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이 생각해보면 파키스탄에서 안좋은 일만 있었던건 아니다 

그곳도 분명 사람들이 살아가는곳이었기에

탈레반에게 협조적인 주민들 말고도 

우리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사람들도 분명 많았다 우리가 경계근무를 서던도중 차를 대접하던 영감님과 우리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오던 아이들, 난 그중에서 압둘 라칸이라는 꼬마를 만났다 비록 불행하게 끝난 추억이지만 이번엔 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고자 한다

 

군복무 9개월 파키스탄 주둔 3개월

차스다에서 복무하던때 있었던 일이다 

당시 우리는 곧 끝날것만 같던 전쟁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음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분명 1달만에 파키스탄 북서부와 발루치스탄 전역을 해방시켰건만 왜 전쟁은 끝날기미조차 보이지않고 길어지고 있을까? 몇달안에 다시 원래 근무지로 복귀할수는 있을까? 

수없이 스스로 질문하고 되새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울해지기 시작하면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우울해지기만하는 집생각, 원래 근무하던 지역 생각을 뒤로한채 외출을 틈타 지역주민들을 만나며 대화를 나누며 우울함을 달래곤 했다. 특히 아이들과 뭐라도 하는게 제일 즐거웠는데 그중에서도 나와 제일 친했던 꼬맹이가 압둘 라칸이었다

압둘 라칸은 이제 9살이된 녀석이었는데 집이 가난하여 학교대신 모스크에서 공부를 한다고 들었다 난 짧은 영어로, 녀석은 파슈토어로 대화했기때문에 원활한 대화는 쉽지않았지만

이심전심이라고 하던가? 우리둘은 대화가 통하지않아도 죽이 잘맞는편이었다 

내가 부대에서 제공한 간식거리를 가져온체 녀석을 만나면 일부러 없는척, 안가져온척 하면서 숨기려해도 녀석은 귀신같이 눈치채고는 잘하지도 못하는 짧은 영어로 간식을 달라고 졸라댔다 

어쨋든 녀석과 함께있다보면 우울함을 달랠수있었다

한번은 내가 통역병과 함께 외출을 나오자 녀석이 내게 언젠가 금요일 아침일찍 나와달라고 부탁하길래 조금 무리해서 녀석이 부탁한 시간에 외출을 나오니 녀석이 날 자기 부모님께 끌고가면서 무어라 이야기하다가 부모님께 꾸중듣고는 나한테 미안하다만 짧은 영어로 반복하고 부모님과 어디로 가버린적도 있었다 눈치껏 압둘과 부모님이 나눈대화를 유추해보면 '저 아저씨도 모스크에 같이 데려가서 알라께 기도드리고싶다' 대략 이런식으로 이야기 했던것 같다 금요일은 무슬림들이 모스크에서 기도를 올리는 날인데   당시 차스다에 있던 모스크에선 이교도나 무신론자의 출입을 엄격히 금지했었다

확실한건 아니지만 그것말곤 평소엔 금요일은 무조건 오후에 만나던 녀석이 갑자기 금요일 아침일찍 날 찾을 이유도 없었다 

어쨋든 우린 함께하면 더할나위없이 즐거웠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군복무 10개월 파키스탄 주둔 4개월

압둘을 만난지 1달정도 지날쯤 탈레반이 차스다를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놈들의 공격을 방어하는건 어렵지않았지만

놈들을 진압하는 도중 난 돌이킬수없는 사고를 쳐버렸다 당시 우리 소대는 놈들이 장악한 건물들을 하나씩 정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내가 주택하나에 들어서던도중 인기척이 느껴지자 탈레반이 방안에 있다 자의적으로 판단, 확인조차 제대로 하지않고 인기척이 느껴진 방에 총을 난사한적이 있었다 

사격을 끝내자마자 확인차 방문을 여는순간

안에 있던건 탈레반이 아닌 젊은 부부 하나와 어린아이 둘, 노인 하나였다......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무고한 일가족을 죽음으로 내몰아버렸다 난 죄책감에 전투가 끝나자마자  이사실을 첸 병장님과 리 소대장님께 보고하였고

처벌을 기다렸지만 대대에서 자체적으로 징계위원회를 열더니 불가피한 상황이었던데다 스스로 자수하였음을 감안하여 혐의없음 판단을 내렸다 당시 대대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번 사건을 윗선에 보고하지말고 적당히 덮고 넘어가자는 결론이 나왔던 모양이었다 이러자 지역주민들이 분노하여 우리 주둔지에 모여 항의집회를 열었지만 대대에선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않았고 오히려 위협사격으로 그들을 해산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런 태도에 분노한 주민들은 점차 우리와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고 적대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대대에선 심상치않아진 지역민심에 외출과 외박을 금지시켰다 난 그들의 분노한 모습을 보며 별다른 처벌없이 석연치않게 넘어가버린 나의 잘못과 나 때문에 군과 주민들과의 관계가 깨져버린것만 같아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려야했다 외출과 외박이 금지된 바람에 압둘역시 이사건 이후로 1달 가까이 만날수없었다 만나러간다해도 압둘의 부모님이 만나지못하게 막았을 가능성이 컷겠지만

 

군복무 11개월 파키스탄 주둔 5개월

압둘을 다시만난건 그로부터 1달이 지난후였다

경계순찰을 돌던 도중 녀석이 보였다 난 기쁜마음에 압둘에게 다가갔지만 녀석은 전과달리 우울해보였다 난 혹여나 이녀석마저 나를, 우리를 피하기 시작한건가 싶어 속이 타들어가는것 같았지만 자세히보니 그건 아니었다 압둘은 내옆에 앉아 날 바라본체 울상인 표정을 지을뿐 딱히 날 증오하거나 두려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압둘에게 무슨일 있었냐고 묻자 압둘은 울기시작했다 내가 어쩔줄 몰라 당황하는 사이 압둘이 갑자기 손으로 바닥의 흙을 한움쿰 파내어 구덩이를 만들었다 그러더니 조약돌 2개를 집어와 구덩이에 집어넣고 다시 구덩이를 흙으로 메꾸었다 그러고는 압둘이 풀이죽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

그제서야 난 압둘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수있었다 처음엔 뭔가가 내머리와 가슴을 내리친것처럼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잠시후 내눈이 따가워지기 시작하더니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난 녀석에게 한마디 위로조차 해줄수 없었다 내가할수있는건 녀석을 붙잡고 목놓아 통곡하는것 뿐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녀석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겠다 마음같아선 다른친척이 있는지 없으면 고아원을 알아봐주고 싶었지만 일단 지금은 경계순찰임무를 수행중이었고 주민들과 대화조차 어려웠던데다 페샤와르를 향한 탈레반의 공격이 심해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대대는 사흘이내에 차스다를 떠나 페샤와르로 재배치될 예정이었다

결국 난 녀석에게 나중에 다시만나자며 녀석에게 마지막 초콜릿 바 하나를 주고 녀석의 곁을 떠났다 나중에 어찌저찌 수소문해보니 삼촌 곁에서 지내는 모양이었다 난 위로는 커녕 떠난다는 인사조차 못하고 무책임하게 녀석의 곁을 떠난것 같아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무책임하게 들릴수도 있지만 부디 녀석이 괴로운 시기를 극복하고 건강하고 탈없이 자라기를 지금 간절히 바란다

 

 

짬짬이 써온건데 

보시다시피 많이 부족합니다

평가해줄 사람도 없어서 제가 어디가 부족한지 알기힘들어서 이곳에 용기내어 올렸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의 평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