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말시리즈 3번째이자 마지막이다.

다음은 불장난으로 태어난 애들이나 다뤄볼까?







말붕이들은 금까지 가장 험난한 도전을 했던 암말을 보았고,

애교와 같이 장난끼와 실력을 겸비한 암말도 보았다.


그럼 이제 아름답고 기품있는 암말을 볼 차례가 아닐까?

때로는 처절해보일지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경쟁을 해왔던 앙투아네트(Antoinette)를 소개한다.












앙투아네트의 품종은 홀슈타인에 속한다....그래 또슈타인이다......

장애물 비월을 염두하고 개량된 놈들이 마장마술에서도 흥할줄 누가 알았겠냐?





전에 소개했던 그라나트가 코티지 선 계통, 콜랜더스가 코르데 라 브뤼에르 계통에 속한다면, 앙투아네트는 안블리크(Anblick) 계통에 속한다.

홀슈타인 여섯 계통 중 얘도 다크 로널드 그니까 베이 로널드에서 완벽히 자유롭진 않고 번외 정도 되는 계통이다.

(보고 있습니까 세이운? 당신의 먼 친척들은 이리도 번영했습니다.)


아무튼 1955년 서러브레드 안블리크와 홀슈타인 코리나 사이에서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에 위치한 칼 한스 하더의 세트벤더 목장에서 아멜리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앙투아네트는 지금까지 연재한 글에서 보기 드물게도 어릴적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가동각 넓은 어깨, 다소 편평한 허리, 뼈와 잘 결합된 근육, 짧은 몸체와 이상적인 등살짝 짧지만 발달된 뒷다리온순한데 지시를 이해하는 능력 등

당시의 승마기수들과 조교사들 사이에선 얜 아무리 못하더라도 피지컬로 대회 상위권은 먹고 들어간다는 평가를 받는 유망주였다.

(비록 홀슈타인 개량에 여러모로 신경을 쓰고 계획된 교배를 했다해도 앙투아네트나 콜랜더스 같이 1세대만에 '성공작'이 나오는 것은 드물다.)


아멜리의 마주는 당시의 이름난 조교사 겸 기수였던 허버트 베흐렌트(Herbert Behrendt)와 

그 제자인 하넬로레 베이간드(Hannelore Weygand)에게 아멜리를 맡겼다.

당연히 피지컬이 피지컬인지라 허버트와 하넬로레가 훈련 시키던 말들 중 다른 한마리와 더불어 으뜸이 되었다.



물론 저 허버트도, 하넬로레도 아멜리 아니 앙투아네트와의 커리어는 잠시였다.






1963년

사람들을 초청하여 파 드 되(pas de deux)를 선보이던 도중 허버트가 말 위에서 심장마비로 죽어버렸다.

이 불미스러운 사고를 보고 다른사람들이 안타까워할때...

당시 참석했던 요제프 네커만(Josef Carl Peter Neckermann, 1912~1992)은 이를 '하늘이 준 기회'로 여겼다.

(딸이랑 지인들 앞에서 대놓고 저랬다.)





(맨 좌측, 순서대로 요제프 네커만, 리젤로트 린센호프, 라이너 클림케)

만약 2010년대에 파산해버린 배송업체 네커만이 떠오르면 정답이다. 그 설립자시다. 

독일사나 그쪽 경제사 파는 양반들은 독일 배송업계의 대부로 더 유명할꺼다.

정확힌 당시로선 획기적이던 잡지형 주문방식을 이용한 홈쇼핑 업체로 돈을 쓸어담으신 양반이다.

(나치시기때 돈 좀 많이 만지셨다만, 전후 사회공헌도 해서 평이 좀 많이 엇갈린다.)


당시 요제프는 아스바흐를 은퇴시키고 타고 나갈 말들을 몰색하고 있었다.

그런데 분명히 성공한다는 평가를 받던 두 말의 기수가 죽은데다, 마찬가지로 다른 기수들은 이미 타고갈 말이 다 있다보니 딱히 경쟁자도 없었다.

요제프는 그 틈새를 노려 마주들에게 말 한필당 지금으로 치면 약 5만 유로 이상의 돈을 주고 아멜리 아니 앙투아네트와 마리아노를 사들였다.

원래 하넬로레가 저 두 말의 조교 및 관리를 계속할 예정이었다보니 돈으로 빼았아간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요제프 네커만과 아스바흐)

더 웃긴 점은 정x라와 달리 그의 기수로서의 실력은 '진짜'였단거다.

