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번에 러시아 규탄성명이 러시아에 의해 엎어지는 원맨쇼를 봤으니 다들 그런 의문이 있을 것임


상임이사국 제도는 왜 있으며, 대체 만장일치제와 거부권 같은 건 왜 존재하는지 존나 의문이 들거임




1. 상임이사국의 존재 이유가 뭐냐?


 

사실 유엔의 헌법격인 헌장만 놓고 보면 놀랍게도 지금의 러시아와 중국은 상임이사국이 아님


유엔헌장 23조에서는 분명하게 상임이사국을 "미국, 중화민국, 프랑스, 소비에트연방, 영국"으로 규정하고 있음.


즉 지금의 러시아연방과 중화인민공화국은 규정상으로는 상임이사국이 아님


그런데 소비에트연방이 그 국체를 상실하고 붕괴되었을 때, 구성국들의 합의에 따라서 "소련의 모든 외교적 지위는 러시아가 그대로 계승한다"는 것이 확정되었고, 이에 따라서 상임이사국의 위치를 러시아가 계승하는 것은 물론, 이전에 소련이 맺은 모든 국제 외교 조약이나 국가의 빚까지 모두 러시아가 고스란히 물려받았음.


중화인민공화국은 유엔총회 결의를 통해서 "장제스 정권을 유엔에서 퇴출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을 대표하여 상임이사국으로서 활동한다"는 것에 동의를 얻었고, 미국은 이것을 안보리에서 거부하려고 했으나 대만이 이 결정에 반발해 유엔을 탈퇴해 버리면서(지금까지도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여겨짐. 유엔에서 방출하는 결정에 반발해서 유엔을 탈퇴함;;) 미국도 포기하고 말았음.


즉 사실 지금 러시아는 "잠시(?) 공석이 된 소비에트연방의 권한대행"인 것이고, 중화인민공화국은 "유엔의 동의 아래 상임이사국처럼 활동"하고 있을 뿐, "헌장상의 상임이사국"은 아닌 셈(...)임. 말장난 같지만 중국의 힘이 세기 때문에 아무도 이걸로 트집을 못 잡음.


각설하고, 상임이사국의 존재 이유는 간단함. 좆같은 거 있으면 세계대전 일으키지 말고 거부하라는 소리임.


지금을 예시로 들자면,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을 규탄하는 성명에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규탄성명이 나와서 러시아가 꼴받아서 핵전쟁 일으키는 사태를 막기 위함이라는 소리임.



2. 그럼 유엔에서 러시아를 방출할 수는 없나?

그런 짓 하지 말라고 거부권 만들어 놓은 거임.


러시아를 유엔에서 방출하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나 통쾌하지,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대재앙이고, 러시아 입장에서는 개꿀임. 이렇게 되면 러시아의 전횡을 유엔에서 자유롭게 규탄하고, 유엔군을 파병할 수도 있음.


문제는 이렇게 되면 이 유엔군을 파병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출구전략도 제시할 수가 없게 된다는 사실임. 다시 말해서 미국, 영국, 프랑스가 러시아에게 어떤 협상을 제의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군사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뜻. 보는 사람 입장에서야 그게 통쾌하겠지만, 미국이나 영국이나 프랑스가 "우리 세금과 군대를 쓰는 것보단 우크라를 포기하는 편이 싸게 먹히겠다"는 판단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도 고려해 봐야 함.


국제기구에서 떨어져 나오는 게 그렇게 큰 벌이면 일본제국이나 나치독일은 좆병신이라 국제연맹 탈퇴함? 오히려 대규모 전쟁을 일으키고 싶은 입장에서는 국제기구에서 떨어져 나가는 게 소원임. 상대방한테 "꼬우면 전쟁"만을 강요할 수 있기 때문.



3. 만장일치제는 왜 있냐?

상술했듯이 "거부권"을 주려면 만장일치제로 갈 수밖에 없다.


거부권의 존재 이유 자체가 킹받아서 전쟁 일으키지 말라는 것인 만큼, 이 또한 전쟁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장치.



4. 비상임이사국이 다수결로 상임이사국을 이기게 하면 안 되나?

놀랍게도 이게 안 되는 것은 상술한 거부권이나 상임이사국 제도와 달리 존나 합리적인 이유다.


러시아,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는 자신만의 패권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나라들이기 때문. 다시 말해 비상임이사국에게 머릿수로 상임이사국을 이길 권한을 주면, 역설적으로 상임이사국이 자신의 패권 아래 있는 비상임이사국을 늘리기 위해 침략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상임국인 중국이 미국 편을 드는 비상임국을 줄이고 자신의 편을 드는 비상임국을 늘려 상임국인 미국을 끌어내리기 위해 친미국가인 일본을 침략할 필요성을 준다는 얘기.



5. 지금 유엔이 국제연맹과 무엇이 다른가?

일본 제국은 국제연맹을 탈퇴했지만, 러시아는 유엔을 탈퇴하지 않았다.


이것 단 하나만으로도 국제연맹에 비해 유엔이 가지고 있는 압도적이고도 명백한 힘을 실감할 수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오히려 유엔에서 발 빼는 게 더 이득이다. 그러면 서방국가들에게 단두대 매치를 강요할 수 있으며, 독재자가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러시아에 비해 민주국가인 서방들은 무력충돌에 엄청난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지금 유엔은 러시아를 "거부권"과 "상임이사국"이라는 미끼로 어떻게든 유엔에 잡아두고 협상 중재의 가능성을 확보하려고 기를 쓰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억할 것은, 유엔의 존재 목적은 전쟁을 일으키는 새끼를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발발과 전쟁 확대를 저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금의 유엔은 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3차 대전으로 확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 똥꼬쇼를 하고 있는 것이지, 러시아를 규탄하고 혼내 주는 것이 행동목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