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조조는 오늘날까지 동아시아사 시간에 나오는 관리 임용 제도인 구품관인법(구품중정제) 도입이라든지


오환과 선비를 정벌해 북방을 안정시키고 호조법을 통해 과세 부담을 줄이는 능력을 발휘함


마오쩌둥이 괜히 '조조는 최고의 정치가'라고 치켜세운 게 아니다


그러나 당 태종이 '임기응변과 기모로는 뛰어나지만 만승천자의 재주는 모자람'이라 말했듯


위에 만행들이나 군사적 안일함(한중공방전, 적벽대전, 번성공방전 등등), 민둔제 실시로 민중을 옥죄고(수확량의 약 50~60퍼가 세금), 후한 시절 폐단을 임기응변으로 대응했지만 이를 제도화 해서 정착시키는 데는 실패함


또 뒤이은 후계들도 제대로 통치를 못했고


결국 고평릉 사변으로 실권을 빼앗기며 조씨는 몰락, 끝내 사마씨에게 황제까지 넘겼고


그 사마씨도 팔왕의 난과 영가의 난을 거치면서 화북을 잃고


화북은 5호 16국, 강남은 한족 국가인 위진남북조 시대를 열어재껴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