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한달동안 이 만큼 뛰어다녔던 적이 있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며, 입에서 나는 단내와 폐를 찌를 듯이 몰아들어오는 공기와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한 다리의 감각에 이를 악물고, 앞으로 달렸다.


생각해보면 이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


금향은 고작해야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알던 사람, 아니. 드래곤에 불과했고.


청하는 고작해야 만난 지 이틀밖에 안 된 용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치고박든 내 알바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감정은 그렇지 못했다.


두 명이 싸우는 걸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나 멀었던가. 아니었을 텐데.


공원 내부가 넓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밑도 끝도 없이 길어진 보도를 달려나간다.


언제쯤이면 도착할까. 아직도 싸우고 있는 걸까. 하지만, 아직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달리고, 또 달린 끝에 거의 발을 질질 끌다싶이 하며 공원에 도착하자 용의 모습이었던 청하와 드래곤의 모습이었던 금향이 사람의 모습이 되어 이쪽을 보고 있었다.


헤엑, 헤엑. 하고 숨을 몰아쉬며, 그 둘을 쳐다보니 놀란 표정이었다.


그리고, 금향의 한 손에는 낡디 낡은 폴더폰이 보였다. 저게 여기까지 뛰어오게 만든 원흉이었고, 둘이 싸우게 된 이유였다.


아니, 고작해야 사진이 뭐라고 저렇게 치고박고 싸우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다.


이, 가슴 안에서 들끓는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답답함? 아니면, 분노? 짜증?


"분명 다른 종족이 못 오게 막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마력이 포함된 종족만 막았겠지. 인간에게는 마력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네 비늘을 줬으니 자연스럽게 통행증도 겸했을테니 마력이 있었더라도 그냥 들어왔을걸."


"…그건 내 실수였구나. 아무튼, 별 일 아니니 돌아가도 괜찮느니라."


"별, 일이… 아니긴…!"


후욱, 하고 크게 숨을 내쉬고, 굽혀진 허리를 똑바로 세우며 금향의 손에 들린 폰을 노려본다.


다 저기에 찍힌 사진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제 내가 찍지만 안 않았으면 이렇게 뛰어올 일도 없었고, 서로 싸울 일도 없었…나? 그건 알 수 없다.


카페에서 이름으로 먼저 불렸다고 싸웠으니 아마 없었더라도 싸우지 않았을까.


뚜벅 뚜벅, 금향에게 천천히 걸어가니 둘 다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내 시선을 피하는 둘의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쉬며 금향의 앞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폰, 주세요. 사진 지워버리게."


"자, 잠깐만요 주빈. 이건 제가 원해서 찍었잖아요!"


"…그거때문에 싸운 거 아닙니까. 둘이 싸운 이유에 제가 포함되면 이유가 다릅니다."


"그, 그래도…."


"마, 맞다. 이제 안 싸울테니 사진은 지우지 말아주게나!"


서로 죽일 듯이 싸웠으면서 이제는 사진을 지우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는 청하의 모습에 양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지우는 이유에는… 제가 부끄러워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


내가 미쳤지, 진짜. 아무리 금향이 요청했다고는 해도 집사복을 입고 사진을 찍다니.


아마 지금의 내 얼굴을 본다면 금향이나 청하나, 둘 다 웃으면서 다가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얼굴에서 화끈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내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듯이 금향과 청하의 웃음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부끄러움과 쑥스러움, 그리고 지친 탓에 가쁜 숨이 쉬어졌지만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알겠어요. 사진은 지우겠지만,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래요?"


"들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다음부터 사진은 안 찍을테니까, 옷이나 같이 입어주세요. 그거면 충분하니까."


"…알, 겠습니다."


말을 순간적으로 더듬거렸지만 괜찮다. 사진으로 안 남는다면 아무런 문제도 남지 않을테니까.


…아니, 어쩌면 마법으로 사진을 대용해서 남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얼굴을 덮은 손을 내리고 금향을 바라본다.


방긋 웃는 모습이 뭔가 불안하게 느껴진다. 금향은 드래곤이었으니 마법으로 남길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금향은 빨갛게 달아올랐을 내 얼굴을 보고는 어머, 하더니 치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게 건넸다.


"얼굴이 좀, 많이 달아오르신 것 같은데 이걸 얼굴에 대시면 좀 나으실거에요."


"감사합니다."


금향이 건네준 손수건으로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고 있을 때, 손수건을 잡지 않은 반대쪽 손을 누군가가 잡아챘다.


보지도 않았지만 누군지는 확실했다. 슬쩍, 눈 까지 덮었던 손수건을 아래로 내려보니 청하가 내 손을 잡고 웃고 있었다.


