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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다. 분명히 통제실에서의 상황 전달에서는 13 개체였다.

 

이미 자신이 처리한 것만 해도 3 개체, 그럼에도 계속 나타나고 있다.

 

아니, 아무래도 좋았다. 명령은 명령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유나는 통신 단말에서 들려오는 도심 증원 명령에 탄창을 마저 갈고서 빠르게 움직였다.

 

빈 탄창이 공기를 가르며 빈 콘크리트 숲의 나무들에 떨어졌다.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며 낙하하는 탄창이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도심은 비어있었고 자신은 당장 탄창을 회수할 시간조차 부족했다.

 

도심으로 가까워질 수 록, 희미한 산과 같던 것이 기묘하게 꿈틀거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부사령관님, 명령을!”

 

“아, 전력으로 저 아가리를 부숴버린다."

 

깍지 쥔 양손으로 턱을 받치고 있던 부사령관이 싸늘하게 말했다.

 

전송되는 화면에 담긴 괴수의 모습에 정적이 감돌았다.

 

구경 40mm 전동 소총이 쏟아내는 철갑고폭탄의 폭발음이 그 정적을 깼다.」

 

「“을종 보행기 기동 중, 증원 바람”

 

괴수의 두꺼운 외피가 40mm 철갑고폭탄에 두들겨 맞으며 붉은 피를 대지에 쏟았다.

 

하지만 유효 사정거리의 끄트머리여서인지 그 이상의 효과는 없어 보인다.

 

아니, 애초에 40mm 철갑고폭탄의 화력이 그 괴수에게 있어서는 보잘것없는 것이라는 판단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강한 화력이 필요했다.

 

판단을 마친 유나가 달려 나가던 것을 멈추고서 전동 소총을 버리듯 내던졌다.

 

멈춰 선 유나는 크라우칭 자세에 들어갔다.

 

“175mm 타격포 개방”

 

보행기의 등 뒤에 날개같이 접힌 4개의 포신이 일제히 솟아오르며 전방을 겨눴다.

 

 

“사격 개시”

 

그와 함께 어깨를 내리누르는 듯한 반동이 강하게 보행기를 짓눌렀다.

 

보행기를 받치던 아스팔트 도로는 그 반동을 더 이상 못 이기겠다는 듯 균열이 일으켰다.

 

그렇게 175mm의 포신을 떠난 철갑고폭탄들이 괴수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포신이 뜨겁게 달궈지며 분노를 토해내듯, 포탄을 쏟아냈다.

 

자신에게 향하는 괴수들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괘념치 않았다.

 

40mm의 전동 소총을 맞아내던 것과는 달리 눈에 띄게 경련을 일으키는 괴수의 반응을 보아, 175mm 타격포는 괴수에게 꽤나 유의미한 타격을 주고 있는 게 분명했다.

 

명령을 완수해야 한다.

 

이대로 멈출 순 없다.

 

연거푸 분노를 토해내는 175mm 타격포의 포성은 멈추지 않았다.

 

전 탄 소모를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지척에 달한 괴수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게 분명했다.

 

괴수는 마침내 유나의 코앞까지 다다랐다.

 

이대로 끝인 걸까?

 

산 같던 괴수를 주시하던 시야가 가려졌다.

 

우악스럽게 휘둘러지는 괴수의 팔이 앞을 가득 채웠다.

 

눈을 감았다.

 

선명히 느껴질 고통은, 시끄러운 강철의 소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괜찮아?”

 

다급하고 떨리는 목소리가 통신 단말로 흘러 들어왔다.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괴수와 유나 사이를 가로선 채 초합금 방패로 막아서는 보행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단?”

 

무모한 행동이었다.

 

초합금 방패가 얼마나 견뎌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제 달려온 걸까? 왜 나는 몰랐지, 175mm의 포성에 보행기가 근접하는 소리도 못 들은 걸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내가, 내가 버틸 테니까!”

 

“무모한 행동, 초합금 방패가 얼마나 견딜지 모름......”

 

갈증과 긴장에 메마른 목이 평소의 소리를 내지 못하고 갈라졌다.

 

“너는 저 지랄맞은 것에만 집중해!”

 

“전 탄 소모까지 21초”

 

평소처럼, 무미건조한 대답이었지만 거기에 담긴 희미한 감정의 조각을 느낄 수 있었다.

 

안도감,

 

“21초, 21초!”

 

21초를 기도문처럼 외치던 단이 유나와 괴수의 거리를 더 벌리겠다는 듯 초합금 방패에 체중을 실어 밀어냈다.

 

밀려서 멀어져 가는 그들의 모습 사이로, 175mm 철갑 고폭탄이 두들기던 괴수의 모습이

 

들어왔다.

