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는다면

사람들은 어떨까

아마 슬퍼하겠지

내가 왜 죽게 됐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 채

그냥 친구를, 가족을 잃어서 울기만 하겠지


내가 죽는 까닭은

내가 살아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과민했기 때문에

내가 용감하지 않기 때문에

이유는 너무 많아

그런데 살 이유는

고작 남들 때문에

한가지 뿐


내가 살아있다고 착각할 수 있는 자유

그런 자유가 내겐 더 없어

살아있던 시절이 떠오르지 않아

살아있던 시절이 그립지 않아

살아있던 시절을 사랑하지 않아


그래도 내일을 봐야겠지

죽지 않았으니까

내 손목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해

내 웃음은 다른 사람들처럼 쾌활해

내 젊음은 여전히 건재해

이런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어


하지만

나는 끝없이 죽어가

나는 자살하지도 않을거야


*

병이 난 거 같아

알맹이가 썩은 것 같아

내가 이미 죽은 것 같아

바람 빠진 풍선 같아


그런데 난

여전히 살아

왜냐고 물으면


이제 상관 없기 때문이야

내가 죽으나 사나

난 이미 죽은 몸

앞으로 백 년을 더 산다해도

아무런 불만 없어


어차피 난 죽었으니까

어차피 내 이야기가 아니니까

어차피 내 인생이 아니니까


억울하지 않아

화나지 않아

슬프지 않아


그런데 머리를 잃은 몸뚱이는

이유도 모르면서

계속 울어

계속 숨쉬어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나는 늙어 죽기만을 기다려

나는 오늘이 죽어서 행복해


*

어차피 이래놓고 내일도 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