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야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아무런 욕심도 없었다

그저 나를 사랑해주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과 함께 즐겁게 살고싶을 뿐이었다



재앙이 우리 가족을 휩쓸기전까지는

나는 복수심이 들끓었고
그대로 스승님의 밑에 들어가 수행을 하게되었다



그렇게 몇십년이 지났을까

나와 함께해주던 
나의 무엇보다 소중했던 스승님이 
말도없이 떠나버리셨다

나는 그대로 방황한채 
그의 흔적을 쫓을 뿐이었다



거대한 뱀을 죽였다
사람들을 구했다
그리고 모험가 길드에 가입했다
제국에 항변하다 감옥에 가기도하고
그러다 풀려나서 영웅취급을 받기도 했다

처절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만족스럽다는 감정은 느끼지못했다
어째서인지는 몰랐다
아마 스승님을 찾지 못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찾았다
스승님에 대한 단서를

그리고
나의 가족을 빼앗았던 재앙에 대한 단서를

나는
더없이 흥분했다







계곡을 넘고 산을 넘고 어느 왕국에 도착했다
그곳은 피바다였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동물이 시체를 뜯어먹고
울음소리인지 비명소리인지 모를 괴성이 
하늘을 뒤덮었다

그때
그 순간

나는 처음 느껴보는 
듯한

무언가를 느꼈다







나는 살아남은 사람들을 지나쳤다
나에게 손톱과 이빨을 드러내는 이들을 무참히 썰어버렸다
울음소리와 비명에 귀를 닫았다

그렇게 그들을 지나쳐 
재앙의 원흉을 쫓고
만나게되었다



재앙을
그리고
스승님을




기뻤을까

슬펐을까


이렇게 상반되는 감정들을 동시에 느꼈을까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기 싫었고
이해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기뻤다
모든 것이
이렇게 마주했음을
이렇게 조우했음을



이제 나는 자유의 몸이 될수있었다
그래 나는 자유다
나의 세상은 이제 나의 것이 되는것이다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렇지만










역시
나를 긍정할 수 없어









선혈이 튀었다
나의 몸을 관통당해

그 심장은 찢기고 짓이겨져
그 재앙의 손길 속에서 일그러지듯 부서져갔다



이내 그 재앙은
그리고 스승님은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래..'
[아아]

'넌 그런 결정을 했구나'
[어째서..]





사르륵

마을을 뒤엎던 안개는 사라지고
그 사이에 햇빛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빛을 맞은 핏빛 재앙은
재로서 사그러들며 
아스라히 사라져갔다

나의 가슴에 거대한 구멍을
뚫어버린 채로



"오오!!! 재앙을 쓰러뜨리셨다!!"
"잠깐.. 저 분의 심장이!!"
"아아..아아아!!"



심장이 뚫린채 고고히 서있는 나
마을의 사람들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성기사단들은
나의 유해를 수습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핏빛 재앙을 끝낸 영웅으로 치하하며
불꽃의 이름으로 나의 내세를 축복하였다



그리고 나는...











나의 장례식이 행해지는 언덕 위에서

불꽃으로 그리고
잿빛으로 되돌아와

그 모든것을 지켜보고있었다



'...놀랐어 그대로 불타죽어버리려고 하는줄 알았다니까?'

...솔직히 이때 
나야말로 진짜 놀랐었다

그 옆에는 나의 스승
아니 스승의 유령이 서있었으니까



"...고생많았어"

'그치 많이했지 정말이지..'



나의
스승

나의 
미련

그리고..

"페일리"





나의 
동생







'너가 처음부터 진조였는지
아니면 진조에게 먹혀서 그렇게 된건지
하물며 이계에서 찾아온 영혼이 빙의한 타인인지
지금에 와서는 아무것도 몰라'

"그렇겠지.."



나도 모르니까



'너가 나의 누나였던 순간이 진실인지
계속해서 찾아보려고 했어

하지만 모르겠더라

그렇게 속편한 해답을 알려주지않는게
진조라는 존재였으니까'



"그래서 복수와 용서를 동시에 한거야?

