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있음




주술외전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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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년을 살다 보니 이런 재밌는 일도 생기는군. 이런 재밌는 구경을 시켜줬으니, 나도 보답을 해줘야겠지?"

   

 "무슨 짓을 한 거냐?!"

   

 "입으로 주절대는 건 충분히 했으니, 직접 보거라."

   

 술식 순전, 파랑. 술식 반전, 빨강.

   

 푸른 원과 붉은 원이 빛난다. 다만 그것이 스쿠나에게서 나왔을 뿐.

   

 "허식, 보라."

   

 술자가 스쿠나여서 그런 것일까. 고죠가 본 보라색 빛이 일그러지는 모습은, 스쿠나의 입꼬리가 올라간 그것과 겹쳐 보였다.

   

 파앙!

   

 고죠가 시전하던 것과 달리 보라색 구체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십수개의 빛 기둥을 내뿜으며 고죠의 몸을 스쳐지나갔다.

   

 "...!"

   

 급히 피하느라 미처 제대로 자세도 잡지 못 한 고죠 앞에, 스쿠나가 주먹을 치켜들고 들이닥쳤다.

   

 "키히히히히. 정신 못 차리는구나."

   

 교활한 웃음소리가 귓전을 맴돌만큼 가까이 다가온 상황에, 고죠는 선택지가 없었다.

   

 주먹을 내지른다.

   

 무한과 무한이 충돌하고, 모순이 날뛰며 무하한의 어둠이 빛과 섞여든다.

   

   

 ...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스쿠나는 또다른 어둠 속에 혼자 덩그러니 서있었다.

   

 "깜~짝 놀랐네. 내 무한을 뺏어갈 생각을 그 사이에 어떻게 한 거야?"

   

 무시무시할 정도로 고요한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목소리가 잔망스레 울린다.

   

 "하지만 그쪽만 임기응변에 능한 건 아니라서 말이지~"

   

 고죠의 말이 끝나자마자 스쿠나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것과 같은 팔의 참격이 자신을 노리고 있음을.

   

 "네 이놈...!!"

   

 무한히 큰 공간, 무한히 먼 곳에서 자신을 노리는 참격이, 0의 시간 간격 내로 자신을 뚫을 것이라는 모순적인 사실을 스쿠나는 머리보다 몸으로 먼저 이해해야 했다.


 번개같은 참격은 고통과 분노에 부르짖을 시간조차 주지 않고 비처럼 쏟아졌고, 순식간에 그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도 남을 기세로 몰아쳤다.


 이를 바깥에서 지켜보자니 여간 조용한 것이 아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스쿠나가 갇힌 임시 공간이 적막과 함께 깨졌다.


 "..."


 "이 놈..."


 주력을 가진 생물을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잔혹한 참격. 그것이 스쿠나를 수없이 덮치더라도, 그가 죽지 않을 것 쯤은 고죠 또한 알고 있었다.

   

 "이 애송이 새끼가...!"

   

 온 몸에 참격과 유사한 칼날이 용솟음치고 소용돌이치는 스쿠나는 마치 온 몸에 거친 바람을 두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제 페이즈 2라는 건가~ 그럼... 이쪽도 진심으로 나가야지."

   

 "네놈... 지금까진 제대로 싸우지도 않았단 것이냐?"

   

 고죠는 깜빡거리듯 일그러지는 얼굴을 끄덕이며 푸른 빛과 붉은 빛이 점멸하는 손을 올려 스쿠나에게 덤비라고 손짓했다.

   

 "하, 하하...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새끼가..."

   

 잠시 스쿠나의 몸에 흐르는 폭풍이 더 거세지더니, 이전보다 더 잠잠해졌다.

   

 "격의 차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마. 네놈따위한텐 힘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는 걸 말이야."

   

   

 기회. 

   

   

 고죠 사토루에게는 아까부터 기회가 몇 번 주어졌다.

   

 스쿠나가 무한을 빼았고 의기양양해졌을 때, 고죠는 실제로도 아주 놀랐지만 그 상황과 고죠의 표정은 스쿠나를 방심시키기에 충분했고, 스쿠나가 보여준, 서로의 영역이 섞였을 때 일어나는 일을 반대로 실행할 결단을 낸 그의 역량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반대로 스쿠나의 영역을 빼앗아 그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그리고 지금 스쿠나 또한 전력을 다하지 않겠다고, 그 고고하고 오만한 성격이 이런 일에 전력을 다하는 것따위 용서할 수 없노라고 말하고 있음에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것을,

   

 고죠의 푸른 눈은 놓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대 맞았던 게 누구더라~?"

   

 "이 몸은 1000년을 넘게 살았던 몸이다. 그런 도발에 제 감정 하나 다스리지 못 할 줄 알았더냐?"

   

 스쿠나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치켜들고 고죠를 내려다보았다.

   

 자, 어떻게 나올 테냐.

   

 '참격의 힘 앞에서 원거리로 상대한다는 선택지를 택할 리는 없고, 애송이의 힘으론 근접전으로 몰고 가는 것밖에 뾰족한 수가 없을 터인데...'

