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킴 뮈라(Joachim Murat)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휘하의 기병대장이자, 기병대 운용으로는 적수가 없었던 희대의 맹장


다만 나폴레옹의 지시 없이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0에 가까웠으며


특히 당대 최중요 병과인 포병 운용에 젬병이라 그냥 기병만 잘 굴리는 돌대가리 취급을 받기도 했다


어쨌거나 기병대를 통해 적의 허점을 찌르고 빠르게 추적해 섬멸하는 능력만큼은 1류를 넘은 탑 of 탑이었고


그래서 일신의 무력과 기병대 지휘 능력만으로 나폴레옹이 가장 아끼는 26명의 원수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평도 받는다



본래는 가난한 여관주인의 아들로 태어난 천한 신분이었으나, 21세의 나이로 기병대에 입대하면서 두각을 드러냈고


프랑스 혁명 당시 왕당파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나폴레옹과 인연을 맺어 그의 오른팔이 되었다


이후 나폴레옹이 이끈 전쟁마다 빠지지 않고 참여하며 기병대장으로서 화려한 전과를 올렸고


특히 1807년, 나폴레옹과 러시아 제국이 격돌한 예나 전투 당시, 용맹한 기병 돌격으로 불리하던 전세를 단숨에 역전하며 나폴레옹 천하의 성립에 큰 기여를 했다


결국 뮈라는 해당 공로를 인정받아 황제가 된 나폴레옹에 의해 나폴리 왕국의 국왕으로 임명을 받으면서 그야말로 인생 역전을 해낸다



사실 이것도 원래는 대공 작위를 주는 걸로 끝냈을 걸, 뮈라가 대공 말고 일국의 왕이 되고 싶다며 징징거리자 크게 선심을 쓴 결정이었다


본래 나폴리를 다스리고 있던 건 다름 아닌 나폴레옹의 친형, 조제프 보나파르트였는데


하도 뮈라가 왕이 되고 싶다고 티를 내니까 "어디 적당한 곳 없나"하고 살피다가, 결국 형을 당시 혼파망 그 자체였던 스페인으로 내쫓고 대신 뮈라를 그 자리에 앉히는 용단을 내린 것


조제프는 "그래도 내가 왕인데 가오 상하게 이리저리 옮겨 다니라고? 심지어 평화로운 나폴리를 버리고 개판 5분 전인 스페인으로 가라고??"라며 불만을 표했지만


동생의 설득 + 강압에 못 이겨 결국 뮈라에게 왕위를 내주고 얌전히 이베리아 반도로 이사를 가고 말았다 


이렇듯 나폴레옹은 절체절명의 위기마다 역전의 기회를 가져다 준 뮈라를 극도로 총애했고


그의 충심을 믿어 의심치 않아 황제인 본인에게 반말을 써도 용서할 정도였다


허나 나폴레옹의 예상과 달리, 뮈라는 황제를 향한 충심보다 본인의 권력욕이 더 앞서는 인물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 원정을 떠났다가 대패하면서 점점 몰락 가도에 접어들고


나폴레옹이 휘청거리는 걸 알아챈 영국/오스트리아/프로이센/러시아가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하며 전방위적으로 그를 압박하기 시작하는데


위기에 몰린 나폴레옹은 충신이라 믿어 의심치 않은 뮈라에게 SOS를 보냈지만, 정작 뮈라는 본인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양쪽의 힘을 저울질하는 중이었고


결국 대프랑스 동맹과 내통해 나폴레옹의 통수를 가격, 황제의 프랑스 군대가 궤멸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마침내 나폴레옹이 패배하고 엘바 섬에 유배되자, 뮈라는 열심히 대프랑스 동맹국과 협상하며 국왕 자리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이미 급한 불을 끈 대프랑스 동맹은 이용 가치가 떨어진 뮈라에게 더 이상 관심이 없었던 데다가


결정적으로 기병 운용 말고는 아무것도 못하는 주제에 자기를 총애하는 주군을 배신하기까지 한 그를 극도로 경멸했다


안 그래도 신사도와 기사도 뽕에 취해 살던 근세가 아닌가?


