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아리에 크루글란스키(Arie Kruglanski)가 제안한 개념으로, 어떤 정보를 접했을 때 반증될 여지 없는 확고 불변의 최종 결론을 얻고자 하는 욕구를 뜻한다. 대량의 정보 속에서 일종의 인지적 과부하(cognitive overload)가 발생되고, 이러한 과부하를 해소하기 위해서 방향과 맥락을 잡아 주는 길잡이를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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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적 종결 욕구를 충족하려는 사람들은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어떤 주제나 쟁점 또는 사안에 확고하고 의심 없는 결론을 받아들이는 것을 선호한다. 쉽게 말해 어떤 긴 글을 보고 "그래서 결론이 뭔데? 핵심만 말해."라고 요구하는 경우를 뜻한다.

(이하 후략, 모든 출처는 나무위키 "인지적 종결 욕구" 문서, 현 리비전 r69,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에 따라 재이용가능)

한국에서 SCP만을 논하는 팬덤이 거의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팬덤이라고 할 수 있는 SCP 재단 디시인사이드 마이너갤러리, 아카라이브 의 이 채널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씩 해설을 찾는 글들이 나옴, 특히 난해해 보이거나 긴 글일수록 "그래서 이게 뭔 뜻임?" 하고 해석을 요구하는 글들이 더 많아 보임. 그리고 간혹 리브레 위키를 선호하는 이유로 "해석이 달려 있어서" 라고 하는 의견도 본 적 있음.

나는 이러한 내용 또한 인지적 종결욕구, 즉 확고불변한 간략한 답안지를 찾는 욕구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며, 개인적으로는 불호함.


내가 개인적으로 불호하는 이유는 SCP-5000, 그리고 SCP-5999의 사례를 들어 설명할 수 있음. 


두 글은 SCP-5000 경연의 1위작과 2위작임, 이 두 글은 양식이나 서술 방식에서 매우 큰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이 있음. 누군가가 해석을 내놓았고 그걸 저자가 정답이라고 인정해버렸다.


이 두 글은 해석의 여지가 매우 많음, SCP-5000의 경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 있음. 재단이 갑자기 세계를 부셔버리기로 결정하고, 재단이 여러 변칙개체를 풀어서 어떻게 세상을 부셔버리는가가 나옴. SCP-5999의 경우에는 일곱 챕터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수준임. 뭔가 다른 SCP와 연관이 있는 듯 하지만 명확하게 언급되는 건 하나도 없음. 5000의 경우에는 "왜 재단이 세상을 부수는가?"에 대해 무수한 해석의 여지가 가능하고, 5999의 경우 "그래서 이 글은 대체 뭔가? 재단이 뭔가를 격리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무수한 해석의 여지가 가능함. 그리고 두 글의 작가들은 어느 댓글을 '거의 정확한 해석입니다' 라고 해 버림으로서 다른 해석의 여지가 안 나오게 되었음. 아무리 재단이 CCL 기반이라 조건만 맞추면 뭘 파생해도 된다지만, 저자가 그렇다는데 노골적으로 엿을 날릴 사람은 없으니까.


5999의 번역자는 나임, 리브레 위키의 글도 내가 번역했고 SCP 재단 한국 사이트에 있는것도 내가 번역했음. 그래서 두 사이트의 텍스트를 비교해 보면 거의 동일함, 4챕터에서 성서 인용문만 인용본이 다르지. SCP 재단의 경우 엄격한 저작권 문제로, 개역한글판보다 오래 된 가톨릭 구 역본을 가져왔지만, 리브레 위키는 그만큼 엄격한 제한이 없어서 현재 한국 가톨릭교회가 쓰는 역본을 가져왔다는 차이만 있을 뿐. 리브레 위키 문서에는 작가가 거의 정설이라고 인정한 해석을 인용했지만, 몇 개월 뒤 SCP 재단 한국 사이트에 올렸을 때는 그 해석을 일부러 댓글로 남기지 않았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해석이었으니까.


이건 사실 개인적인 취향에 불과함, 애초에 SCP 재단 룰에는 "카논이 없다"가 있을 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야 한다"는 룰은 없으니까. 어떤 SCP 저자들은 '바다거북수프'와 같은 방식으로 글을 쓸지도 모름. 5000의 저자인 탄호니와 5999의 주 저자 S.D.로크(일단 5999는 다섯 명이 만들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내용 텍스트의 대다수는 S.D. 로크가 썼음. 4챕터를 모던에라스무스가 썼고, 워데나즈가 테마 작업, 볼건이 영상 작업, 디셤이 오디오 작업을 했음)가 바다거북수프 방식으로 글을 썼을지도 모르지. 바다거북수프는 원래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논리 게임임, '바다거북 수프를 먹은 남자가 자살했다, 그는 왜 자살했는가?' 라는 상황을 주고, 문답을 통해 단서를 찾아가며 죽은 이유를 밝혀내는 것이지. 이렇게 SCP를 쓸 수 있기는 함.

다만 내가 글을 쓸 때는 바다거북수프보다는 나폴리탄에 좀 더 가깝긴 함. 물론 나폴리탄이라고 흔히 양산되는 규칙괴담은 매우 싫어함. 그냥 알 수 없는 것, 심지어는 본인도 답을 안 정해둔 것을 두고 싸구려로 분위기를 연출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엄밀하게 말해서 내 글이 5000이나 5999처럼 어떤 해석되지 않은 심오한 미스터리가 있다고 하면, 없음. 사실 있는 글 보면 그 자체로 이해가 되지 뭐 이해 안 되는 건 없을 거임. 그 정도로 대가리를 굴릴 능력이 아직은 없으니까. 다만 한 가지 썰을 풀자면, SCP-935-KO를 썼을 때 디시 마갤에서 가설을 제시하는 글을 봤음. SCP-935-KO의 원인이 SCP-714-KO에 있다는 가설이었음. 나도 그 글은 봤고 상세한 줄거리를 기억하고 있는데, SCP-714-KO가 무진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건 잊어먹은 지 오래되었음. 그런데 그 글쓴이는 이를 알고 있었고 둘을 엮는 참신한 가설을 제시한 것이지. 물론 나는 이를 의도한 바 없지만, 부정하지는 않았음. 그 글의 댓글에 "그러한 내용으로 이야기 한편 써오시면 +1 드림" 했는데, 아직은 안 올라왔더라. 내 글이 나폴리탄에 가깝다고 한 건 이런 의미에서였음. 나폴리탄류의 원형인 나폴리탄의 경우,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겠음. 다만 나폴리탄이 뭔가에 대해서는 물음의 여지를 남기고, 그 답은 명확하지 않음으로서 무수한 해석의 여지를 남김. 사실 이 나폴리탄마저도 인지적 종결 욕구가 크게 작용해서 대부분 인육설로 귀결되고 있는 듯 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