아스바흐를 찾아내 육성하여 1960년 로마 올림픽의 개인 동메달 말고도 

여러 국제대회에서 수상하여 로마에서 금메달을 땄던 압생트와 필라토브를 번번히 물맥였다.


아스바흐 이전에도 실력과 명성이 있는 기수가 돈까지 들고 오니 마주입장에선 팔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하넬로레역시 슬펐지만 납득해야했다.


물론 이 모양새와 행동은 당시 독일 기수들에게도 곱게 보이진 않았긴 했다.

라이너 클림케는 그러는건 좀 아닌거 같다는 스탠스를 취했고, 하넬로레와 친분이 있던 린센호프는 이런 태도를 돌려서 비난했다.





아무튼 아멜리는 이름을 앙투아네트로 바꾸고 요제프와 같이 대회에 나가게 된다.

단 국제대회에서 먹힐 피지컬과 별개로 앙투아네트의 기본기는 아스바흐 그리고 같이 온 마리아노에 비하여 수준 미달인데다,

순종적인 것과 별개로 겁이 많았던 만큼 올림픽에 나갈 점수를 확보할 겸 낮은단계의 대회를 시작으로 점차 수준을 올려가며 입상했다.



(대륵 고삐를 쓴다해도 한손으로 다루는건 매우 어렵다. 그만큼 서로간의 호흡과 훈련을 증명한다.)

그리고 자신을 도울 관리사 프리프 바라노프스키를 고용해 말들의 상태를 관리하며,대회가 없는 겨울동안 훈련을 했다.

결과 1964년 아헨 네이션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프리마돈나(Prima donna)라는 별명을 얻었다.


신장속보는 아스바흐를 뛰어넘었다는 평을 받았지만, 체형의 한계로 하프패스와 같은 측면이동은 완벽한 수준은 아니었다.

근데 이게 단 1년만의 성과였다는 점에서 앙투아네트와 요제프 둘 다 보통내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실 요제프가 (후술할 이유로 은퇴를 잡아버린)아스바흐를 그대로 타는 것이 더 쉽게 우승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우려는 적중했다.







1964년

도쿄 하계올림픽.


일단 아스바흐를 은퇴시킨것은 나이도 나이었지만 도쿄올림픽에 나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스바흐가 도쿄의 건초에 적응을 못했었고(검역문제로 물을 제외하면 건초는 못가져옴), 

나이가 16세임을 고려할 시 비행기를 타고 먼 곳으로 가는것은 모험이었다.


그래서 아스바흐가 아닌 다른 말을 몰색한거였는데, 원래 타고가려던 말은 산통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그나마 말짱한게 마리아노 앙투아네트 뿐이었고, 그 중 앙투아네트가 더 실력이 뛰어났다.


그리고 이 올림픽은 멕시코시티 그리고 서울이 갱신하기 전까진 흉악한 대회로 취급받았는데,

비행기도 모자라 태풍까지 불고 있었고 대회당일은 장마기간으로 예상되었다.


운송비용과 위험성을 감안할 시 프랑스처럼 출전포기를 선언하는게 맞을 수도 있었다.

요제프는 사비를 들여 독일 승마팀의 이동비용을 전부 충당했고, 비용문제로 출전을 포기하려던 타국의 대표팀들도 지원해서 어찌저찌 도쿄 올림픽에 참가를 했다.


하지만 당시 이동기술이 뭐 그렇듯 스위스나 소련처럼 말들이 죄다 맛탱이가 가버렸거나미국과 같이 말이 스트레스를 못이기고 죽은 경우도 있었다.

독일도 이 디버프를 받을 수 밖에 없었고 거기다 대회당일은 역시나 장마기간이란다 우와...






어찌저찌 이국땅에서 겨우 3주간의 훈련을 마친끝에 대회 당일날의 기후는...최악이었다.

비가 내리고 안개가 낀 덕에 승마기수를 제외한 사람들은 죄다 하얀 비옷을 입다보니 유령같이 보였고, 대다수의 말들은 심하게 놀랐다.


그나마 앞선 말과 기수들의 차례에는 안개비 정도에 그쳤던 날씨는 앙투아네트와 요제프의 차례엔 뇌운까지 동반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온전한 마장마술은 불가능한 만큼 독일팀은 그나마 미국팀과 합의하여 순서를 뒤로 미뤄달라고 부탁했지만 위원회가 거절한다.

