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이 성에 왔을 때는 그의 거처에 성안 사람들이 모였었기 때문에 성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넓기만 한 성이 쓸쓸하게 느껴졌지만, 성안 사람들이 이따금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니 역시 이곳도 성이라고 해서 그렇게 축 처지는 곳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외롭게만 보이던 차가운 성의 안쪽은 분위기 있는 등이 은은한 주황빛으로 빛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세적인 느낌이 났으며, 성의 창문 너머로 들리는 도시의 소리는 이 나라가 활발하게 활성화된 나라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시간도 시간이다 보니 슬슬 사람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지만, 하늘에서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이 신호라도 되는 듯 시장가의 흥정꾼들은 오히려 서로 목소리를 올리고 있었다. 어느 정도 걸어 투전승불이 지내는 왕의 성을 지나 도시로 나온 리디아는 슬슬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지금 만나러 가는 귀인은 에쿠에스의 왕인 빛의 기사 루. 그의 수호기사인 것 같습니다.”

 

빛의 기사 루. 들어는 봤다만, 자세히 알고 있지는 않아. 설명해줄 수 있겠지? 리디아.”

 

빛의 기사 루. 주군과 같은 신입니다. 켈트라는 곳의 신화가 된 인물로 천재적인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사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의 바른 신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오고 갔습니다만, 그게 사실인지. 그가 이곳에 오게 된 경위는 무엇인지. 이것들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리디아의 설명을 들은 투전승불은 그렇군. 이라고 작게 중얼거리더니 그녀에게 다른 질문을 하였다.

 

. 그놈이 왜 여기에 온 건지는 어느 정도 예상가는 이유가 있으니까. 그보다, 우리는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저기 저거 말이야. 왜 온 것 같냐? 물론, 병사를 저렇게 끌고 온 거 보면 좋은 이유는 아닐 거고.”

 

투전승불이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장소에는 온몸에 리디아와 같은 순백색의 갑옷을 입고 있는 한 남성이 있었다.

금발의 바람머리는 그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으며, 가슴께에 수많은 훈장은 사람의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보란 듯이 완벽하게 달려있었다. 허리에는 꽤나 큰 장검을 차고 있었는데, 그 장검은 독수리가 황금으로 조각되어 장식되어있는 검집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무기 자체는 그렇게 대단한 무기처럼은 보이지 않는, 단순한 장검이었다. 눈매는 그를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가 약삭빠른 성격으로 보이게 했다.

투전승불이 그에 대한 첫인상을 정리하며 그에게 다가갈 때까지도 그는 뒤에 자신의 병사로 보이는 기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째선지 그와 대화를 하는 기사들의 표정은 이제 질렸다는 표정이었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어렴풋이 들려오는 대화의 내용은, 정황상 저 금발 기사가 제 휘하 병사들에게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자랑을 하는 것 같았다.

 

저자가 바로 빛의 기사 루의 수호기사 중 한 명인 제임스입니다. 그리고…… , 주군의 말씀대로 좋은 의도로 온 것은 아닐 겁니다. 주군이 오시기 한참 전부터 에쿠에스는 저희 옵타움에게 동맹을 강제하고 있었으니까요.”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잠시 숙인 리디아는 잠긴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지도자가 없는 나라는 처리하기 쉽다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또한, 새로운 군주가 우리 옵타움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탐색 겸 찾아온 것일 겁니. 물론, 이번에도 그저 탐색만 하고 돌아갈 것은 아니겠지요. 분명, 주군께서 동맹을 맹세하지 않으면 무력을 행사하려고 할 것입니다. 분하지만, 이번은 주군께서 옵타움에 오신지 얼마 안 되기도 하셨고, 사정 상 전쟁은 힘드니 그를 잘 구슬려 돌려보내고 다음을…… !?”

 

리디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투전승불은 그녀의 검을 오른손으로 뽑아 허공에 던졌고, 그 검은 그대로 제임스를 향해 날아갔다. 무언가가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기척에 고개를 돌린 제임스는 투전승불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하며 서둘러 자기 검으로 날아오는 검을 튕겨내려고 자세를 잡았다.

 

거리도 멀고, 각도 변환도 없이 정면으로 바로 날아오는 검. 이 각도라면 아래에서 위로 튕겨내는 것이 안정적이겠군. , 내 실력을 보여주기에도 가장 쉽겠어. 그다음에 바로 발도하여 파고들어야겠다. 먼저 공격을 해왔으니 이쪽에 우호적인 상대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을 것 같으니.’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지금 취할 행동과 그다음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을 세운 제임스는 저 멀리 서 있는 투전승불에게 외쳤다.

 

이봐! 옵타움의 새로운 군주여. 이 나를 너무 우습게 봤군. 이렇게 먼 거리에서 날아오는 검도. 그것도 정면에서. 내가 막아내지 못할 거라 생각했나?”

 

말을 끝마친 제임스는 일부러 리디아의 검이 바로 앞까지 날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보여주기 식이라는 듯이 제임스는 검이 제 눈앞까지 날아오기를 기다리다가 그 검이 제 눈. 바로 앞까지 날아오자 보란 듯이 튕겨내었다.

