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짙푸른 정글에 낙오되었다.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의지할 사람도 없다. 그는 홀로 낙오되었다. 그는 걷는다. 방향은 알 수 없다.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헤매고 있을 뿐이다. 어디로 가든 이 정글에서 빠져나갈 수 있으면 좋다. 그래서 그는 정처없이 미로같은 정글을 홀로 헤맨다. 앞으로, 앞으로… 아, 이곳은 이미 지나쳐왔던 길인 것 같다. 그는 같은 자리를 빙빙 맴돌고 있었다. 숨막히는 정글의 습기와 열기가 그를 질식시킨다. 끝도 없이 높이 솟은 빽빽한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그로 하여금 하늘을 우러러 기도할 수조차 없게한다. 앞으로, 앞으로… 이 숨막히는 열기! 미칠 것만 같다. 아무도 그를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의 부대는 이미 수색을 포기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찾으려고는 했을까? 나는 일개 병사일 뿐이다. 그것도 낙오된 병사. 그리고 군인인 내 신분을 벗어나 생각해 보자면, 내게 남은 것은 고향에 계신 늙은 아버지 뿐이다. 사실, 아버지 소식도 들어본지가 오래되었다. 나는 아버지가 살아계신지 아닌지조차 알아볼 방도가 없었다. 만약, 결국 아버지마저 고향 땅에서 쓸쓸이 돌아가셨다면, 내게 남은 것은 내 몸뚱아리 하나 뿐이고, 그렇다면 내 보잘것없는 몸뚱아리를 찾으러 이 지옥같은 정글을 헤치고 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 나를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디로 돌아가려고 하는가?
나의 고향은 조용한 곳이었다. 아버지께서는 그곳에서 평생을 사셨고, 그곳을 사랑하셨다. 하지만, 젊은 나에게 있어서 조용한 시골의 풍경이란 더없이 따분한 것일 뿐이었다. 아버지는 나 역시 그곳에서 당신처럼 평생을 보내길 원하셨지만, 난 그럴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작년 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이곳에 보내진 것이다. 바로 이 정글에.
내가 돌아갈 곳은 어딘가? 나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내 고향은 내가 직접 떠나왔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다. 또 내 고향에는 더는 보고싶은 이도 없다. 내가 남몰래 짝사랑하던 마을 처녀는 내 어릴적 친구와 결혼해버렸다. 또다른 어릴적 친구는 도시로 갑작스럽게 떠나가서는 연락이 닿질 않는다. 또다른 내 친구는 나보다도 먼저 군에 입대했다. 또다른 내 친구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또다른 내 친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기찻길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나의 전우들, 장교들, 정치인들. 이 정글은 이제는 단지 떠나고 싶은 곳이다. 그러니 나에게는 돌아가야할 곳은 있지만 돌아가고 싶은 곳은 없다는 얘기다. 그럼 내가 이곳에서 이토록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에게는 돌아가고 싶은 곳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에 내가 이곳을 빠져나와 돌아가게 되는 곳은 바로 정글이 아닌가? 나는 정글에서 빠져나와 정글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우스운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의 다리에서 힘이 쭉 빠진다. 그는 나무에 기대어 주저앉는다. 다행히도 담배는 아직 충분히 남아있다. 그는 담배 한개비를 꺼내어 물고 또다시 생각에 빠져든다.
정글에서 나와서 또다시 정글로 돌아간다라… 생각해보면 이 정글은 정다운 나의 고향과도 같은 푸르름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은 전혀 다른 푸르름이다. 요컨대 내 고향의, 아버지의 고향의 순수함과는 전혀 다른 푸르름이다. 탐욕의 푸르름이다. 질투의 푸르름이다. 오만의 푸르름이다. 이곳, 정글은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이다. 나무들은 저마다 자신이 더욱더 많은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높게 자랐다. 또 그들은 독을 품었다. 그것은 다른 종족, 동물들과 벌레들을 내쫓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같은 종족인 식물들을 쫓아내기 위함이다. 그들은 그 독으로 토양을 오염시켜 서로 독살한다. 잔뿌리로 다른 식물들을 교살한다. 그러니까 그것들의 푸르름은 한적한 시골의 푸르름보다는, 내가 그토록 동경했던 대도시의 혼탁함과 더 가까운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곳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곳이 아니었나? 그는 담배꽁초를 군홧발로 짓밟아 끄고는, 다시 새로 하나 꺼내 문다.
정글에서 정글로. 그는 끝을 모르고 하늘을 향해 높이솟은 나무를 올려다보다가 문득 현기증을 느낀다. 그는 불이 붙은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던져두고 깊은 잠에 빠진다. 이윽고 정글은 사나운 불길에 휩싸였다. 그리하여 그는 비로소 정글을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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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꿈을 펼쳐라 그것이 바로 문학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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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N] 정글을 빠져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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