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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인의 펍, 언더 더 레인보우는 레인의 집, 그러니까 존 윈체스터의 집의 맞은편에서 한블럭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발소와 완구가게 사이에 끼어있는 그리 넓지 않은 펍이었다. 2층에는 건물 주인이 살고 있었고 그는 틈만 나면 내려와 공짜로 스타우트를 한잔 달라고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빌어먹을 아일랜드인.

 펍의 입구에 기네스 맥주의 간판이 붙어있는 것은 순전히 그 때문이었다. 돈도 내지 않으면서 기네스 흑맥주가 펍에는 무조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와 싸우게 된다면 펍의 안이 아니라 길바닥에 나앉은 다음일텐데.

 그가 펍을 연 것은 그와 죽은 그의 아내의 일생의 소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펍에서 만났다. 레인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펍에 친구들과 갔고 그의 아내는 자신의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위해 펍에 왔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 부부가 되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그런 것을 서술할 능력도 경험도 없는 사람이니까. 중요한 것은 열심히 돈을 번 두 사람은 플리머스 외곽에 작은 펍을 열었다는 것이고 레인의 아내는 죽고 이제 세상에 없다는 것이었다.

 언더 더 레인보우의 외관은 중세풍 양식을 따라한 듯한 나무로 벽장식에 창문에는 빗금부늬로 스티커가 붙은 꽤나 고전적인 모습의 펍이었다. 펍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무로 된 긴 바를 볼 수 있었다. 좁고 긴 펍의 반을 차지하는 바는 펍의 안쪽 끝의 화장실문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바의 맞은편에는 테이블이 세개 놓여있었지만 펍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테이블에 앉기보다는 바에 붙은 스툴에 앉는 것을 선호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레인을 하는 주변 주민들이었다. 자신들끼리 이야기하는 것보다 그 자리에 레인을 불러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재밌었으니까.

 레인은 특별한 옷을 입지 않았다. 평범한 평상복을 입은 그는 심지어 앞치마도 하지 않았다. 바의 한켠에는 기네스의 로고가 붙은 앞치마가 있었지만 그 앞치마는 레인의 것이 아닌 그의 부인의 것이었다. 그는 피묻은 앞치마를 함부로 입을 수 없었다. 그 피를 닦아내지도 못했다.

 “아이씨! 거기서 슛을 하면 어쩌자는 거야!"

 손님이 거의 없는 낮, 한 손님이 펍의 천장 한켠에 붙은 TV를 보며 외쳤다. TV에서는 한창 플리머스 아가일 FC의 축구경기를 한창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화를 식히려 에일을 한모금 들이키고는 다시 외쳤다.

 “대체 감독은 저런 선수를 어쩌자고 매번 선발로 보내는 거야! 저러니까 맨날 3부리그에서 전전하는 거지!”

 소리를 외치는 그는 레인의 동생, 벡스터였다. 그의 머리는 정수리까지 벗겨져 있었고 남은 그의 머리카락은 뒷통수와 양 옆 구렛나룻에 간신히 붙어있을 정도였다. 그런 머리를 그는 조금전 이발소에서 자르고 온 길이었다.

 레인은 그가 왜 굳이 머리카락을 남기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탈모로 고생하는 그였다. 현실을 직시하고 편하게 머리카락을 전부 밀어버리는게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물론 벡스터는 그의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패션이라고 변명을 하곤 했다.

 그가 보고 있는 경기는 생방송이 아닌 재방송이었다. 플리머스 아가일 FC의 경기 생방송을 하는 날은 수많은 사람들이 펍에 와 응원을 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도 벡스터는 이 펍에서 응원을 했다. 그가 굳이 재방송을 보는 것은 그가 보는 유일한 방송이 축구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재방송이라고 그는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잘린 머리카락이 묻은 플리머스 아가일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참고로 그가 입은 유니폼에 적힌 이름은 조금전 방송에서 공을 하늘로 높게 차올린 그 선수의 이름과 같았다.

 긴 머리와 큰 가슴을 자랑하는 그 선수는 당연하게도 바이오로이드였다. 요즘같은 세상에 어떤 사람이 스포츠 경기를 뛸까. 스포츠업계는 바이오로이드에게 넘어간지가 오래였다. 여러 바이오로이드 생산회사들은 특별하게 커스텀된 바이오로이드들로 선수를 만들었고 그 선수들과 똑같이 만들어진 레플리카를 파는 것으로 떼돈을 벌고 있었다.