금향과는 반대되는 의미로 불안하게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게다가 웃고있는 입과는 다르게 눈은 전혀 웃고있지 않았으니 더더욱 불안했다.


"저 사진때문에 발생한 문제니 나에게도 뭔가를 해줄 예정이겠지? 그렇지? 응?"


"…뭘 원하시는 겁니까."


"간단하다네. 내 도서관에 자주 놀러왔으면 좋겠느니라!"


"그거면 충분하십니까?"


"충분하고 말고. 그걸로 다른 놈들이 멋대로 손 대는 걸… 어흠, 에흠."


흠 흠 하고 헛기침을 하는 청하의 모습이 수상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버렸다. 언제는 안 수상했던가. 여태까지 봐 왔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매번 그랬던 것 같다.


"그, 그리고 내가 원하는 의복도 입어줄 수 있겠나?"


"어떤 옷인지 제가 보고 판단해도 되겠습니까?"


"괜찮다! 그렇게 노출이 과한 의복은 아니니라! …고작해야 내가 입은 것과 비슷한 것이니."


내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린 뒷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아마 괜찮지 않을…까. 약간의 불안감이 남기는 했지만, 노출이 과하지 않다면야 괜찮을 것 같았다.


청하의 얼굴을 슬쩍 살펴보니 방금은 눈이 웃고 있지를 않았는데 지금은 눈 까지 웃고 있었다.


그런 청하의 모습에 불만이라도 느꼈는 지 금향이 다가와서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저, 저도 손 잡아주세요!"


"알겠으니까, 먼저 손수건부터 가져가주셨으면…."


"손수건은 많으니까 주빈이 가져가도 상관없어요. 전부터 하나 챙겨주고 싶었던 물건이니까 부담갖지 말고 가져가요."


"…이렇게 받아도 괜찮습니까? 어제의 옷도 그렇고."


"괜찮답니다. 저는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그건 청하도 마찬가지겠지만."


"물론, 나도 살아오며 많은 것들을 갖게 되었지. 뭣 하면 하나 필요한가?"


"필요 없습니다. 있어도 관리하는 게 골치 아픕니다."


"…확실히, 인간에게는 관리하기 힘든 물건들이 좀 많기는 하지. 알겠네."


"아무튼, 제 손도 잡아주세요."


자, 자. 하고 손을 내밀어오는 금향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이제 양 손을 금향과 청하에게 빼앗겼지만, 싸움은 멈춘 듯 싶었다. 아직, 폰에 남은 사진을 지우지는 못했지만.


"금향. 폰에 남은 사진부터 지워주시겠습니까?"


"…정말로 지워야 해요?"


"지워야 합니다. 아니면, 언제부터 싸웠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겠습니까."


"알았어요."


"지우지 말게나! 아니면, 사진을 내게도 달라!"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 미안해, 청하."


"안 되느니라!"


굳이 내 손을 잡고 금향의 폰을 뺏으려고 하는 청하의 모습을, 금향은 키를 이용해서 가볍게 저지했다.


…잠깐 살펴본 금향의 표정에서 키가 작아 손이 닿지 않는 청하를 비웃은 느낌이 들었지만 착각이리라. 아니, 착각이 맞을 것이다.


청하의 이마에서 빠직, 하는 혈관이 튀어나오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어허. 하고 금향의 말에 금방 잦아들었다.


"지웠어요. 아니면, 확인해보시겠나요?"


"확인 하겠습니다."


금향에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폰의 사진첩을 보니 확실히 금향이 메이드복을 입고, 내가 집사복을 입었던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다른 곳에 저장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적어도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금향의 표정이 매우 아쉬워보이는 듯 싶었으니까.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볼까요?"


"아직 새벽이지 않습니까?"


"…아. 그게, 저희는 시간 감각이 사람이랑 좀 다르다보니, 언제 먹어도 비슷비슷해서요."


"거기서는 주빈의 뜻을 따라서 아침을 늦게 먹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청하는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왜 멋대로 주빈의 이름을 말하는 걸까?"


"내 맘이니라! 그리고, 주빈도 허락하겠지! 안 그러느냐?"


눈빛을 빛내며 내게 동의를 요구하는 청하가 보였지만, 슬쩍 시선을 피했다가 다시 청하를 보니 뿔의 색이 심상치가 않을 정도로 어둡게 변해있었다.


당장이라도 빨려들어갈 것 처럼, 심해의 깊디 깊은 곳을 투영한 것처럼 어두운 푸른색으로 변해버린 뿔의 색에 급하게 입을 열었다.


"이름으로 불러도 괜찮습니다. 괜찮으니까, 그… 뿔의 색좀 어떻게 해주시면 안 됩니까?"


"…뿔? 뿔이 왜 그러… 아."


