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https://arca.live/b/writingnovel/78657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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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륵, 뭔가 듣기 싫으면서도 웅장한 소리가 들리면서 거대한 문이 서서히 열린다. 그 안에 보이는 것은 아니나 다를까, 군인들이 여기저기 널리고 널렸다. 대열을 맞추어 걷고 있는 녀석들도 있고... 아니, 그나저나 저런건 왜 하는 건지? 뭐 아침에 적당히 한 두 바퀴 뛰거나 그러는 거면 이해를 하겠는데, 무슨 퍼레이드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군영 안에서 하는건데 저런걸 할 필요가 있나? 아무튼, 화승총을 조준하며 사격하는 연습을 하는 녀석들도 보이고, 그냥 서너명이 모여서 수다를 떠는 녀석들도 보인다. 


이들 모두 놀랍게도 질질 끌려온 나한테는 관심 조차 주지않고 각자 할거 하는데, 이런 분위기를 보아 그다지 심각한 일이 일어났다거나 그런 눈치는 아닌것 같고, 내가 뭐 대역죄인으로 소문났다거나 그런 것도 아닌거같다.


그럼 대체 내가 여기 끌려와야 하는 이유가 뭔데? 어이가 없다. 양팔 뒤로 밧줄이 묶인채로 연행되는 모습으로 계속 끌려가니 어깨가 아파온다. 밧줄은 또 쓸데없이 강하게 묶었단 말이지...


" 이제 니네들 나와바리까지 들어왔는데, 하다못해 이젠 이거좀 풀어주면 안돼? "


매사에 담담해보이는 나도 이때만큼은 조금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대응했고, 그녀는 한숨을 푹 쉬더니 병사들에게 눈빛 한번을 주자 그 병사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포박을 풀었다. 이제야 좀 살것 같군. 조금만 더 묶여있었다면 어깨와 팔이 제대로 뭉쳐서 팔을 조금만 움직일때도 통증이 느껴지고, 굳은 느낌이었겠지.


" 뭘 꾸물거리고 있나! 여단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


" ...아니, 이봐. 도착하면 물 준다며? 목말라 죽겠다고.. "


" 내가 언제 그랬지? 됬고 따라와라! "


" 하아... ...네.. 네... "


이렇게 나는 어깨 채로 팔을 돌리면서 뻐근해진 것을 풀던 찰나, 그런 틈도 주지 않고 바로 그녀가 나를 또 이 군영 안의 어딘가로 데려가려고 한다. 그나저나, 도착하면 분명 물 준다고 했던거 같은데 주지도 않고... 약속도 안 지키는 녀석이구나.. 참... 아니면 기억력이 심각하게 안좋은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여러 사람 피말리게 만들 것 같은 녀석이다. 에휴...


군영의 어느 나름 거대한 건물 하나로 들어서자, 길고 거대한 복도가 반복되며 또 몇분을 걸어야 했다. 지나가던 병사들이 날 끌고가는 병사들과 이 녀석을 보자, 경례를 하는게 아니겠는가. 계급이라는게 늘 이런것이지. 이녀석, 그런 경례들을 무시하고 그냥 각을 맞춰 걸어가는데만 신경이 쏠린 모양이다. 대체 이녀석 뭐지?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 복도의 끝에 다다르자 어느 문 앞에 우리 모두 멈추게 되었다.


" 여단장님, 지금 그 자를 데리고 도착했습니다! "

" 어, 그러니? 들어오렴. "


이윽고, 그 녀석이 문 앞에 노크를 하고 날 잡아왔다고 말하더니 문 너머로는 작게나마 뭔가 온순하면서도 높은 톤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석이 이 군영의 최고 지휘관이겠지. 그 후, 그녀석이 먼저 문을 열고, 병사들은 그대로 날 끌고 들어가며 다같이 들어가게 되었다.


이 여단장의 방으로 추정되는 적당한 크기의 방은 이 입구 건너편에 크게 트여있는 높은 창문이 보였고, 그 창문 너머 들어오는 햇빛에 비춰지는건 양쪽에 온갖 책들이 가득한 책장들이었다. 뭔가 읽을 거리를 좋아하는건가? 아니면, 이 군을 책임지는 자로써 끈임없이 전술을 연구하는 자의 자세를 대변하는 것인가... 뭐, 이왕이면 후자가 더 낫긴 하겠다만은 지금으로서는 나한테 그다지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그렇게 이 방안의 것들에 내가 한눈이 팔렸을까, 이 방의 한가운데 있는 어느 양옆으로 길이가 꽤 되는 책상 바로 너머 의자에 누군가 앉은 채로 책상에 두 팔꿈치를 내려기댄 채 손깍지를 자신의 턱 바로 앞까지 대고 나를 올려다보는 이가 있었다.