그 모습에 제임스의 뒤에 서 있던 기사들은 환호성을 내질렀고, 투전승불의 옆에 서 있던 리디아마저도 그에게 작게 말하였다.

 

주군! 이렇게 먼 거리에서 날아오는 장검을 그대로 맞을 정도로 그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무기도 저 장검 하나밖에 없으니 이대로는 우리 쪽이 더 불리해졌습니다! 어째서 이러신 겁니까!”

 

리디아의 추궁에도 제임스의 자랑에도 아무런 반응 없이 하품만 하던 투전승불은 이내 기지개를 쭉 켜더니 태연하게 제임스에게 말하였다.

 

이제 할 말 끝났냐? 그럼 잔말 말고 들어와. 그러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냐? 네 놈.”

 

누가 들어도 어이없을 만한 한마디. 이미 그는 무기를 던져버렸고, 그 무기마저도 자신에게 막혀서 멀리 튕겨져 날아갔다.

또한, 제임스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이미 다음 동작을 들어가 반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투전승불을 지켜줄 리디아도 무기가 없었다.

투전승불의 옆에 있는 사람은 무기가 없어 아무것도 못 하는 리디아를 제외하면 금발의 어린 여자아이밖에 없었다.

 

확실하게 나의 승리다.’

 

그렇게 확신한 제임스는 투전승불에게 다시 한 번 외쳤다.

 

불리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겠다 이건가? 내가 이 검을 막아내서 당황했겠지. 이제 네 놈의 무기도, 네 놈을 지켜줄 동료도 없다. 원래는 우리 대장께서 직접 처리하셔야 하지만, 이거. 이렇게 멍청해서야 대장이 나설 필요도 없이 내가 이곳에서 바로 처리하면 되겠군. 죽여주마.”

 

직후, 그의 검이 붉은빛에 휩싸였고, 그의 검에서 진동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날카롭게 갈리는 것만 같은 강철 소리가 귀를 뚫고 들어오며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고막을 쿵쿵 때렸다.

그것은 마치 검이 내지르는 비명처럼 들렸고, 딱 봐도 제임스의 말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과 리디아가 들은 그의 실력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리디아와 다르게 정작 투전승불은 제임스의 행동을 지루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대응도 하지 않는 투전승불의 모습을 보고 그가 포기했다고 생각한 제임스는 이내, 검에 쌓여있던 기운을 전방으로 휘둘렀다.

무서운 속도로 정확하게 투전승불만을 조준하여 날아오는 발도. 또한, 그가 피할 때를 대비하여 검기를 날리고 제임스도 같이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그때였다. 일순간. 투전승불의 옆에서 매우 큰 돌풍이 부는 것 같더니.

 

그의 옆에 있었던 금발의 어린 여자아이. 여의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마치 공간이 그대로 잘려나간 것처럼 매우 큰 소리와 돌풍을 만들며 여의가 사라진 직후, 제임스가 날린 검기는 그대로 공중에서 분해되었다.

검기가 공중에서 폭발한 바람에 그 검기와 동시에 뛰어나온 제임스는 그 폭풍에 저 멀리 날아가 버렸고, 엄청난 양의 흙먼지와 땅의 조각들이 그대로 날아와 옵타움의 성문 앞 광장까지 뒤덮었다.

필연적으로 그 근처에 있던 건물들은 파괴되었다. 다행히 부상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지만, 투전승불은 그 참상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제임스에게 다시 시선을 돌리면서 자신의 왼손을 오른쪽 어깨에 올리고 몸을 풀 듯 오른쪽 어깨를 크게 돌리며, 저 멀리 날아간 제임스에게 다가갔다.

 

우리 집 꼬맹이가 일을 좀 잘하거든, 맞다. 네가 날린 그 검기는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내가 부숴버렸걸랑? 그러니까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고.”

 

이내 투전승불은 아까까지는 보이지 않던 살기를 보이더니 그에게 말하였다.

 

이만큼 놀아줬으면 됐지. 난 세상에서 건방진 놈을 아주 싫어하거든? 그러니까 네 놈은 내가 친히 혼내주도록 하마.”

 

말을 마치고, 투전승불은 다시금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제임스의 뒤쪽을 바라보고 외쳤다.

, 꼬맹이! 그쪽 정리는 끝났냐?”

 

그의 시선을 따라 제임스가 뒤를 바라보자 그곳에는 한바탕 난리가 난 것 같은 전투의 현장이 있었고, 자욱한 흙먼지 사이로 한 손에 자기키만큼 큰 금색의 봉을 들고 있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그 뒤에는 제임스가 끌고 온 병사들이 엉망진창으로 쓰러져있었지만, 그것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여의에게는 생채기 하나 없었다는 점이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제임스를 무시하며, 여의는 투전승불에게 불만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하였다.

 

한심한 것. 나는 꼬맹이가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계속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어냐.”

 

푸핫. 어쨌든, 정리는 끝난 거냐?”

 

여의의 불만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고 투전승불은 웃음을 터트리며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러자 여의는 다시금 한숨을 푹 쉬더니 그에게 말하였다.

 

저런 것들은 몸 풀기도 되지 않는다. 네 녀석. 너무 시간 끄는 것은 아니냐. 어서 끝내란 말이다.”