 인기 바이오로이드 선수의 경우에는 초고가의 모듈이 달리고 외모도 다른 초고가 바이오로이드 못지 않게 아름답게 만들어졌다. 반대로 인기가 낮은 곳일수록 모듈의 가격도 낮아지고 외모도 조금은 부족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현실이었다.

 “3부니까 저런 선수밖에 없는 거야. 왜 프리미어 리그가 인기가 많은지 알아? 돈이 많으니까야. 돈을 더 많이 쓰니 더 잘하는 핏주머니 선수를 사오는 거지.”

 벡스터의 옆에서 라거를 들이키고는 말한 것은 레인의 처남인 홀이었다. 그는 캐주얼한 양복을 입었지만 넥타이는 하지 않았다. 덤으로 그의 머리카락은 벡스터의 것까지 가져간 듯 풍성한 숱을 자랑하고 있었다.

 “홀, 나는 이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왔어. 플리머스 아가일은 내가 평생을 응원했다고. 구단이 삽질만 안했어도 15년전 챔피언스로 승급했을 때 거기 잔류하거나 프리미어로 승급했을 실력이었다고. 이렇게 빌어먹을 3부리그에서 전전할 클럽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니 더 좆같네.”

 그는 잔을 들이켜 한입에 에일을 비웠다.

 “형, 한잔만 더 줘.”

 “돈은 내고 처마시라고.”

 레인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뺨을 식히던 얼음주머니를 내려놓고 벡스터의 잔을 채워주었다. 잔을 벡스터의 앞에 내려놓은 그는 얼음주머니를 들어 다시 자신의 뺨에 갖다대었다. 그의 양쪽 코는 휴지로 막혀있었다. 아침에 존에게 맞은 흔적이었다.

 “다 가족의 정이라는 거야. 어머니께서 형을 먹여살린 돈을 받았어? 가족끼리는 다 그런 법이야.”

 “너는 모르겠지만 이 펍을 굴려서 번 돈으로 내가 지금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단 건 잊었어? 너처럼 하루종일 빈둥거리는 놈과는 다르다고.”

 “그냥 불경기 탓이야. 일자리가 없는 걸 나보고 어떡하란 거야.”

 벡스터는 무직이었다. 무직이 이상한 것이 아닌 시절이었다. 사람의 거의 모든 일자리를 바이오로이드가 대체한 시대였다.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축복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면 일자리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이러니하게도 극도로 자본주의가 발전한 시절이었지만 그 자본주의가 너무 극단적이 된 나머지 자본주의가 운영하기 위해서는 빈민에게 정부가 돈을 쥐어주어야 했던 것이었다.

 정부 복지예산은 매년 신기록을 경신했다. 기업들의 제품을 소비해줄 서민들은 일자리가 없었기에 기업들은 자신들의 물건을 사줄 서민들의 손에 돈을 쥐어주도록 정부들로 하여금 강제를 한 것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누가 힘들게 일자리를 구할까. 일자리를 찾기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그 결과 작은 기업에 취직해 버는 돈이 정부 보조금보다도 적은 세상이었다. 대기업에 들어가 엄청난 연봉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면 오히려 집에서 노는 것이 더 돈을 잘 버는 길이었다.

 “돈 좀만 더 모으면 적당한 핏주머니 하나 사서 그걸로 돈을 벌 거야. 5만 파운드만 모으면 된다고. 형도 돈 모아서 핏주머니 하나 사면 일도 편하게 하고...”

 “벡.”

 홀은 벡스터를 툭 치며 그의 말을 막았다. 레인에게 해주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바이오로이드와 관련해서 누군가와 싸우고 왔다는 것은 두 사람도 들어서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레인이 왜 바이오로이드를 싫어하는줄도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좆박은 그 핏주머니박이 새끼.”

 그는 아직도 쓰라린 뺨에 얼음주머니를 문지르며 말했다.

 “그건 형이 너무한 거야. 아무리 핏주머니가 싫어도 다짜고짜 가서 행패를 부리면 어떡하자는 거야. 그건 아무도 쉴드 못쳐줄 일일 거야. 아이씨 진짜 처받는 돈이 얼만데 저지랄을 떠는 거야!”

 한창 이야기를 하던 벡스터는 축구경기를 보고 다시 화를 냈다.

