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제법 의욕이 넘쳤다.


아버지의 농사일 하나를 도울 때도,


영주님께 농학서를 한보따리 빌려와 전부 읽은 뒤 몸으로 실천했다.


또한 지성이 있어, 자신의 미래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도 했다.


농사꾼의 아들은 정말 평범하고 재미없는 삶을 살게 될 거라는 것을.


수도로 나가 상인이 된 형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그저 손가락만 빨아야 했다.


누군가는 생업을 이어야 했기에.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소년은 생각했다.


'인생이란 그저 걸어다니는 그림자일 뿐.


무대 위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우쭐대고 걸으며 투덜거리지만


곧바로 잊혀지는 가련한 3류 배우.


그것은 바보천치가 지껄이는 이야기다.


소음과 분노로 가득 차 있으나,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소년은 생각했다.


'의미있는 삶이란 어떻게 쟁취하는 걸까.


여행을 하면 알게 될까.'


그렇게, 아버지를 설득해 수도로 여행하게 되었다.


쉽게 부러지지 않을 나무 작대기 하나 동반자 삼고,


바람에 펄럭이는 초라한 망토 하나 걸치고,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수도로 향했다.



한 엘프가 있었다.


그녀는 제법 통제불능이었다.


어머니 나무에게 발길질을 하며, 


급기야 정령을 농축해 만든 엘릭서를 개조해 모든 세계수를 태웠다.


마흔 살 엘프 소녀는 눈물을 훔치며 생각했다.


'삶이 고통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픔의 연쇄가 일어나지 않도록 저는


제 모든 것을 희생했답니다.


어머니. 세계수.


나의 모든 것. 나의 원천이며, 나의 본질. 


엘프라는 종의 기원.


내가 가장 사랑했던 것들을.


모두를.'


그녀는 숲에 남은 족장에게 마지막 말을 전했다.


"당신은 어떤가요? 패륜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구원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수도에 있다는 한 지혜로운 청년이 그 답을 안다고 합니다.


저는 답을 찾으러 갑니다."


가볍게 잰걸음 날개신발 신고,


새까만 밤 희미하게 밝혀줄 작은 등불 하나 꼬옥 안고서,


수도로 향했다.



한 천족 성직자가 있었다.


그녀는 날카로웠다.


처음부터 성직자란 직업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금세 그 가식에 질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말도 전하지 못하고,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해도 정통을 지키지 못한다는 야단 뿐이었다.


'사랑을 다해, 사랑만을 위해 살다가


하늘이 내 눈에 빛을 가려 당신을 볼 수 없을 때까지도


목이 메어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없을 때까지도


사랑하고 그리워할 이는 


오직 당신이었습니다.'


천족 성녀는 생각한다.


'천년 후까지도 계속 부르짖고 싶은 그 이름. 당신.


당신의 가슴은 나만 품게 하시고


당신의 두 귀는 내 목소리만 듣게 하시고


당신의 코는 나의 살내음만 맡게 하소서'


그녀는 노비씨아(베일)를 벗어 살며시 나무로 된 십자가에 내려놓았다.


"신이시여. 저 우리엘은 오늘부로 하늘을 떠납니다.


저는 땅에 도달해, 사랑을 돕고 진정한 죄인을 처단할 것입니다.


오늘부터, 


전하지 못한 러브레터의 고마워를 전하러 갑니다.


그치만 저는 어떻게 표현해야 아름답게 편지를 쓸 수 있는지 모릅니다.


인간의 나라 수도엔 누구보다 아름답게 글을 쓰는 젊은 숲의 요정(엘프)이 있다고 합니다.


그녀가 저를 가르쳐 줄 것 같군요."


보석같은 날개를 숨기고,


더러운 옷감 추적추적 입어 구름다리 타고 땅으로 터벅터벅 내려갔다.


수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