 

놀고 있는 자신의 태도를 보고 따끔하게 지적하는 여의의 말에 투전승불은 다시 한 번 크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며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경계하는 모습으로 거리를 두고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도 투전승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짓더니 제임스에게 말하였다.

 

어이-. 네가 잘못 생각한 게 몇 개 있는데 말이지. 친절한 내가 하나하나 설명해주도록 하지.”

 

일단 첫 번째. 라고 나지막이 중얼거린 투전승불은 이내 땅을 박차고 전방으로 도약했다.

 

소닉 붐이 일어난 것처럼 공기가 낮게 터지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고, 그는 순식간에 제임스의 앞으로 다가왔다.

일반 사람의 눈으로는 겨우 보기도 힘든 그 속도는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그가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 박차고 나간 땅은 움푹 패 있었으며, 그곳을 중심으로 상당 거리가 방사형의 금이 가 있었다.

이내 투전승불은 오른손 주먹을 꽉 쥐며, 제임스를 향해 내질렀다. 투전승불의 움직임을 겨우 눈으로 따라잡은 제임스는 급하게 자신의 검으로 그의 주먹을 막아내었다.

고작 인간의 주먹과 맞붙었다고 생각하기에는 버티기 힘든 충격이 자신의 몸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걸 느끼고 이대로 받아내면 위험하겠다고 판단한 제임스는 투전승불의 주먹이 밀어내는 충격을 이용해 그대로 뒤로 날아가서 재 착지하였.

예상외의 힘에 잠깐 당황한 그는 방금까지 거만하게 잡고 있었던 자세를 고쳐 제대로 검을 잡았고, 대충 흘겨보던 투전승불의 움직임을 집중해서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제임스가 바라본 투전승불의 자세는 말 그대로 동네에서 아이들과 장난하는 어른 같은 느낌이었다. 맨손 전투에서는 필수불가결인 커버링은 올리지 않고 있었고, 주먹 또한 대충 쥔 것처럼 보였다. 투전승불이 제대로 취하고 있던 행위는 상대방의 공격을 피할 준비를 하고 있는 스텝뿐이었다.

말 그대로 한 개의 유흥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이 대충대충 하고 있는 투전승불의 모습에 자극을 받은 제임스는 이를 악물고 다시금 그에게 달려들었다. 쥐고 있던 검을 위로 들어 머리에서부터 그대로 정면으로 투전승불을 내려 베었고, 그것을 투전승불은 주먹으로 검의 면을 쳐내는 것으로 방향을 틀어서 자신이 베이는 것을 피하였다.

이어서 그대로 한 바퀴를 돌아 오른발 뒤꿈치로 제임스가 잡은 검의 손잡이 부분을 후려쳤다. 강한 충격으로 검을 놓칠 뻔한 제임스는 검을 잡고 있던 손에 다시 약간의 마력을 불어넣어 충격을 버텨내었다. 이어서 그의 발에 채여 틀어진 검의 선을 그대로 빠르게 투전승불의 오른쪽 머리부터 빗겨서 베었다.

그러자 투전승불은 제임스의 품 안으로 한 발짝 들어가 베기를 피했고, 왼손 주먹을 빠르게 내질러 제임스의 갑옷 흉갑 부분을 강하게 쳤다.

무언가 무거운 것과 정면으로 충돌한 것 같은 일격에 잠깐 자세가 흔들린 제임스의 빈틈을 노리지 않고 투전승불은 다시금 오른손을 크게 휘둘러 그의 옆구리를 강타하였다. 첫 번째 일격에는 자세가 약간 흔들리는 것으로 버텨내던 제임스는 그다음 강타에는 버텨내지 못하였고, 그대로 옆으로 날아갔다.

짧은 공방이 끝나자 투전승불은 제자리에서 대충 두 번 정도 뛰더니 제임스에게 말하였다.

 

이야, 그래도 꼴에 수호기사라는 호칭을 달고 있는 놈답게 꽤나 튼튼한 갑옷을 입고 있잖아? 아무리 그래도 내 주먹에 찌그러지지도 않는다니. 상당히 비싼 재료로 만들었나 보지?”

 

제임스의 실력이 아닌 갑옷을 칭찬함으로써 엄연히 그의 실력을 무시하는 도발을 하는 투전승불의 말에 제임스는 표정이 굳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투전승불을 노려보고는 위협을 하듯 이야기하였다.

 

꽤 자신감이 넘치는군. 그 자신감이 얼마나 갈지 한 번 기대해보겠다. 어리석은 작은 나라의 왕이여.”

 

이어 제임스는 갑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더니 다시금 느릿하게 스텝을 밟고 빠르게 투전승불을 향해 달려갔다.

 

 

***

 

 

이런 젠장, 무슨……

 

대략 한 시간 정도가 지난 후. 지칠 줄 모르고 다시금 날아든 주먹에 제임스는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고 역동작이 걸린 오른손의 검 대신에 왼손으로 급하게 검집을 뽑아내어 투전승불의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막아내었다.

벌써 총합 열 번째 공방이었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그대로 날아간 제임스는 공중에서 겨우 중심을 잡고 뒤로 한 바퀴 돌며 착지했다.

착지 자체는 안정적이지 못해서, 날아가서 착지자세를 잡고도 몇 걸음을 더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지만.

