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쇄골을 허락한 보행기가 다시 복부를 꿰뚫린다.

 

낮게 울던 괴수가 그대로 보행기를 들어 올리더니 던졌다.

 

복부를 꿰뚫린 단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날아갔다.

 

“단!”

 

두 손을 가슴 맡으로 모아 쥔 유나가 단의 이름을 외쳤다.

 

유나의 비명이 어수선한 관제탑을 가득 채웠다.

 

화면 속 보행기를 눈에 담은 유나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울먹였다.

 

유나가 더 이상 못 보겠다는 듯 고갤 돌렸다.

 

유나의 흐느낌 사이로, 혜은이 싸늘하게 말했다.

 

“....... 갑종 보행기, 대파, 활력 징후 없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래를 향하던 유나의 시선이 소연을 향했다.

 

“....... 아니야”

 

울먹이는 목소리가 소연의 말을 부정한다.

 

그러곤 혜은의 소매를 잡아당기더니 묻는다.

 

“단은 안 죽었지 ......?”

 

애처로운 시선이 혜은에게 닿았다.

 

말없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혜은에게 다시 묻는다.

 

“단은 안 죽었지 ......?”

 

말없이 자신을 지켜보는 혜은에게 유나가 소리 쳤다.

 

“아니야!”

 

관제실의 정적을 곧 들려오는 보행기들의 보고가 깼다.

 

유나를 내려다보던 혜은의 시선이 화면으로 옮겨 갔다.」

 

「“17 격벽 돌파, 18 격벽에 접촉 합니다 ......”

 

무력화된 갑종 보행기를 시작으로, 나머지 4량의 보행기도 차례, 차례 제압당했다.

 

절망적인 통제사의 보고가 혜은의 귀를 때렸다.

 

이제 끝이다.

 

관제탑의 모두가 공포에 떨며 곧 들이닥칠 현실을 기다렸다.

 

18 격벽이 구겨지듯 일그러지더니 이내 찢어져,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이루어진 속살 드러냈다.

 

그 틈새로 괴수가 떨어졌다.

 

그 육중한 충격에 관제탑이 휘청대듯 흔들린다.

 

그리곤 천천히 몸을 일으킨 괴수가 그 희번덕거리는 눈알을 움직여 한 명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관제탑에 앉아있는 자신들을 담았다.

 

절망이, 깊은 절망이 가슴을 내리 누른다.

.

관제탑에 얼굴을 들이 민 괴수가 유리벽 너머로 자신들을 죽 훑어보더니 손을 뻗는다.

 

‘이대로 끝인가’

 

그런 감상 속에 잠겨 있던 혜은을 유나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단!”

 

끌려 나가듯 쓰러지는 괴수의 뒤로 초록색 보행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연이 이젠 맛이 가버린 화면에서 눈을 떼고 그 장면을 지켜봤다.

 

“갑종 보행기 .......”

 

괴수의 뒷덜미를 잡고 거칠게 당기는 갑종 보행기가 눈에 들어왔다.

 

혜은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통신 채널 복구 해!”

 

“비상전력으로 전환, 통신 채널 연결 중!”

 

그러는 사이, 보행기가 구멍 난 오른손으로 괴수의 뒷목을 조르듯 움켜쥐더니 괴수를 패대기치곤 일어서려는 괴수를 지체 없이 걷어찼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걷어차인 괴수가 볼 품 없이 옆으로 나뒹굴었다.

 

다시 일어서려는 괴수를 향해 주먹 쥔 오른손을 던지려던 찰나 뿌연 연기 속에서 날아오는 촉수가 보행기의 오른팔을 잘라냈다.

 

막 복구된 통신 채널로 단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보행기의 거대한 팔이 구석으로 날아가 쳐 박히며 관제탑의 유리벽을 붉게 칠한다.

 

혜은이 단을 불렀다.

 

“단!”

 

“혜은 씨, 사출대를!”

 

고통을 참느라 떨리는 단의 목소리가 혜은을 향했다.

