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 마을 사건 뒤로 오르카호는 오버홀에 들어갔다. 그 기간 동안, 전 병력을 대상으로 외부 통신 시뮬레이션 훈련이 실시되었다.


로봇 부대는 물론이고 각종 바이오로이드 부대도 테스트를 받았다. 물론 특급 경호팀인 컴패니언도 예외는 아니었다.


테스트는, 사령관을 모시고 컴패니언 전원이 아무 피해 없이 적진을 통과하는 내용이었다.


컴패니언의 맏언니 리리스는 이번 훈련을 위해 특별히 준비까지 시킨 뒤였다.


때문에, 고난이도의 훈련이라도 다들 충분히 통과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포이 또 너야?"


"그만하렴, 페로야. 탓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


그런데, 자신만만했던 컴패니언의 테스트 결과는 계속 실패로 나왔다.


자매들 중 한명도 전투력과 경호 실력에서 뒤쳐진 것은 아니었지만, 자꾸만 진형이 흐트러지면서 트러블이 생겼다. 물론 사령관은 절대 다치지 않았으나, 경호팀 중에 한둘 - 특히 포이와 리리스 - 이 피해를 입어서 실패하는 식이었다.


"죄송해요, 주인님. 이번엔 꼭……."


"아냐. 오늘은 조금 쉬자."


사령관은 면목없어 하는 리리스를 다독였다.


이에 리리스는 부끄러워하며 먼저 자리를 떠났다. 언제나 최고임을 자부하는 그녀인 만큼 이런 실패를 받아들이기 힘들 터였다.


리리스가 떠난 뒤, 막내인 스노우 페더가 조심스레 말했다.


"저어. 아까 보니, 리리스 언니께서 주인님과 계속 일정 거리를 유지하시려는 것 같았어요…… 혹시, 그것 때문에 진형이 망가지진 않았을지."


"일정 거리라."


냉철한 페로 역시 걱정스럽게 거들었다.


"아. 저도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언니가 주인님께 실수로라도 닿지 않으려다 보니, 적의 공격에 더 노출된 모양입니다. 평소 그분의 데이터대로라면 완벽하게 수행하셨을 텐데……."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리리스는 언제나 한 발자국 뒤의 대각선 거리에서 주인을 경호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 거리가 깨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리리스의 경호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녀와의 거리.


사령관은, 리리스가 의식적으로 그와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평소 말이든 행동이든 리리스는 사령관을 좋아한다는 티를 팍팍 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애정을 갈구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중요한 때마다 막상 어떤 선을 넘지 않으려는 듯했다. 이제껏 그녀와 잠자리를 갖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어째서 그녀는 자신과 접촉하지 않으려는 걸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걱정하던 사령관이, 이제는 익숙해진 리리스의 향수 내음을 쫒아가자, 바로 그 자신의 방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 보니 리리스가 그의 이불을 꼭 껴안고 있었다. 


"여기 있었구나."


그녀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금방 나갈게요."


리리스가 이불을 개고 방에서 나가려 했다.


그때, 사령관이 리리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순간 당황하며 몇 발짝 물러섰다.


그러자 서로 간에 거리가 생겼다. 평소처럼.


그는 잠시 그것을 보다가 말했다.


"리리스. 이 거리감에 대해서 물어봐도 될까?"


"……."


리리스는 대답 대신 시선을 피했다. 매사에 당당한 그녀답지 않게 우물쭈물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바이오로이드라고 할지라도, 사람인 이상 그 마음에는 불확실성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것을 어루만져 주지 못한다면 그녀의 마음을 열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가 다시 물었다. 조금 더 차분하게.


"리리스는, 음. 나와 좀 ……거리를 유지하려는 것 같아. 아까 훈련 때도 그렇고, 평소에도 말야. 그리고…… 지금도."


리리스는 말없이 그를 보기만 했다.


"리리스가 그러는 건, 물론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지?"


말을 마친 사령관이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의심이나 책망 한 점 없는 따뜻한 눈빛이었다.


그 시선을 피하지 못한 리리스는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미리 말씀드리는 거지만. 주인님이 싫어서라던가 그런 건 아니에요. 절대로."


"알아."


한동안 사령관의 눈을 응시하던 그녀는, 망설이던 끝에 눈을 치켜 뜨고는,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었다.


"……사실은, 무서워서 그랬어요."


한 템포 쉬고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주인님을 좋아하는 것이."


"……."


"주인님이 정말 미치도록 좋아서, 사랑해서, 눈을 뜨든 감든 주인님 생각만 났어요. 그래서…… 더욱 무서웠어요. 주인님과 멀어질까봐."


그녀의 표정이 살짝 흐려졌다.