투전승불은 제임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우두둑 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꺾더니 악동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까 말해주려고 했던. 네가 오해하고 있는 사실 첫 번째. 어쩌다 보니 알려주는 게 늦어지기는 했는데 말이지. 나는 무기가 있어.”

 

멀찍이 날아갔다가 성을 내며 검을 뽑아 다시금 자신에게 달려오는 제임스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투전승불은 약간 멀리 떨어진 여의를 바라보며 외쳤다.

 

그리고 동료가 없다고 했었지? 그럼 여기서 두 번째! , 꼬맹이! 저놈이 오해한 두 번째 사실을 네가 알려줘 봐!”

 

정말로 이 전투를 장난스럽게 소화하고 있는 그를 보며 한숨을 푸욱 쉰 여의는 다시금 돌풍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사라져 투전승불의 앞으로 와 여의봉을 휘둘러 제임스의 공격을 받아내었다.

그 때문에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제임스는 그대로 날아가 공중에 붕 떴고, 이내 쿵 소리를 내며 땅에 추락했다.

 

두 번째. 이 바보 녀석은 일단 동료가 있다.”

 

귀찮다는 듯. 여의는 카운터를 맞아 저 멀리 나가떨어진 제임스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그가 떨어진 지점에서 먼지가 자욱하게 흩날리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흥미를 잃었다는 듯,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다시금 한숨을 푸욱. 내쉬더니 여의는 제 옆에 서서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투전승불을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며 아까 날아가 버린 리디아의 검을 건네주었다.

 

무기 같은 것도 생각하고 던져라. 바보 녀석아. 더군다나 이것은 네 놈의 무기도 아니지 않느냐?”

 

어우, 알았다고. 꼬맹이 주제에 트집 잡기는. 그리고 꼬맹이. 봐라. 아직 안 끝난 거 같은데?”

 

아하핫. 하고 투전승불이 다시금 웃음을 터트리고 시선을 뒤로 보내어 제임스가 날아간 방향을 가만히 바라보자, 여의도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다시 뒤로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임스가 날아가 부딪혀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가 흔들리는 느낌이 나더니, 상당량의 흙먼지를 뒤집어쓴 제임스가 그곳에서 나왔다.

제임스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검을 다시 고쳐 들고 투전승불에게 달려왔다.

제임스의 검은 다시금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으며, 아까보다 더 강렬한 힘을 내뿜었다.

 

, 맨 처음에 만났을 때와 똑같이 얻어맞고도 다시 일어나는구나. 인간이라 꽤 힘을 빼기는 했다지만, 네 한심한 발언처럼 갑옷이 좋거나, 아니면 꼴에 맷집은 있다는 것인 게냐.”

 

, 그렇다는 거지? 그럼. 이번엔 내가 상대해주도록 할까.”

 

아무래도 제대로 성이 난 듯. 마치 짐승처럼 달려오는 제임스를 바라보던 투전승불은 다시금 악동 같은 웃음을 머금으며 제임스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맨손과 검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전투가 조금 더 진행되자 여의도 같이 참전하였다.

 

오른쪽 위에서 내려 베는 동작을 투전승불이 받아치고, 그대로 몸의 균형이 흔들려서 비틀거리는 제임스를 여의가 공격한다.

이내, 투전승불은 허리에 차고 있던 리디아의 검을 뽑아 들면서 제임스의 검술에 대응했다.

중앙에서 찌르기가 들어오면 투전승불이 그것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근육을 수축시키면서 제 검을 강제로 다시 끌어와 왼쪽 아래에서 제임스를 그대로 올려 베고, 그것을 제임스가 오른쪽 위에서 내려 베는 동작으로 튕겨낸다.

그리고 제임스의 균형이 흔들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여의가 공격해 들어온다.

그렇게 반복된 합이 다시금 총합 다섯 번을 넘어갈 때, 투전승불은 그대로 땅을 박차고 뒤로 크게 물러나 제임스의 공격 가능 범위에서 벗어나며 말하였다.

 

꼬맹이, 이리와 봐. 해줄 말이 있다.”

 

그의 말을 듣고 여의는 한숨을 푸욱 쉬더니 뒤로 점프하며 그대로 투전승불과 같이 제임스의 검의 범위에서 벗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투전승불은 그녀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나는 이번에도 검을 저놈에게 던질 거야. 그리고 저놈은 또 똑같이 막아내겠지. 저놈은 딱 보니까 자신을 내세우기 좋아하는 놈이걸랑? 이번에도 최대한 자신의 실력을 과시할 수 있는 방향으로 튕겨낼 거다. 잘 보고 있다가 검이 위로 튕겨져 나오면 바로 잡아다가 냅다 베어버리라고.”

 

? . 알겠다. , 애초 내 주인이니까 거절할 수는 없겠지. 어울려주마.”

 

말을 끝내고, 투전승불은 다시 매우 빠른 속도로 들고 있던 검을 제임스에게로 던졌다.

아까와 똑같은 상황에 제임스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조소를 흘렸고, 그의 검을 아까와 똑같은 방법으로 튕겨내었다.

 

똑같은 수가. 심지어 이미 한번 막힌 경우가 있는 그 방식에 내가 당할 줄 안 거냐?”

