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러피안 마켓 키친 앤 카페, 노암과 카밀라가 처음 대면하고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한 곳임과 동시에, 합의 하에 다시금 둘이 마주한 장소이기도 하다. 정작 노암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카밀라는 저번 일을 꽤 크게 벌였던 것을 감안하면 지금 이 순간이 온 것 자체만으로도 세상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 크랜베리 주스 원하는 사람? "


" 나 안 마셔, 자꾸 사람들이 시키지도 않은거 마시라고 하고 있어. 너 그거 다 마셔라? "



뜬금없이 크랜베리 주스를 세 잔씩이나 가져온 게리 쪽을 나무라고 있던 빌이었다. 오늘 유독 신경질적이긴 한 것이, 여동생이 남자가 또 붙었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점이라는게 얼굴에 선명히 드러나듯 싶었다. 


아무도 마시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는 다르게 노암은 물론이고, 카밀라와 게리까지 합하여 크랜베리 주스를 한 잔씩 가져가는 것에 빌이 그 시점에서 할 말을 잃어버렸지.



" 니히하학, 확실해지기 전까진 함부로 깝치지 말지어다. "



이내 게리 쪽에서 여유롭게 크랜베리 주스를 한 모금 마시며 조롱 섞인 말을 내뱉었고, 거기에 빌 쪽은 저 짜증나는 놈, 하고 속으로 헐뜯을 뿐이었지. 결국 카밀라의 행복해보이는 듯한 표정, 그리고 노암의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듯한 표정에 결국 화도 내질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었고.


노암은 한참동안 가만히 있다가, 카밀라의 두 눈을 그제서야 바라보고서는 해야할 말들을 하기 시작했지.



" ...저기, 카밀라. "


" 네! 오늘 날씨 참 좋죠, 그렇죠? 저도 화창한 날씨가 되면 조지 타운 주변을 늘 걷곤 한답니다! "



노암이 채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마치 기계처럼 말을 뱉어내며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버리는 카밀라의 모습, 혼자서 분주한 손의 움직임하며, 흔들리는 눈동자까지 전부 보아하니 분명 긴장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한숨을 푹, 쉬며 노암은 애써 그녀의 말에 잠시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을 다시 이어가려 했다.



" 그게 아니라, 중요한 사안... "


" 아, 맞아요! 이곳에서 케이크도 시켰어요! 맛있더라구요, 노암 씨가 추천해주신 디저트가 최고더라구요. 다음번엔 다른 디저트도 한 번 시켜볼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



이미 말을 차마 듣지 못할 정도로 긴장에 처해있는 모습, 빌의 자랑을 듣기로는, 평소 학교 생활도 잘하고, 친구들도 그렇게 붙어다닌다던데...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망가지는 것이 꽤 사람의 또 다른 면을 찾은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정녕 처음에 이쪽을 구속시켰던, 싸늘했던 카밀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갭이 컸다.


이렇게 난감한 와중에도, 그녀는 말을 이어가는 걸 멈추지 않았다.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이 말을 전하지 않으면 나중에 뜻하지 못할 상황이 왔을 때 그녀도 같이 위험해질 터였다. 차마 소리치지는 못하고, 정중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답한다.



" 아가리 여물어. "



아, 아. 갑작스럽게 귀로 훅, 하고 꽂히는 거친 욕지거리에 카밀라가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자리에서 충격과 동시에 자신이 여태까지 어떤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것에 스스로 부끄러워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 ...죄, 죄송해요. 제가 또 쓸데없는 말을 해버렸어요. "


" ...알면 됐다, 카밀라. 무엇보다도 당장에 하고 싶은 말은 그거다. 당장 조지 타운을 떠나라. "



조지 타운을 떠나라고? 갑작스레 이 동네에서 따나가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갑작스레 쫓아내려고 하면 아무리 노암이어도 기분이 썩 좋진 않은데.


적어도 이유만이라고 알려달라며 입을 열던 찰나에, 마치 그녀의 속을 읽었다는 듯이 노암이 이유를 말해주기 시작했다.



" 이유가 궁금하겠지. 운명의 여신과 광신도들... 네 오빠인 빌 라르손이 얽혀버렸다. 당장 미국을 떠나거나, 떠나지 못한다고 해도 최대한 워싱턴 D.C와 동떨어진 곳으로 떠나야 해. 캐나다와 근접해있는 디트로이트 쪽으로 옮기거나 해서 어떻게든 네 몸 성히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운명의 여신과 얽혀서 좋은 꼴이 난 적은 없었으니까, 거기에 이곳 워싱턴 D.C는 여신뿐만 아니라 여신의 광신도들이 긴밀하게 얽혀있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남아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지.


그제서야 이유를 깨닫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던 카밀라였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녀의 입에서는 노암의 예상과는 다른 말이 새어나왔다.



" 저는 진작에 각오했어요, 노암. 제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치는 제 힘으로 스스로 극복해보겠다고, 뒤늦게 성장했을 뿐이지만, 저도 성인이에요. 제 앞가림 정돈 제 스스로 할 수 있으니깐... "



노암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였다. 제 아무리 어떤 일이 닥치든 준비는 되어있다고 마음 속으로도 굳게 다짐했다곤 해도, 노암의 그 심각한 눈빛을 바라보면 저절로 목소리가 작아지는 것이었다.


이내 꾹 입을 다문 그녀를 바라보며, 이내 노암이 다시 입을 연다.



" 네가 하는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스스로도 잘 알고 있겠지. 단순히 각오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전쟁보다도 더한 일을 겪을 수도 있을거다. 비단 너가 죽는 것 뿐이 문제가 아니야. 네 주변 사람, 네 오빠가 죽는 꼴을 두 눈으로 볼 수도 있어. "


" ...알아요, 다 안다고요! 당신은 모르겠지만, 전 진작에 알고 있었어요. 이런 일이라곤 생각 못했지만, 분명 비슷한 일이 일어날거라고 예상은 했으니까! "



신문에도 떡하니 실렸던 광신도가 저지른 만행들을 어느 정도 카밀라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빌 라르손이 연관되었다라... 당연히 좋은 꼴 보지 못할거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길잡이의 그 여성 스탠드 유저가 이야기했던 그대로였고, 분명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애써 서로가 친해질 기회인데, 이대로 포기할 순 없어. 이미 굳게 마음을 먹었는데 이대로 허무하게 그 기회를 놓고 싶지 않단 말이야. 



" 주변 사람이 죽느니, 차라리 저도 함께해서 같이 죽고 말겠어요. 그러니, 합류를 허락해주세요. "



제가 죽는 것보다 주변 소중한 인물들이 죽는 것이 싫었다. 그것보다도 더 싫은 것은 주변 사람이 죽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손을 뻗으며 허락을 구하는 카밀라였다. 그 모습에 노암도 순간 고민을 하던 찰나.


아아아아아아 ㅡ 하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마치 파동이라도 일으키듯 건물 모든 창문이 깨지며 엄청난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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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끝낸 면이 있긴 했어, 그래서 오늘도 적극적인 피드백 구할게! 늘 그랬듯이 질문도 환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