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정직한 의상 어레인지.

마빡에 박혀 있는 조랭이떡같은 유성도 고대로 가져왔다.




* 이하 나이 표기는 당시 기준(현재 나이보다 한살 플러스)으로 통일.



이름난 모계인 화려한 일족華麗なる一族의 딸 다이이치 루비가 1억엔에 낙찰되었던 1988년 여름 2세 경매. 여기에서 930만엔에 팔린 딕터스의 자마가 있었다. 같은 경매에서 팔려나갔지만 몸값은 10배 이상 차이. 이때만 하더라도 이 말이 4년 2개월간 51전을 뛰는 강행군을 하며 한번도 부상을 입지 않고, 통산 상금에서 다이이치 루비를 넘어 역대 최고상금을 획득하는 암말이 될 거란 생각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번에 이야기할 주인공은 바로 '철의 여인' 이쿠노 딕터스다.


이쿠노 딕터스가 데뷔 이전에 안락사를 고려할 만큼 심한 굴건염을 앓았고, 그것을 '골절 외의 부상은 장제로 어떻게든 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던 장제사 후쿠나가 마모루가 장제를 맡아 보기좋게 고쳐냈다는 이야기가 위키피디아에까지 떡하니 올라갈 정도로 웹상에서는 유명한데, 실제로는 '우준들의 발자국'이란 만화에서 창작으로 넣은 내용이라고. 


지금껏 말딸 캐릭터라면 (하루우라라 빼고) 못해도 클래식 시즌에 두각을 나타내던가, 아니면 다크호스급으로라도 이름을 내는게 보통이었는데, 이쿠노 딕터스는 정반대였다. 1989년 7월 23일에 데뷔전을 승리, 이어진 오픈전 피닉스상에서도 이기면서 잠깐 주목을 끌었지만 인기 1위로 지지받았던 고쿠라 3세 스테이크스(GIII, 잔디 1200m)에서 보기좋게 9착으로 고꾸라지면서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이후 3세 시즌을 마칠때까지 4연패. 봄철 클래식 시즌에는 전초전과 본편을 합해 4경주에 나섰지만 그곳은 아그네스 플로라, 에이신 서니 같은 암말들이 일합을 겨루는 어나더 레벨. 오카상에서는 출전 18두중 단승 인기 꼴찌, 오크스에서는 출전 20두중 단승 인기 18번째. 그나마 인기보다는 높은 순위인 11착과 9착이라는게 한점 위안이었다.


이때만 해도 흔한 조숙마인가 싶은 커리어. 4세마들만 겨루는 클래식에서도 이정도라면 이후엔 조건전에서 헤매다 조용히 은퇴해서 번식하러 가는게 정상이다 싶은 성적이지만...'노던 테이스트의 자식은 세번 바뀐다'는 격언이 외손주인 이쿠노 딕터스에게도 먹힌 것인지 여름을 나고 돌아와서는 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 사파이어 스테이크스(GIII, 잔디 1700m)에서 3착, 로즈 스테이크스(GII, 잔디 2000m)에서 2착을 거두더니, 당시에는 암말 3관의 최종전이었던 엘리자베스 여왕배(GI, 2400m)에서





아주 막판에 위너즈 골드에게 따이면서 아쉬운 4착을 기록한다. 커리어에서 첫 GI 입상.


그리고 5세 시즌인 1991년. 이쿠노 딕터스는 총 12번을 달린다. 

1선급 말이 아니니 여름을 안 쉬고 꾸준히 달렸나...? 하는게 일반적인 생각. 

그러나 앞의 절반만 맞았다. 이 해의 이쿠노 딕터스는 9월까지만 뛰고 이듬해 1월말까지 쭉 쉬었다. 1월 27일부터 9월 15일까지 12전.


마일러즈 컵까지 3패를 추가한 이쿠노 딕터스는 코랄 스테이크스(오픈, 잔디 1400m)에서 드디어 지긋지긋한 14연패를 끊고 승리를 거둔다. 게이오배 스프링컵(GIII, 잔디 1400m)에서 11착으로 대패한 후 기수를 이후 줄곧 주전으로 활동하는 무라모토 요시유키로 바꾸고, 거리를 늘려 케이한배(GIII, 2000m)에 도전,






직선에서 선명한 스퍼트를 보여주며 첫 중상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후 2전에서 대패하지만, 여름 로컬 개최 무대인 고쿠라로 이동하면서 7월부터 9월까지의 4전(오픈 1전, GIII 3전)을 3-2-3-2착으로 안정적인 입상을 하며 상금을 열심히 가산하고는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도 전에 장기 방목에 들어간다.