 

괴수는 더 이상 아가리를 꿈틀거리며 다른 괴수들을 토해내지 못했다.

 

긴장이 조금씩 풀려간다.

 

이제 전 탄 소모까지 3초, 얼마 안 남았다. 괴수의 행동을 무력화했으므로 설령 살아있더라도 근접해서 제압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이 마칠 즘, 단의 통신 회선에서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다.

 

뭐지?

 

아가리를 주시하던 시야가 정면을 바라보기까지의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갑종 보행기의 복부가 괴수의 징그러운 팔에 관통되어 피를 줄줄 흘렸다.

 

타격포의 포성이 멎었다.

 

그제야 괴수의 끔찍한 고성이 들려왔다. 비열한 웃음 같았다.

 

관통상을 입은 갑종 보행기의 복부는 울컥이며 피를 쏟아냈다.

 

이리저리 뒤척이는 괴수의 팔이, 갑종 보행기의 복부를 헤집었다.

 

보행기가 어렵사리 어깨에 수납된 고주파 절단기를 꺼내 들었다.

 

괴수의 비명이 들려왔다.

 

자신을 관통한 괴수의 팔을 절단한 갑종 보행기가 손을 잃고서 비명을 지르는 괴수를 침묵시키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보행기가 힘없이 무릎 꿇고 쓰러졌다.

 

“갑식 갑종 보행기에서 통신 두절, 활력 징후 감지되지 않습니다. 보행기 대파!”

 

불안한 내용의 보고가 단말을 통해 터져 나왔다.

 

한시라도 빨리 단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어깨가 화끈했다.

 

오른쪽 옆으로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튀었다.

 

강한 충격이 등 뒤에서 덮쳤다.

 

 

당한 걸까,

 

혹시나 하는 의문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까드득’ 거리는 소음과 함께 확신으로 변했다.

 

어깨가 찢어질 것 같은 통증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자신의 뒤를 마음대로 유린하려는 괴수를 애써 무시하고, 힘없이 쓰러진 갑종 보행기를 눈에 담았다.

 

미동도 없는 보행기가 두려웠다.

 

‘죽은 걸까?’

 

가슴이 먹먹하다.

 

“...... 렇게, 그렇게 두지 않아”」

 

「“세상에, 부사령관님!”

 

“뭐야?”

 

초조한 목소리가 관제실 내부를 감돌았다.

 

‘아가리’의 무력화가 코앞이었는데, 그 순간 가용 가능 보행기 5량 중 2량이 순식간에 무력화됐다.

 

‘아가리’의 구축 후 나머지 잔당을 처리하려면 보행기 3량으로는 조금 아슬아슬할지도 몰랐다.

 

“을종 보행기 동기율 급상승 중! 42.3%, 61.1%, 멈추지 않습니다!”

 

부사령관이 방금 보고를 마친 통제사의 화면에 눈을 고정했다.

 

크라우칭 자세에서 등 뒤를 허락한 을종 보행기의 피해는 겉으로 보기에도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화면 속의 을종 보행기는 자신의 등 뒤를 덮친 괴수를 잡아채어 찢어놓고 있었다.

 

 

심도 6급 괴수라곤 하지만, 그리도 쉽게 그것을 갈가리 찢는다는 건 기존의 상식과는 맞지 않았다.」

 

 

 

 

「“단을 죽게 두지 않겠어......”

 

매달린 모양의 괴수와 보행기의 중량을 이겨낸 보행기의 하, 상박 장갑이 팽창하는 인조 근육을 버티지 못하고 늘어났다.

 

마침내 두 다리로 선 을종 보행기가 자신의 어깨를 물고서 늘어진 심도 6급 괴수의 머리를 쥐어뜯듯 잡아끌었다.

 

어깨 장갑을 물고서 놓지 않던 괴수의 머리가 으깨졌다.

 

으깨진 머리를 손아귀에 쥔 을종 보행기가 그 괴수를 반으로 찢어버리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피로 된 무지개가 을종 보행기의 머리 위로 피어났다.

 

행동을 마친 유나가 자신보다도 더 만신창이가 된 갑종 보행기에게 다가갔다.

 

어지러움이 심하다.

 

상이 여러 개로 맺혀 보이는 건 아까의 충격 탓일까,

 

흐릿해지는 의식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섰다.

 

다만 단의 옆에 있고 싶다.

 

미동도 없이 가만히 쓰러져있던 갑종 보행기의 오른손이 까닥거렸다.」

 

「“갑종 보행기에서 다시 통신이 연결됐습니다!”

 

을종 보행기의 걸음은 갑종 보행기의 지척에도 닿지 못하고, 멈춰 섰다.

 

아니, 쓰러졌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보행기는 3량 밖에 남지 않았다. 갑종 보행기에서의 통신은 다시 연결됐지만, 잡음으로 인한 통신 불량과 이미 대파 정도의 피해를 입은 갑종에게서 더 이상의 활약을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건 분명했다.

