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목소리였다.

 

지금까지 괴수는 수십 마리고 봐 왔다. 그 형태는 제각각이었다.

 

동물에서 따온 듯하면서도 기형이 추가되어 보기 껄끄러운 것들, 혹은 흔히 아는 공룡의 형상을 띄는 것들이 많았다.

 

그렇게 많이들 봐 왔는데, 사람의 형상을 띈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건 그냥 도시 괴담 같은 건 줄로만 알았다.

 

섬뜩했다. 잔해를 소파 삼아 주저앉은 내 앞으로 괴인의 미소가 세상을 머금었다. 붉은 눈이 주변에 뭐가 있나 훑고, 이내 웨이브 레인의 등장에 응원하겠다고 떠밀리듯 다가온 사람들의 모습을 시야에 새겼다.

 

검은 머리카락이 찰랑였다.

 

그 순간, 콰직. 하고 끔찍한 소리가 귀를 생생하게 덮쳤다.

 

내 생애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소리였다. 가볍게 무언가 으깨지는 소리였다. 철퍽, 하고 끈적이는 소리도 겸해진 듯했다. 그래서 너무 끔찍했다.

 

사람의 머리가 그렇게 간단하게 터질 줄은 몰랐기에 방심하고 있던 난 순간적으로 헛구역질하고 말았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을 억누르려 입을 틀어막고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눈길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저 괴인이 뭔 짓을 할지 몰라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주라도 걸린 것 같았다.

 

자신들이 믿던 마법소녀가 머리 터져 죽는 모습에 사람들은 단숨에 공황에 빠졌다. 패닉에 빠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거나, 다리가 풀렸는지 단말마 하나 내지르지 못하고 주저앉기도 했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분명 끔찍해야 하는 상황인데, 정말 지독하리만치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인데 내 몸엔 무언가가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괴인이 입꼬리를 올리는 만큼, 내 입꼬리도 올라갔다.

 

바라지 않음에도 올라가는 텐션. 그리고 몸에 흘러들어오는 힘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저 괴인은 강하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나는 굳이 괴인의 눈에 드는 짓을 했다.

 

“호오, 괴수에게도 지는 녀석이 내게 덤비려 하다니. 사명감 같은 건가.”

 

흥미롭다는 듯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붉은빛이 새어 나왔다. 나를 훑는 감각은 불쾌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힘이 넘쳤다.

 

다들 이성의 끈을 놓았기에 지금 내가 이렇게 앞에 섰다고 막 희망을 찾거나 기뻐하며 응원을 보내는 이는 없었다.

 

그래서 좋았다.

 

주변을 한 번 훑은 나는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빠르게 땅을 박찼다.

 

퉁 하고 몸을 날려 날아갔다. 괴인의 머리에 주먹을 꽂았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힘이 강해지니 이렇게 가속하는 것도 가능해져서 주먹에 힘이 더 들어갔다.

 

할 수 있다. 빨리 사람들이 희망을 되찾기 전에 해내야 해.

 

간절함과 초조함이 공존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아직 때리지도 않았는데.”

 

일격을 허용한 괴인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비틀거리면서도 나를 눈으로 좇았다.

 

괴인의 몸이 땅을 딛자 그 지점을 중심으로 아스팔트에 균열을 만들었다. 얼마나 강한 건지 좀체 감이 오질 않아서 눈이 크게 뜨였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괴인의 주먹을 받아냈다. 속도가 빠르긴 해도 놓치거나 반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퍽퍽 팔다리를 이용해 공격하고 막히고, 공격을 막아내고 허용하기를 반복했다.

 

힘이 세지는 만큼 맷집도 강해지는 건 참 좋은 것 같았다. 막 토할 것 같이 울렁거리는 통증을 끌어안고 집에 갔을 땐 정말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펑펑 울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런 고통조차도 아드레날린으로 휘발시키는 듯했다.

 

“이상해, 괴수에게 진 년이 내 발짓에 죽은 녀석보다 강하다니.”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몇 번이고 주먹을 휘두르는 괴인의 모습에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 입을 꾹 다물었다.

 

순식간에 허공을 연타하는 괴인의 몸짓에 내 몸이 욱신거리는 걸 느꼈다. 어느 정도 쳐내지 않았으면 이런 상태여도 어떻게 하기 힘들 것 같았다.

 

손이 엉망이었다. 근육통이 온 것처럼 전체가 욱신거렸다. 가만히 있어도 아픈 건 매한가지였다. 어떻게 하면 좀 나아질까 고민해보지만 모두 의미 없는 생각들이었다.

 

“크윽!”

 

파르르 떨리는 팔뚝.

 

몸에 힘이 빠져가는 것 같았다. 아까만큼 힘이 막 나오진 않았다.

 

“어라, 이번엔 또 약한데.”

 

괴인은 뭔가 알아챌 것 같다는 듯이 미소를 머금었다.

 

나를 보고 눈웃음지은 괴인은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아, 하고 작게 탄식했다. 나는 그 괴인의 입을 다물게 하고자 몇 번이고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다.

 

괴인은 저항도 없이 내게 주먹을 허용했다. 얼굴을 후려쳤다. 또 치고, 치고, 치는데.

 

아픈 건 내 쪽이 되어가고 있었다.

 

주먹이 아팠다.

 

“흐.”

 

그렇게 맞았음에도 웃는 괴인은 광인처럼 보였다. 오히려 때린 쪽이 웃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괴인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손을 활짝 벌렸다.

