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니가 말하길,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고 한다.


난 그때 화가 무척이나 치밀어 올랐다. 우리 아버지는 회사원인데, 멀리 출장을 다녀오면서 장난감이랑 책들을 사가지고 오신다. 난 그런 선물들을 받을 때마다 항상 물건들에 대한 신기함과 기쁨으로 가득 찼으며, 늘 아버지께 고마워했다. 작년에는 가지각색으로 빛나는 레이져 검을 받았는데, 집안에서 그걸 가지고 해가 질때까지 혼자 연극을 하며 놀던 것을 기억한다.


또 우리 어머니는 얼마나 친절하신지. 항상 이른 아침이 내 눈을 간지럽게 하고 내가 힘들게 서서히 눈을 뜰때면 어머니는 그 보드러운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일어났니. 나의 작은 영웅.”이라며 나를 향해 미소를 보이곤 했다. 사실 빛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따뜻함을 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는 늘 거른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요리를 환상적으로 하셨다. 늘 모두가 만족할만한 음식들을 알아서 준비하여 모두를 행복하게 하였다. 가끔식은 내가 식탁에서 예의없게 행동할 때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큰소리 하나 없이 날 향해 웃으며 타이르셨다. 난 이런 어머니의 선을 알아보고, 나 역시 점점 마음이 부드러워 지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어머니에게는 무엇이 있었다.


집에 계시는 할아버지도 정말 유익한 분이셨다. 정말 어릴 적에는 내 침대 곁에 앉으셔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난 이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꿈을 꾸며, 결말을 바꿔보기도 하고 참 여러가지의 일들을 꿈속에서 해댔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지금 내 친구들에게 써먹으니, 난 어느세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많은 아이로 변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삶이던가! 내 유년기는 정말 축복 그 자체였다. 이런 삶이 영원히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이번에 난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내가 한 살을 더먹으니, 가족들 사이에서는 점점 뭔가 풀려나가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멈추셨고, 어머니도 약간은 거칠어지셨다. 아버지의 선물을 거의 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더할나위 없는 행복한 삶이었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내가 원하는 인생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난 자기전에 달에게 이렇게 빈적이 있다. “제발 내일이 오지 않게 해주세요.”

그럼에도 내일은 찾아온다. 내 의식과 허락도 없이 내일은 무심하게 찾아왔다. 태양은 내 마음과 반대로 환하게 세상을 평화로히 비추었다. 그런 태양이 조금은 아니꼬와 짜증이 솟아올랐지만, 아직 시간은 많다는 생각에 화를 추스렸다.


어느 날 학교에서, 아이들 사이에 할아버지께 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늙지 않는 소년이 아이들을 납치하는 해적을 상대해 무찌르는 내용이었다. 난 이 이야기를 매우 좋아했다.

특히 난 이 늙지 않는 소년이 매우 흥미로웠다. 어떻게 사람이 시간을 무시하며 영원토록 정의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걸까. 난 그런 소년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도 분명히 시간을 부정하며 살고, 그런 건강한 육체로 아이들을 구해내며 해적을 무찌르는 짜릿하고 영웅적인 일을 하며 지내다니. 그 소년은 아이들 사이에 영웅이 되고, 그들의 찬사를 받으며, 영원히 많은 이들의 영웅으로 기억되다니. 또 이토록 행복한 순간들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 때,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같은 반 여자애인 코니가 말했다.

“근데, 아빠가 사람은 언젠가 모두 죽는다고 했어.”

틀린 말은 아니였다. 하지만 뭔가 괘씸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미래를 부정할 순 없다는 사실이다. 나도 이렇게 나이를 먹고, 결국엔 이런 행복한 순간들도 전부 사라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이런 시간에 예민한 나를, 결국 그런 말로 날 건들어야 했을까? 