 

그의 말을 들은 투전승불은 마치 퀴즈쇼를 진행하는 진행자처럼 아쉽다는 한 표정을 그에게 보내더니 이내 희미한 미소를 띠며 그에게 말하였다.

 

, 유감입니다. 제임스 선수. 이번에는 정답이 아니군요!”

 

그 직후였다. 투전승불이 의도한 방향대로 날아간 리디아의 검이 공중에서 모습을 감추는 것 같더니.

이내, 마치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그 검을 쥔 여의가 제임스를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빠르게 베어버렸다.

 

……!!!”

 

찰나의 순간. 여의가 휘두른 그 검은 제임스의 갑옷이 무색할 정도로 매우 빠른 속도로. 그리고 매우 확실하게 그의 갑옷을 부수었다.

부서진 갑옷은 여의의 이어지는 두 번째 참격을 막아내지 못했고, 검은 그대로 부서진 갑옷 안쪽을 파고들어 제임스를 베었다.

빠르게 휘두른 그 검은 충격이 강한 돌풍도 동반하였는데 그 돌풍이 일으킨 충격이 그의 배를 타격하였고, 그 때문에 비명도 내지 못한 채 여의의 공격에 내상을 크게 입은 제임스는 이내, 새빨간 피를 새하얀 제 갑옷 위로 토해내었다.

제 갑옷을 빨갛게 물들인 피를 보고 제임스는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한 말투로 투전승불에게 말했다.

 

대체 어느 틈에……?”

 

그의 반응을 가만히 바라보던 투전승불은 제 귀를 후비적거리며 한숨을 푸욱 쉬더니 아까부터 짓고 있던 장난기가 가득했던 표정을 지우고 진지하고 무거운 눈빛으로 제임스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네 놈 말이다. 아까부터 우리를 얕보고 있었지? 이번에도 내가 검을 던졌을 때, 이 멍청한 놈이 참패를 당하려고 그런다고 생각했냐?”

 

여의가 들고 있는 검을 투전승불에게 던져주자 투전승불은 그것을 오른손으로 받아 한 바퀴를 돌리고 자신의 어깨 위에 걸쳤다.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그는 이내 다시금 날카로운 시선을 그에게 보내며 말을 이었다.

 

눈감고도 막을 수 있는 이런 공격밖에 못 하는 한심한 놈이라고 멋대로 판단하기라도 했냐? 내가 이번에 네 놈한테 검을 던진 건 아무런 계획도 없이 어떻게든 해먹어보려고 한 게 아니야. 네 놈은 정확하게 내가 예상한 방향대로 검을 튕겨내었고, 나는 이미 우리 꼬맹이한테 그쪽으로 검이 날아갈 것이니 받아서 바로 공격해버릴 준비를 하라고 했었지.”

어깨에 걸치고 있던 검을 리디아에게 돌려주고는 한숨을 길게 내뱉은 투전승불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마무리 지었다.

 

그게 네 놈이 이렇게 공격을 받은 이유다. 너는 적을 너무 얕봐. 이 싸가지 없는 자식아.”

 

투전승불이 말을 마치자 그의 옆에 흰색의 빛기둥이 쾅. 하고 내리쳤다. 그것이 사라지자 그곳에는 한 손에 금색으로 빛나는 봉에 용이 승천하는 것 같은 조각이 장식된 여의봉을 들고 있는 여의가 서 있었다.

 

쯔읏……주인만 아니었으면 이런 짓은 하지도 않을 터인데……

 

자신을 부려먹기만 하고 정작 싸움에 진지하게 참여하지 않는 투전승불에게 불평을 하듯 투덜거리던 여의는 묘기를 부리듯 여의봉을 두어 번 공중에서 돌리더니 어깨에 걸치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받은 투전승불은 여의의 불만은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시선을 돌려 제임스의 거동을 잠깐 살펴보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멍하니 있는 그의 모습에 투전승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제임스에게 말하였다.

 

너희 왕님한테 전해라. 이 투전승불님을 쓰러트리려면 그쪽에서 여기로 기어들어 오라고. 그리고 나는 그렇게 쉽게 당할 만큼 약한 놈이 아니니까 다음에 나를 암살하게 할 부대를 짤 생각을 하고 있다면 산전수전 다 겪은 엄청난 베테랑으로 최소 백 명 이상 모아서 와야 한다고. , 진짜로 백 명을 모아온다고 해도 나를 이길 가능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끝으로 투전승불은 이미 흥미를 잃었다는 듯이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어서 전투 때문에 부서져 버린 성곽을 바라보고 한숨을 푸욱 쉬었다. 언제 다 수리할지 막막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겠지.

 

그때였다. 쓰러져있던 제임스는 실성한 듯 웃음을 터트리더니 광기를 가득 머금은 웃음을 지으며 검을 다시금 빼 들었다.

 

이것까지는 쓰려고 하지 않았는데. 하하하! 네 놈이 기어코 내가 이걸 쓰게 만드는구나!!! 받아보아라. 성물. 데돌로!!!”

 

이변이 일어난 것을 눈치 챈 듯. 투전승불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바라보고 몸을 돌렸을 때, 옆에서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리디아가 절규하듯 외쳤다.

