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말기 화면의 용병 임무 아이콘을 클릭한 후 "곰 5마리 사냥: 150피코"라는 항목을 다시 클릭했다. 경쾌하게 띠링 소리가 들린다. 

"용병 임무가 추가되었습니다. 추가된 임무는 곰 5마리 사냥입니다. 임무 수행을 완료하면 설정에 따라 용병 길드에 자동으로 완료 메시지를 전송하겠습니다."

나는 스파링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파링 방금 전에 곰 5마리 사냥을 용병 임무에 추가했어."

"그래 나도 그 업무를 임무에 추가하겠어."

숲의 외곽을 돌아가며 곰이 출몰한다고 하는 지점으로 이동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따금씩 늑대를 만날 뿐이었는데, 우리는 웬만해서는 늑대를 자극하지 않고 피해서 다녔다. 지금은 애궂은 늑대를 사냥할 것이 아니라 곰을 찾아가는 것이니까. 

한 동안 숲을 정찰하듯 걸어가고 있자니 전방에서 늑대가 출현했다. 

"스파링, 어디 동물과의 교감 능력을 시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자네라면 충분히 교감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봐. 전혀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지만, 이번에 실패하더라도 꾸준히 노력한다면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밑져야 본전이겠지. 한번 시도해봐야겠어. 사실 나도 오크 장로가 늑대의 귀를 쓰다듬으며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볼 때 엄청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으니까."

 

나는 제자리에 멈췄다. 스파링은 홀로 당당하게 늑대에게 다가갔다. 늑대는 매서운 눈초리로 으르렁거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더니 스파링을 향해 입을 벌린 채 껑충 뛰어들었다. 스파링은 늑대의 입을 무서워하지 않고 고개를 뻣뻣하게 들어 늑대의 눈을 계속 바라보았다. 위험한 순간이 찾아왔다. 늑대의 입이 스파링의 목을 물어뜯으려는 순간 스파링은 몸을 살짝 옆으로 틀면서 왼손의 방패로 늑대의 주둥이를 밀어냈다. 그러면서 오른손을 활짝 펴 늑대의 옆구리를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쓰다듬는 동작을 취했다. 


역시 스파링은 야생 동물을 다루는 법을 아는 오크다. 오크는 본능적으로 야생을 사랑하고 맹수와 대적하기보다는 그 특성을 몸으로 체험하기를 원하는 종족이다. 스파링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던 야생성이 더욱 분출될 것이고, 그것이 맹수의 야생성과 만나 공통분자를 찾아낼 것이다. 


스파링의 손바닥을 느낀 늑대는 스파링에게서 멀리 떨어져 멈추어섰다. 늑대는 여전히 미간을 찡그리며 코를 벌렁거린다. 입으로는 더욱 그르렁거리며 이빨을 앙다문다. 이제 늑대는 스파링의 눈을 힘을 주어 노려본다. 누가 눈싸움에서 이기는지 시합을 하려는 듯했다. 스파링도 지지 않고 늑대를 노려본다. 


다시 늑대는 입을 벌리며 스파링을 목을 노려 쇄도해왔다. 스파링은 전번처럼 고개를 쳐들어 늑대를 노려보는 듯한, 호소하는 듯한 눈빛을 거두지 않다가 슬쩍 옆으로 피해 늑대의 옆구리를 쓰다듬는다.   


동일한 행동이 여러번 반복되었다. 나의 관찰로는 늑대보다는 스파링의 눈빛에 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노려보는 듯한 스파링의 눈은 이제 온전히 호소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늑대는 뭐가 뭔지를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것처럼 보였다. 머뭇거리던 늑대는 포기한 듯이 제 자리에 멈추어 배를 땅바닥에 두어 앉았다. 스파링은 늑대에게서 눈을 거두지 않은 채 천천히 늑대에게 다가갔다. 늑대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있다. 스파링은 늑대의 주둥이를 쓰다듬고 귀를 어루만졌다. 나중에는 얼굴을 서로 부빈다. 


나는 감격스러워서 박수를 쳤다. 

"스파링, 놀라운데, 교감에 성공했구나!"


