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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켜만 보고 계시는 거죠?"


"어?"



하고 돌린 그 곳에는 갈색 머리칼. 곧게 뻗은 다리. 보라색 스커트가 그 위를 지나고, 제복 위로 알 수 있는 육감적인 몸매. 아냐아냐, 그런 게 아니야. 하고 더 들어 올린 곳에는 소녀의 얼굴. 가녀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리지도 않은 딱 그 나이대의 얼굴.

누군가는 좀 나이들어 보인다고, 성숙해 보인다고 표현할지도 모른다. 그건 주관적인 거니까. 그녀 주변에 맴도는 부드러운 분위기와 상반되게


그건 소녀의 얼굴이었다.


장난치려는 것처럼.

혹은, 가늠하듯이.



깊이를 알 수 없고, 알아도 놀아날 것 같은 소녀의 얼굴이었다. 그런 미소였다.

그래서일까.

그 때 내가 솔직하게 대답했던 것은.




"아니... 잘 달리긴 하는데..."



마루젠스키처럼 피를 끓게 만드는 폭발력이 없다.

심볼리 루돌프처럼 압도적인 위압감이 없다.


탤런트적으로 확하고 다가오는 무언가가 없다.


눈 앞의 선발레이스. 재능을 인정 받아서 트레센 학원, 중앙에 입학한 우마무스메들의 레이스.

각자의 팀, 혹은 트레이너에게 자신을 연마 해달라고 어필하는 순간.




그 누구도.

내가 들어간 올해 그 누구도.



내가 바랬던, 그러한 두근거림을 가진 우마무스메는 없었다.

혹은 이미, 




"아사노 나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고 않고, 선발 레이스 1착으로....!"




누군가의 손에 있거나.





"생각했던 사람이 없는건가요?"




하고 갸우뚱하고, 왼쪽으로 기우는 얼굴. 관객석의 라인을 붙잡고 있던 내 오른쪽 뺨에 그녀의 얼굴이 가까워진다.

갈색 머리칼이 느긋하게 흔들리고, 푸른 눈동자가 하늘보다 더 투명하게 반짝인다.

어째서인가 마주하기 힘들어서, 고개를 돌린다.

지금 막 골라인에 들어와 숨을 고르고 있는 우마무스메들로 시선을 옮긴다.


갑자기 확하고 선배인 오키노 트레이너... 어 그 사람 워낙 대강대강인 것 같아서 그다지 신뢰는 안 가지만.


'마음에 드는 우마무스메에게 내가 할 수 있다고 어필하는 것도 트레이너의 자질이라고?'


라는 말을 떠올린다. 하지만 어째서인가 주저하게 된다. 각오가 부족할지도 모르지. 하고 선배 트레이너 중 한 분도 거들었지만

각오라면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어째서? 라는 질문에 다시 한 번 부딪히게 된다.


애초에, 내가 앞서 말한 재능을 가진 원석. 그런 우마무스메라면 생초짜이자 신입인 내가 아니라

중견 트레이너들과 함께 하고 싶겠지.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건 내가 맞다.



"중요한 거니까..."


"네?"




우마무스메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다. 우선은 클래식. 생에 단 한 번밖에 도전할 수 없는 일생일대의 기회.

그리고 그 뒤의 시간들도... 현역으로 발휘할 수 있는 전성기 자체는 고작해야 5년이 될까말까.


선발 레이스란, 그 시작점을 함께할 트레이너를 고르는 순간이다.



그녀들은 학생이고, 나는 성인이다.

꿈의 무대를 달려나가는 것은 그녀들. 그걸 서포트 해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확연하게 구분지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쓰잘데 없는 꿈을 안겨주는 것만큼 쓸모 없는 건 없다.


그건 배워서 알고 있었다. 도망친 곳에서도, 도망친 후에도.

아버지 얼굴 따위 떠올려서 뭐 하자는거야. 지금 이 선발 레이스는 나한테도 엄청 중요한 건데.

하고 고개를 휘저어서 머리를 비운다.



"...흐음...? 역시 마음에 드는 우마무스메를 발견하지 못하셔서 그러고 계신 거 아니에요?"



"아, 아냐. 그런게 아니라..."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아까부터 라인을 잡고서 계속 메모하고 계시잖아요."




그녀는 내 태블릿을 바라보며 웃었다.

확, 하고 태블릿을 가린다. 이건...! 다른게 아니다. 남 부끄러울 정보를 메모한 게 아니야.


선발 레이스에 나온 우마무스메들의 정보. 그리고 내 코멘트를 달은 나의 메모다.

