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노르스름한 색, 시퍼런 색, 약간 그을린 빨간색 나뭇잎들이 나무에 매달려있다가 바람이 삭 불어오면 툭 하고 떨어져서 팍 하고 땅에 처박히거나 퐁하고 물 위에 떨어져서 둥둥 떠다닌다.

“이번에 내가 뛸거야!”

몸이 다 그을린 주황색 팬티를 입은 소년이 높은 돌 위에 서서 자기가 정글의 왕이라도 된 것 마냥 소리 지른다. 소년 아래 깊게 고인 물에서 물장난을 하던 소년의 친구들은 높은 바위에 올라가 있는 그를 보곤 소년이 떨어질 자리를 터준다.

“물이 튈지도 몰라!”

소년이 크게 소리 지르면서 깊은 물 속으로 떨어진다. 물이 퍽 하고 튀어 소년의 친구들을 적신다. 잠깐 물속에 잠긴 소년은 깊은 심연과 허우적거리는 친구들의 다리를 보았다. 작은 물고기 하나가 소년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어디론가 헤엄쳐갔다. 소년은 깊은 물 속에 숨이 막힐 때까지 있었다. 햇빛이 일렁이는 물을 타고 반짝거렸다. 소년이 손을 뻗어 반짝이는 물살을 잡으려 했지만 물살은 소년의 손을 빠져나갔다. 물 속은 조용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살랑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친구들의 고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푸른색 비늘, 초록색 비늘, 황금색 비늘 반짝이는 물고기의 비늘과 프리즘에 통과되는 햇살들. 소년의 발밑엔 보랏빛 깊은 심연이 어두컴컴하게 빛나고 있었다.

 

소년과 친구들은 계곡 근처 큰 돌덩이에 앉아 고기를 구웠다. 고기 굽는 냄새가 온 사방으로 퍼지면서 배고픈 숲속 동물들을 괴롭혔다. 며칠 굶은 새는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앉아 고기 굽는 그들을 지켜봤고 비쩍 마른 족제비는 계곡 건너편에서 풍겨오는 냄새를 맡았다. 족제비는 머릿속으로 기름기가 충만하고 핏물이 빠지지도 않은 싱싱한 고기를 생각했다.  싱싱한 고기는 족제비의 피와 살이 될 것이며 달짝지근한 피는 온몸을 타고 흘러 타고난 사냥꾼의 원기를 북돋을 것이다. 하지만 족제비는 힘이 없다. 못 먹은 지 오래되었고 수영을 해서 계곡을 건널 자신도 없었으니까. 아 가엾은 족제비여. 누가 그대의 뱃속을 채워 줄 것인가. 누가 그대의 먹잇감이 되려 할까. 누가 그대의 힘이 되는 영광을 차지할 것인가.

 

소년은 배고픈 족제비는 생각도 않은 채 고기 조각을 게걸스럽게 입속으로 넣는다. 고기 조각은 소년의 흰 이빨에 잘근잘근 씹혀 침을 타고 목구멍을 넘어 뱃속으로 들어간다. 불판 위에서 치지직 소리를 내며 굽히고 있는 나머지 고기 조각들은 그 운명을 알까. 고기들은 이상야릇한 기름을 팍팍 튀기면서 그을려가고 있다. 기름은 반짝반짝거리며 강물로 튀는데 물고기들은 기름을 싫어한다. 그리고 소년을 싫어한다.

 

소년은 배가 불러 뜨끈뜨끈한 돌바위에 늘어진 낙지마냥 붙어있다. 그는 눈알을 굴린다. 새 지저귀는 소리, 떠드는 소리, 타이어 굴러가는 소리, 흙먼지 날리는 소리 온갖 잡소리들이 한 대 뒤엉켜 소년의 귀를 간지럽힌다. 소년은 다시 눈알을 굴린다. 물에 젖은 다리. 아 저 아름다운 다리를 보아라. 살이 약간 두툼하게 오른 뽀얀 허벅지 아래로 허벅지와 종아리를 연결해주는 저 힘줄이 팍하고 솓아올라 있다. 무릎은 분홍빛으로 물들었고 적당히 마른 종아리 밑으로 다윗은 쳐다도 못 볼 아킬레스건과 발꿈치, 한 손으로도 움켜쥘 수 있을 것 같은 가느다란 발목이 있다. 소년은 소녀의 발목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아 저리 아름다운 발목을 가질 수 없다니. 한번만이라도 움켜쥐어 보고 싶다! 저 아름다운 다리! 아름다운 허벅지! 아름다운 무릎! 아름다운 종아리! 아름다운 발목! 아름다운 발 뒤꿈치! 아름다운 발가락! 아름다운 발바닥! 얼마나 아름다운가. 마치 신이 정밀한 공예 도구들로 몇 년에 걸쳐 다듬은 것 같은 저 아름다운 다리를 보고 감탄하지 않을 소년이 있을까? 소년은 이미 소녀의 다리에 빠져들었다. 소년은 어떻게든 소녀의 다리를 가지고 싶었다. 멀리서 바라보기엔 가지고 싶고 가까이서 바라보기엔 너무나도 눈부신 소녀의 다리! 아 아름다워라! 너무 아름다워서 아무도 보지 못하게 부숴버리고 싶도다.