"주인님. 리리스는, 착한 아이가 아니에요. 숨기려고 애쓰고 있지만…… 질투도 심하고, 툭하면 폭력을 쓰고 싶어지고."


불안한 듯이,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렸다. 


"주인님을 사랑하는 이 마음이 깊어질수록, 언젠가 주인님께 접근하는 다른 애들에게 나쁜 말을 하거나 싸우게 될 지도 몰라요."


"……."


"그러면, 지금까지 쌓아 온 주인님과의 신뢰는 단번에 무너지겠지요. 그리고 주인님께선 나쁜 리리스를 싫어하게 되실 거예요. ……옛날, 리리스들에게 불쾌감을 느낀 많은 분들처럼요."


눈을 감은 그녀는 점점 목이 메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는 게 나아요. 그러니까……."


여태껏 들어주던 사령관이 문득 말을 잘랐다.


"리리스. 실망인데."


그녀가 흠칫했다.


"내가 전에 뭐라고 했니. 너를 믿는다고 했잖아."


"주인님……?"


그녀가 울상이 되려는 그 순간, 사령관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뜻밖의 일에 그녀는 토끼눈을 떴다.


그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리리스가 나쁜 면이 있다는 걸. 나 없는 데서 말을 함부로 한다던가, 날 좋아하는 애들과 싸운 거라던가. 물론,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리리스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래도, 리리스에겐 좋은 면도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어. 친구들과 잘 지내려 하고, 동생들을 끔찍이 아끼고, 내겐 헌신적이지."


"……."


"그리고, 리리스가 날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도 알고 있어. 여러가지로……."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말했다.


"그래서 나도, 널 좋아하는 거고."


리리스는 놀란 듯이 눈을 들어 올려다보았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그녀의 금색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계속 말했다.


"리리스. 난 네가 좋아. 착한 리리스도 나쁜 리리스도 괜찮아. 있는 그대로의 네가 좋은 거니까. ……처음에 말했잖아? 이미 널 믿고 받아들였다고."


"주인……님."


"그러니까, 겁먹을 필요 없어. 절대로 싫증내지도, 버리지도 않겠어. 진심이야."


리리스는 살짝 입을 벌린 채로 눈을 깜박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뒤에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리리스는 이제…… 정말로 참을 수 없게 되어요. 그래도…… 괜찮으세요?"


"참지 마. 나도 이젠 안 참을 거니까. ……사랑해, 정말로."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눈물이 핑 돌아서 그의 억센 가슴에 기대 왔다.


얼마나 안기고 싶었던 그의 품이었던가.


사령관은 손가락으로 리리스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어떤 상처나 고통에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던 그녀였는데.


"리리스의 눈물은 오늘 처음 보는 거 같아. 그렇게 함께 있었는데."


그녀가 목이 메어서 중얼거렸다.


"……실은, 주인님 생각이 간절할 때마다 조금씩 눈물이 났었어요. 너무 보고 싶어서, 안기고 싶어서. 그렇지만 다가가기 무서워서…… 혼자서 몰래……."


그는 눈을 감고 그녀의 허리를 쓸어 주었다.


"그래…… 가장 가까이에 있었으면서도 몰랐구나. ……미안해. 하지만, 이젠 울지 않아도 돼.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 테니까."


꼭 끌어안은 두 사람의 거리는 더할 나위 없이 가까워져 있었다.


껴안은 채로, 도란도란 서로의 추억을 공유하던 와중에, 그가 문득 말했다.


"우리 거리도 정말 가까워졌네."


이제는 진정이 된 리리스도 빙긋이 웃었다.


"예…… 그러네요. 후후."


포옹을 풀고 나서, 그녀는 무어라 말하려고 입술을 달싹이며 머뭇거렸다.


"주인님. 리리스는 정말로……."


그러다가 문득, 슬며시 거리를 벌린 리리스는 눈물을 닦고 옷매무새도 가다듬었다.


"아니, 이 다음은…… 내일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말씀드릴게요. 모두를 위해서요."


"음."


사령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했어요. 오늘의 경호는 금란 양에게 맡길게요."


리리스는 천천히 떨어져서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예전처럼 완벽한 모습으로 돌아와, 방을 나서는 그녀의 발걸음은 여느 때보다 가벼워 보였다.


그리고 다음날.


컴패니언의 훈련은 더할 나위 없이 무사히 끝났다. 아니, 그녀들은 목표를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120% 초과하기까지 했다.


훌륭한 결과에 리리스는 그제야 안도했다. 사령관도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역시 이래야 내 컴패니언에 내 경호대장이지."


"후훗. 훌륭한 경호에는 훌륭한 경호 대상의 협조가 필수니까요. 주인님이 있으시니 당연한 결과랍니다."


