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 2-43. 175미터의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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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생모리츠, 죠셉은 호텔의 발코니에 앉아 있었다.


“여기가 소문으로만 듣던 스위스의 생모리츠구나. 별명은 태양의 계곡. 센스있고 차분한 어른들의 분위기. 부자들이 휴가 때면 찾아오는 고급 리조트!! 어째 돌아다니는 고양이까지 여배우나 뭐 그런 사람들이 키우는 것처럼 기품이 있어보이네!”


죠셉은 새우의 꼬리를 딱 봐도 부자에게서 길러진 듯한 고양이에게 던져주었다. 고양이가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자 죠셉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비싸게 굴긴… 새우 꼬랑지 따위에는 눈길도 안 주잖아.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자란 양갓집 아가씨 고양이가 산책 나오신 분위기구만. 그럼, 이 훈제 연어라면 마음에 드시려나?”


죠셉은 훈제 연어를 포크에 찍어 고양이에게 보여주었다. 거기에 이끌린 고양이가 다가와 그것을 건드리려 하자 죠셉은 그것을 양 옆으로 흔들었다.


“어이쿠, 아주 환장하네!”


죠셉은 연어를 조금 더 높이 들자 고양이는 두 발로 서서 그것을 먹기 위해 몸부림 쳤다. 더 높이 들자 이제는 고양이가 점프를 하기 직전의 상태가 되었다.


“걸렸구나.”


죠셉은 발로 가볍게 고양이를 밀었다. 공중에서 버둥대던 고양이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진 다음 멀리 도망쳤다.


“착지도 못하는 부르주아 고양이. 히히히… 어때, 혼 좀 났냐?”


죠셉은 한숨을 쉬었다.


“안 되지, 안 돼. 자꾸 예민해지면.”

‘어울리지도 않게 조바심을 내니 이러지… 와무우 자식이 심어 놓은 심장의 반지가 녹기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은 닷새… 게다가 이번엔 카즈까지 진심으로 나섰으니… 다가오는 위협이 실감나기 시작한 탓이야… 마음을 가라앉혀야지. 구질구질하게 생각해봤자 소용없다는 게 내 생활신조잖아…’


그때, 리사리사가 죠셉을 불렀다.


“죠죠, 뭐하는 거예요! 이리 와서 저 건물을 보세요.”


죠셉은 언덕 위에 있는 낡은 호텔을 바라보았다.


“저 건물이 바로 에시디시가 이 적석을 보내려던 주소지예요!”


망원경으로 호텔을 바라보던 메시나가 말했다.


“폐쇄되어 인적이 끊어진 호텔인 것 같군. 카즈가 낮에 숨어 살기에는 안성맞춤이겠어. 창문이랑 창문은 모두 널빤지로 막아 놔 햇빛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는걸.”


시저가 맞장구 쳤다.


“틀림없이 카즈는 저곳에서 해가 지는 것과… 무엇보다도 와무우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리사리사의 물음에 시저가 먼저 말했다.


“당연히! 당장 공격해야죠!”


메시나도 거들었다.


“동감이야! 낮이니까 카즈는 밖으로 나올 수 없어. 우리에게는 지금이 유리하지!”


“죠죠는?”


리사리사가 물었다. 죠셉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반대야. 밖에 태양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하다고 생각해! 카즈는 저런 식으로 수천 년이나 살아온 놈이라고! 낮에 침입하는 적에게 아무 대비도 하지 않았을 리가 없어! 따라서 놈의 아지트로 쳐들어가는 것만큼 위험한 짓은 없다고 예상할 수 있지! 난 가지 않겠어! 나비가 거미집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시저가 말했다.


“이봐 이봐. 죠죠… 너 답지 않게 왜 이리 소극적이야?”


“난 손자병법을 따르겠어! 승리의 확신이 있을 때만 싸우겠다고! 안 가겠다면 안 가는거야!”


죠셉의 선언에 시저가 멱살을 잡았다.


“죠죠, 너 이 자식! 겁먹었냐!”


“겁을 먹어? 난 냉정해. 쿨하게 생각해서 가지 않는 거야! 밤까지 놈의 공격을 기다리는 편이 나아!”


시저는 평소보다 거친 표정을 지으며 으르렁거렸다.


“승리의 확신이라고 했냐?! 지금 카즈는 혼자야! 우리는 넷! 분명 승산이 있어. 지금 갈 수밖에 없다고! 밤이 오기 전인 지금! 와무우가 오기 전인 지금!”


“시저 너… 초조하구나?! 왜 그리 초조해하지? 진정하고 생각해봐! 저 호텔에 들어가면 우리가 완전히 불리 해진다는 걸 왜 몰라.”


시저의 표정과 말투가 점점 더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초조하긴 누가 초조해! 이건 결판이다! 돌가면 때문에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와 너희 할아버지 대부터 내려온 운명의 사생결판! 나는 놈을 죽여 버리겠어!!”


“결판이라고?! 자식아, 할아버지가 뭐 어쨌다는 거야! 웃기는 소리! 몇 십 년도 더 전에, 그것도 돌가면 때문에 죽지도 않은 사람 갖다 붙이지 마, 이 멍청아!”


“말 다했냐 죠죠!!”


“만난 적도 없는 선조의 숙명은 집어치워! 그것 때문에 네가 죽는 건 얼간이 짓이야, 알아?!”


시저의 얼굴이 분노에 가득 차더니 시저는 차마 친구를 때리지는 못하고 가만히 있던 벽을 부서져라 치며 화를 분출했다.


“죠죠… 네 말이 틀리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가겠어! 가지 않으면 안돼!”


시저가 호텔로 향하자 리사리사가 그를 말렸다.


“시저! 역시 죠죠의 말대로 위험해요! 우리는 호텔 내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밤에 쳐들어올 카즈를 맞아 싸우기로 하겠어요! 명령이에요, 시저!! 적석을 지키는 것이 제일지령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요!”


그러나 시저는 뒤돌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이번만큼은 들을 수 없군요!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내 혈통의 문제입니다! 체펠리 일족의 문제라고요! 카즈가 있는 곳을 알면서도 일족의 원한을 품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놈이 공격하기를 기다리다니, 어떻게 그렇게 느긋한 짓을 한단 말입니까!”


시저는 그 말과 함께 호텔로 움직였다. 당황한 죠셉이 물었다.


“시… 시저, 너 대체 왜 그래? 너 답지 않게 그렇게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라도 있는 거야? 밤까지 기다리지 못할 사정이라도 있어?”


그때, 리사리사가 말했다.


“죠죠. 시저에게는… 그에게 있어 가장 민감한, 숨겨진 과거가 있답니다.”


“숨겨진 과거? 그… 그게 뭔데, 대체?”


메시나는 멀어지는 시저를 보며 리사리사에게 물었다.


“어쩔까요?”


“몰래 따라가서, 시저가 호텔 안으로 들어가려 거든 억지로라도 막아주세요.”


호텔 앞에 도착한 시저는 정문을 바라보았다. 눈 위에 발자국 하나가 문 앞까지 이어져 있었다.


“어젯밤 내린 눈 위에, 건물 안으로 향한 발자국이 하나.”


그때, 갑자기 호텔의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그 안에서 투명한 무언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이… 이건?! 지금 뭔가… 보인 것 같았는데… 착각인가…?”


자칫하면 깨닫지 못했겠지만 기묘한 현상이 있었다…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만… 호텔 안에서 바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렇다! 호텔 안에서… 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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