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정처 없이 거리를 거닐다 보면

떠나간 그대를 그리던 나를 마주하오.

나는 으레 그러하듯이 멈추어 서서는

격정적이었던 과거의 나를 관조하오.


사랑을 말하던 입술로 저주를 내뱉고,

그대를 쫓던 눈빛은 발자국을 쫓으나,

오도카니 서서 차마 발을 떼지 못하오.

그런 나를 두고 그대는 멀어져만 갔소.


그대가 떠나고 세월을 흘려만 보냈소.

내 감히 그대를 탓하는 건 결코 아니오.

그저 내가 그리했었다는 이야기 일 뿐,

단지 그렇게 세월을 지내고 나서 보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던 격정의 순간은

새하얀 모래톱의 포말로 갈음하였고,

무심하게도 나는 이다지도 멀쩡하오.

사랑이란 참 부질 없는 것이었나 보오.


회상에서 벗어나 다시 걸음을 옮기오.

다만 이젠 더 이상 정처 없이 걷지 않소.

왜 인지 멋진 일출을 보고 싶어졌으니,

이젠 산 정상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오.


십분 정도 걸었을까, 다리가 저리구려.

평소에 운동을 좀 했더라면 나았을까,

이제라도 하산할까, 후회감이 들지만

이미 오른 걸 무를 수는 없지 않겠소.


이제는 얼마나 걸었는지도 모르겠소.

그저 호중월이 아름다워 멈춰섰소만,

눈에 담긴 달이 가슴에 담기지 않소.

고뇌에 빠져 고개를 숙인 채 골몰하오.


나는 어째서 가슴에 달을 담지 못하나?

달이 멀고 먼 저 하늘에 있기 때문인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달이 없기에?

아니면 달을 달로 보지 못하고 있기에?


달은 멀기에 상상에서만 존재하는 것..

아뿔싸, 이제야 나의 허물을 깨달았소.

내 차마 지울 수 없는 흉터를 새겼으니,

그대는 나를 용서치 아니 하여도 좋소.


나란히 늘어선 가로등 아래 사람 하나,

사람은 하나인데 새겨진 인영은 여럿,

뛰어든 사람을 둘러싸고 춤추는 인영,

살펴보니 인영이 아니라 허물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