둘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와- 드디어 훈련 패스했어요! 저희도 이제 특급 경호원인가요?"


"초특급이지. 멸망 전의 녀석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펜리르가 거들자 신이 난 하치코가 말했다.


"오늘 파티 어때요? 하치코가 맛있는 요리를 대접해야겠네요. 헤헷. 리리스 언니도 좋아하실……."


페로는 리리스와 사령관 사이에 흐르는 기류를 눈치채고 얼른 말했다.


"하치코. 오늘 언니께선 주인님과 할 이야기가 있으시다니까. 우리끼리 먼저 가 있죠."


"그, 그래. 하치코랑 다들 즐겁게 보내렴. 응?"


사령관도 멋쩍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개방적인 오르카호라지만 남녀 사이의 일을 대놓고 말하긴 어려웠다.


포이도 덩달아 나서서 자매들의 등을 떠밀었다.


"그래, 그래. 오늘은 우리끼리 먼저 가자고."


그리하여, 눈치 빠른 동생들 덕분에 리리스와 사령관은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착한 아이들이에요."


"응. 다들 리리스를 좋아하는 것 같아."


두 사람은 들뜬 기분으로 손잡고 방에 들어왔다.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긴장이 풀린 리리스는, 기대 섞인 행복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어. 어제…… 못 드린 말씀 드려도 될까요?"


"응. 얼마든지."


리리스는 눈감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정말로 사랑해요, 주인님. 처음 봤……읍."


그는 대답 대신 갑작스럽게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그녀는 살짝 놀라다가, 곧 미소와 함께 눈을 감고 입술을 내맡겼다.


둘의 혀가 엉키며 뜨거운 타액을 교환했다.


이제 보니 리리스의 혀는 뱀처럼 길고 매끈하면서도 적당히 까끌하여, 오럴에는 최고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숨이 가빠지고 침이 늘어질 정도로 긴 키스를 나눈 뒤, 그녀가 부끄러운 듯이 입을 열었다.


"저어, 주인님. 리리스의 처음을…… 부탁드려요."


그녀는 키스만으로도 이미 흥분한 듯, 금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열띤 시선을 보내 왔다. 물론 그것은 사령관 쪽도 마찬가지였다.


"응. 나도 잘 부탁해."


그녀가 한번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부드럽게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둘은 손을 맞잡고 다시 입을 맞추었다. 그가 그녀의 옷을 천천히 벗겨냈다. 그러면서 다른 손으로 그녀의 몸을 쓰다듬었다.


진한 키스가 끝나자 그녀도 그의 옷을 벗기는 한편, 듬직한 어깨를 어루만지며, 뜨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주인님. 사랑하는 주인님.


그는 조금씩 그녀의 흥분을 고조시켰다. 보옥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고 다정한 애무와 손놀림이었다. 그녀의 육체엔 그만한 대접을 해줄 가치가 있었다.


호리병 같은 체형. 싱싱하고 커다란 젖무덤과 잘록한 허리, 탄탄한 복근과 풍만한 골반, 크고 탱글탱글한 엉덩이가 손 아래에 펼쳐졌다. 그녀의 완벽한 몸매를 직접 다루는 건, 그로서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다. 이것은 그녀의 마음을 연 수컷만이 누릴 수 있는 진귀한 재보인 것이다.


그의 손끝이,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는 살갗에 스칠 때마다 그녀의 등허리가 경련하듯 떨려왔다. 정성을 들인 만큼 그녀도 벌써부터 온몸이 전율할 만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리리스의 달콤한 냄새를 맡는 그 또한 차츰 이성을 잃어갔다. 그녀의 몸을 애무하는 손놀림과 혀도 점차 빨라졌다.


그 덕분에, 애무를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도 그녀의 몸은 벌써부터 한껏 달았다. 리리스는 그 보답으로 주인의 분신을 성심성의껏 입으로 봉사해 주었다.


혹은, 그녀를 애태우는 주인에 대한 암컷으로서의 역공일지도 몰랐다.


예상대로 그녀의 뱀 같은 혀와 뜨거운 입 속, 깊은 목구멍은 최고의 쾌락을 주었다. 사령관은 하마터면 급작스런 절정을 맞이할 뻔했다.


그는 그녀의 치켜 뜬 눈과 혀놀림, 빠는 솜씨에 감탄했다. 후천적인 테크닉이 아닌, 순수한 본능에서 우러나온 혀와 입과 눈의 움직임이야말로 지고의 쾌락이었다.


"이런 건…… 대체 어디서 배운 거니."


"으음. 주인님의 신부가 될 거니까, 미리 배워 놓았다고요? 후훗."