" 음~... 그래, 맞게 데려왔구나? 수고 많았어. "


아무래도 그가 이 여단급 군의 지휘관인 모양인데, 의외로 젊어보이는 녀석이다. 뭔가 여유로움을 항상 지니고 있는 듯한 저 한결같은 미소, 그리고 적당히 기른 단정한 은빛 머리... 어디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사내였다.


보통 저정도 위치면 늙어보이는 녀석들이 많긴 하던데, 이녀석... 혹시 귀족 출신인가? 아니면 귀족의 추천으로 오른 낙하산인가. 도통 알수가 없다. 


원래 이정도 편제의 최고 지휘관 부터는 귀족이나 상위 파벌의 추천을 받는다던지, 혹은 줄을 이쪽으로 잘 서야한다던지 등의 요소가 필연적으로 붙는 경우가 많고, 특히 각 군의 사령장관 위치까지 다다를 정도면 이 영향은 말할것도 없다. 여기는 아예 무조건 귀족의 추천으로만 자리가 정해지는 수준이니 말 다했다. ...여기 그란드카우스 제국은 적어도 그렇지 뭐.


그나저나 이 제국과 나는 거리가 멀다. 애초에 태생은 저기 먼 나라인 리디아 왕국인데, 내가 여기 제국에서 군생활을 했었다는 것도 참 웃긴 일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진 않겠지만...


" 어이! 여단장님께서 묻고 계신다! 뭘 딴청 피우는 거냐!! "


라는 갑작스러운 그녀석의 외침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뜩였다. 이런, 순간적으로 또 딴생각했네.


" 이봐 이봐, 너무 그러지 말어. 먼길오느라 힘들었을 수도 있지. "


" 하아아... 이거 실례, 먼길 오는데 물 한모금도 안줘서 지금 도저히 정신이 영.... "


다행히도 이 여단 지휘관 친구는 다 이해를 해주는거 같아서 살았어... 여기에 이어서 나도 핑계를 대듯이 그대로 아까에 대해서 말해버리자, 그의 옆 바로 각잡히게 서있었던 그녀석은 뜨끔하고는 죽여버릴듯한 눈빛으로 나를 옆눈으로 보는가 하던 찰나, 바로 이 여단 지휘관 친구는 어? 하는 표정으로 그녀석을 보자 그 녀석은 다시 잔뜩 굳어버렸다. 이거, 내가 보기엔 이녀석 아무래도 상관 앞에서 열정있는척 하면서 어떻게든 완벽한 모습을 보일려고 하는 유형인가.


" 먼길 오느라 고생 많았겠구나? 보다시피 난 여기 89 여단의 여단장, 맷 베른 베르가모트 대령이야. 우리 여단의 소속은... 음, 동부방위군이라고, 너가 예전에 복무했던 부대도 여기 소속이었을거야. "


" 네에네에.. 퍽이나 자주 들어서 귀에 익는다고. "


이렇게 편안히 대화가 시작될 것 같던 찰나, 갑자기 옆에 동상처럼 서있던 그녀석이 나를 째려보며 버럭 화를 내듯이 고함을 쳤다.


" ..너 임마! 무례하다! 여단장님에게 존칭을 쓰지 못할까! "


그 고함에 대화는 또 중단되었고, 나와 맷 모두 그녀석을 잠시 쳐다보았다.


" 아하하하, 너무 그러지 말아 중위. 이사람은 아직 예비역이니까. "


" 맞아. ...그나저나, 애초에 니도 나한테 반말 쓰고 있는거 아니냐?? "


생각해보면 이녀석이 계급으로 환산해도 나보다 안될텐데 반말을 쓰고 있는게 헛점이 되는 바람에 이녀석의 고함은 힘을 잃었고, 이내 다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내로남불인 것인지, 아니면... 그냥 능지가 부족한 것인지 모르겠다. 만약 후자에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지금 이 그란드카우스 제국군의 상태도 썩 좋은 상황은 아닌것 같다.