진조의 근원을.. 너 자신에게 봉인한다는 식으로"



'그래 그런셈이지.. 아니 그걸 용서라고 할 수 있나? 구원.. 이라는 느낌이 더 강할지도?'

"어찌보면 저주일수도 있고"

내 마음엔 아직도 메워지지않는 구멍이 남아있으니까 



그리고 그 구멍은
지금의 너도 가지고 있겠지



'솔직히 

기대안했어'

"..."



진조인지 누나인지
하물며 원수인지 가족인지도 모를 존재를

십수년의 세월동안 찾아다녔다

그리고 죽엿다
처참하게

하지만 그 근원만큼은 사라지지않았다



그래서 봉인했다
가두고 억제하고 길들였다
족쇄를 채우고 고문을 했다

너의 진실을 말하라고
너의 속내를 까발리라고



하지만 그것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그것은.. 늑대였으니까
사람의 손을 타지않는 걸어다니는 재앙
그뿐이었으니까

그래서 였을까

그는 지쳐버렸다 그리고..



증명을 포기한채 
그저 집착할 뿐이었다

진실을
이해를
그리고 애정을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방황은 경험이 되었고

수치는 솔직함이 되었다

무지는 정답을 찾았고

현실은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종국에 그는..
내가 아닌 
내가 되었다 



'근원 스스로가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너를 죽이는 진정한 방법'



재앙을 죽이고
누나를 성불시키고
망집에 휩싸인 나를... 영면에 들게하는 방법



페일리
그리고


누가 재앙이었는지
누가 가족이었는지는
이미 그 의미를 잃었다



그저 지금

사람도 아닌 무언가들이
이야기의 결말을 지켜볼 뿐



"너는.. 이제 어떻게 돼?"

'이제고 뭐고.. 애초에 진짜 나는 죽었고
지금의 나는 마석에 담긴 최후의 마력이 
레코드처럼 재생되고있을 뿐이야

다음은 없지'

"그래.."



'너야말로 
이제 어쩔거야?'

"나야 뭐.. 저렇게 성대한 장례식이 치뤄졌으니
다시 노을빛의 검사니 뭐니하는걸로는 못다니겠지

반쪽짜리 지성으로 쌓아왔던 협소한 인간관계도 다 도루묵이니

남은건 이 흡혈귀인지 아닌지도 모를
몸뚱이 뿐이야"

'안죽은게 용하다 진짜 살아있는 송장이 됬네'

그러게나 말이다



그렇게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눴다

시덥잖은 화포를 풀었다

각자 집착과 불안정속에서 삶을 살아오다보니
뭐 추억이라 할만한것도 없었다



'그래도 뭐 예전에 어머니가 해주셨던 스프..

그건 진짜 맛있었는데
그거라도 추억이라면 추억일까?'

"스프라면.."



.....

기억안나는데



"그거 말고.."

후욱 쨍그랑




.............

그래

그렇겠지




너를 다시 만난것만으로

기적인거겠지

그렇기에



"......좀 비겁,하네"



이렇게 찝찝하고
갑작스러운 끝마무리도

어마어마한
기적인..거겠지










나는 결국

너의 누나였을까?







아름다운 이야기의 뒤편
평생가도 모를 진실이었고

증명해내지 못할
그날이었다















타닥

타닥 타다닥

"......"



[로베르트 길드]



그리고 나의 삶은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할 현실의 연속

죄와 마주하고 인연과 헤어진 나의 앞에 
다시 얼굴을 내비친건



"........너를,



다시 마주한 죄도
다시 엮인 과업도
다시 깨달은 실수도 아닌



"사랑,했다"



또다시 이해할 수 없는

연고도 이유도 인과도 알수없는



"...너가 누군데"



지독한
농담였다











.............

"어? 깼어? 피곤해보이던데 괜찮아?"

"...흠"

"왜? 뭔가 굉장히 찝찝하다는 얼굴인데"

"아니"




지금도 정말 농담같아서

너무.. 엉망진창이야



행복과 여유는
나한테는 너무나도 잔망스럽기 그지없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