리리스가 당돌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분신을 입에 한꺼번에 빨면서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금색 눈동자와 마주친 그는 또다시 절정에 달할 뻔했다.


약이 오른 그가 거칠게 그녀를 밀어 넘어뜨렸다. 그녀는 웃으면서 그를 반겼다.


오세요, 주인님- 리리스가 긴 팔을 쭉 뻗어서 그를 맞이했다. 탄탄한 하복부 아래의 뜨겁고 촉촉한 샘이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것은 리리스가 고이 간직해 온, 쾌락의 늪이었다.


그 선악의 늪으로 냉큼 달려든 그는 마침내 그녀의 몸을 침범할 수 있었다. 손과 혀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잔뜩 성난 분신을 찔러 넣어서 맛보고 즐겼다.


사령관은, 신선하고도 잘 익어 먹음직스런 리리스의 육체를 마침내 손에 넣은 것이다.


그렇게, 두 남녀는 온몸으로 하나가 되어 갔다.


이로부터 밤새도록 감미로운 열풍이 방 안에 몰아쳤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그와 그녀는 시간을 잊고 서로의 육체를 갈구하기 바빴다. 특히, 그녀는 첫경험이 무색하게도 뜨거운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리리스를 상징하는 뱀이 건넨 선악과처럼, 리리스의 몸은 맛있는 금단의 과실 그 자체였다. 그녀의 육체에선 처녀의 싱그러움과 유부녀의 농익은 맛이 동시에 느껴졌다.


마치, 선악의 양면성을 띠는 그녀의 마음과도 같은 몸이었다.


그는 흥분한 나머지 아예 그녀의 취향에 맞춰서 스팽킹과 결박에 딜도, 심지어 채찍질까지 해 버렸다. 그만 그녀의 육체와 향기에 취해버린 모양이었다.


아주 풍만한 몸매라거나 테크닉이 특별히 뛰어난 건 아니었지만, 알 수 없는 특유의 마력과 체력이 남자를 미치게 하는 것이었다.


"아아, 주인님- 리리스를 더 괴롭혀 주세요. 주인님에게라면, 고통조차……!"


그래, 그것이 소원이라면 그렇게 해주지.


리리스의 매끈한 몸매와 깨끗한 피부에는, 색정과 피학의 흔적이 거듭 아로새겨졌다. 그녀의 고운 목소리는 어느덧 뜨거운 쾌감을 호소하는 암컷의 울음으로 변했다. 거듭 몰아치는 오르가즘이 그녀의 피학적인 욕정을 끌어냈다.


"더, 더, 좀 더 해주셔도 좋아요……!"


부드럽고 따뜻했던 그의 손아귀는 어느새 그녀의 탱글한 엉덩이를 새빨갛게 만드는 도구가 되었다.


검은 밧줄은 그녀의 젖가슴을 둥글게 조이면서, 매끈하고 뚜렷한 복부를 묶어버리고, 은밀한 틈새까지 파고 들어 고통과 그 이상의 쾌감을 선사하였다.


거기에 그의 검붉은 흉기는 어떤 도구보다도 크고, 뜨겁고, 단단하여 그녀를 울부짖게 하기 충분했다.


강인한 리리스는 십수 번이나 온몸을 비틀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지치는 법 없이 즐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때문에 주인은 점점 더 약이 올랐다.


그만큼, 리리스의 육체에는 평소의 신사다운 모습을 잃어버릴 정도의 마력이 있는 것이다.


벌써부터 이런데, 그녀가 본격적으로 남자의 맛까지 알아버린다면 어떨까.


그는 그녀의 몸에 중독될 것 같아서 슬며시 두려울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이미 중독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서로가 먹고, 먹고, 먹어치운 나머지 마침내 둘 다 지쳐 쓰러질 즈음엔 벌써 새벽녁도 밝아질 즈음이었다.


지친 뒤에야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서 겸연쩍은 듯이 웃었다.


둘 다 수컷과 암컷으로 변해 버렸던 밤이었다. 상대의 뜨겁고 감미로운 몸을 맛보다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사랑해요."


"알아."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그녀는 행복한 얼굴로 그의 품에 안겨 잠들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문득 확실해진 것이 있었다.


그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 시대에 남겨졌는지, 앞으로 어떤 미래가 있을지는 아직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그는 멈추지 않을 것이며, 그녀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어깨에는 그 자신의 생명과, 모든 바이오로이드와, 사랑하는 그녀의 운명이 달려 있으니.


그것이 이 세계의 마지막까지 내릴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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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편을 보지 않아도 이해에는 지장이 없는 일종의 외전


관능소설대회로 올립니다




픽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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