 

성물…… 잠시만. 성물이라니?! 제임스 당신. 이렇게 민간인이 많은 이곳에서 그것을 꺼내려는 것입니까! 그런 위험한 무기를 꺼내 이곳의 왕을 겨누는 것은 엄연히 이 나라에 정면으로 선전포고하는 행동입니다!! 그렇게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당신의 군주가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을 텐데요?”

 

하지만 리디아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이 그 순백색 갑옷을 입은 기사는 눈을 감고 온 힘을 자신의 검으로 보내듯 그 자리에 서서 자세를 잡고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그의 검에서 아까와 같은 붉은색의 빛이. 하지만 그것보다는 조금 더 혈색에 가까운 빛이 검을 휘감았고, 그대로 새로운 도신의 모양을 이루어가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 검에서는 아까와 같은 날카로운 금속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블러드레드 빛의 그 광채가 사라질 즈음 그가 들고 있던 검의 도신은 더욱 얇아지고, 또한 한 뼘 정도 더 길어져 있었다. 거기에 검 날에는 얼핏 보면 피와도 비슷한 붉은색이 물결무늬처럼 스며들어있었다.

검의 방패는 마치 악마의 뿔처럼 한쪽이 도신의 아랫부분에 가깝게 휘어져 있었다. 다른 한쪽은 그와는 반대로 아래로 휘어 손잡이와 딱 마주쳐있었다.

날은 한쪽밖에 없었기에 그것은 검이라기보다는 도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따금 그 도의 날 부분에서 붉은빛이 반짝거렸다.

도의 모양 자체도 일반적인 도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도의 등 부분은 마치 톱날 같은 모양이 자잘하게 이루어져 있었고, 도의 끝부분은 위로 짧지만 확실하게 휘어있어 그것이 깊숙이 찔러 들어오면 꽤나 큰 치명상을 입을 것 같았다.

 

제임스가 꺼내든 성물-데돌로를 본 리디아는 투전승불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주군. 저자가 지금 꺼내든 무기는 성물이라는 것으로 주군이라고 하셔도 잘못하면 치명상을 입으실 수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피해 브리욜프를 데리고 다시 오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성물이라는 것은 절대로 무시를 할 수 없는 무기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들은 투전승불은 콧방귀를 흥. 뀌더니,

 

, 간단하게 말하면 저놈이 지금 꺼낸 저게 필살기인가 뭔가 뭐 그런 거 아니야? 그래그래. 그렇게 진지해져야 나도 싸울 마음이 생기지. 성물인지 뭔지 전부 때려 부숴주지.”

 

살기가 가득 담긴 미소를 지으며, 여의봉을 꺼내 들었다.

조금 전에 성안에서 리디아가 설명한 것처럼 그가 여의봉을 꺼내도 여의에게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투전승불은 전생에서 자신에게 그 어떤 무기보다도 익숙하게 사용했던 그 금색의 봉을 들고 몸을 풀 듯 큰바람을 일으키며 화려하게 돌려보았다.

여의가 가지고 있는 여의봉보다는 조금 더 아름다운 금색의 빛이 이제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한 성의 밖.

그들이 대치하고 있는 그 평지를 밝게 비추었다. 성안의 도시와는 별개로 자신만의 빛을 뿜어내는 그 여의봉은 맨 아랫부분부터 윗부분까지 용이 승천하는 한 조각이 섬세하게. 비늘 하나하나까지 묘사되어 장식되어있었고, 그 끝에 달린 매우 단단해 보이는 진주는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그것이 내는 빛과 아래의 봉의 몸체에서 나오는 그 빛이 합쳐져 아름다운 색을 띠었다.

 

, 나도 그럼 슬슬 진지해져야겠지? 리디아. 너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호기심에라도 오지 못하게 잘 막고 있도록. 빨리 끝내고 저녁이나 먹자고.”

 

주군!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주군이라 하여도 위험합니다!”

 

그를 말리려는 리디아를 여의가 안아 들고 뒤로 크게 점프하여 투전승불의 주변에서 벗어나며 이야기하였다.

 

. 드디어 제대로 할 마음이 든 것이냐, 옛날부터 강자가 아니면 전투를 대충대충 해버리는 그 습관은 버리지를 못하는구나.”

 

여의!? 어째서 저를 같이 데려가시는 겁니까! 어서 주군을 말리셔야 합니다!”

 

쓰으으네 녀석도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구나. 얌전히 보고 있거라. 애초 저 녀석이 저런 한심한 놈에게 질 것 같은 어리석고 약해빠진 놈이었으면 내가 주인으로 인정하지도 않았을 터이니.”

 

여의봉을 어깨에 걸치며 투전승불은 거의 여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성물-데돌로를 들고 사납게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제임스에게로 도약했다.

그가 추진력을 얻기 위해 발돋움을 한 그 땅은 순식간에 주변이 금이 가고 큰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일순간 쾅. 하는 아주 큰 소리가 들렸고, 투전승불이 방금까지 있었던 공간은 마치 뭔가가 그 공간 자체를 도려낸 듯. 주변 공기를 흡수했다가 순식간에 뱉어내었다.