배신 자체도 문제이지만, 뮈라는 나폴레옹의 총애가 아니었다면 나폴리 국왕은커녕 평생 소대장 직함이나 달고 살았을 비천한 무식쟁이였다


1. 일단 신분도 동료들에 비하면 한없이 낮아

2. 그렇다고 딱히 사람이 똑똑한 것도 아니야

3. 성격도 오만하고 이기적인 독불장군이야 

4. 정치적인 식견도 부족한 데다 리더로선 한없이 무능해

5. 명색이 장교 출신이라면서 당시 최중요 병과인 포병 운용은 할 줄도 몰라 


이런 놈이 그래도 기병 하나는 기똥차게 굴리니까, 거기에 감격한 나폴레옹이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분수에 안 맞는 왕위까지 내준 셈인데  


퍼줄 거 다 퍼준 은인의 통수를 서슴없이 쳐버렸으니, 그 덕을 본 대프랑스 동맹국 입장에서도 뮈라는 그저 역겨운 배신자에 불과했던 것


결국 나폴리 왕국의 원래 주인이었던 페르디난도 1세가 군대를 일으켜 뮈라를 축출, 뮈라는 완전히 끈 떨어진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그제서야 자신을 알아주는 인물은 나폴레옹밖에 없다는 진실을 뒤늦게 깨닫고 주제 파악을 한 뮈라


엘바 섬에서 탈출한 나폴레옹이 다시 군대를 모은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달음에 달려가 그에게 변치 않는 충성을 맹세하려고 한다


휘하에 남아있던 나폴리군까지 박박 긁어와 제발 자길 도로 받아달라고 애걸복걸했지만


뮈라의 기회주의적 배신에 정나미가 다 떨어졌던 나폴레옹은 오히려 쌍욕을 퍼부으며 그의 작위를 모조리 박탈하고 문전박대한다


일설에 따르면 대프랑스 동맹에 의해 세워진 허수아비 왕, 루이 18세에게 편지를 보내 "뮈라 그 새끼는 니들이 죽여도 내 알 바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하니


나폴레옹이 뮈라를 싫어하다 못해 얼마나 혐오하게 되었는지 잘 알 수 있다



할 수 없이 코르시카 섬으로 달아난 뮈라는, 차후 기회를 노려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톨렌티노 전투에 참가


포병대를 이끌고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해 백일천하 상태였던 나폴레옹을 지원하려고 했지만


본인의 형편없는 포병 지휘로 인해 대참패, 다시 코르시카로 달아났다가 오스트리아군에게 잡혀 총살을 당하고 만다


뒤늦게 후피집을 찍으며 최후의 최후까지 나폴레옹을 위해 싸운 그였지만


정작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뮈라의 비보를 전해들은 나폴레옹은 코웃음을 치며 "꼴 좋다"고 비웃었다고 한다


물론 나폴레옹의 수하 중 그를 배신했던 건 뮈라 혼자만이 아니었지만


황제의 패색이 짙어지자 바로 루이 18세에게 붙어 자길 폐위시킨 미셸 네 원수도 대범히 다시 받아준 그였고


뮈라와 동급의 통수를 때린 오귀스트 마르몽조차 유언으로 "그를 용서한다"고 했던 나폴레옹이었는데


뮈라는 끝까지 용서 못한 걸 보면 그가 얼마나 뮈라를 신용했는지, 그리고 그의 배신에 진저리를 쳤는지 각이 나온다

(참고로 또 다른 통수왕인 마르몽 또한 평생 배신자 & 신용불량자 딱지를 달고 멸시를 받으며 떠돌다, 겨우 빈에 정착해 78세로 죽었다)



사실 뮈라의 기병 운용 능력 자체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므로, 만약 그에게 기병대 지휘를 맡겼다면 워털루 전투에서 그리 허망하게 지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나폴레옹 입장에서는 누릴 거 다 누리게 해줬더니 자기 통수를 쳐버린 놈을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심지어 배신의 이유가 다른 것도 아니고, 나폴레옹 자신이 하사한 왕위를 잃을까 봐 전전긍긍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결론을 짓자면, 참으로 배신자다운 후피집 엔딩이 아닐 수가 없다 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