난 그녀를 쏘아보고, 한 번 그녀에게 소리쳤다.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원숭이가 울부짖으며 귀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당연히 그녀는 놀랐다. 난 화가 풀리지 않아 그대로 반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는데, 나와 코니의 사이는 조용했지만 그 고요가 심해진 것 같았다. 복도를 지나갈 때나, 수업을 들을 때나 왜인지 모르겠지만 계속 그녀의 눈치를 봐야했다. 매우 귀찮고 힘들었지만, 되려 그녀를 살피지 않으면 내 마음이 더 더부룩했다.

그렇게 하교할 시간이 왔다. 난 선생님의 마지막 말을 듣고 가방을 싸서 집에 갈려 했다. 그때, 코니가 내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야, 너 잠깐 우리집 들렸다 갈래?“

”뭐?“

”너에게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코니는 나의 이런 공격적인 모습을 봐도 전혀 탈 없이 내게 친절한 말투로 다가왔다. 난 순간 의외의 말에 놀랐지만, 딱히 거절할 마음은 없었다. 그녀가 대체 뭔 말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얼마나 중요한거면 집까지 찾아와 내게 말할려 하는 것일까. 내 성격은 한 번 생긴 궁금증은 끝까지 풀려 노력하는 성격이라, 난 그녀의 제한을 순순히 받아드렸다.

코니는 내 손을 꼭 잡은 체 자기의 집 까지 걸어갔다. 그녀의 집은 정말 멀었다. 어떻게 그녀가 차 없이 계속 걸어다니며 학교에 오는지 참 대단할 정도였다. 난 걸어가는 데도 발바닥이 아파서 중간중간 보이는 벤치에 앉아 쉬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투덜거리며 빨리 오라고 빈정거렸다. 

마침내 도착한 그녀의 집은, 내 집과는 정 반대인 허름한 집에 살고 있었다. 분명히 주택이지만 뾰족한 지붕이 없었다. 벽은 허름하게 낡아 구멍들이 송송 뚫려있었고, 그 사이로 벌레가 지나다녔다. 이곳이 폐허라면 난 믿고도 남았다. 난 ‘이게 집이라고?’생각한 체 그녀의 집에 들어갔다.


그녀의 집에 들어가자 보이는건, 낡은 소파에 티비를 보는 수염이 더부룩한 그녀의 아버지였다. 그는 소파에 한 몸이 되듯 축 늘어지게 앉아 영혼없이 티비를 보는 것 같았다. 난 그런 그를 내 아버지와 비교하자 조금 심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사람같지 않아 보였다.

심각한 건 그녀의 아버지 뿐만이 아니라, 온갖 오래된 것들이 뿜어내는 냄세에 순간 표정이 찡그려지기도 했다. 그리고 옆을 돌아보니 벌레들이 만들어 놓은 같은 심하게 진한 얼룩들이 있었다. 난 이것들을 보고 경악했다.

“아빠 저 왔어요.”

“응? 어 그래, 우리 딸아이 왔구나.”

그녀의 아버지는 생김세와는 다르게 코니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역시 아버지는 그래도 다를바는 없다 생각했다. 조금은.


”이 친구에요. 아빠가 보고싶다는 아이요.“

”어 그래, 너로구나. 너가 그렇게 나이먹는 걸 싫어한다지.“

”네? 무슨…“

그들이 내 고민을 어떻게 아는 거지? 난 시간에 관련해서의 고민을 아무에게도 털어논적이 없었다. 분명 내 마음 말고는 이런 부끄럽고 쓸데없는 비밀은 철저히 나에게 기밀의 대상이었다. 순간 소름이 끼쳐 말도 이어하지 못했다. 

“따라오려무나, 네게 보여주고 싶은게 있단다. 코니, 넌 잠깐 여기 있으렴.“

”네.“

코니는 아버지 말에 책가방을 들고 순식간에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혼자남은 나는 순간 그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공포를 느꼈으나, 수염이 가득한 미소를 내게 보이며, 문을 열고 마당에 있던 차에 타기 시작했다. 그도 내게 타라고 손짓했다. 난 이대로 도망갈까 생각했으나, 이러면 내게만 손해가 올까 결국 차의 뒷자석에 탔다.


