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할 이야기의 주인공 다이유우사쿠

조연으로는 우리의 메지로 맥퀸이 등장함


아저씨가 경마에 빠지게 된 것은, 아저씨가 아저씨라고 불리기 한참 전.

아직 푸릇푸릇한 중학교 시절이었다.


보통 경마 이야기는 스포츠 신문에만 게재되지만

당시는 오구리의 은퇴 이후로 경마 열기가 고조되면서

일반 신문에도 가볍게 기사 한두 개 쯤 올라가는 시기였다.


중학교 시절, 어쩌다 보게 된 아버지의 신문. 1991년 12월 21일자.

바로 다음 날에 제 36회 아리마 기념이 있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중학생이 경마고 뭐고 무엇을 알겠는가. 그냥 신문을 본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기사. 메지로 맥퀸과 아리마 기념.


당시 맥퀸은 뼈아픈 레이스의 연속이었다.

타카라즈카 기념에서는 라이언에게 1착을 내주고,

천황상(가을)에서는 진로 방해 반칙으로 인해 18착으로 강등,

재팬 컵에서도 도쿄 적성이 없어서인지 4착에 그치고 만다.

그렇게 이어지는 연말 대정산, 아리마 기념.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번엔 이기겠지 하면서 기대했고

아저씨도 "이런 말이 있구나... 타케 유타카라는 기수가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신문을 덮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리마 기념 당일.

아저씨의 아버지는 집에서 아리마 기념을 보셨고

전날 신문에서 봤던 레이스였기에 아저씨도 지나가다 흘끗 보게 된다.

결과는, 맥퀸 2착. 다이유우사쿠 1착.


중계진조차 "이건 놀랍게도 다이유우사쿠!"라고 외칠 정도로

14번 인기, 단승 137.9배라는 초 대규모 역배의 1착.

아저씨는 깜짝 놀랐다.


신문에서는 분명, 맥퀸이 이길 거라고 적혀 있었다.

아버지도 맥퀸을 응원하고 계셨다.

그런데 이긴 것은 이름도 모르는 말, 다이유우사쿠.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기수, 쿠마자와 시게후미.


생각하면 할 수록 경마가 재밌어져갔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이것이 경마. 아저씨는 그렇게 점점 생각해갔다.

그렇게 아저씨는 경마에 재미를 붙여갔고

예능인이 된 지금까지도 경마와 관련한 방송에 고정 출연하는 등

지금은 경마와 아저씨는 떼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본래 다이유우사쿠는 아리마 기념 이전까지 최고 승리가 G3 하나 뿐이었다.

그 밖은 전부 OP거나, 그 이하인 조건전 뿐.

심지어 그 조건전조차 어지간해서는 이기질 못하는 말이었다.


때문에 본래라면 아리마 기념에 내보낼 일이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조교사였던 나이토 시게하루가 이런 꿈을 꾼 것이다.

나이토 본인이 다이유우사쿠에게 돈을 걸어, 트럭 단위의 돈을 쓸어담는 꿈.

나이토 조교사는 이 꿈을 꾼 뒤 다이유우사쿠를 보니

전에 없을 정도로 최고의 컨디션, 최고의 상태였던 것이다.

나이토는 이것을 보고 "무조건 이길 수 있다"라고 생각해 마주를 설득한다.

마주는 그 말을 듣고 어차피 나가나 마나 똑같다고 생각, 다이유우사쿠를 출주시킨다.


당시 아리마 기념은 트윈 터보가 시작부터 대도주를 선보이며 페이스가 미쳐 날뛴다.

때문에 맥퀸을 포함해 대부분의 말들의 페이스가 꼬이는 상황이었는데

다이유우사쿠는 맥퀸의 뒤에서 제 4코너까지 조용히 기다리다가

최종 직선, 모든 것을 걸고 인생 최고 속도의 스퍼트를 걸어 우승한다.

결과는 다이유우사쿠의 1착.

거기다 이나리 원이 1989년 세운 이전 기록에서 1.1초를 단축시킨 레코드.


다이유우사쿠가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은 세가지 꼽힌다.

첫째로, 트윈 터보가 대도주를 시전하며 모든 말의 페이스가 전부 망가진 것.

둘째로, 맥퀸 외에 강자라고 할 만한 말들이 없었던 것.

토카이 테이오와 그 해 킷카상 승리마 레오 더반은 부상으로 회피했고

맥퀸의 동기 클래식 말들은 은퇴했거나 (아이네스 후진) 출주 회피 (하쿠타이세이)

그 밖에 출주한 말들도 G3급이 대부분이었다 (후지야마 켄잔 등)


그리고 셋째로, 다이유우사쿠가 일본 역사에 남을 정도로 조교가 잘 되어있었던 것.

나이토 조교사는 "마체에서 새하얀 아우라를 풍긴다"라고 할 정도로

당시 다이유우사쿠는 완전히 완성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덤으로 이는 우마무스메 2기에서도 고증된다.


아리마 기념 승리 이후 다이유우사쿠의 승리는 없고

이듬해 10월 스완 S를 마지막으로 은퇴하게 된다.


이후에는 종마로써 활동하게 되는데, 대부분 산구 성적은 좋지 않으나

산구 중 하나인 시리우스 랜드가 경주마에서 승마로,

승마에서 마장마술로 우연히 업종을 바꾸게 된다.

그런데 각종 국내 마장마술 대회에서 우승을 쓸어담는 성적을 거두며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승마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