 “이 펍에 핏주머니가 바글바글할 떄도 다들 말했잖아. 핏주머니년들은 안전하다고. 우리에게 돈을 벌어다 줄 거라고. 씨발 죽은 그녀에게도 그렇게 말할 거야? 이런 게 한두번이야? 이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봐. 핏주머니년들에게 죽은 친한 사람이 있었냐고.”

 “매형, 진정해. 다들 참고 있는 거잖아. 불만이 있어도 어떡해. 그 바이오로이드를 만드는 놈들이 이 나라를 휘어잡고있는데. 기억해? 바이오로이드는 다 죽어야 한다고 기업에 테러하던 놈들 말야. 그 병신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굳이 말할 필요는 없잖아.”

 그 자리에 앉은 모두는 기억하고 있었다. 블랙리버가 전국민에게 시청하도록 강요한 생방송. 콜로세움에 사형수를 두고 바이오로이드들과 싸우게 만들고 그것을 방송한 것이었다. 바이오로이드가 여흥을 위해 산산조각이나고 핏덩이가 된 것처럼 잔인하게 그들은 사형당했다. 바이오로이드들은 단순하게 죽이지 않았다. 그것들은 어떻게 죽여야 더 오래 살아있고 더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죽여야 관객들이 열광하는지 알고 있었다.

 사람을 그렇게 죽였다. 그것은 일종의 경고였다.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자들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자들은 최소한 인간으로 죽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이오로이드취급을 당하며 죽는 것이었다.

 영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그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 앉은 셋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난 블랙 그 좆같은 리버 이야기가 아냐. 핏주머니 박이 새끼 이야기라고. 돈 많은 엔젤 리오보로스 그놈도 그 새끼 같은 거 보면 혐오감이 들 거라고. 대체 그 핏주머니년들이 뭐가 좋다고 다들 그 지랄이람.”

 레인은 잔을 하나 꺼내 잔에 에일을 따라 마셨다.

 “아니 경기 진짜 좆같이 하네. 꼴받아서 더는 못보겠다!”

 한편 벡스터는 리모컨을 집어들고는 다른 채널로 바꾸었다. 이미 아는 경기 내용이었지만 다시 보는것이 그렇게 힘든 것인줄 몰랐던 그였다. 차라리 플리머스가 잘 하는 경기 재방송이었다면 맥주를 마시며 볼 맛이 나았을 텐데.

 -... 덴버러 백작의 사망은 사망으로부터 5일이 지난 오늘에서야 공식적으로 그의 소유 재단법인인 토마스 재단에서 발표가 되었습니다.

 “또 부자놈 죽은 걸로 뉴스는 한동안 시끄럽겠구만.”

 벡스터는 TV를 보며 툴툴거렸다.

 “덴버러 백작? 그놈 이 근처에 살던 거 아냐? 여기가 덴버러주인데.”

 “덴버러 주가 얼마나 넓은데. 그 논리면 왕도 우리 이웃사촌이겠지.”

 레인은 홀의 말에 반박했다. 덴버러 백작. 영국 최고의 부자였다. 그런 사람도 죽는구나. 그런 가벼운 생각만 하던 그들이었다.

 -한편 죽은 덴버러 백작의 작위와 재산은 그의 아들인 덴버러 후작, 론 브래드버리에게 물려질 것이라고 오늘 오전, 토마스 재단의 이사장 대리, 잭 그레그손 씨가 밝혔습니다. 다만, 현재 론 브래드버리군의 행방은 알 수 없으며 지금 파악된 것은 이터니티라는 이름의 바이오로이드가 함께 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 뿐입니다. 또한 만일 론 브래드버리의 소재를 아는 분께서 토마스 재단에 연락하시면 포상금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론 브래드버리 군과 이터니티의 모습입니다.

 “이런 성스러운 똥같으니라고.”

 레인은 입을 벌리며 일어섰다. 화면에 나온 은발의, 머리 양옆에는 분홍빛으로 물든 머리카락의 바이오로이드는 그가 잘 알고 있는 바이오로이드였다.

 “씨발 저 핏주머니, 그 핏주머니박이 놈의 집에 있는 핏주머니야! 게다가 애도 데리고 있었던 거 같다고!”

 그 기종이 이터니티인지 아닌지 그는 관심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 아기가 론 브래드버리고 그가 돈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영국 최고의 부자였다. 그 포상금이 얼마일지, 그들은 상상도 못할 거액임에 틀림없었다.