그가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먼저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제임스도 성물-데돌로를 고쳐 잡고 대응했다. 붉은색과 황금색의 빛이 충돌했고, 그 주변의 공간을 찢어발기고, 집어삼켰다.

 

 

***

 

 

창문으로 붉게 물든 하늘의 노을빛이 스며들어와 방 안을 밝혔다. 분위기 있는 초가 타고 있는 책상 위에는 종이로 된 편지 한 장과 뻣뻣해 보이는 깃털로 만들어진 펜 하나가 잉크병에 꽂혀있었다. 종이 자체는 약간 오래된 것 같이 색이 살짝 바래있었는데, 그 덕분에 오히려 종이가 엄중하고도 중요한 한 분위기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살짝 찢어져 있는 종이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여신 천선낭랑님께.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는 오래전 여신님께서 방문하셨던 옵타움이라는 작은 나라의 책사를 맡고 있는 톰보우라고 합니다.

오래전 여신님께서 이곳에 처음 오셨을 때, 이곳을 다스려달라는 백성들의 이야기를 정중하게 거절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그 시대에는 한 나라의 새로운 왕이 취임하고, 군대를 양성하며, 국력을 기르는 것이 평화를 위협하기만 하는 쓸모없는 짓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시겠지요.

여신님의 입장은 이해가 갑니다. 또한, 그것에 대해서는 저희 성의 그 누구도 나쁘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신님의 평화를 생각하는 그 마음은 저희, 아니. 이 세상의 어느 인간이라도 확실하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여신님께 오래전 그 시절을 이어 다시금 이렇게 이야기를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재 이 세상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깊은 숲속에서만 자신들의 터전을 만들고 살아가던 고블린, 오크 등의 마물들. 그리고 오랜 옛날. 영웅이라 불리던 자들이 힘을 합쳐 마계에 봉인해놓았었던 마족들이. . 흔히들 백성들에게 익스마르짐라 불리던 그 존재들이 숲을 넘어 인간들의 삶의 터전을 침범하고 있습니다.

벌써 이 주변의 나라들은 새로운 익스마르짐의 출몰에 대비하여 군대를 양성하고 있으며, 그들이 정복하여 잃어버린 땅을 메꾸려 다른 나라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옵타움도 마찬가지여서 지금 이 상황에서도 전선에서는 수많은 병사가 비명을 내지르고, 수많은 백성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전쟁을 쉽게 끝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따라서 조금의 병력이라도 긁어모아 전쟁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신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옵타움에는 여신님과 같은 방식으로 이곳으로 오시게 된 또 다른 인 투전승불께서 계시며, 그분께서 이 옵타움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여신님께서는 그분의 머리가 되어 그분을 도와 옵타움의 평화를. 나아가서는 익스마르짐으로부터 이 세상을 지키는 데에 힘 써주셨으면 하고 이 늙은이는 바라고 있습니다.

 

더 많은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저희에겐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여신님의 좋은 말씀을 기다리겠습니다.

 

 

***

 

 

 

춤춘다. 금색의 빛이. 비명을 내지른다. 붉은색의 빛이.

 

발악하며 달려든다. 붉은색의 빛이. 그 빛을 비웃는다. 금색의 빛이.

 

 

이런말도 안 되는…‥

 

현재 리디아는 말도 안 되는 장면을 두 눈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성물이라는 매우 위험한 무기를 꺼내든 제임스. 그리고 그것을 당당하게 때려 부수겠다.’라고 말한 투전승불. 그리고 그는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말도 안 되는 전투 장면을 계속해서 리디아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성물이라는 것은 본디. 이 세계에서 가장 순도가 높은 정령석이라는 물질로만 만들어지는 무기로.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그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매우 긴 시간과 상당한 마법력, 연금술 지식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만한 엄청난 무기를 꺼냈다는 사실에 놀라는 기색조차. 오히려, 즐거운 한 웃음을 짓고는 성물을 사용하는 상대방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전투하고 있는 투전승불을 보고는 리디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생하여 금방 깨어난 것이라고는 절대로 볼 수 없을 법한 전투 실력과 그 완력은. . 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입증하는 것 같았다.

 

!! 네 놈. 도대체 정체가 무어냐?! 성물을 상대로 이 정도의 전투력을 보인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을. 한 국가의 평범한 왕이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파죽지세로 몰아붙이고 들어오는 투전승불의 여의봉을 겨우겨우 막아내던 제임스는 힘겹게 절규하듯, 한 마디를 투전승불에게 내뱉었다. 제임스의 말을 들은 투전승불은 한쪽 입꼬리를 비죽. 끌어올려 비소를 머금으며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쾌락. 살기. 본능. 갖가지 감정들이 섞여 보이는 그의 눈빛은 제임스를 떨게하기에 충분했고, 그 때문에 둔해지는 제임스의 움직임을 눈치 챈 투전승불은 다시금 비소를 머금으며 말을 꺼냈다.

 

네가 처음에 나한테 말을 걸기 전에 우선 생각했어야 하는 게 뭔 줄 아냐?”

 

! 젠장. 젠장!!”

 

살기 어린 눈빛을 제임스에게 보내며 제임스의 머리 쪽을 날카롭게 여의봉으로 찔러 들어간 투전승불은 그것을 겨우겨우 막아내며 욕지거리를 내뱉는 제임스를 보고 다시금 비소를 내뱉고는 말을 이었다.

