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을까. DH는 겨우겨우 자리에서 눈을 떴다. 그는 끔찍한 두통을 느꼈다. 어제 한 번은 죽었던 게 분명했다. 그는 자신이 어제 죽었었다는 것을 지나칠 정도로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는 땅을 손으로 훑었다. 손가락 사이로 흙이 만져졌다. 그 뒤 DH는 자신의 몸을 만져보았다. 울퉁불퉁하고 또 매끈매끈한 것이 나체임이 분명했다.

 그가 어제 한 번은 죽었다는 것은 너무나 확실했다. 물론 이것은 전날 지나치게 취한 사람에게 이따금 일어나는 일이기도 했지만 그는 그렇게까지 술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으니 어제 한 번 죽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DH는 일단 아픈 머리를 이끌고서라도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정말 너무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누워있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일어나는 순간 뭔가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 기분이었다. 이 고통은 아무리 느껴봐도 정말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매번 오히려 이 고통에 더 약해져만 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처음 부활했을 때는 아픈 머리를 가지고 일어나기는 했었던 것 같은데 말이었다.

 DH는 결국 그냥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고 기다리기로 했다. 여기가 하프원더 코퍼레이션의 식물원이 맞다면 분명 장춘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식물광이 올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술에 취해 이 지경이 되었다면 그냥 이대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로 죽는 게 나았다. 나체로 땅바닥에 뒤 둥글게 된 자신은 너무나도 초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과학자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과학자들에게 날개가 있다거나 한 것은 아녔다. 하지만 저들은 DH가 평생 이해하지 못할 방법으로 마법 없이도 원판에 타서 날아다니는 방법을 알아냈다.

 DH는 아픈 머리를 들고 일어났다. 그의 표정은 지나칠 정도로 찌푸려져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고통을 표정 변화도 없이 참는 것은 불가능했다.

 “DH 씨! DH 씨!”

 꽤 가까운 거리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를 한 남성의 외침이 들려왔다. 하지만 DH는 두통이 너무 심했기에 대답을 더 하지 않았다. 타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머리가 아플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두통은 심했다. 그것은 마치 글자 하나하나가 그의 뇌를 내리치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뇌는 고통을 못 느낀다는 모즐리의 말을 떠올렸다. 갑자기 떠오른 그 망할 X의 얼굴은 그의 뇌를 더 아프게 했다.

 "DH 씨. 또 무슨 일이 있으셨기에… 뭐, 기억 못 하시겠죠?"

 “... 그렇죠.”

 그는 말을 자신의 목에서 쥐어짜냈다. 목이 까끌까끌한 것이 너무나도 불편했다.

 “기억을 못 하시는 건 참 아쉬운 일이에요. 사내에서 죽으실 때 살아나자마자 처음 보시는게 전데 전 한 번도 그 이유를 듣지 못 하니까요… 그렇죠?”

 “… 그렇죠.”

 DH는 그렇게 대답하고 그냥 가만히 자리에 누워있었다. 어쩌면 그는 장춘이 말을 좀 멈추기를 바라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반나절이나 인생에서의 기억이 그냥 없어지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러,"

 "선글라스…”

 DH는 그에게 말했다.

 “아 맞다. 선글라스 드려야죠. 죄송해요. 이거 없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실 텐데 제가 오랜만에 뵙게되니 너무 반가워서 그만,”

 “선글라스…!”

 그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끝을 올리며 말했다.

 “아, 바로 드릴게요. 그게 어디다뒀더라… 어디에 있을 까요… 아 여깄네요. 자, 여기요.”

 그제야 장춘은 그에게 선글라스를 내밀었다. 그는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그제야 그는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그는 그 특이한 능력이 없는 선글라스가 없다면 아무 것도 보지 못 했다. 그는 선글라스만 있다면 바지를 안 입고도 거리를 활보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선글라스를 사랑했다.

 선글라스를 껴자 그의 찌푸려진 눈 사이로 장춘의 얼굴이 보였다. 안경을 쓰고 조금 살집이 있는 골방 과학자같은 과학자인 그는 뭔가 재밌는 일이라도 있는 듯이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혹시 차 한 잔 하실래요? 이번에 제가,”

 “혹시… 오늘은 뭔 일 있다는 얘기는 없었나요?"

 DH는 장춘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자신이 여기서 살아날 때마다 늘상 자신을 볼 텐데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은 고마우면서도 그냥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동시에 들게 했다.

