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바트 레이먼드 게이(Hobart Raymond Gay) 별명은 햅장군(Hap)


1894년 일리노이주 출생

1917년 대학 졸업 후 군에 입대 기병 중위로 임관

이후 승진을 거쳐 1941년엔 대령으로 진급


1942년 카사블랑카 전투에서 미 1 기갑군단 참모장으로 참전, 은성무공훈장 수여 당시 패튼 장군 휘하에 있었음.

이후 1945년 12월 패튼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이전까지 그대로 참모로 활동

1949년 오사카의 제 1기병사단장으로 부임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제1기병사단을 지휘하며 한국 전쟁에 참전 낙동강 방어선을 수비

이후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방어선을 뚫고 북진하기 시작 국군 1사단과 함께 미 1군단으로 편제되어 북한군을 분쇄


1950년 10월 38선을 넘어 평양에 입성 이후 압록강으로 진격하기 시작

하지만 운산 전투에서 분전했으나 중공군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잠시 저지당함

흥남 철수 이후 1951년 미국 본토로 돌아감. 

이후 여러 군단장을 역임하다가 1955년 방공유도미사일센터장으로 근무한 이후 퇴역


이후 뉴멕시코의 군사학교 교장을 역임하다가 1983년 89세의 나이로 텍사스에서 사망.


주요 수훈

수훈십자훈장 

수훈근무훈장

은성무공훈장

동성훈장

공로훈장 외 다수



한국 전쟁 초기에 큰 역할을 해서 우리나라를 구한 게이 중장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