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가 직접 두 눈으로 봤잖니, 이 아비의 최후를.



횡설수설하는 도중에 들렸던 목소리는, 그렇게 듣고 싶었던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그 동시에,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아버지를 칼로 찌른 괴한을 쓰러뜨리고, 그저 무력하게 아버지의 죽음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을, 정신을 차려본 순간 그토록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그때의 순간으로 어느새 다시 돌아와있었다.


제 품속에서 아버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 직전의 순간으로... 눈앞의 아버지는 어린 노암의 앞에서 다시금 말을 이어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 삶이라는 건 어렵지, 맞출 수 없는 퍼즐과 같은 시련을 내어주고, 끝 없는 계단과도 같은 인생의 커다란 과제를 몇 번이고 풀어내야 할테니, 그래... 어린 나이에 세상에 홀로 던져진 기분은 어떠니. "



다 죽어 식어가기 시작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그동안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했던 흔들리는 모습을 내비치고 있었다. 어린 노암은 무겁게 입을 열어 아버지에게 답하였다.



" ...힘듭니다, 아버지. 의지될 사람이라곤 저 혼자밖에 없었음에도,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제 자신도 참 의문입니다. " 


" 노암, 내가 죽었던 그 순간부터 네 곁엔 둘도 없는 소중한 동료가 함께 있어왔잖니, 늘 곁에 있다고 그 존재를, 네 선한 정신력의 결정체를 잊어버리면 안된단다. " 



둘도 없는 소중한 동료, 정신력의 결정체... 스탠드, 프라임 타임 플레이어즈를 이야기하신건가. 너무나도 당연했던지라 그 소중함을 모르고 있었어. 노암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지켜보다가, 아버지 제이콥스가 말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 떨고 있구나, 오메가에 다다르는 남자가 돼야지. 내 죽음은 그저 시작에 불과할 뿐이었다는 걸 잘 알고 있잖니. "


" 압니다, 아버지... 그래도 그냥, 포기하고 전부 놓고 싶습니다. 편해지고 싶어요. 아직 어린 저에게 있어서 세상은 너무나도 잔혹한걸요. 제가 과연 다다를 수 있기나 할까요? "



마지막으로 식어가는 순간까지도, 어린 아들의 말 한 마디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버지였다. 아버지 제이콥스는 그 무거운 손으로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면서도 당장 현실을 마주하게 만들 한 마디를 내뱉었다.



" 당연하지, 약한 소리 하지 말거라 노암. 여태까지 잘해줬고, 앞으로도 그럴거라는거 아비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정녕 소중한 것까지 포기해가면서 모든걸 놓고 싶으냐? "



소중한 것, 소중한 것... 그제서야 모든 것이 다 기억나기 시작했다. 내가 무거운 짐을 놓고 싶어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를, 그런 무거운 짐을 계속하여 짊어지고 가야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를. 동료 두 명, 게리 생로랑과 빌 라르손... 그의 가족인 카밀라의 생존. 인간 관계가 없던 저에게 생겼던 한 줄기의 빛과도 같은 인간들을, 무엇보다도 제 손에, 일행 모두의 손에 미국의 운명이, 어쩌면 전세계의 운명이 달려있을지도 모를 것이었다. 


모든 것이 기억나고 나서야, 제 모습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렇게 어렸던 노암은 다시금 2004년 지금의 어엿한 성인 노암으로 성장해있었고, 웃으며 사라지는 아버지를 보며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 제가 과연 다다를 수 있기나 할까요? '


' 당연하지. '







" ㅡ 깼어, 깼어! 노암, 괜찮냐! 일어나라고, 얼른! "


뺨을 몇 대고 갈기는 찌릿거리는 감각에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당장 무슨 일이 있던거지, 카밀라와 눈을 마주쳤던 것을 마지막으로 고질라에게 공격을 당했고... 그 이후로 기절해 있던건가. 여태까지 살아남은게 용하다 싶을 정도였지.


팔은... 당장 두 쪽 다 붙어있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어. 여운이 남는 꿈을 꿨었는데, 그걸 전부 설명해주기엔 당장 상황이 말이 아니라는 걸 깨닫기까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었지.


눈앞의 카밀라는 그저 하염없이 울고만 있었고, 게리는 당장 급한지 어떻게든 깨어난 노암을 잡아 흔들어 정신을 차리게끔 만들며, 말을 이어가기 시작해.