어쩌면 이미 트레이너가 정해진 그녀들. 보완해야 할 점. 혹은 레이스 내에서 보여지는 결점.

주법의 애매함. 거기에서 더해진 나의 총평.

이건 알려지면 곤란하다.



트레이너계에 나돌기라도 하면 이 메모가 얼마나 주제넘는 짓인지는 나도 안다.




"후훗, 엄청. 잘 지켜보고 계셨네요."



"...너는...?"





갈색머리칼의 단정한 여자아이는 빙긋하고 웃었다.

그 미소가 어딘가 따스하게 느껴져서, 이 여유로움이라면 은퇴한 우마무스메가 아닐까 싶을 정도.



"저는 슈퍼 크릭이랍니다. 다음 선발 레이스 제 차례에요."


"...데뷔 전이라고?"



내 말에, 푸른 눈동자는 부드럽게 감기며, 응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일어선다. 경기장에 앉은 내 앉은키의 두 배.

트레센 학원의 교복. 오른쪽 편의 그녀를 바라본다. 자연스레 허벅지를 바라보게 된다.

곧게 뻗어서, 군더더기 하나 없는 그 모양새. 그저 설 뿐인데도, 흐트러짐 없는 허리. 그 때문에 오히려 부각되는 골격.


요즘 세대의 우마무스메와 달리, 서있으면 자연스레 기품이 넘쳐나는 그 이유를 나는 안다.

자세가 곧다. 허리를 펴지 않아도 자연스레 펴져있고, 목도 어깨도 굽지 않았다.

골반도 적당히 벌어져서, 고관절의 유연성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것 같다.



"스트라이드..."




나도 모르게 주법을 입에 담는다.

그녀의 곧은 자세가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들었다.




"아~ 몸만 보고 바로 아시는구나. 맞아요. 지켜봐주세요? 트레이너씨."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뒤로 걸어간다.

여유로움. 그리고 자신의 실력에 대한 당당함.

그건 아마, 젊으니까.


생기 넘치는 행동을 할 수 있는거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그 나이대 청소년의 치기이자, 장난 같은 것이라고.




"자, 잠깐만...! 너 내가 트레이너인 건 어떻게 알고...!"






.

.

.

.




"자, 잠깐...!"



몸을 일으킨다.

머리가 아프다. 눈 앞이 자꾸 흐려지고, 머리가 아프다. 눈알 안 쪽에서 바늘로 쿡쿡 찔러대는 감각.

하지만 이전처럼 목 안쪽에서 목구멍을 늘리는 듯한 감각은 없다.


그저 평범한 숙취처럼 느껴진다.



"아! 일어나셨네요. 사장님."



겨우 몸을 일으킨 곳에는 의외의 인물.

어딘가 그 때와 닮은 갈색 머리칼을 하나로 묶은 채 나를 내려다보는 녹색 눈동자.


"케르나양?"



"아...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어...? 뭐가...?"



"뭐긴 뭐에요. 병원 가서 약 먹고 이제 몸이 괜찮아져서 산책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응급실이라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구요?!"




응급...?

시야를 돌린다. 새하얀 공간. 커튼 너머에서는 분주한 누군가의 목소리와 푸쉬이... 하고 뭔가 부딪히는 소리들.

어딘가 진한 알코올 냄새. 내가 마신 위스키의 짙은 향이 아니라... 청명한 향.

응급실인가 여기. 나... 구급차 타고 실려온건가?



그 때 촤르륵하고 커텐이 걷힌다.



"어디 볼게요."


"앗, 네! 지금 막 정신 차리셨어요."



응급실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 의사. 마스크를 낀 채 내게 다가와 오른팔을 잡고 이것저것 확인하기 시작한다.

뭐야 수액까지 꽃고 있었어? 아직 멍한 머리, 쿡쿡하고 쑤시는 눈알 안쪽의 고통 속에서 그의 행동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의사는 자신의 마스크를 살짝 들어올리더니 나를 향해 입을 연다.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 알코올 쇼크 같은데요? 몸에는 이상이 없으신데, 술 얼마나 드셨죠?"


"그... 항상 먹는만큼 먹었습니다. 제 주량을 넘어서진 않았구요..."


"혹시 급하게 드셨다거나?"


의사는 마스크를 붙잡은 손을 내린다. 급하게 먹었었나...? 아니, 급하게 먹은 건 청년회장 쪽이다.

그는 항상 빠르게 마시고 취해버리는 타입. 누가 뭐라고 해도 천천히 마시다가, 집에 돌아간 뒤에도 혼자서 홀짝이는

나는 급하게 마시지 않았다.


아까는 단지...


아...!