   

 스쿠나의 생각대로였다. 스쿠나의 기술엔 참격만 있는 것이 아니었을 뿐더러 기술의 종류따위는 전혀 문제되지 않을 만큼 강한 그 위력이 너무 압도적이었다.

   

 모순이 가득한 무한의 영역 속이라도 근접 시의 타격이 더 강하다는 진리까지 뒤집을 순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고죠도 스쿠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어느 쪽에서도 곧바로 덤비지 않았다.

   

 "애송이 놈이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구나. 가만 보고 있자니 부아가 치미는군."

   

 콰악. 순간의 섬광과 함께 팔의 참격이 고죠의 무한을 뚫고 그의 피부를 스친다.

   

 "어떻게 나오나 볼까."

   

 끊임없이 이어지는 참격을 피하려면 스쿠나에게 돌진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계속 피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

   

 그가 참격에 뒤지지 않을 속도로 이동하니, 온 몸이 늘어나는 것만 같아 보여 스쿠나의 눈에도 참격과 구분이 힘들 지경이었다.

   

 "멈춰라."

   

 코앞까지 다가온 고죠를, 단혼지마의 이빨이 6방향에서 튀어나와 멈춰세웠다.

   

 "일그러진 모양으로 날뛰는 꼴이 몹시 기분 나쁘구나. 정신사납게 굴지 말고 얌전히 죽어라."

   

 "기분 나쁘시다니 감사!"

   

 고죠가 팔을 휘두르자 그의 주변에 왜곡된 공간이 펼쳐지며 스쿠나를 감쌌다. 이번엔 술식의 푸른 빛과 붉은 빛은 나지 않고 검은 어둠이 깜빡이듯 일렁였다.

   

 "하... 또 이번엔 무슨 짓거리를..."

   

 "무한의 장막, 이라는 짓거리지~"

   

 어둠 속에 또다른 깊은 어둠이 펼쳐지고, 스쿠나는 덩그러니 서있었다.

   

 "아까와 같은 수는 안 통한다, 애송아. 잔말말고 나오너라."

   

 "원하시는대로!"

   

 주먹에 푸른 빛과 붉은 빛을 두른 고죠가 형체를 일그러뜨린 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겨우 그 정도냐?"

   

 속절없이 스쿠나의 손에 막힌 고죠의 주먹은 무한의 술식과 스쿠나의 휘몰아치는 주력이 충돌한 탓에 엄청난 속도로 진동했다. 다만 스쿠나의 손은 한없이 고요했다.

   

 "애송이가 주제도 모르고 덤비면..."

   

 어라?

   

 손에 잡고 있을 터인 고죠가 사라졌다.

   

 "허허... 이건 또 뭔..."

   

 콰직. 스쿠나의 뒤에서 기습을 감행하던 고죠가 참격에 뚫렸다.

   

 "날 물로 보는..."

   

 뒤를 돌아보려는 스쿠나의 양 옆에, 두 명의 고죠가 한 번에 달려들었다.

   

 이 고죠 사토루들은 스쿠나를 치고 나서 자신을 해하려 들면 쥐새끼처럼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매 순간 푸른 빛과 붉은 빛이 깜빡거려 스쿠나의 심기를 건드렸다.

   

 불쾌하기 그지없구나.

   

 "허?"

   

 스쿠나는 짜증을 내며 고죠가 사라진 흔적을 보니, 뭔가 어색했다. 움직임이 반대로 가는 것만 같다. 예를 들면 맞고 떨어져야 할 것이 반대로 위로 치솟거나, 그의 몸 주변에 일던 흙먼지가 흩어지는 게 아니라 도로 그에게 달라붙는 것이 아닌가. 이런 현상은 붉은 빛이 나는 곳만 그랬다. 

   

 "또 시간에 장난질을..."

   

 미래를 끌어오고, 과거를 다시 재생하고, 현재를 모호하게 하여 시간을 이어붙이며 오직 스쿠나를 공격하는 현실만 실체화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 또한 스쿠나에게는 "장난질"에 불과했다.

   

 사토루가 미래에서 자신을 덮치든,

   

 과거에서 자신을 죽인 것 취급하려 하든,

   

   

 “모든 시간대에서 네놈을 죽여버리면 되는 일 아니겠느냐.”

   

 그의 참격은 귀신같이 사토루를 쫓아 찢어발겼고, 그의 팔은 괴물같은 힘으로 사토루를 날려버렸다.

   

 정방향 시간의 흐름에 대한 공격도, 역방향 흐름에 대한 공격도 스쿠나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그 술식을 스쿠나 쪽에서 역으로 사용해대는 빈도가 늘어났다.

   

 처음엔 여러 명의 사토루가 한 명의 스쿠나를 공격했다면, 점점 스쿠나의 수가 늘어나 종국에는 여러 명의 스쿠나가 한 명의 사토루를 공격하는 방향으로 국면이 기울었다.

   

 “왜 그러나? 애송이! 네놈의 시간의 힘을 본인이 당하는 건 익숙치 않나 보지?”

   

 시간의 모순이 공간에 균열을 냈고, 거대한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다시 무하한의 어딘가로 떨어졌다.

   

 다만, 거기서 똑바로 서있을 수 있는 건 스쿠나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