" 당장 카밀라랑 드윌리 덕분에 살았어, 고질라... 놈은 지금 날 찾고 있는 것 같았는데, 카밀라의 능력 덕분에 꽁꽁 숨어있는거나 다름 없는 상태였지. 놈의 눈엔 시체가 된 너와 카밀라 뿐이 눈에 보이지 않을걸? "



드윌리... 당장 빈사 상태가 되어버린 이쪽 대신에 빌이 대신 시간을 벌어준걸까.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장 곤죽이 되어 쓰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리 오래 가진 않은 모양이었다. 죄 없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여놓는다니,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억울하기만 했다.


그와 동시에, 마음 한 켠에선 부아가 치밀어오르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분노할 듯 감정 주체가 되질 않았고, 내가 내가 아닌 듯한 기분까지 들기 시작한다. 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몸은 일어서서 눈앞의 괴수를 향해가고 있었다.


과연 다다를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 노, 노암! 아직 회복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미쳤어?! 다시 돌아 ㅡ "



말리던 게리의 두 눈에는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노암의 저 모습이 평소와는 확실하게 다르다는 것을, 입에서는 황금빛 찬란한 연기를 내뿜고 있었으며, 괴수를 응시하며 다가가는 그 두 눈마저도 황금빛으로 덧칠한 느낌까지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제이드에게서 얻어온 운명의 화살에 붙은 불이 노암을 향해 더 강하게 지펴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건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걸까. 고민하고 있을 때엔, 이미 괴수가 그 넓고 거대한 발로 노암을 짓밟으려 시도하는 것이었다. 구해야 하기엔 이미 늦었어. 과도한 신체 손상은 회복시키기도 어려울 뿐더러 설령 사지가 다 붙는다고 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미지수인데, 구해야 한다고 마음 먹고 달려들기도 전에 괴수가 이미 노암을 짓밟은 후였다.



" 노암 ㅡ !!! 씨발, 기다리라고 했잖아! " 



이젠 양측 딜러가 모두 전멸한 상황, 그저 눈앞의 상황만 보느라 게리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으나, 카밀라만이 이상하리만치 침착한 태도로 노암이 짓밟힌 상황을 그저 지켜보고 있던 것이었다.



" 미치겠네, 우리 둘이선 이제 아무것도 못해, 아가씨! 그렇게 쳐다봐서 뭐가 되기라도 하는거야? "


" 화살... " 



화살... 화살? 노암은 이미 죽었다. 즉사나 다름 없었다. 고질라는 큰 소리로 도시 속에서 으르렁거리며 자신의 위엄을 드러낼 뿐이었다. 그런데, 왜 화살의 타오르는 불은 여전히 남아있는거지? 기묘해, 설마하고 노암이 살아있을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쩌저적 ㅡ 무엇인가 찢어지고, 부러지는 소리, 뒤따라오는 지진과 같은 땅울림에 휘말려버렸다. 게리가 정신을 차려보고 상황을 확인했을 때엔, 마치 외부 요인에 의해서 분리된 듯한 다리 한 쪽과, 절단 부위에서 흐르는 핏덩이를 맞으며 서있던 노암이 거기에 있었다. 살아있어. 그렇게 강한 고질라를 어떻게 찢어놓은걸까?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고질라가 발버둥치며 꼬리까지 휘두르는 그 순간에, 플레이어즈가 아닌 노암 본체 자신이 놈의 꼬리를 간단하게 잡아내더니, 그대로 꺾듯이 찢어내어, 찢은 꼬리를 그대로 놈의 머리에 가격하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일방적인 폭행에 가까운 공격이 몇 번이고 이어졌을까. 결국 고질라는 자신의 종족의 한계를 가뿐히 넘어버린 노암에게 패배하여 점차 사라졌다. 주변을 둘러싸던 괴수의 핏자국도 전부 없어지고 난장판의 흔적만 남을 뿐이었다.


사태가 끝난 것을 확인한 다음에서야, 노암은 본래 상태로 돌아오며 기절하듯 도로 한복판에서 쓰러지는 것이었다. 카밀라는 거기서 안도했다. 희생하는 사람은 있었으나, 끝내 소중한 사람들을 잃진 않았어. 당장 생명이 위급할 드윌리에게 게리가 달려가는 동안, 카밀라는 쓰러진 노암을 품에서 끌어안았다.


밀려오는 울음을 꾸욱 참고, 카밀라는 아직 정신이 남아 두 눈 훤히 뜨고 있는 노암을 내려다보며 여태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었다.



"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처음 봤을 때부터... 쭉 사모하고 있었어요. 이런 부족한 저라도, 사고만 치는 저라도... 이런 제 마음을 받아주실 건가요? "



사랑에는 늘 대가가 따르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충분히 치렀고, 카밀라도 충분히 반성했으리라. 결국 그녀를 올려다보며 웃더니, 노암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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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연재 미안해!!! 오늘도 피드백이랑 질문 환영하니까 언제든지 댓글로 올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