"아... 아뇨. 그... 그러고보니 말씀하신대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긴 했어서..."


"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시간 되시면 낮에 검진 한 번 받아보세요."


"아...네... 감사합니다."


"수액 다 맞을 때까지만 푹 쉬시고, 당분간 술은 드시지 마세요."


"아, 나가실 때 저기서 수납해주시면 됩니다."



의사는 황급히 자리를 떠난다. 수납처를 알려준 뒤 몇 걸음. 그러다가 곧장 뒤돌더니, 커텐을 치고서 멀어지는 발걸음.

뭔가... 바쁜 사람이네.



"...아무튼, 큰 일 아니라 다행이에요. 사장님."


"응... 그러네. 한밤중에 놀랐겠다. 미안해. 케르나양."


"그러니까요. 진짜."



케르나양은 입을 끌어모아 삐죽 튀어나올 것 같이 만들고서는 나를 바라본다. 양 허리에 손.

그제서야 그녀가 입은 옷가지가 매우 얇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11월 중순이라고 해도, 밤은 춥다.

그녀는 후드가 달린 베이지색 점퍼. 그 아래에는 까만색 돌핀 팬츠 하나와 까만 스타킹.



"...이런, 춥겠다."


"네? 아... 아아..."



"뭐가요. 오늘 그렇게 안 춥던데요? 오히려 더웠어요. 보실래요? 여기 목에 소금 생긴 거..."


그녀는 후드를 자락을 붙잡더니 오른쪽을 살짝 젖힌다.

뭐하는거야. 남자 고등학생이냐.



"아무튼, 민폐 끼쳐서 미안해. 케르나양."



"그러게요 진짜. 모처럼 감기가 나을 것 같았는데 못난 사장님을 둬서 땀나도록 달린 탓에

 저는 감기 기운도 다 날아간 거 같네요. 아파도 쉬지를 못해요. 정말."


케르나양은 의자에 앉은채로 양 손을 천칭처럼 든 후에 위아래도 흔든다.

근나저나 감기 기운이 날아갔다니 그건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나는 악덕 사장일지도.


"땀 나도록 뛰게 해서 미안해."


"...읏...!"



응? 왜 갑자기 얼굴을 붉히지?



"그... 감기 기운 때문에 그런 거거든요? 우마무스메는 인간이랑 달라서 고작 그 거리 뛴 걸로 땀 안나요!"


"그래. 고마워. 케르나양. 모처럼인데, 이거 다 맞고나면 라멘이나 먹고 갈래?"


나는 오른팔을 들어 보인다.


"엇, 그래도 되나요?"



케르나양의 녹색 눈동자가 빛난다. 그러고보니 같이 일한지 꽤 되었지만, 라멘을 먹으러 간 적은 없었구나.

항상 뭔가 사줄 때마다 나보고 만들라하거나, 면류는 그다지 말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틱틱 거려도, 실은 책임감이 대단한 아이다. 어쩌면 같은 면류 가게에서 일하니 나를 배려한 것일지도 모르지.



"그럼. 혹시 어떤 라멘 좋아해?"


"자기가 먹자고 해놓고 이제와서 종류 물어보면 어떻게 해요?

 사장님이 잘 아시는 곳 있는 거 아니에요?"



흠... 그러면, 밤 늦게까지 하는 곳 중에서 호불호가 심한 곳인 멘야 마유마유로 할까.

마늘을 튀긴 마유가 들어가서 돈코츠와 궁합이 딱 좋지만, 의외로 마늘을 매워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리고 케르나양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왠지 곯려주고 싶은 기분도 든다.

감사해서, 감사해서 더더욱.



어라? 뭔가 잊어버린 것 같은데.

하고 응급실 비용을 지불하다가, 보채는 케르나양 때문에 잊어버린다.



그건 다음날 아침이 되서야 떠올리고서, 아... 하고 머리를 박고 몇 번이나 침대에서

욕지거리를 내뱉은 다음에야 휴대전화를 들었다.



케르나양...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녀의 분위기가 너무 평소와 다름 없어서, 그러니까... 어...


그녀의 페이스에 복잡했던 뒷처리를 내팽겨친 거다. 내가.





전화를 들고서, 우선은 마다라메 회장에게 사과를 한 뒤. 






역 앞의 화과자점에서 사죄의 선물을 사들고서 어제 마셨던 그 곳.

바. 녹턴 앞에 선다.



가게 종업원이나 마담 입장에서는 놀랐을 거다.

같은 상점가 사람이니, 제대로 사과해둬야겠지.


계단을 올라,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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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두근두근 아침 드라마 갑니다.

노잼이라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