(미국팀도 독일에 좋은 감정은 없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말이 우선이다 라고 판단해서 윌리엄 스테인크라우스가 합의를 받아들였다.)


결국 최악의 기후 속에서 놀라지 않고 마장마술을 선보여야 했다.




(88년 기념우표인데 정작 64년의 앙투아네트와 요제프가 있다.)

비록 개인 메달은 딸 수 없었지만

몇몇 말들이 겁에 질려 도망갈때 앙투아네트는 우아하게 요제프의 곁에서 끝까지 마장마술을 선보였다.







뵈어만, 압생트와 같은 말들을 상대로 암말로서 경쟁한 앙투아네트는 프리마돈나였으며 

개인 6위 그리고 단체 금메달이라는 성과를 거머쥐었다.



올림픽 이후로도 앙투아네트와 요제프는 여러 대회에 입상을 한다.

당시 승마 특히 마장마술의 정상에서 숫말과 겨루는 암말은 앙투아네트가 유일했던 만큼 그 명성은 높았다.

근데 정작 독일의 대중들에게 앙투아네트를 널리 알린것은 그랑프리의 수상 실적도, 올림픽 금메달도 아닌 어떤 방송의 생중계였다.




정확힌 독일 공영방송 사회자께서


"승마랑 경마는 그냥 말이 다해먹고 기수는 악세사리 아님? 엌ㅋㅋㅋㅋㅋ 그냥 일반인 태워도 말이 알아서 다 할텐데 왜 있음ㅋㅋㅋㅋㅋ"


라고 드물게 경마승마 양쪽의 기수들에게 광역도발을 걸어버렸다.

그 결과 먼저 승마쪽에서 요제프가 대표로 "그럼 직접 말 한번 타보쉴?"을 시전했다.






결과는 방송에서 입턴것과 달리 말이 다해주긴 커녕 수준미달의 기수가 탄것에 앙투아네트가 빡돌아버렸다.....




요제프가 곁에 있으니까 망정이었지 글루텐맨은 잘못했으면 프리마돈나의 히스테릭에 그날로 x키를 누를뻔 했다.

이 다음 요제프가 직접 탔을땐 앙투아네트는 그야말로 프리마돈나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게 아님을 전 국민앞에서 보여줬다.





단 앙투아네트와 요제프는 오래가지 않았다.

정확힌 1966년부터 앙투아네트경쟁자와 맞서야 했다.




(좌측이 앙투아네트 우측이 마리아노. 둘다 회색이었는데 나이를 먹고 새하얘졌다.)

앙투아네트의 경쟁자는 다른 말도 아닌 자신과 같은 마구간에서 동시에 훈련을 받고, 동시에 팔려온 마리아노였다.


황당하게도 마리아노의 체형은 마장마술에 부적합한 아랍종의 형태와 비슷했는데, 성격도 급한등 앙투아네트와 정 반대였음에도

요제프가 인내심을 갖고 훈련한 결과 앙투아네트를 점차 따라잡고 이윽고 앙투아네트를 앞섰다.


그 덕에 1968년에 앙투아네트가 아닌 마리아노가 올림픽에 나갔으나 이것이 앙투아네트의 은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요제프는 자신의 딸 에바 프라흐(Evi Pracht, 1937~2021)가 앙투아네트를 타고 대회에 나가도록 했다.


우선 에바의 몸무게가 더 가볍기 때문에 앙투아네트의 비절에 부담이 덜 갈것이라는 판단최고수준의 말은 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다는 계산이었다.

특히 훌룡한 기수는 단순히 기수가 가르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닌, 말 위에서 그 움직임을 느끼고 만들어진다는 격언이 있는 만큼

앙투아네트는 아직은 미숙한 에바의 파트너이자 스승이었다.





앙투아네트는 약 3년간 에바와 대회에 나갔는데...역시나 입상했다.

특히 1969년의 아헨 네이션스컵 독일 챔피언십에서 3위와 2위에 입상하면서 그 실력을 증명하였다.

앙투아네트는 요제프 이상으로 에바를 잘따랐고 사람들도 단순한 버스가 아니라 에바역시 기수이고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특히 1969년 일 챔피언십은 통로를 지나던 중 다른 말에게 부상을 입고 다리상처를 꿰매야 했던 만큼,

일부러 에바가 무게 중심을 앙투아네트에게 덜 부담가능 형태로 기승을 하면서 최대한 프리마돈나로서 활약하도록 조력했다.



