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가 폐부를 훓고 지나간다. 깊은 호흡에 희뿌연 색감이 묻어 나오며 하늘 위로 날아가 사라졌다.  연기가 날아간 방향으로는 

태양이 지고 있었다. 태양은 검은 구름 낀 산의 중턱을 지나, 지평선의 끝자락에서 마지막의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나는 이 풍경이 낮설지 않았다. 분명히 본 기억이 났다. 사라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그것이 무슨 기억이었나 한참을 더듬었다. 

태양이 완전히 사라지고, 주변에 어둠이 내리 깔리자 그제서야 머릿속을 더듬던 손 끝에 간신히 오래된 추억 하나가 맞닿았다.


 이제는 더 이상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 찰랑이는 머릿 결과  그곳에서 날아와 콧잔등을 간질이던 냄새만이 기억나던 그녀의 

모습. 그녀와 함께, 이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지는 모습을 그곳에서 함께 바라보았었지.  


 삐딱하게 생각한다면 지고 있는 태양이 우리 둘의 세계일 수도 있었다. 시커먼 하늘은 곧 우리가 맞이해야 할 두고 온 등 뒤의 

나라일 터였다. 나는 오직, 둘만 살아 남게 된 이 고단한 여정에 심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그렇기에 심성은 진즉에 말라 비틀어진지 오래였다. 나 또한, 져물어가는 세상을 온통 날 서고 삐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그 가시 돋은 불평에도 내색하지 않고 외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는 다르게 말하였다.


"고된 하루를 끝내고나서 드디어  포근한 잠자리로 든 것이겠지요. 매일같이 앞을 향해 달려 나가던 날의 연속이었으니까, 

몸도 마음도 많이 피곤했을거에요. 세계를 비추던 태양도 달콤한 잠을 청하기 위해 저 너머 있을 침대맡으로 몸을 날린 것 일 뿐.

휴식을 위해 우리도 이 밤을 맞이 한 것이라 생각해요. "


"고요한 밤은, 또 짧은 침묵은 그런 우리가 내일을 나아가기 위해 찾아 온 것일 뿐이랍니다.  다시 산 너머로 태양이 드리우는, 

아침이 온다면 말 없이 눈 붙이고 자리에서 곤히 잠든 만큼 우리 모두 청명하고 개운한 기분으로 나아갈 겁니다.

 더 나은 내일을 맞이 하며. 나도, 당신도 그리고 우리가 두고 온 저 세상도."


"그러니까 우리, 이 고요한 밤도 하루의 일부라 생각하고 내일을 위해 나아가보도록 해요. 두고 온 이들은 내일을 위해 

남겨두기로 하고. 알겠죠? 후훗."


 보드라운 입술이 이마에 닿았다. 모닥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역광이 진 흰 피부의 그녀는 천천히 밑으로 내려 와 

입술을 벌렸다. 혀 끝으로는 곧이어 즐거운 기분이 돋아났고, 모닥불보다 뜨거운 열기가 가슴을 울렸다. 


 그렇게 함께 우리는 깊고 어둔 밤을 지세어 나갈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검이되어, 그녀는 내 앞을 비추는 환한 등불이 되어. 

떠오를 아침을 기다리며 곤히 잠든 동료들과 두려움에 눈 감은 옛 왕국의 사람들을 대신 하여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나갔다.

내일의 태양을 기리며.


 그리고 결국, 우리는 아침을 맞이 할 수 있었지. 서늘한 바람과. 푸르스름한 이슬과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을.....


"......"


그렇게, 한번의 어둠은 지나쳐 갈 수 있었다. 그녀로 하여금 한번은, 견디어 나갈 수 있었다. 막아 낼 수 있었으며, 다시 본래대로

되돌려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바엘!!!!! "


 더 이상 나의 곁에 그녀는 없었다. 외로운 밤 어두운 길을 비추어 나갈 등불은 꺼져버렸다.


"어서 나와 내 칼을 받으라!  베어 넘어간 아비가! 짓밟힌 어미가! 불타죽은 아이가! 너의 복수를 원한다!!!"


 가파른 성벽 밑에서 홀로 선 남자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분명히, 나의 편이 아직 남아있었다면 서 있을수도, 소리 칠 수도

없는 위치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남자의 칼에 의해 차디찬 땅바닥에서 고요한 밤 너머로 잠을 청하려 갔다. 


"......"


 마지막일 것이었다. 서있는 자리만큼 남자는 그만큼 고강한 무예를 지녔을 것이었다. 저 자리는 누구하나 상대가 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나는  그를 이길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나아가라는 그녀의 명을 따라  나는 세를 부풀려나가 일흔 하나의 휘하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고강

하고 강대하였으며 다시금 이 땅에 저들을 발 붙일 수 없게 세운 굳건한 방벽으로서 우리의 세계를 지켜 나갔다. 


 그렇기에 더 나은 내일을 맞이 한 줄 알았다. 다시는 이 세계에 밤은 찾아오지 아니 할 것 같았다.   허나 시간은 돌고 돌아  

다시 태양은 저 산 너머로 사라지고 밤이, 찾아왔다.


"......."


 성벽을 밟고 자리에 올라섰다. 그래도 승부는 보야아 하는 것이겠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어둠이라도, 나아가는 것이 

남은 자의 운명인 것이겠지.  


 "보고싶다.....게헨나......"


 닿을 듯 말듯 하던 기억 속 여인을 향해 손 뻗어나갔다. 잡힐 듯 말듯 눈 너머에 비추던 그녀의 찰랑거리던 머릿결......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남자를 상대하기 위해 성벽 밑으로 몸을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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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되니까 ㅈㄴ 바쁘네. 주말에도 못쉬고 씨발..... 쉬는날 생기면 글 좀 제대로 써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