 

잠시 주춤 거리며 휘청대던 보행기가 망설임 없이 발을 뻗어 괴수의 복부를 걷어 차버리더니 뒤로 밀려난 괴수를 향해 몸을 던졌다.

 

괴수를 격납고로 밀어 넣은 보행기가 사출대를 향해 괴수를 끌고 갔다.

 

“혜은 씨!”

 

단이 소리쳤다.

 

“전 동력 사출대로!”

 

사출대를 작동시킨 것을 마지막으로, 통신 채널이 끊어졌다.

 

사출대가 괴수와 보행기를 지상으로 쏘아 올렸다.」 

 

「익숙한 중력 속에서, 괴수가 버둥거렸다.

 

고통이 온 몸을 타고 흐른다.

 

복부와 팔, 쇄골에서 느껴지는 불로 지지는 감각이, 자신을 좀 먹었다.

 

함께 떨어져 내리는 괴수의 얼굴을 왼손으로 내리누른 채 대지에 꽂아 넣었다.

 

강한 충격 속에서도 자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버둥대는 괴수의 몸짓이 끔찍하다.

 

‘죽어, 죽어, 죽어!’

 

클린치한 상태로 올라탄 보행기가 괴수의 무방비한 가슴팍을 마구 내리쳤다.

 

괴수가 입으로 피를 쏟아냈다.

 

마지막으로 손을 내리치려던 순간, 거칠게 울부짖던 괴수가 팔을 휘둘러 보행기의 가슴팍을 꿰뚫고 밀어냈다.

 

온 몸을 짓누르던 고통에 숨도 쉬어지지 않는 새로운 고통이 더해와 자신을 덮친다.

 

보행기를 꿰뚫은 촉수가 가슴팍을 헤집자 그에 맞춰 보행기의 가슴에서 피가 분수같이 터져 나왔다.

 

이젠 초록색인지, 빨간색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는다.

 

곳곳에 구멍 나고, 팔을 잃은 보행기가 맥없이 쓰러졌다.」

 

「지상으로 올라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나가 쏟아내듯 비명 질렀다.

 

옆에서 쭈그려 앉은 채 휴대용 단말의 화면을 살피던 소연이 나지막이 말했다.

 

“갑종 보행기, 활동 한계 .......”

 

말을 마친 소연이 불현 듯 소리쳤다.

 

“갑종 보행기, 동기율 상승 중 ......? 말도 안 돼, 활동 한계일 텐데”

 

그와 함께 화면 속, 잠잠해지던 그래프가 언제 그랬냐는 듯, 요동친다.

 

혜은의 시선 속으로, 천천히 일어서는 보행기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윽고 보행기가 자신의 가슴을 꿰뚫은 괴수의 손을 잡더니 잡아당긴다.

 

몇 번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에도, 활동을 멈추지 않는 보행기의 모습에 당황한 괴수가 울부짖으며 잡힌 손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괴수의 촉수를 팔에 휘감으며 다가가던 보행기가 이윽고 괴수와 다시 거릴 좁혔다.

 

보행기가 휘감은 팔을 그대로 그러쥔 채, 괴수의 복부를 강하게 걷어찼다.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양팔만을 남기고서 괴수가 저 멀리 나뒹굴었다.

 

그리고 울부짖던 보행기가 날아가 처박힌 괴수에게 달려든다.

 

일방적인 폭행이 이어졌다.

 

양 팔을 잃은 괴수를 걷어차고, 짓밟고, 으스러뜨렸다.

 

연신 비명을 지르던 괴수가 계속되는 폭력에 더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얻어맞고 있었다.

 

폭행이 잦아든다. 

 

이미 의식을 거의 잃은 듯, 미세한 경련을 제외하고는 움직임을 확인할 수 없는 괴수에게 마지막 일격을 먹이기 위해 보행기가 괴수의 배에 올라탄 채로 왼손을 뻗었다.

 

머릴 짓뭉갤 심산으로 뻗은 손이 괴수의 머릴 부여잡고 으깨듯 쥐어짠다.

 

괴수가 마지막으로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더니, 이내 축 처졌다.