 

아직 도심지 내에 침입해서 날뛰는 괴수는 6 개체, 더 이상의 괴수 증가는 없지만 3량으로 과연 6 개체, 더군다나 아직 ‘아가리’의 확실한 구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사령관님, 정종 보행기 중파! 통신 연결되지 않습니다!”

 

“기종 보행기가 현장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통신 차단으로 인해 통신 불가능!”

 

“뭐 하는 거야 그놈은?”

 

적전 도주, 확실히 그럴 만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선택은 아니지만,

 

“도망치면 살 수 있을 거라 보는 멍청이냐!”

 

남은 건 보행기 1량, 승산은 없다.

 

다시 인류는 몇 없는 보금자리 중 그 하나를 잃을 거란 생각에 닿았다.

 

끝이다. 이 도시는......

 

얼굴을 두 손에 파묻었다.

 

떠들썩하던 관제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터질 것 같은 복부의 고통 속에서 의식을 되찾은 단의 시선에 처음 들어온 건, 어깻죽지에서 검붉은 피를 쏟으며 자신의 앞에 쓰러진 유나의 보행기였다.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유나......”

 

또 지키지 못한 걸까?

 

전투 중 기능 손실로 인한 보행기의 운명은 두 가지다.

 

회수되든가, 씹어 먹혀 사라지든가,

 

곤란하다. 당장이라도 응급 수리를 받든, 정비를 하든 격납고로 돌아가야 한다.

 

유나는 의식불명에 자신의 보행기는 조금의 미동 없이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상황 보고를 듣기 위해 통신 주파수를 계속 돌려가며 관제탑과의 연결을 회복하려고 하지만, 불길한 소음만 들려올 뿐이다.

 

이대로 가다간 다가오는 괴수들이 유나의 보행기가 무참히 먹혀버릴 텐데,

 

조종대가 으스러질 듯 힘을 줬다.

 

“제발, 제발 움직여, 움직이라고 이 쓰레기 같은 괴물아!”

 

보행기가 들으라는 듯 씹어뱉었지만, 보행기는 인간이 빚어 낸 감정 없는 살덩이에 불과했다.

 

도심을 배회하며 콘크리트 숲을 들쑤시는 괴수들은 6 개체, 더 이상 그것들을 막아설 존재는 없었다.

 

피 냄새 새어 나오는 곳이 그들이 가야 할 곳이었다.」

 

 

 

「관제탑은 중파된 정종 보행기의 통신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그만두라는 조종사의 애원에도, 괴수는 멈추지 않고서 그의 보행기를 뜯어 먹었다.

 

생살이 씹히며 삼켜지는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던 조종사는 마침내, 조종간마저 씹어 먹힘으로써 편안함을 얻었다. 라고 하면 다행일까?

 

자신들에게 닥쳐 올 불안한 미래가 눈앞에 선명했다.」

 

 

「가까워지는 소리의 주인은 분명 괴수,

 

무력한 절망감이 피어올랐다.

 

단이 조종대를 두들기며 소리 쳤다.

 

“제발!”

 

자신들을 향하는 괴수의 모습이 이제는 눈에 선명히 보인다.

 

콘크리트 나무를 헤치며 다가오는 그 육중한 걸음 소리가 섬뜩했다.」

 

 

「시끄러운 외침이 계속됐다.

 

어렴풋이 단의 목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흐릿한 정신 너머로 

절망에 절여진 단의 외침이 들렸다.

 

곧 이어 발목에서 고통이 덮쳐 왔다.

 

“그만둬!”

단이 절규했다.

 

발목이 없다.

 

아니, 붙어있지 않다고 말하는 게 분명하겠지, 을종 보행기의 발목이었던 것이 유나의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괴수의 입안에 들어있었다.

 

이미 자신을 포식하고 있는 그놈의 뒤로 몇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터질 것 같은 고통을 입술을 물어뜯으며 버텼다.

 

들려오는 단의 비명이 사무쳤다.

 

“단......”

 

살아 있는 채로 뜯어 먹히는 보행기의 모습

 

"단, 긴급 탈출 규정 사용, 도망쳐......”

 

단은 화상 통신으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유나의 모습을 지켜봤다.

 

고통을 참느라 하얗게 질린 유나의 모습이 떨렸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긴급 탈출 규정의 과정을 묻는 것이라 착각한 유나가 고통에 찬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조종대 하부의 빨간 단말,”

 

“그런 말이 아니잖아!”

 

단의 울음 섞인 거부는 유나에게 의문을 가져다줬지만, 그 의문을 풀어내기 위한 시간은 없다.

 

“...... 오래 버티지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