그제서야 자신의 감정을 눈치챈 청하가 당황하며 내 손을 잡았던 것을 놓고는 두 손으로 뿔을 가리기 시작했다.


"보, 보지 말거라! 용의 감정을 멋대로 눈치채서는 안 되느니라!"


"그런 것 치고는 거의, 볼 때마다 감정이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만."


"청하, 너는 감정을 좀 숨길 필요가 있어보여."


"그런 너도 감정을 숨기지 않는 편이지 않나! 매번, 주빈이 카페에 올 때마다 꼬리가 강아지처럼 움직인 주제에!"


"뭐, 뭣?! 그걸 어떻게 아는 건데!"


"카페에 들어가지 않아도, 밖에서 보면 다 아느니라!"


금향과 청하의 싸움은 단순한 말싸움으로 바뀌었는데, 그 느낌이 흡사 고양이끼리 자존심싸움을 하는 느낌이었다.


"적당히 싸우고, 돌아갑시다. 안 그래도 새벽에 깨어났…는데…."


저 멀리, 나무로 된 아파트들과 거대한 나무, 그리고 온갖 건물들의 뒤로 해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새벽은 지나간 지 진즉이었고, 이제 아침이 될 무렵이었다.


그리고 지평선의 너머로, 검은 피부와 굉장한 노출이 많은 의상을 입은, 챙이 넓은 모자를 쓴 마녀 아미야가 보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 지 아는 거야!? 적당히 하고 밖으로 나와! 국가 마법사가 결계를 만든 걸 눈치채면 또 귀찮아진다고!"


"아, 알겠느니라!"


"알았어!"


청하는 내 손을 다시 잡아채고는 금향과 함께 아미야가 있는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둘의 힘에 나는 거의 끌려가듯이, 발이 땅에 닿는 느낌도 들지 않은 채 반쯤 허공에 뜬 상태였다.


아미야가 한 손으로 허공을 위에서 아래로 그어내리자, 그어내린 대로 틈이 생기며 그 틈으로 밖의 모습이 보였는데 그곳은 금향의 카페의 모습이었다.


거기로 몸을 던지다싶이 들어간 금향과 청하를 따라 내 몸도 들어갔고, 그 뒤를 따라서 아미야가 따라온다.


카페 내부에 들어와서, 지친 것도 아니면서 내 손을 둘 다 놓고는 허리를 숙인 채로 헉 헉 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아미야은 그런 둘의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고.


"잘 하는 짓이다. 아주, 잘 하는 짓이야. 한번만 더 나한테 이런 부탁을 했다가는 두번 다시 얼굴 볼 생각 안 하는게 좋을거야!"


아미야는 두 명에게 그렇게 못을 박아놓고는 나를 쳐다봤다.


정확히는, 내 이마를 본 것 같았지만.


"너는… 앞으로 좀 더 고생할 것 같으니까 보호 마법은 거두지 않을게."


"아직도 남아있는 상태였습니까?"


"가면서 뭐어… 후폭풍이라도 인간에게는 위험하니까 걸어뒀는데 정작 별 문제가 없었으니까. 그 상태로 냅두면 적어도, 한번은 위험한 일은 막아줄거야."


그럼, 이만. 하고 아직도 남아있는 선 뒤로 몸을 집어넣은 아미야는 허공에 그어진 선과 함께 사라졌다.


슬쩍, 고개를 돌려 둘을 보니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체 사진으로 뭘 했길래 금향이랑 청하랑 싸우고 있었던 겁니까?"


금향을 보며 물어보자 여전히 시선을 피하며 우물쭈물거렸다.


"그, 그게…."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돌아가겠습니다."


"말 할게! 말 할테니까! …청하에게 너는 같이 사진도 못 찍어봤냐고 놀렸어."


"치사하지 않느냐! 누구는 사진을 안 찍고 싶어서 안 찍는 줄 아는가!"


"알게 뭐람! 나는 사진 찍었거든!"


"그 사진도 이제 지워버렸으니 없잖나!"


"사진 말고도 남기는 방법은 많…."


""아.""


둘의 대답이 일치했고, 나는 그 둘을 한심하다는 듯이 보면서도 째려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사진은 물론이고, 마법이나 주술, 그 외에 수단으로 남기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하, 한 장만 찍어두면 안 될까요? 집사복의 주빈은 평소에 보지 못했던 느낌이어서 좋았는데."


"안 됩니다."


"나, 나도 이렇게 부탁하느니라. 제발 한 장만 남겨줄 수 있게 해주게."


"싫습니다."


무릎까지 꿇을 기세로 내게 고개를 숙이며 부탁하는 두 명의 요구를 칼 같이 거부했다.


…내 초상권을 어디다 팔아먹으려고. 절대 안 된다. 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