이 때 늑대는 벌떡 일어서더니 나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나에게 달려들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스파링은 부드럽게 워워 소리를 지르며 늑대의 옆구리를 쓰다듬었다. 분노한 듯하던 늑대는 다시 진정했다. 


나는 스파링과 늑대를 향해 걸어갔다. 늑대는 내가 다가갈수록 분노를 표출했지만 스파링은 늑대를 계속해서 누그러뜨렸다. 


나와 늑대 사이에는 한 발자국만 남았다. 나는 반 걸음을 다가가 손을 뻗어 늑대의 옆구리를 쓰다듬으려고 했다. 늑대는 갑자기 주둥이를 밀며 입을 벌려 내 손을 물어뜯는다. 나는 재빨리 손을 빼며 물러나면서 본능적으로 칼을 뽑았다. 

"한누리, 잠깐만!"

나는 칼을 다시 거두었다. 가만히 서있었다. 스파링은 나와 늑대를 번갈아보며 늑대의 주둥이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늑대가 진정을 하자 나는 다시 늑대에게 다가가 슬쩍 그 옆구리를 쓰다듬는 듯하다 물러나 미소를 지었다.

"스파링, 역시 내가 늑대와 자네처럼 교감할 수는 없나 보네." 

"그야 당연하지. 인간과 오크가 같은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니까. 아마 자네가 오크였다면 늑대는 더 얌전하게 굴었을 걸." 


스파링이 길들인 늑대는 우리를 쫓아왔다. 다시 우리는 다른 늑대와 조우를 했고, 이번에는 전과 비슷한 방법으로, 그러나 한결 짧은 시간 안에 늑대를 길들일 수 있었다. 스파링이 다른 늑대를 길들이는 동안 이미 길들여진 늑대는 뒷다리 바닥에 두고 앞다리노 선 채 얌전히 스파링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스파링이 늑대 두 마리를 길들인 다음에 우리는 웬만하면 늑대를 피해서 걸어갔다. 곰이 출현하는 곳으로 가는 데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단말기에 입력된 대로 곰이 자주 출현하는 지점에 근접했다. 

"스파링, 곰이 출현하면 늑대한테 싸워보라고 시키는 어때?"

"늑대가 상처를 입을 텐데.... 늑대가 곰보다는 몸집이 작다고 하거든."

"아직 곰을 본 적이 없어?"

"아직까지는 늑대만 사냥을 했거든."


우리는 곰 만나기를 고대했다. 늑대와 곰의 밀집도가 다른 듯했다. 동일한 면적에서 아무래도 곰보다는 늑대가 더 많이 서식할 것이다. 


곰 출현 지역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아직 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스파링과 나는 나무 둥치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늑대들은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 

"스파링, 늑대한테 따라오라고 명령을 내렸어?"

"명령을 내린 것은 아니지. 늑대는 나를 동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런가? 늑대가 스파링 너를 동료 중에서도 우두머리로 생각하는 걸까?"

"그것은 잘 모르겠어. 동물은 본능적으로 무리 가운데 가장 경험과 지능이 많은 자를 따르게 되어 있지. 내가 설마 일반 늑대보다 지능이 딸리는 것은 아닐 테니, 아무래도 늑대가 나를 따르는 것이겠군." 


10여분 쉬고나서 막 일어서려는 참이었다. 늑대가 으르렁거린다. 늑대의 경계가 향하는 쪽을 바라보니 곰이 뒷발로 선 것이 보인다. 


스파링이 몸을 일으켜 곰쪽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순간 곰도 달려오기 시작한다. 이 때 늑대가 곰에게 덤벼들었다. 


곰은 다시 뒷발로 일어서 앞발을 휘두른다. 늑대 두 마리는 곰의 주위를 빙 돌더니 헛점을 노려 돌진했다.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이루어졌다. 


스파링과 나는 정신차릴 사이도 없이 늑대와 곰의 움직임을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무장을 갖추어 곰에게 달려갔다. 


곰은 양쪽에서 달려드는 늑대를 마치 타자가 야구공을 날리듯 왼발 오른발을 휘둘러 땅으로 내동댕이쳤다. 스파링은 소리쳤다. 

"안 돼!"