 

“사람들이 너를 보고 환호하고 있어. 희망을 품고 있어. 저 눈빛을 봐. 아까 내가 만들었던 분위기와는 딴판이야. 그런데 너는 약해졌네.”

 

사람들에게 들릴 만큼 커다란 목소리.

 

하지 말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내 입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주변의 시선이 내게 꽂히는 바람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무대 공포증이라도 있는 걸까.

 

“절망을 먹고 세지는 너는 마법소녀인가? 아니면, 마법소녀인 척하는 괴인인가? 그게 궁금하네.”

 

아니야.

 

나는, 마법소녀가 맞아.

 

하지만 절망을 먹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어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거, 마치 괴인이잖아.”

 

장난스럽게 웃는 괴인의 모습에 나는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일부러 내가 유리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맞아준 거구나. 뒤늦게 깨달아버린 내 얼굴에 괴인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으직.

 

코를 처맞은 탓에 눈물이 핑 돌았다. 코가 너무 찡해서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커헉, 하고 숨을 토해내는 순간 얼굴에 뜨거운 액체가 흐르는 감촉도 느껴졌다.

 

그대로 바닥에 물수제비처럼 몇 번 튕겨 나간 뒤로 몸을 일으키지 못하게 되었다.

 

축적된 대미지가 반동처럼 다가온 것 같았다.

 

“끄으으…”

 

다시, 절망을 주세요.

 

사람들, 다시 절망해주세요.

 

그러면 다시 일어날게요.

 

빌었지만, 나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소녀 샤이닝 스타 등장―!”

 

나 같은 건, 사실 일어날 필요가 없는 걸까.

 

사실 내가 저 자리에 있었어야 했던 걸까.

 

흐릿한 시선이 웨이브 레인이 있던 자리로 향했다.

 

샤이닝 스타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희망을 먹고 힘을 휘둘렀다. 괴인은 샤이닝 스타와 몇 번 합을 나누더니 이내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허공으로 몸을 감추었다.

 

감쪽같이 사라진 모습에 사람들은 괴인을 물리친 샤이닝 스타를 향해 환호했다.

 

동시에 자신들을 위해 맞서주었던 웨이브 레인을 향해 애도를 표했다.

 

문제는 나였다.

 

힘없이 쓰러진 나를 향해 누군가가 손가락질했다.

 

“저 녀석은 우리를 위해 싸워주긴 했지만, 절망을 먹고 자란다고 했습니다.”

“괴인의 말을 믿을 건 아니지만, 정황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희망을 품고 응원의 말을 건네줄 때부터 귀신같이 약해지다니요.”

“확실히 그건 이상합니다. 오히려 저렇게 새하얗게 입고 나온 게 의도한 것일 수도…”

 

사람들은 의문을 품었다.

 

사람들의 절망을 먹고 강해지는 걸 두고 과연 마법소녀라고 부를 수 있는지를 주제로 토론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목소리에 신경 쓸 것도 없이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코피가 주르륵 흘렀다. 홍수가 난 것 같았다. 변신만 풀면 되는데, 변신을 풀면 제대로 걷지 못할 것 같아서 천천히 후들거리는 팔로 몸을 지탱했다.

 

그럴 즈음 내 흐린 시야에 손이 하나 들어왔다.

 

“?”

“―웨이브 레인 님 건은 어쩔 수 없지만, 당신도 분전해주어서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되었어요. 고마워요.”

“그럼, 저, 저 괴수는 제게 줄 수 있나요…?”

 

전에 했던 질투가 분노 같은 건 생기지 않았다.

 

나는 이미 추해질 대로 추해져서, 이런 상황에서 돈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웨이브 레인의 것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내가 가지고 싶었다.

 

아니,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렇게까지 남의 것을 탐내며 살면 뭐가 되는 거야.

 

“아니, 죄송, 죄송합니다… 제가, 미쳤었나 봐요.”

 

나는 손으로 코를 틀어막고 몸을 일으켰다. 샤이닝 스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도망치듯 거리를 빠져나갔다.

 

죽고 싶다. 이대로 그냥 골목에 들어가 변신을 풀고 잠 좀 자면 천국일까?

 

종교는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부조리하게 살아왔다면 죽은 뒤는 좀 편하고 싶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것도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벽을 짚으며 열심히 나아가기를, 어느새 샤이닝 스타가 내 옆을 따라왔다.

 

“잠시만요! 제가 부축해드릴게요. 집이 어느 쪽이에요?”

“…괜찮아요.”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누군가에게 동정받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으면 했다. 나를 내버려 두었으면 했다.

 

나는 이미 사람들에게 찍혔다. 절망을 먹는 마법소녀라고. 마법소녀인 척을 하는 괴인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싹트기 시작했으니 그 뒤는 시간문제였다.

 

이제 새하얀 머리카락이든 옷이든 보이면 의심하기 시작하겠지.

 

그 시선에서 벗어나고자 걸음을 옮겼다.

 

“…아아. 피가 많이 나잖아요.”

“제발, 내버려 두세요.”

 

나는 이를 꽉 깨물고 샤이닝 스타를 쳐냈다.

 

가벼운 손짓이었지만 뿌리쳐진 샤이닝 스타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들었잖아요. 제발, 저를 더 비참하게 만들지 말아주세요. 아니, 추하게 군 건 저긴 한데…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어떻게 된 감정일까.

 

질투와 시기로 가득 찼던 감정은, 정작 본인을 앞에 두고 나니 한없이 초라하게 줄어들고 말았다.

 

그걸 끌어안은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걸음을 돌렸다.

 

샤이닝 스타는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