(에바여사는 저 사진을 찍고 몇 분뒤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고 한다)

에바는 앙투아네트와의 3년간을 즐겼다고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요제프의 쓴소리를 견디며 힘들었다고 한다.


'앙투아네트를 타고 왜 이것밖에 못하냐?' '앙투아네트로 그 정도 신장속보는 당연한거다.'

'너는 그 구보 피루엣보다 더 잘해야해.' '컬렉션(수축)실패는 앙투아네트가 아닌 네 잘못이야.'

같은 말을 언제나 들어야 했다.


좋게보면 자신을 뛰어넘을거란 기대감과 자신이 키운 앙투아네트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컸다고 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요제프가 보기엔 에바는 언제나 1명의 기수가 아닌, 그냥 오페라오에게 업힌 와다 1이었던걸로 보인다..


입상을 해도 매번 요제프의 아래에 있던것도 서러웠을텐데 아헨 네이션스컵 수상식 당시 앙투아네트가 관중들에게 놀라 도망칠뻔하자

'나는 한손으로 고삐를 잡고 진정시키는데 왜 너는 두손으로도 겨우 하는거니? 지금까지 앙투아네트와 호흡을 맞춘거 맞니?'

.................아니 씨발 이거 아빠맞아? 에바가 아니고 앙투아네트의 친아빠같은데?

아무튼 저런 자존심을 긁는 말을 듣고 다투기까지 했다.


어찌됬든 앙투아네트는 1971년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을 끝으로 16세에 은퇴를 하였다.



(중앙이 앙투아네트, 오른쪽이 안젤리크. 안젤리크 역시 나이를 먹고 새하얘졌다.)

뛰어난 암말이라 역시나 번식은 예정수순이었다.

일단 앙투아네트가 본인도 살짝 작은편이라 네커만은 좀 더 체구가 큰 자마를 원했는데..


1. 숫말과 달리 암말의 번식은 단차인데 앙투아네트가 은퇴했을 당시는 16세.

2. 계획된 품종개량으로 태어났다해도 1세대라 앙투아네트의 특성이 제대로 고정되고 전달될 가능성은 희박.


첫째는 그 성한놈 태어나기 어렵다는 쌍둥이. 그나마 한마리만 발굽변형 정도로 끝났지만 둘 다 작았다.

둘째는 멀쩡하긴 했는데...또 작았고, 마장마술하기엔 부적합한 말이었다.

셋째는 그나마 가장 큰 편이었던 저 짤의 암말 안젤리크.


하지만 요제프는 에바의 부탁으로 일부러 마장마술을 안가르치고 그냥 앙투아네트랑 안젤리크가 같이 살게 냅뒀다.


원래라면 승마도 3세때 되면 훈련을 위해 어미랑 때어놓아야 하는데 마장마술을 하기엔 다리길이가 아슬아슬 했기도 했고,

앙투아네트의 모성이 너무 강해서 첫째, 둘째 둘다 일찍 때어놓았을때 건초도 안먹으려드는 등 난리였다.


그덕에 혈통서적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앙투아네트는 프리마돈나가 아닌 어머니로서 3년간 안젤리크와 함께 목장에서 뒹굴거릴 수 있었다.


다만 미인박명이라고 했던가?

앙투아네트는 지금까지 소개한 암말들 중 제니 캠프(32세), 한라(34세)와 달리 산통으로 22세에 단명했다.


에바 프라흐 그리고 요제프 네커만은 인터뷰에서 이 여배우를 이렇게 평했다.

'현재의 말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앞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프리마돈나'라고.





ps. 요제프에겐 앙투아네트가 꽤나 각별했는지 같은 안블리크의 자마인 홀슈타인 베네치아를 사들였는데 얘도 대박이 나긴 했다.

정작 에바를 제외한 주변사람들은 요제프가 더 좋은 말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왜 베네치아를 골랐는지 이해불가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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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보니 어째 네커만 부녀 이야기를 더 쓴거 같은데, 실제로도 요제프-에바는 게오르그-모니카, 라이너-잉그리드와 달리 애증어린 부녀였다.

나중에 다룰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요제프가 죽기 직전에야 서로 화해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