그는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차가 시동이 걸림과 동시에 부들부들 떨리더니 사방에 희연 연기를 뿜어댔다. 그리고 흔들린 체 그대로 집을 나오기 시작했다. 차도 집처럼 그리 좋은 차는 아닌 듯 했다.

거리를 향해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난 무심코 창문 밖을 보았다. 아직 그가 나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밖은 가게들과 편의점, 여러 건물들이 보였다. 보통 움직이는 차 안의 시선은 모든 건물은 흐려 보여야 정상일 텐데, 이 차는 느리게 가는지 모든 건물들이 또렸하게 보였다.

난 과연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그리고 왜 나를 차에 태웠는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서서히 집과 멀어지는 데도 입 하나 열지 않았다. 난 지루함에 그저 창문만 바라볼 뿐이었다. 지나가는 가로수의 개수를 세기도 했고, 사람들을 보기도 했다.

“왜 시간이 싫니?”

그가 말했다. 그가 차 안에서 꺼낸 첫 마디였다.

“네? 그냥… 나이먹는게 싫어요. 근데 어떻게 제가 그걸 싫어한다는 걸 아는거죠?”

“그래, 코니가 말해줬단다.”

“코니가요?”

코니가 내 분노를 듣고 내 마음까지 깊숙히 뚫어 내 본심을 본걸까? 내 분노는 분명히 뜬금 없는 것이었고, 충분히 기분나쁠만도 한데, 그녀는 이런 것들을 무시한 체 그저 내 마음만 보고 그것에 대해 궁금해 한 것이다. 내 분노의 이유와 결과. 코니는 밤새 그 이유만을 고민했을까.


어느세 해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물같이 흔들리는 주황색 태양빛이 내 이목을 끌었다. 그것을 잠시 넋 놓고 보다가, 갑자기 터널로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순간 놀라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터널은 그저 평범했다. 그것을 보면 순간 터널 안에 있는 작은 조명의 빛이 창문에 비추어, 내 눈을 깜빡이게 하였다. 그것도 규칙적으로 말이다.

터널은 좀 길었다. 기다란 터널의 주황색 빛이 마치 태양을 흉내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태양을 너무 어설프게 흉내냈다. 색이 태양 빛에 비하면 너무 연했다. 터널도, 작년에 받은 레이져 검도. 모두 사람이 만들었는데, 그렇게 고지식 하다던 사람이 만들었는 데도 자연과 상상을 정확히 모방하지 못했다. 사람은 자연을 모방할 수 없다… 사람이 만든 것 중에 완벽한 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침내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본건, 수 많은 커다란 건물들과 빌딩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벌써 하늘은 저녁이 되어 까맣게 변했는데도, 건물들의 불빛들과 신호등의 알록달록한 색깔들이 마치 별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별 치고는 너무 밝고 컸다.

이곳이 바로 도시다. 내 마음이 도시처럼 커다랗게 변했다. 이게 웅장함인가. 순간 입이 벌어지며 마음속에 이야기 하지 못할 감격이 내 마음을 파고 들어갔다. 조금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건 아파도 좋은 고통이다. 심장이 고통을 순화하려 빠르게 뛰었다.

“놀랍지 않니? 여기가 바로 도시라는 곳이야.”

“… 놀라워요.”

난 얘기할 힘이 없었다. 내 마음은 이미 심장도 순화 못한 고통이 내 마음을 녹여버렸기 때문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이 풍경이 바로 날 풀리게 한 환희다. 인공의 빛이 하늘을 지배한 곳. 그게 도시였다.


그는 다시금 도시 안을 달렸다. 난 구경할게 많아서 시선을 이리저리 정신없이 돌렸다. 그때 그가 말했다. “여기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 번 봐볼래?”

난 그의 말대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 저녁 거리에서,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맨 아저씨가 목과 고개를 조금 숙인 체,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아저씨의 표정도 보았다. 소름끼쳤다.