그리고 1992년. 이쿠노 딕터스의 명성을 각인시키는 하드 로테이션이 이루어진다. 2월 2일에 시작해 12월 27일까지 11개월간 16전. 놀랍게도 이 로테이션을 거치는 동안 체중이 줄기는커녕 440~450kg대였던 마체중이 연말에는 470kg에 이를 정도였다.


02/02 칸몬교 스테이크스(오픈, 잔디 2000m) 2착

02/23 고쿠라 대상전(GIII, 잔디 1800m) 10착

03/22 츄쿄 기념(GIII, 잔디 1800m) 8착

04/05 오사카배(GII, 잔디 2000m) 4착 

05/03 메트로폴리탄 스테이크스(오픈, 잔디 2300m) 2착

05/17 니가타 대상전(GIII, 잔디 2200m) 4착

05/30 에메랄드 스테이크스(OP, 잔디 2500m) 승리

06/21 킨코상(GIII, 잔디 1800m) 승리

07/12 타카마츠노미야배(GII, 잔디 2000m) 12착

08/30 고쿠라 기념(GIII, 잔디 2000m) 승리

09/20 올커머(GIII, 잔디 2200m) 승리

10/11 마이니치 왕관(GII, 잔디 1800m) 2착

11/01 천황상·秋(GI, 잔디 2000m) 9착

11/22 마일 챔피언쉽(GI, 잔디 1600m) 9착

11/29 재팬 컵(GI, 잔디 2400m) 9착

12/27 아리마 기념(GI, 2500m) 7착




로테이션 중 가장 훌륭한 퍼포먼스였던 올커머 영상. 오구리 캡이 냈던 타임을 갱신하는 레코드 기록이다.



이 로테이션은 혹사 논란으로 시끌시끌했던 1989년 오구리 캡의 로테이션(마이니치->올커머->천황상->마일CS->재팬 컵->아리마)에 정확히 10전을 더 끼얹은 로테로, 특히 11월에는 한달동안 GI만 세 경주를 뛰는 정신나간 로테이션이었다. 주말 오후 3시에 TV로만 경마를 보는 사람도 허구헌날 보이는 이쿠노 딕터스의 이름은 잊을래야 잊을 방법이 없었고, 이렇게 자주 나오면서도 고장 하나 없이 쌩쌩한 모습에 자연스럽게 '철의 여인'이라는 어느 나라 총리같은 별명이 붙게 되었다.


이런 정신나간 로테이션 속에서도 가장 승리를 많이 챙긴 시즌이었는데, GIII이긴 하지만 중상 3승, 그중 여름 로컬 시즌에서 중상 2승을 거두는 등 전년도에 비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여름 성적을 내며 '여름 여자'라는 또다른 별칭도 붙게 된다. GI에서는 부진했지만 GIII 3승이라는 실적을 인정받아 JRA 최우수 5세이상 암말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리고 커리어 마지막 해, 1993년.


닛케이상(GII, 잔디 2500m)은 라이스 샤워가 우승하는 사이 6착, 오사카배(GII, 잔디 2000m)는 메지로 맥퀸이 우승하는 사이 6착을 거두고, 천황상·春->야스다 기념->타카라즈카 기념의 GI 3연전 로테이션으로 향한 이쿠노 딕터스. 천황상은 거리가 너무 길었는지 역부족으로 9착이었고, 이어진 야스다 기념에서도 단승 인기는 고작 14번째, 109.6배였다. 인기 1위는 니시노 플라워, 2위는 야스다 기념 연패를 노리는 야마닌 제퍼.


그러나 여기서 돌연 이전까지의 선행-선입형이 아닌 추입으로 각질을 바꾸더니 빽빽한 직선 인코스에서 강렬한 스퍼트를 작렬하며 문전 직전에서 4마리가 얽히는 2착 싸움을 벌였고,




