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의 향후 일정을 조금만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딱히 계획해 놓은 건 없습니다. 저희 밴드는 지금 작업 중인 앨범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요. 나중 일은 이 앨범의 작업이 끝나고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기자는 녹음실을 나갔다. 문이 열리고 닫히자 가느다란 빛줄기가 슥 들어왔다가 슥 사라졌다.

 

“저 양반 두 시간 동안이나 우릴 잡아놓고선 먹을 거 하나 안 사 왔다고.”

“언제나 똑같은 질문이지. 이번 작품에 대한 힌트를 조금 돌라니, 무슨 생각으로 이번 작품에 임하느니, 향후 일정은 어떻게 되느니 뭐 이런 것들 말이야. 그렇게 뻔한걸 물어볼 거면 왜 여기까지 오는지 몰라. 그냥 이메일이나 보내는 게 나을 텐데.”

“아마 우리가 답장을 안 해줄 거라고 생각하나 봐.”

“그건 헛소리야. 보내지도 않고 어떻게 안다는 거야?”

“만약에 메일이 오면 답장해줄 생각이야?”

“아니. 사실 메일 확인 안 한 지가 오래됐어.”

 

나는 녹음실에서 나와 햄버거 가게로 향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어서 배가 고팠다. 햄버거를 주문하고 창가에 앉았다. 햄버거 가게는 조용했다.

“여기서 또 뵙는군요!”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아까 녹음실을 나간 기자였다.

“여기 자주 오시나 봐요.”

기자가 물었다.

“녹음실 근처라 자주 오는 편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기자는 알겠다고 하곤 햄버거를 가지러 갔다. 뒤이어 내 햄버거도 나왔다.

“저기.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기자가 햄버거를 먹으면서 물었다.

“네. 괜찮아요.”

“전에 밴드에서 기타 치시던 분은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가요? 저도 기사만 잠깐 봐서 잘 모르지만 왜. 그 뽀글뽀글한 긴 머리에 잘생긴..”

“가브리엘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 맞아요! 가브리엘. 이제야 이름이 생각났네요. 어디서 듣기론 몸이 좀 안 좋으시다던데..”

“저도 연락 안 한 지 꽤 오래돼서 그 친구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환청이 들린다고 했죠. 아마?”

나는 아무 대답도 안 했다.

“가브리엘 씨가 정말 하루종일 마약을 달고 사셨나요?”

“거 밥 좀 먹읍시다. 인터뷰는 아까 끝났잖아요.”

“팬들도 궁금해 할 겁니다. 가브리엘 씨가 어떻게 미쳐갔는지요. 정신병이었나요? 아니면 마약중독이었나요? 그것들도 아니면 둘 다? 가브리엘씨가 어떻게 밴드에서 탈퇴하게 되었는지 말씀 좀 해주실 수 없나요?”

“기자 양반. 한마디만 더 하면 아구창을 날려버리겠어요. 그러니까 입 좀 닥치고 햄버거나 쳐드세요.”

나는 햄버거 가게를 나왔다. 기자는 햄버거 가게 문을 박차고 나가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날은 하루종일 녹음실에 처박혀 있었다. 녹음실을 가득 메운 담배 냄새가 머리를 아프게 했다. 저녁이 되자 배도 고팠다. 

“햄버거나 먹고 오지.”

내가 말했다.

“또 햄버거야? 너 낮에 햄버거 먹지 않았냐?”

“그 기자가 이상한 걸 물어보길래 먹다가 다 버리고 나왔어.”

“뭘 물어봤는데?”

“가브리엘에 대해서 물어보던데. 어떻게 미쳤는지 요즘은 뭘 하는지.”

“너 가브리엘이랑 연락한 적 있어?”

“안 한 지 몇 년 됐어. 그 녀석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몰라. 어디서 안 죽었음 다행이겠지.”

“넌 가브리엘이 보고 싶지 않은 거야?”

“보고는 싶지만.. 그 녀석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하루종일 마약만 하더니 완전히 맛이 가버렸잖아. 증상이 한창일 때는 어땠는 줄 알아? 아무것도 안 적힌 종이를 들이밀더니 오늘 하루종일 작곡한 건데 좀 연주해달라고 했다니깐. 물론 우리 1집은 그 녀석이 다 작곡했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 녀석 감당하기엔 너무 힘들어. 근처에 있는 사람까지 미쳐버리는 기분이라고.”

 

햄버거를 먹고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었다. 진행자는 우리 1집을 틀어주었다. 가브리엘의 목소리와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조금 듣다가 라디오를 껐다.

 

------------------------

 

다음날 우리가 녹음실에서 연주 하고 있을 때 디자이너가 들어왔다.

“저기요! 앨범커버 작업 끝냈습니다!”

그는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그리곤 들고 있던 둘둘 말린 큰 사진을 펼쳤다.

“어때요? 느낌 있지 않나요?”

그는 자기 몸집보다 큰 사진을 힘겹게 잡곤 말했다.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악수 하는 사진이었는데 한 사람 몸엔 불이 붙어 있었다.

“이 사람들 회사원인가요?”

“맞아요. 회사원입니다. 어디 물건 팔러 다니는.”

“도대체 이 양반 몸에 불은 어떻게 붙인 거에요?”

“스턴트맨을 고용했습니다. 이런 위험한 작업만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촬영 중간에 바람이 불어 스턴트맨의 수염이 조금 타긴 했지만 그것 빼곤 다친 사람은 없었고 저희도 즐겁게 작업했습니다. 저희가 사람은 고용해 보는 건 처음이거든요. 물론 그쪽에서 돈을 충분히 주신 덕분이구요.”