 

그건 말이야, 나의 존재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다. 나는 투전승불. 어이없이 뒈져버리고 이 세계로 소환당해서는 한 나라를 책임져야 하는 왕님이 되신 분이다. 평범한 왕? 웃기는 소리. 나는 신. 천상계에서 구르던 신님이다. 큭큭. 이제 좀 무섭냐?”

 

자신이 찔러 들어간 여의봉을 제임스가 쳐내자 그 반동을 이용해 강제로 궤도를 틀어 그대로 매우 강하게 제임스의 복부를 후려친 투전승불은 자신에게 맞아 멀리 날아가 버리고, 그대로 의식을 잃은 것 같은 제임스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여의봉을 어깨에 걸치며 가볍게 한숨을 툭 뱉고는 느릿하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네 놈이 나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이유는 상대를 얕보고 내내 거만한 자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만함이라는 게 얼마나 자신을 망치는 매우 안 좋은 감정인지 그 몸으로 몸소 깨달았겠지.”

 

말을 마치고 투전승불은 뒤를 돌아 리디아와 여의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방금까지의 살기가 가득 담긴 눈빛에서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바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였다.

 

생긴 것도 엄청나고. 성물이라는 대단한 이름이 붙었길래 나도 전생하고 몸 좀 풀 겸. 진지하게 하려 했더니만 이렇게 쉽게 쓰러지다니. 설마 모든 성물이 이러는 거냐? 리디아.”

 

분명히 그녀를 포함한 평범한 인간들에게는 같은 성물을 들지 않고서야 상대하는 것조차 벅찬 성물을 그렇게 간단히 제압하고는 뱉는 말에 다시 한 번 신이라는 존재가 터무니없이 강력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리디아는 잠깐 멍하니 있다가. 호흡을 가다듬고는 그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아닙니다. 성물은 본디 이곳에서 가장 구하기 힘들다는 정령석을 원재료로 그것을 오랜 시간 벼려 내 만들어내는 무기로. 매우 뛰어난 연금술과 마법. 혹은 상당한 실력을 갖춘 장인 대장장이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서야 완성하는 것도 힘듭니다.”

 

허리에 차고 있던 검집을 다시금 고쳐 매며 리디아는 말을 이었다.

 

또한. 그것이 완성된다고 해서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성물의 진정한 힘은 그것을 오래 사용하여 그것을 다루는 것이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매우 익숙해졌을 때 비로소 깨어나는 것이지요.”

 

그래도 여전히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한 표정을 한 투전승불을 바라보며 리디아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제임스는 성물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리 성물이 신구에는 못 미친다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또한, 압도적으로 패배할 정도로 약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 어쨌든 결론적으로 저 녀석은 내가 몸을 푸는 데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은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다니까. . 이렇게 약한 놈이 수호기사라는 직책에 있다니.”

 

신이라는 출생을 타고난 그가 할 말은 아닌 거 같다고 생각한 리디아는 가볍게 쓴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성곽 안에. 정확히는 난장판이 된 중앙광장을 살펴보았다. 처음 그것을 보았던 투전승불처럼 리디아는 오늘 몇 번 쉰 것인지 모를 한숨을 다시금 길게 푸우욱 내쉬었다.

 

그래도 성물이라는 거군요. 방어마법으로 보호되던 성곽이 이리도 쉽게 붕괴되다니붕괴된 성곽과 광장은 사람을 불러 원상복귀 시켜놓도록 하지요.”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서 부서진 성곽에서 날아온 돌멩이를 하나 집어 들던 리디아는 그것을 잠깐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시선을 투전승불에게로 가져갔다.

 

주군. 브리욜프가 걱정할 터이니 들어가서 이 상황을 알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톰보우 어르신께 외성의 성곽에 둘러진 마법의 강화도 요청할 겸 말입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투전승불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여의에게 공격받아 바닥에 나자빠져 기절해버린 제임스 휘하 기사들 중 한 명을 아무나 골라 그를 깨우고 말하였다.

 

. 추운 데서 잠들면 턱 돌아간다. 어서 일어나. 그리고 돌아가서 저놈 위에 있는 놈에게 내 말을 그대로 전해. '투전승불' 님께서 이곳에 강림하셨고, 나를 보고 싶으면 본인이 본인 발로 직접 기어들어 오라고. 왕이면 왕답게. 서로 당당하게 얼굴 마주 보고 대화 나눠야 하지 않겠냐?”

 

구질구질하게 따까리나 부르지 말고. 라는 비아냥거림은 겨우겨우 삼켜내며. 여의봉을 다시 넣은 투전승불은 자신의 말을 듣고 헐레벌떡 뛰어가는 기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바닥에 쓰러져있는 제임스. 그리고 그의 나머지 기사들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 귀찮지만 여기다 버려두면 곤란하니까. 나무에 기대어놔야겠군.”

 

쓰러져있는 기사들을 업어다가 용케 그 전투에서 끊어지지 않은 나무에 기대어놓은 투전승불은 어깨를 두어 번 돌리고 가벼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 그러면 이제 성안으로 들어갈까.”




신들의 전쟁 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