 “듣고 싶은 음악 있으시나요? 클래식 음악은 좀 있어요. 요즘 구하기 힘든 LP판이죠. 비틀즈와 퀸, 어느쪽을 좋아하시나요?”

 존 윈체스터는 두 LP판을 이터니티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이터니티는 두 가수를 알았지만 노래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또한 판단을 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 아니었다.

 “음악이요?”

 “전에 어디서 들었는데 태교에는 음악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가지고 있는 앨범이 이런 것밖에 없어서 말이에요. 그래도 꽤나 귀한 거에요.”

 이터니티는 자신이 이 집에서 깨어났을 때 존이 어떤 음악을 틀어줄지 고민하던 것을 떠올렸다. 그것의 지식으로는 태교음악따윈 아무 중요도 없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존의 음악을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퀸의 노래를 듣는 걸로 할게요. 다른 앨범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는 앨범이지만 그래도 퀸의 앨범이에요. 명반이라는 거죠.”

 존 윈체스터는 그렇게 말하며 LP판을 턴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가 바늘을 돌아가고 있는 LP판 위에 올리려는 순간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죠?”

 이터니티의 불안한 목소리를 들은 존은 창가로 다가갔다. 다시 그 레인이라는 작자가 다시 찾아온 것은 아니겠지. 그런 불안감이었다. 바깥에서 밝은 빛이 창문을 통해 집안을 훑었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것인가. 사고?

 저녁이 어두워진 바깥에서는 사람들이 한둘 모이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손전등과 각자 집에서 들고온 무기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몽둥이, 도리깨, 곡괭이같은 것들이었다.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이지, 어디를 가려는 것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갑작스레 밀려닥치기 마련이었다. 지금같이 말이었다.

 “존 윈체스터!”

 레인의 외침이 바깥에서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는 아침보다 힘이 있었고 자신감이 느껴졌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이었을까.

 “우리는 네가 덴버러 백작의 아들 론 브래드버리와 그의 핏주머니 이터니티를 데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장 나와서 둘을 우리에게 넘겨라!”

 그 말에 존은 이터니티와 그것이 데리고 있는 아기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저 말, 정말인가요?”

 “네, 제 주인님은 론 브래드버리님이십니다. 덴버러 백작, 휴이 브래드버리님의 아들이기도 하고요.”

 “넘겨받으면 어쩔 건데!”

 존은 문 너머로 외쳤다.

 “론 브래드버리는 돈이 될 거요! 포상금으로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각각 100만파운드씩 주겠지! 그리고 이터니티라는 그 핏주머니는 핏덩이가 될 때까지 우리가 박살내고 강간할 거야. 윤간이라고 해야 하나? 이 마을에는 핏주머니 따윈 필요없다는 상징으로 말이야! 어차피 그 귀족 부자놈들이 원하는 건 론 브래드버리 뿐 아냐? 당장 우리에게 아기를 넘겨!”

 그 말을 들은 이터니티는 자신의 주인을 꽉 껴안았다. 론 브래드버리는 울기 시작했다. 그런 자신의 주인을 보듬으며 그것은 조용히 말했다.

 “주인님, 괜찮을 겁니다. 주인님께는 제가 있습니다. 이 이터니티가 있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주인님과 함께할 이 이터니티가 있어요...”

 그 이터니티를 바라보며 존은 이를 악물었다.

 “레인! 당신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시오? 그 바이오로이드는 자신의 주인을 지키기 위해 이곳까지 도망쳐왔소! 그 바이오로이드가 가엽지도 않소? 당신들에게는 절대로 이터니티를 넘겨줄 수 없소!”

 존은 거실 한켠에 놓인 부지깽이를 집어들었다. 그는 저 사람들을 이길 수 없었다. 그는 전직 군인이었다고 해도 결국은 사람이었다. 더 많은 수의 사람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저들이 들이닥친다면 존은 막을 수 없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일을 이뤄낼 것이었다. 그 말인즉슨 이터니티는 오늘 죽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존은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없었다. 그는 이터니티를 이 장소에서 살려보내고 싶었다.

 “이터니티, 이 집에서는 뒷문이 있어요. 바깥에서는 잘 안보여서 모르는 문이에요. 심지어 전 주인도 몰랐는지 쓴 흔적이 없더라고요. 그곳을 통해 도망치세요. 사람들은 앞문에만 있어요. 뒤에 문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모를 거에요.”

