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강했다.

    겨울이었음에도, 새벽의 시린 공기가 물러간 후의 공기는 그럭저럭 차갑지는 않았다.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았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겨울답지 않은 날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기꺼웠다. 겨울에도 하루쯤은 따스한 날이 있어도 나쁠 것은 없지 않겠는가.

    그래도 매미 소리가 없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내 마지막은 풀벌레 소리와 매미 소리가 가득한 가운데 맞이하고 싶었다. 뭔가 문학적인 것 같아서가 이유였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 것을 원했으면 여름에 왔어야지. 겨울의 매미 소리. 여름에 내리는 눈. 신비로워 보이기야 하겠다만 현실에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다.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신발을 벗었다.

    양말까지 벗고 난간에 서자 냉기가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아무리 따뜻하니 뭐니 해도 겨울은 겨울인가보다. 오래 견디기는 힘들 것 같았다. 이곳에 서게 된 이유와 같았다.

    까마득한 아래에서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이쪽을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없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늘 본 지 오래된 사람들이다. 당장 눈앞도 더듬으며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하늘까지 보라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이야기였다.

    지켜보다 거리 감각이 이상해지고 속이 울렁거릴 때쯤, 심호흡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비행의 준비였다. 사람이 맨몸으로 날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우선, 무거운 것들을 벗을 필요가 있었다. 자존심, 야망, 인간관계. 그런 것들 말이다. 다행히 이 부분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어느 것 하나 나에게는 크게 연관 없는 이야기였으니. 다만 다음 단계는 조금 어려웠다. 결심과 용기. 그것이 부족해 날기를 바란 사람에게는 충분할 리가 없는 덕목이었다. 갖추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불가능을 시도하는 입장에서, 나를 고립시킨 이성의 고삐가 몇 번이고 의욕을 강탈해갔다. 다행히 어릴 적 꾸었던 다른 꿈을 생각하니 이성이 이쪽이 가능성이 높다며 납득해 주었다. 마음에게는 감사한 일이었다. 끝끝내 틀어지는 일이 많았기에.

    슬슬 시간이다, 생각하니 밑에서 누군가가 나를 가리키곤 비명을 질렀다. 아직 하늘 보는 사람이 남아있었다니. 드물게 찾아오는 행운에 마음이 들떴다. 그래도 살며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비행. 관객이 있는 편이 내게도 좋았다. 관객은 점점 늘었다. 누군가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했고, 누군가는 나를 향해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전화하는 수보다, 움직이는 수보다, 휴대폰을 들이미는 자들의 수가 더 많았다. 들뜬 마음이 식었다. 그래, 지금은 겨울이었지.

    발바닥의 냉기가 참기 어려울 만큼 시리게 느껴졌다. 잊은 듯하다가, 자각하는 것.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그 행위의 지루한 반복이 내 짧은 생의 역사와도 같지 않았던가. 무슨 짓을 해도, 저 배려 잃은 자들의 비율은 변치 않을 것이었다. 차가운 계절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금보다 조금 어릴 적에는 그것을 몰랐다. 추위에 떨며 사람을 미워하려 해보기도 했고, 계절을 증오해보기도 하였다. 어느 쪽이든,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반복에 지쳐가던 어느 날 내 마음마저 얼어붙기 시작하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제서야 나는 헛된 꿈을 접을 수 있었다. 대신 다른 꿈을 꾸었다. 완전히 얼어붙기 전에, 발바닥의 냉기를 버틸 수 없게 되기 전에, 하늘을 날고 싶었다.

    별 박힌 하늘을 보는 것이 좋았다. 보는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는 그 사이를 헤엄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바라도 내 두 다리는 대지에 못 박힌 그대로였고, 이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의 한계였다. 겨울에 매미는 울지 않는다. 여름에 눈은 내리지 않는다. 마음 언 자들의 낙원은 끝나지 않는다.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것들보다는 가능성이 높기는 했다. 적어도 이것은 한 번에 불과하더라도, 내 의지로 이룰 수 있는 것이었다.

    밑에 모인 사람들이 생각보다도 많아졌다. 올려다보며 별을 즐기던 나에게 내려다보는 것은 익숙지 않은 경험이었다.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다. 겨울이 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기에.

    세상이,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광경을 위해 평생을 바치는 자들이 있을 것이었다. 그들은 이 살 에는 풍경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 걸까.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저 비행에 대한 욕구만을 증폭시키는 경관에 불과했다.

    이쯤이면 됐다. 더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관객도 많았고, 날씨도 나쁘지 않았다. 비행하기에 최고라고 말하기는 뭣해도, 그 다음 쯤은 될 법도 했다.

    결심은 이전에 해두었기에 행동은 빨랐다. 발이 지지대를 잃었고, 비명이 정오의 하늘을 수놓았다. 광풍(狂風)이 몸을 덮쳤다. 오랜 비행은 아닐 것이다. 알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나는 날고 있었다.

    감각이 닫혔다. 청각에는 무의미한 바람 소리. 시각에는 따스한 겨울의 풍경. 의미 없는 감각들이 자리를 비우고, 촉각이 비대해져 자리를 채웠다. 날고 있다. 나는 날고 있다.

    관객들은 내가 추락한다고 느낄 것이었다. 틀렸다. 모든 나는 것은 언젠가 대지에 내려선다. 단지, 그 시간에 차이가 있을 뿐. 새가 땅에 발을 디뎠을 때도, 그것을 추락이라 부를 셈인가. 중요한 것은 의지였다. 나의 의지로, 날고자 허공을 디딘 나는 그러므로 날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겨울을 견디지 못한 자의 수직으로의 비행이다.

    차가운 바람이 기분 좋다. 처음으로 겨울이 좋아질지도 모르겠다.

    …매미 소리가 들렸다면 좋았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