 “... 네? 아, 맞다. 엘레인 양이 즉시 봬야한다고 하셨어요. 아마 뭔 일 있나봐요. 깜빡하고 있었네요. 하하. 그럼 바로 샤워부터 하러 가실까요? 흙이 엄청 뭍어있으세요. 물론 여기 하프원더 식물원에 쓰이는 흙은 철저한 공정을 통해서,”

 “... 샤워나 하러가면 안 될까요?”

 DH는 힘을 내서 말을 이어갔다. 그는 매우 어지러웠다. 그는 어지럼증을 조금이라도 낫게 해준다면 구토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장춘은 그런 그를 둘러업은 뒤 자신이 날아다니는 원판에 실었다. DH는 장춘이 자신을 내려놓자마자 바로 원판 위에 엎어졌다. 장춘은 한숨을 쉬며 그에게 노란 액체가 담긴 컵과 담요를 주었다. DH는 바로 그 액체를 마셨다. 마시자마자 그는 두통이 완화되는 것을 느꼈다.

 “카… 이 맛이지.”

 DH는 자신의 얼굴에 있던 주름살을 펴며 말했다.

 “... 자제하셔야 할 텐데요. 그게 몸에 좋은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제가 뭐 정확히 신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 연구를 해본 건 아니지만 진통제의 남용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

 "걱정마세요. 언젠가는 끊겠죠.”

 DH는 상투적으로 싱긋 웃으며 말했다.

 “... 네. 뭐, 남는게 시간이시잖아요. 그죠? 하하하."

 DH는 뭐라 하고 싶었으나 참기로 했다. 장춘은 마치 깊은 동굴과도 같아서, 말은 오직 말을 낳을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대화가 끝난 뒤 원판은 날아서 그를 식물원의 샤워실로 데려다주었다. DH는 몸이 찌뿌둥한 게 마음 같아서는 씻겨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성인 남성의 최후의 존엄성을 지키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어느새 탈의실에 장춘이 놓고 간 옷을 입었다. 그는 검정 바지, 검정 셔츠를 입었다. 그는 항상 검정 옷을 입는 사람이었다.

 나오자 장춘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장춘이 바쁜 사람인 걸 알기에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올렸다.

 “언제나 그렇지만, 감사드립니다.”

 “하하 아니에요.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인걸요. 물론 균사체는 굳이 따지면 식물이 아니긴 하지만 뭐… 어쨌든 제가 일하는 식물원에서 기르고 있는 생명이니까 어느 정도 제 관할이긴 한 걸요. 하하.”

 장춘은 언제나 그렇듯이 DH가 알고 싶어하는 정보만 쏙쏙 빼내서 말했다.

 “네… 균사… 그렇죠. 그런데 혹시 제게 뭔 일 있다고 누가 연락이나 한 건 없나요?”

 “아, 맞다. 얘기한다는 걸 깜빡했네요. 엘레인 양이 곧 오신다고 하셨어요. 나가서 기다리시는 것도 좋겠네요. 더 시간을 같이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겠지만 일이 일이니 어쩔 수 없겠죠…”

 “네. 그러면 이제 가볼,”

 “아, 혹시 기다리시는 동안 차라도 한 잔 하실래요? 때마침 오늘 21일이 세계 차의 날이기도 하고 말이에요.”

 “21일이요?”

 DH는 놀라서 물었다. DH가 기억하는 마지막 기억은 한 자리 숫자에 머물러 있었으니 자신이 거의 2주 연속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말이었다.

“네. 기억이 없으시겠지만 오늘은 21일이에요. 국제 차의 날이죠. 그 기념으로 제가 이번에 차의 풍미를 더 높이기 위해 어떤 일을 했냐면요,"

 “차는 일이 있으니 다음에 하도록 하죠.”

 DH는 그렇게 말하고 그에게 싱긋 웃어보였다. 그는 그렇게 말끊기 싸움을 종결시켰다.

 “아, 네... 그럼 부디 다음에 여기서는 볼 일이 없기를 바래요. 하하하.”

 “네? 아 네… 죽는 건 안 좋은 일이니까요. 그렇죠? 저도…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안녕히… 안녕히가세요!”

 DH는 그의 외침을 뒤로하고 식물원 밖을 나섰다. 그는 사람이 나쁜 건 아니었다.

 아마도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