“느낌 있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이 사진 그대로 쓰면 될 것 같네요.”

내가 사진을 칭찬하자 디자이너는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하더니 이마의 땀을 슥 닦고는 녹음실을 나갔다. 디자이너가 나가자 웬 뚱뚱한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저 사람은 누구야?”

내가 물었다.

“몰라. 처음 보는 사람인데. 엔지니어 아니야?”

“들고 있는 장비가 하나도 없는걸. 정말 처음 보는 사람인데.”

“새로 온 관계자겠지. 신경 쓰지 말고 하던 녹음이나 빨리하자.”

 

나는 기타를 집어 들었다. 내가 기타를 치는 동안 저 뚱뚱한 남자는 거울을 보기도 했고 양치를 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소파에 앉아서 우릴 지켜봤다. 머리카락과 눈썹은 없었고 늘어난 흰색 티셔츠와 검은색 바지가 그의 살에 접혀 있었다. 그는 날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곤 고개를 슥 돌렸다가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가브리엘의 습관이었다.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슥 돌리곤 다시 다를 쳐다보는 것 말이다. 저 뚱뚱한 남자의 눈, 코, 입 전부 가브리엘의 것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는 가브리엘이었다. 

 

“가브리엘?”

내가 뚱뚱한 남자에게 말했다. 

“노래 정말 좋은걸. 누가 만든 거야?”

그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맙소사 가브리엘 정말 너야?”

“응 나야.”

멤버들은 악기를 내려놓고 멍하니 가브리엘을 쳐다봤다. 

“난 이제 갈게. 좋은 노래 들려줘서 고마워.”

가브리엘이 소파에서 일어나 녹음실 문을 열었다. 녹음실에 있던 모두가 멍하니 문을 열고 나가는 가브리엘을 쳐다봤다.

“잠깐 가브리엘!”

내가 소리쳤지만 가브리엘은 듣지도 않고 그냥 나가버렸다. 나는 녹음실 문을 박차고 나가 가브리엘을 잡았다.

“저기 가브리엘”

내가 말했다.

“응 왜?”

가브리엘이 둔하게 뒤로 돌아보면서 말했다.

“우리 오랜만에 같이 밥 안먹을래? 너 배고프지 않아?”

“네가 사주는 거야?”

“그래. 내가 사줄게. 네가 녹음실로 왔으니까.”

“그럼 좋아.”

 

우린 차를 타고 옛날에 자주 가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가브리엘은 아무 말도 없었다.

“저기 가브리엘. 이때까지 뭐 하면서 지낸 거야?”

내가 물었다.

“그림을 좀 그렸어.”

“음악은 다시 안 하는 거야?”

“그건 나중에 해도 돼.”

“갑자기 녹음실엔 왜 온 거야?”

“그냥 음악이 듣고 싶어서.”

“저기 가브리엘. 궁금한 거 하나 더 물어봐도 돼?”

“응 왜?”

“어쩌다가 그렇게 살찐 거야? 정말 못 알아볼 뻔했어.”

“냉장고에 있는 고기가 너무 맛있어서 계속 먹다 보니까 이렇게 됐어.”

그는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는 속에서 밀려오는 울음을 겨우 참았다.

“머리카락이랑 눈썹은?”

“둘 다 그냥 밀고 싶었어.”

 

레스토랑은 조용했다. 주인은 몇 년 전과 변함없이 카운터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맙소사! 정말 오랜만입니다.”

주인이 나를 알아보곤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이네요.”

내가 대답했다.

“요즘 인기가 장난 아니던데요. 어딜 가든 그쪽 밴드 노래를 틀어주니까요.”

주인은 나를 슥 보더니 내 옆에 서 있는 가브리엘을 보았다.

“그런데 이분은 누구시죠? 동료이신가요?”

“아니요. 친구입니다. 예전에 늘 먹던 걸로 두 개 주세요. 기억하시죠?”

“당연하죠.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음식이 나왔고 가브리엘은 몇 분 동안 고기 조각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칼을 집어 고기조각을 작게 썰더니 포크로 찍어 먹었다. 밥 먹는 내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레스토랑에서 나오니 밤이었다. 길거리엔 아무도 없었고 차도 지나가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멍하니 텅 빈 도로를 쳐다보았다.

 

“가브리엘. 내가 집까지 태워줄까?”

가브리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차 안에서 가브리엘은 멍하니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말을 걸기가 미안해질 정도로 조용했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브리엘.”

“응 왜?”

“너 아직 그 집에 살아?”

“응”

“그 집이 마음에 들어?”

“응”

“요즘 돈은 안 부족해?”

“안 부족해. 네가 매달 보내주잖아.”

“요즘 음악은 안들어?”

“요즘은 그림만 그려.”

“뭘 그리는데?”

“그냥 내 머릿속에 있는 거.”

끓어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울었다. 가브리엘은 주머니에서 천 조각을 꺼내 아무 말도 없이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고마워 가브리엘”

“응”

저기 가브리엘의 집이 보였다. 마당에는 그리다 만 그림 몇 점과 팔레트, 물감이 어지럽게 놔 뒹굴고 있었다. 

“여기 맞지?”

내가 가브리엘의 집 앞에 차를 세우고 말했다.

“응.”

가브리엘은 조심스럽게 차 문을 열면서 대답했다.

“오늘 고마웠어.”

가브리엘이 차에서 내려 창문을 통해 말했다.

“나도.”

내가 대답했다.

가브리엘은 천천히 마당을 가로질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뒤 환한 빛이 가브리엘의 집 유리창을 통해 뿜어져 나왔고 창문에 가브리엘의 실루엣이 약하게 일렁였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녹음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