스파링은 아드레날린의 폭주에 휩싸였다. 나도 스파링을 뒤쫓아 곰에게 돌진한다. 스파링은 방패를 던짐과 동시에 도끼를 하늘 높이 처들며 뛰어올랐다. 방패의 둘레로 톱니바퀴가 튀어나와 무서운 속도로 돌왔다. 톱니바퀴로 둘린 방패는 곰의 두 앞발을 잘라 공중에 뜬 스파링에게로 되돌아가는데, 스파링은 방패에 게의치 않고 온힘을 다해 늑대의 머리통에 도끼를 내리찍었다. 

나는 머리가 찍힌 채로 뒷발로 서있는 곰의 심장에 검을 꽂아넣었다. 곰은 멍한 표정으로 한 동안 서있다 고목이 쓰러지듯 맥없이 뒤로 넘어졌다. 

스파링은 한숨을 푹 쉬었다. 순간적으로 너무 많은 힘을 쏟다가 긴장이 풀리자 정신줄이 풀린 것이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단도를 뽑아 늑대의 배를 가르고 쓸개를 꺼냈다. 쓸개는 미리 준비한 수집함에 넣었다. 

방금 전에 벌어진 싸움에 미루어 짐작하건대, 곰의 전투력은 늑대의 3-4마리에 필적한 것으로 보인다. 곰은 D등급으로서 최상위의 용병이거나 C등급을 넘어서야만 겨우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스파링, 곰 고기는 정말로 맛이 없을까?" 

"난들 아나? 다들 맛이 없다고 하던데."

"그래, 뱉어내더라도 한번쯤은 먹기를 시도해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래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지만, 곰 구이를 준비했다. 스파링은 곰의 고기를 잘라 늑대에게 던져준 후 주변을 돌아다니며 나뭇가지를 주웠다. 

우리는 곰 고기를 높이 들어올려 구웠다. 나뭇가지를 태운 연기를 많이 머금게 해서 곰 특유의 냄새를 줄이려는 것이었다. 

지글거리는 곰 고기를 잘라 맛을 보았다. 약간 비릿한 냄새가 맡기기는 하였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대로 먹을 만한 고기인데 왜 사람들은 잘 먹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곰 고기를 맛보고 있는 사이 냄새를 맡고 다가오는 존재들이 있었다. 다름아닌 이 지역에서 사냥에 열중하던 용병들이었다. 

"어이, 오늘 처음 보는 얼굴들인데, 곰 고기의 맛은 어떻소?"

"그럭저럭 먹을 맛은 있더군요. 자주 먹을 것은 아니구요. 모처럼의 별미로 먹어봤습니다."


엘프 미녀 리라의 약혼자인 카라쿠롬이 궁금해졌다. 

"혹시 엘프 카라쿠롬도 이 근처에서 사냥을 하고 있나요?"

"아, 카라쿠롬을 아나요? 그 사람도 이 근처에서 사냥을 하고 있을 겁니다."

"카라쿠롬은 개인적으로 잘 아는 것은 아닌데, 최근에 인사를 나눈 적이 있거든요."

"카라쿠롬은 뛰어난 사냥꾼이죠. 혼자서도 곰을 사냥할 수 있으니까요. 곰 사냥은 보통 둘이 하거든요. 앞으로 당신네들도 이곳에서 사냥을 할 계획이요?"

"저희는 이곳에 사냥을 하기 위해 왔다기보다는 뭔가를 조사하기 위해 왔어요. 내일 본격적으로 조사에 나설 것인데, 미리 현지답사를 나온 셈이죠. 이제 곰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는지를 몸소 체험을 했으니까 내일 조사에 도움이 되었네요. 이제는 숲에서 벗어나 내일 조사를 위한 준비를 할 생각입니다. 그럼, 안녕히들 가세요."


먼 발치로 용병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불을 끄고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단말기로 오토바이의 인공지능에게 우리가 있는 곳부터 숲 외곽까지의 가장 가까운 지점으로 와서 대기하도록 원격운행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숲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는 오토바이에 탔다. 나는 스파링에게 말했다. 

"스파링, 자네는 숙소에 가서 일찍 자도록 해. 나는 메갈로폴리스에 가서 늑대 눈알로 풍토병 해독제를 제조해서 가져올 거니까." 

나는 제약업자의 좌표를 입력하여 오토바이를 운행시킨 후 한숨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