 

소년과 소녀, 그들의 친구들은 큰 돌덩어리 몇 개를 건너 황토색과 갈색이 뒤섞인 흙밭을 걸었다. 물기가 가득한 발에 크고 작은 흙뭉치들이 하나 두 개 붙어서 그들과 동행했다. 소년은 소녀를 보았다. 아. 저 가녀린 목덜미를 보아라. 뽀얀 목덜미에 붙은 솜털 몇 가닥 내가 가질 수 없을까. 소년의 발밑으로 개구리가 지나간다. 널찍한 뒷다리 퉁 튕기더니 팍하고 뛰어오른다. 다시 뒷다리 퉁, 그리고 팍 퉁팍퉁팍 그러더니 물기가 좔좔 흐르는 무성한 수풀 사이로 사라졌다. 이윽고 소리가 들려온다. 개굴개굴 웩웩 개굴 웩웩 웩웩웩웩..

 

소년과 친구들은 오래된 정자에 앉아 어느 이름 모를 농부의 밭에서 훔친 수박 하나를 먹으려 했다. 소년의 친구가 소년에게 수박을 씻어 오라고 시킨다. 소년은 자기 몸뚱아리 만한 큰 수박을 들곤 근처 냇물로 가서 흐르는 물에 수박을 넣는다. 흙먼지 물살에 씻겨져 저 멀리 흘러간다. 졸졸졸졸...다시 졸졸.. 나지막하게 졸졸졸.. 물고기 하나가 냇물에서 팍 튀어올랐다가 사라졌다. 

 

소년의 친구가 수박을 돌로 팍 내리찍는다. 수박 겉에 큰 돌자국 하나가 팍 생겼다. 다시 내리치자 붉은 수박 속살이 팍 튀어서 사방으로 날아간다. 소년이 깨진 틈으로 손을 집어넣어 있는 힘껏 벌린다. 수박이 퍽 하고 쪼개졌다. 소년과 친구들은 씻지도 않은 먼지투성이 손으로 수박을 먹는다. 수박 속살과 흙먼지가 한데 엉켜서 입속에서 춤을 춘다. 

 

소년과 친구들은 정자에서 잠을 잤다. 소년이 눈을 떴을 땐 밤이었다. 하늘엔 별빛이 가득했고 기다란 등뼈 같은 은하수도 있었다. 정자 근처로 반딧불이 하나가 힘없게 날아간다. 반딧불이는 긴 풀숲을 헤엄치다 서서히 사라졌다. 희미하게 사라지는 노르스름한 작은 불빛. 소년은 꺼져가는 불빛을 지켜보았다. 소녀는 정자에 없었다. 소년은 소녀를 찾으러 희미하게 반짝이는 냇가를 따라 걸었다. 냇물이 별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리고 저기 앉아서 냇물로 세수를 하는 소녀의 얼굴에서도 빛이 났다. 소년은 쪼그리고 앉아 있는 소녀를 지켜보았다. 소녀가 냇물을 얼굴에 가져다댈 때마다 소녀의 얼굴에선 빛이 났고 소녀의 날카로운 턱, 날카로운 콧날을 비췄다. 소년은 소녀의 귀를 보았다. 단발 머리칼을 고정하고 있는 저 귀. 그리고 별빛에 반짝이는 작은 귀걸이. 별을 따다 귀에 달아 놓은 걸까? 그럴 거야. 확실해. 저 빛이 별빛이 아니면 뭐란 말이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은 별빛,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빛도 별빛, 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 별빛, 별빛은 아름다움 그 자체, 나의 보석, 나의 보물, 나의 사랑, 나의 고통, 나의 기쁨, 나의 슬픔, 그것은 별빛, 저 별빛 아래 모든 것이 빛나고 희미해지고 화려해지고 창조되며 파괴되고 다시 창조되고 파괴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