 “윈체스터씨도 같이 가요. 같이 도망쳐요. 여기에 있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잖아요!”

 “무슨 일이 있겠어요? 저 사람들이 원하는 건 당신이에요. 이터니티와 론 브래드버리가 이 자리에 없다는 걸 알면 저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겠죠.”

 그렇게 말한 그는 방 한켠에 있는 숨겨진 문을 열었다.

 “이리로 도망가면 집 뒤로 나갈 수 있을 거에요.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존은 이터니티를 토닥이며 말했다. 따듯한 그의 손길을 이터니티는 잊을 수 없을 것이었다.

 “존 윈체스터는 나와라!”

 사람들이 몰려와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오래된 낡은 나무문은 사람들을 견디지 못하고 부수어져 열리고 말았다.

 “이터니티! 빨리 도망쳐요!”

 사람들이 존의 집으로 밀려들어왔다. 존은 부지깽이를 들고 저항하려 했지만 그는 몰려드는 인파에 밀려나 벽에 부딛혔다. 그 바람에 턴테이블의 바늘이 LP판 위에 떨어졌고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Hammer to fall. 유명한 퀸의 노래였다. 퀸을 잘 몰랐던 사람도 한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을 노래다. 신나는 그 노래가 울려퍼지자 사람들은 자신들이 들고온 각종 흉기를 하늘높이 들었다. 그리고 망치는 떨어졌다.

 “윈체스터씨...”

 이터니티는 문을 닫으며 눈물을 삼켰다. 어두운 길을 지나 그것은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음악의 소리는 작아졌고 사람들의 고함과 존의 비명 역시 작아졌다.

 존 윈체스터는 알지 못했다. 이성을 잃은 사람들의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 그는 알지 못했다. 이터니티와 돈을 잃은 사람들이 무엇을 할 지 그는 알지 못했다. 그는 알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린치를 받은 그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온몸이 핏투성이가 된 그는 서서히 사람들의 분노를 받으며 죽어갔다.

 그런 존의 희생을 뒤로 하고 이터니티는 달려갔다. 어디까지 이어질지 그것은 예상할 수 없는 여정을 향해 달려갔다. 그 여정이 무엇을 위한 여정인지, 그 여정을 이어가기 위해 그것이 어떤 희생을 해야 할지, 나는 알고 있다.

 무덤에서 요람까지. 제목 그대로 휴이 브래드버리에서 죽음에서 시작한 이 이야기는 론 브래드버리가 요람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이 나게 된다. 분노한 폭도들이 돈을 노리고 습격하려한 작은 아기가 나중에 전 인류의 희망이자 인류가 없어지게 된 먼 미래에 모든 바이오로이드의 희망이 되는 이야기.

 그 결말을 알 리가 없는 이터니티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을 향해 달려갔다. 그 숲은 이터니티의 미래를 암시하듯 어둡고 침울하고 날카로운 곳이었다. 그럼에도 이터니티는 자신의 주인을 지키기 위해 그 숲으로 들어갔다.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를 아는가. 먼 옛날 소돔과 고모라라는 도시가 있었다. 죄악으로 가득한 도시에 두 천사가 방문했다. 그 두 천사는 선한 사람을 찾았지만 그 도시에는 그런 사람은 단 한명뿐이었다.

 롯이라는 유일한 선한 사람을 찾아온 두 천사를 본 소돔 주민들은 두 천사를 강간하고 죽이고자 했다. 롯은 사람들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사람들은 폭도가 되어 자신들을 방해하는 롯을 죽이려고까지 했다.

 신은 결심했다. 이런 도시는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하지만 신은 의인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천사들로 하여금 그 의인을 데리고 소돔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리고 신은 그 의인이 떠난 도시에 유황불을 내렸다.

 그런 사이다와 같은 이야기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플리머스에 유황불이 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일도, 모레도 플리머스는 그 자리에 계속해서 있을 것이었고 폭도들은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냐는 듯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일어났다. 영국 플리머스에서 한참 떨어진 몽골의 고비사막. 하늘을 가르고 한 불빛이 땅에 떨어졌다. 어쩌면 신은 유황불을 한도시를 멸망시키려고 떨어트리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를 불태우려고 떨어트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시대의 종말과 희망은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있었다.




다음화 : 웨스트민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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