눈에 영혼이 없다. 표정은 죽은 표정, 입을 조금 벌린 체 입에서 서서히 녹은 영혼을 배출해 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가 잠시 움직이자 그런 모습을 한 사람들이 한 명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모두가 영혼이 없었다. 생기가 돌지 않았다! 그들은 전부 꼭두각시 처럼 흐느적 거리며 움직일 뿐이었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 이런 공포가 있나. 모순에 난 그만 혼란스럽기도 했다. 이 아름다움… 아름다움 안에서 사람들은 아름답지 않다. 왜지? 아름다움이 가득 찬 공간에는 모두가 꽃이며 솜털들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딱딱한 돌덩이 처럼 움직이는가? 아니, 왜 끈적한 구적물 처럼 움직이는가?

“아름답지 않아… 않아…”

순간 혼잣말을 지껄었다. 아저씨는 코웃음을 치셨다.

“그래, 나도 이곳에 처음 왔을 땐 도시가 참 아름다웠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아니였어. 모두들 정신이 반쯤 나간 체로 어디론가 말없이 가고 있었단다. 아니, 어쩌면 끌려 가는 것일 수도 있지.”

”왜죠? 왜 이 아름다운 곳에서 사람들은 끔찍하게 행동하는 거죠?“

“왜긴, 아름다움이 그냥 나오겠니? 모두 희생에서 진정한 것들이 나오기 마련이야.”


희생! 그래! 희생이야! 살이 찐 사람이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해야 하며,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열심히 공부해야만 그 성적의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이 모든… 꼭두각시 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은 전부 자신들을 희생해 이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인가? 저 건물 안에서 빛나는 별빛들,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아름다움 안에는 처절한 희생이 담겨있는건가…

“모두들 원래는 정말 귀엽고 아름다운 아이들였겠지. 내 딸 코니 처럼 말이야. 하지만 그들이 그렇다고 영원히 아름다움을 유지하진 않아. 전부 시간이라는 희생을 달고 그 아름다움을 나눠주고 있단다.”

그리고 난, 난 다시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수염이 더부룩 하고, 모여 다니며 부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같이 끈적한 피부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저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하다 온 사람들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마치 공장처럼 일하고 공장처럼 움직였다. 자동적으로 출근하고 자동적으로 일하고 쉬는 사람들. 내 아버지와 다를게 없는 사람들… 우리 아버지도 출장이 힘드셨겠지. 그의 눈을 잘 보지는 못했지만, 생기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늘 아버지가 오셨다는 것을 알때는 그가 소리를 질러야 그가 왔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시간을 부정할 순 없어. 부정만 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찌질한 인간이야. 변화도 이해 못하는 멍청한 존재지. 마음속에 변화를 받아드리고, 그걸 진정 이겨내는게 바로 사람이야. 그러니 모두들 시간을 부정하지 않고, 조용히 침묵하고 있단다.“

내 행동은 정말 부끄러운 행동이었던가. 하지만 어린아이가 이런 고민을 할 수도 있지. 모두들 어른이 되기 싫어하고… 희생과 책임을 받고 싶지 않다. 그건 너무 비참하고 힘드니까. 내가 이런 고민을 하는 것 보다 더 무자비하게 힘드니까.

그들도 많이 서운한 것들이 있다. 내 아버지도, 내 어머니도, 내 할아버지도. 모두들 어른이 되기 싫었겠지. 하지만 진정 그것을 받아드리고 책임을 우연치 않게 얻어, 그것을 잘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침묵은 가장 소중한 방패다. 우리는 침묵한다. 고요는 시간을 여전히 흘러가게 만든다. 우리는 고요를 이용해 내면을 달랜다. 우리는 그렇게 받아드릴 수 있다. 불행한 현실을, 잔혹한 시간의 시련을.

”그러니, 얘야, 네가 다 크면, 입좀 다물어 주겠니?”

“네?“

”만일 니가 어른이 되면, 그냥 닥치고 있으렴.“


우리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왔을 땐 벌써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