.... 오래전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


" 이거이거.. 미안해. 저 친구는 마가렛 마칼리바 중위, 우리 여단의 군수참모인데... 너무 열정적일지는 몰라도, 의리 하나는 있는 녀석이야. "


" 의리요? 하.. 참나, 도착하면 물 준다고 해놓고 지금 다와서 목말라 죽겠는데 물 한모금도 안준녀석인데? 약속 하나도 가볍게 여기는 년이 퍽이나 의리가 있겠... ... ...아니, 잠깐.. 이녀석 직책이 뭐라고? "


한참 죽어라 걸어갈 때에는 군영에 도착하면 분명히 물이라도 주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런 약속 하나 안지키는 녀석이 의리가 있을수가 없다. 그런데, 내가 잘못들은 것인가? 싶었지만 내가 잘못 들은게 아니었다. 저런 직책은 직접 발로 뛰는 역할이 아닐텐데? 약속을 안지킨 마가렛 녀석에 대해서 불평을 하던 도중 흠칫한 표정으로 나는 말을 순간적으로 얼버무리면서 재차 확인을 했다. 그리고 내가 들은건 정확했고.


" 아, 음... 그런 부분이 신경쓰이는 거구나? 이거는 말이지, 설명하기가 조금 애매하기는 해. 그게, 실은 우리 제국군이 뭔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인력 보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일까나. "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혀 딴나라 태생인 나까지 데려와야 했냐? "


" 글쎄~... 그런 것도 있긴 하지만 아마 다른 이유가 더 있을지도 모르지? "


제국군의 규모는 비대한 수준으로 큰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굳이 사람 하나하나 다 끌어모아 징집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럴만한 이유는 딱히 떠오르지는 않는데, 그것보다 내가 여기로 끌려온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면 정말 어이없는 소리같기도 하다.


" 이봐, 날 군에 다시 돌아오게 할 생각이면 관둬. 이미 전에 군복무를 하면서 담보는 다 갚았다고. 이제 더는 노예처럼 살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 뭐가 모자라서 또 나를 죽도록 굴릴 생각인 건데?!! "


지난 나날들이 떠오르다보니 나도 모르게 울컥했고, 오래전에 쌓여있었지만 풀지 못한 분노들이 폭발하였고, 내 언성은 점점더 커지더니 마가렛의 성량도 씹어먹을 수준의 발악과 동시에 그대로 난 앞으로 나아가 그의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이때 주먹에 느껴지는 아픔은 조금도 없었을 정도로, 그동안의 과거는 정말, 다시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마가렛은 그런 날 보며 놀란 듯 했다. 생각해보면 매사에 의욕도 별로 없어보이고, 멍해보이기도 하던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이니 색다르겠지. 맷 역시 조금은 놀란듯 했지만 이내 다시 그의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유지하면서 나를 진정시켰다.


" 너무 그렇게 화내지는 말고, 이번에는 선택사항이거든. 황제 폐하가 직접 명령한 사항도 아니기도 하고... 그런데 이건 확실해. 이건 너희 리디아가 달린 문제일지도 모르니까. "


리디아, 이 세글자는 나에게 기폭제 역할을 할 수도 있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알기 때문에... 하지만 여기서 화만 버럭 낸다고 달라질건 없었으니 여기서는 그런 모습은 삼가기로 했다.


다시 자리에 앉았고, 처음에 만났던 그때의 분위기로 돌아왔다.


" ...나에게 바라는게 뭔데? "


" 매우 간단해. 나와 함께 이 여단을 통솔해주면 되거든. 그게 다야. "


" 하! 하긴, 억지로 끌려온 애들의 심정을 적어도 니네같은 인간들 보다는 내가 잘 알긴 하지. "


옆에서 째려보는 마가렛의 눈빛이 어째 느껴지지만, 별로 신경쓸 이유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내 돌직구에 오히려 맷은 웃어보였다. 그 미소 뒤에 무엇이 숨어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 오~, 그런 정신은 아주 좋은데? 그만큼 너가 보여줄수 있는 모든걸 보여주면 좋겠어. "


" ... 그건 그렇다 치고, 아무리 인력이 급해도 그렇지 나같은 외국인들까지 징집하는건 말이 안되잖아? "


" 한번 우리 제국군이 된이상, 너도 엄연히 우리 제국군의 영원한 일원이니까. "


이 논리는 도저히 부정을 못하겠다. 나도 이 제국군에 복무한 기록은 다 남아있고, 여기서 보낸 세월들을 부정할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도 귀찮은듯 짜증을 살짝 내는듯 하면서도 결국 수긍하기로 했다.


" 에라이! 만약 옛날로 돌아간다면 군입대가 아니라 차라리 막노동 수십년을 하는게 더 나았을수도 있겠네! ....쳇, 알았어 알았다고. 그래서... 한가지만 묻자. "


내 표정은 다시 진지해졌고, 맷은 온화한 표정을 유지하면서도 고개를 살짝 갸우뚱 한채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몇초간의 정적이 다시 찾아오며, 내 질문이 이 정적을 깨뜨렸다.


" ...그래서 이 있는사람 없는사람 다 끌어모으는 이유가 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