸한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서 멀쩡히 격리되어 있는 개체를 풀어주는 것은 가장 해선 안 될 짓이다. 이 망할 새끼들처럼 개인적인 이유라면 더 그렇고. 횡령은 물론 징계감이지만 변칙적인 횡령은 즉각 처분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유의할 것.

또한 이 사례를 보고도 재단의 모토에 반하는 형태로 사고를 치려는 얼간이는 없을 거라 믿는다. 만약 아직 그런 생각이 든다면 헤론 박사 혹은 윤리위원회에 요청하여 상담을 받도록. 높은 확률로 기억소거 후 해고 절차를 밟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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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방금 쓸 만한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어. 귀여무시한 토끼인데 기억을 먹어치우는 거, 어때? 너무 뻔하지? 근데 여기서, 반전이 뭐냐면 누가 그걸 그냥 만들었던 거야. 알겠어 얘들아?"


트롤러와 트롤러가 벌이는 참사라는 느낌으로 써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