 

그와 동시에, 괴수가 마지막 발버둥으로 벌린 입에서 쏘아낸 날카로운 혓바닥이 보행기의 눈을 뚫고 머릴 꿰뚫었다.

 

괴수의 머리통을 수박처럼 박살낸 보행기도, 괴수와 마찬가지로 축 처지더니 앞으로 고꾸라졌다.

 

소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괴수 생명 징후, 소멸”

 

말없이 지켜보던 유나가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떠오르는 의식 속으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실감한 단이 조심히 눈을 떴다.

 

자신의 왼손을 꼭 쥔 채 병상에 기대어 꾸벅 꾸벅 졸고 있는 유나가 시선에 맺힌다.

 

유나를 깨우지 않고 일어나기 위해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오른손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의아함을 느끼며 오른손을 뻗어 눈앞에 다가 둔다.

 

몇 번 쥐었다 피는 오른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떨리는 느낌은 없는데 ......“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된 걸까, 짐작 가는 게 없다.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을 더듬었다.

 

손이 구멍 나고 마침내 팔까지 잘려 떨어지던 고통이,

 

쇄골이 으스러져 무언가 파고들던 고통이, 

 

가슴이 찢어 발겨지던 고통이,

 

눈알이 짓뭉개지던 고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렇게 생생하게 떠오른 고통들이 지금 겪은 고통이 아닌데도, 머릿속을 헤집으며 자신의 숨을 죄어왔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힌다.

 

숨 쉬기가 힘들어 가슴 맡을 부여잡았다.

 

쥐여 쥔 유나의 손을 거칠게 놓고 침상을 뒹굴었다.

 

거칠게 들이마신 숨을 불규칙 하게 내뱉는다.

 

자신의 행동에 졸고 있던 유나가 깼다.

 

사색에 물든 유나가 자신을 몇 번 부르더니, 병실을 뛰쳐나갔다.

 

그렇게 뛰쳐나간 유나가 곧, 교수와 몇 몇의 간호사를 대동하고서 다시 들어온다.

 

주변에서 무어라 말하지만,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숨쉬기가 힘들다.

 

그들의 뻗어오는 손을 내치고 죽을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렇게 다시 의식을 잃었다.」

 

「새근새근 숨 쉬며 곤히 자던, 단이 무엇이 그리도 괴로운지 눈앞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거칠게 숨을 토해낸다.

 

자신이 하는 말도 안 들리는지, 대꾸도 없이 그저 가쁘고 거친 숨을 들이마셨다 뱉기에 급했다.

 

 

갑작스런 단의 행동에 교수를 찾았다.

 

바쁜 발걸음으로 다시 돌아온 병실은 이미 침상을 벗어난 단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다시 단에게 손을 뻗어 도와주려 했지만, 그가 그런 자신의 손을 쳐냈다.

 

방해하지 말라는 듯 그리고 다시 몇 번 숨을 들이키더니 이내 축 처져서 쓰러진다.

 

그에게 거부당했다는 걱정보다도, 곧 죽을 것 같이 가슴을 부여잡던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새겨져 떠나지 않는다.

 

교수에게 물었다.

 

“....... 어째서?”

 

“보행기를 타기 위해서 중추 신경계를 접속한다는 게 무슨 의민인지는, 보행기를 타는 너라면 충분히 이해하지 않나?”

 

다시 교수가 말을 이었다. 

 

“마지막 동기율 124%, 그 상태에서 입은 두부손상, 그 치명적인 상태에서도 뇌사하지 않고 버틴 저 소년이 오히려 경이로운 수준이겠지 .......”

 

이윽고 부산하게 움직이던 간호사들이 단에게 인공호흡기를 씌웠다.

 

교수의 말을 듣고 있던 유나가 시선을 옮겨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단을 본다.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주던 소년이,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언제 꺼질지 모를 촛불처럼 타들어 갔다.

 

곧 환자의 안정을 위해 나가야 한다는 간호사들의 손길이 자신을 병실 밖으로 이끌었다.

 

그럼에도 아까의 괴로워하던 단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선명히 영상처럼 떠오른다.

 

그토록 괴로워하는데도, 자신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