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존재감 없는 나, 용사의 암부가 되다.

"어디 한번 너가 믿는다는 어둠한테 실컷 빌어봐, 그 무엇도 너를 구원해주지 못할테니까."


빛나는 은의 칼날이 살갗을 꿰뚫고 점점 그 속을 해집어 간다.

칼날이 다시 그의 손으로 돌아오자 목에서는 빛바랜 검은 피들이 솓구치며 바닥에 흐르기 시작했다.


허나 목이 꿰뚫린 그 남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악을 쓰며 거친 손으로 상처를 틀어막을 뿐이였다.


"피가 검은 것도 모자라, 꿰뚫려도 죽지 않는다니, 실로 사악한 이단의 힘이 분명해!"


남자의 목을 꿰뚫은, 빛나는 은발의, 빛나는 은으로 치장된 갑옷을 입고 있는 이단사냥꾼은 

남자를 조롱하듯 가성으로 외쳤다.


"아아... 가려진 것아, 이단신을 믿은 너의 부모를 원망해야겠네, 그치?"


부모를 언급하자 굳세던 남자의 눈빛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상처를 막는 손에는 과하게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단사냥꾼은 그런 그를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 치며 내려다보았다.


"곧 곁으로 갈거니까 걱정 마."


이단사냥꾼이 완벽히 무너진 남자의 목을 치려 할 때, 하얀색 사제복을 입은 사제가 그의 어깨를 잡아 막았다.


"가려진 것이라 해도 사람을 죽이기 전에는 축복을 내려야 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단사냥꾼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내보이며 한숨을 쉬었고, 힘이 한껏 들어갔던 그 어깨는 천천히 내려갔다.


사제는 앞으로 나아가 무릎꿇고 있는 남자의 머리를 왼손으로 짚으며, 그 앞에 무릎꿇었다.


"당신의 모든 길에 빛이 비추고 다시 한번 은혜를 받아 재탄하길 기원합니다."


사제의 손에서는 작은 빛이 일렁이고 이내 사라졌다, 남자는 그 빛을 보자 완벽히 정신을 잃었다.


"그냥 고통스럽게 죽여도 되잖아, 왜 굳이 시간들여서 마취주문을 쓰는지..."


"율법이 그렇습니다, 배율자가 되기 싫으시다면 의문을 가지지 마시고 따르십시오."


이단사냥꾼은 천천히 다시 자세를 잡고, 검을 거꾸로 잡아 쓰러진 남자의 위에 섰다.


"하나.. 둘!"


살갖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찰나에 울리고 남자의 시신은 빛속에 흩어져 사라졌다.


"여기서 이단 사냥은 이걸로 끝이야?"


이단사냥꾼이 목에 꽂힌 검을 뽑으며 말했다.


"예, 허나 조금 더 이곳, 카르헨에 체류하셔야 할 듯 합니다."


"뭐? 빨리 돌아가서 우유라도 마시면서 쉬고싶었는데."


"용사 일행이 곧 이곳으로 도착한다는 모양입니다."


방금전까지 귀환하지 못한다는 말에 잔뜻 쳐져있던 사냥꾼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빛나기 시작했다.

(*주: 진짜로 빛남)


"결국 교황님께서 마를 몰아낼 용사님들을 소환하셨다고?! 이거, 성대하게 대접해야겠는데!"


"여유가 있으니 용사일행과 만나고 가르침을 드리셔도 됩니다만, 체류하는 목적은 그것이 아닙니다."


"음? 그럼 뭔데."


"언제나 빛의 축복을 받은 용사들과 같이 나타나는 존재, 사도가 이 근처에 소환된 것 같습니다."


사냥꾼은 더욱더 얼굴에 광을 띄운 채 방금까지 이단자가 있었던 어둑한 골목에서 빠져나왔다.


"그 놈은 인간을 사냥한다 하지? 그것도 권력자들을."


"그렇습니다."


"이곳의 권력자는 딱 한명 뿐이잖아, 그럼 그놈을 지키러가면... 가증스러운 사도를 죽일 수 있다는건가?"


"... 그럴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어! 빨리 가자고."


사냥꾼은 그 무거운 갑옷을 입고도 가벼운 천 하나 걸친 사제보다 더 빨리 영주의 성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