사진 판독 결과 이쿠노 딕터스의 2착 판정이 나오며 배당판에 파란이 몰아쳤다. 마연(복승식) 689.7배. 무라모토 기수도 얼떨떨했는지 "출전하고 볼일이네요"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이 입상으로 이쿠노 딕터스는 상금 3700만엔을 가산하며 GI 2승마 다이이치 루비가 갖고 있던 암말 통산 최고상금액 기록을 갱신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어진 타카라즈카 기념은 메지로 맥퀸과 메지로 파머의 2파전으로 11두만 참가한 소수전. 이번에도 이쿠노 딕터스는 11두중 8번째 단승 인기, 40.9배였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롱샹 보이가 스타트 직전에 게이트를 뚫고 나오는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레이스는 예상대로 메지로 파머가 선두에서 끌고가고, 이쿠노 딕터스가 추입에 재미를 붙였는지 최후미에 있는 전개. 인코스에 바짝 달라붙은 오스미 롯치를 빼고서는 논두렁같은 인을 피해 다들 밖으로 넓게 돌고 있었다. 예상대로 메지로 맥퀸이 4코너를 돌면서 앞으로 뻗어나오고, 오스미 롯치는 최단거리를 뛰면서 저항하는 가운데




"바깥에서 또다시 이쿠노 딕터스! 바깥에서 또다시 이쿠노 딕터스!"


GI 2연속 2착. 5200만엔의 상금을 가산하며 암말 역사상 처음으로 상금 5억엔을 돌파했다. 이쯤하면 쉴때도 됐지만 덜렁 2주 뒤에 테레비아이치 오픈(오픈, 잔디 2000m)에 출전해 승리, 9승째이자 커리어 마지막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엔 전년까지와는 다르게 여름을 쉬고 9월에 복귀해 중상 연전을 치르지만, 하향세에 접어들었는지 올커머 7착->마이니치 왕관 7착->천황상 10착에 머물고, 후지 스테이크스(오픈, 잔디 1800m)에서 8착에 머물자 은퇴를 선언한다. 통산 51전 9승(9-8-5-29). GIII 4승. 통산 상금 5억 3112만 4천엔. 은퇴 당시 역대 암말 최고상금 2위(마일 챔피언쉽을 신코 러블리가 이기면서 1위를 빼앗김). 통산 9승 중 5월에서 9월 사이에 거둔 승리가 8승인 천생 여름 여자.


이쿠노 딕터스가 오래도록 고장 없이 뛸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관리를 맡고 있던 니시타니 켄의 공로가 컸다. 피로의 징조는 빠르게 캐치해서 빠르게 휴양을 결단하고(실제로 저 로테이션 속에서도 1년 내내 연달아 뛴 적은 없다), 뛸수 있을만큼 회복됐다는걸 캐치하는 눈도 확실했다. 거기에 보통 식욕을 잃고 살 빠지기 쉬운 수송때 말에게 밥먹이는 재능으로는 단연 톱클래스였다고. 교토에서 마일 챔피언쉽을 치르고 일주일 뒤에 도쿄로 수송해 재팬 컵을 치르는 로테이션으로 여기저기서 한소리들 하니까 빡쳐서 대놓고 체중을 불려올 정도(재팬 컵 당시 전주 대비 +12kg). 니시타니가 맡은 마방 1년 선배 미스터 토진은 무려 2000년까지 현역으로 뛰면서 99전을 뛰는 전설을 찍기도 했다.


번식암말로 전업한후 첫해의 교배 상대는 다름아닌 메지로 맥퀸이었다. 1993년에 이 둘은 오사카배, 천황상·春,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세번 마주쳤는데, 맥퀸의 기수 타케 유타카가 타카라즈카 기념 우승 후에 '맥퀸은 이쿠노 딕터스에 신경을 쓰느라 전혀 진지하게 달리지 않았다'는 코멘트 덕에 이 둘의 로맨스(?)가 훌륭한 가쉽거리가 되었고, 양쪽이 모두 교배 첫해였던 1994년에 실제로 연을 맺은 것. 둘의 자식인 키소지 퀸이 태어났을땐 팬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을 정도지만, 이 키소지 퀸을 비롯해 이쿠노 딕터스가 낳은 자식들 중 중앙에서 승리를 거둔 자식은 없었다. 2003년에 태어난 야와타 베르그ヤワタベルグ는 한국에 수입, 야와타버그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어 31전 3승을 거두고 외산마 1군까지 승급, 2006년 부산광역시장배에서 달린 이력이 있다.


2008년을 끝으로 번식암말에서도 은퇴한 이쿠노 딕터스는 번식암말로 지내던 고마루 농장에서 그대로 공로마로 지내며 유유자적 지내다 2019년 2월 7일에 노환으로 생을 마쳤다. 향년 32세. 철의 여인다운 장수였다.


세상을 뜨기 3일전에 찍힌 이쿠노 딕터스



출처 : 우마무스메 캐릭터 소개 68 - 이쿠노 딕터스(イクノディクタス) - 우마무스메 갤러리 (dcinsi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