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ㅡㅡ


다행히 다음 강의는 큰 문제 없이 지나갔다. 엿들은 걸로 추측해 본 바로는 잔뜩 기분이 안 좋은 표정으로 밖에 나갔다고 한다.


‘다행이다…’


혹시라도 강의실 들어오자마자 혹시라도 다시 맞을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무난히 강의가 끝나고 강의실에서 나오니 문득 유린이가 떠올랐다.


‘유린이는 저런 사람이란 걸 알고 있나’


이미 포기해버린 마음이기에 이 틈을 노려 대쉬를 해볼까 하는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순히 좋아했던 사람에 대한 약간의 걱정일 뿐이었다.


“그래봤자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러나, 걱정은 금세 머릿속에서 걷어 냈다. 내가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안 좋은 소문만 돌게 뻔하다. 찐따 새끼가 이상한 소문 퍼뜨리면서 여자 뺏으려고 한다는 내용으로 말이다.


그리고, 유린이는 내가 걱정할 만큼 조심성이 없는 애가 아니다. 만난 지 아직 반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동안 봐왔던 유린이는 절대 남을 걱정시킬만큼 칠칠맞은 애는 아니였다.


‘그러니까 유린이 생각은 그만하고..’


지금 앞에 있는 한예슬에 대해 생각하자.


건물 밖으로 나오니 한예슬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발견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잠시라도 정신을 놓는 순간 바로 고백을 해버릴 정도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강의는 잘 들으셨어요?”


“예? 아, 예. 뭐…”


그렇게 그런 한예슬의 미소에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느라 벙찐 목소리로 대답해버렸다. 순식간에 몰려오는 수치심에 금방이라도 얼굴을 가리고 싶었지만 오히려 그런 행동을 하면 더욱 이상하게 바라볼 것이기에 최대한 참아가며 한예슬의 얼굴에서 눈을 떼어냈다.


“그러면, 점심 먹으러 가 볼까요?”


아, 맞다. 그러고보니 강의 끝나고 나서 같이 점심 먹자고 했었지.


‘아무리 예뻐도 벌써 단둘이 밥 먹기는 부담스러운데…’


다른 사람이었다면 충분히 받아들일 제안이었지만 나로서는 그저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사귈 가능성이라도 있어야 이런 기회를 써먹지 저런 사람이 나같은 사람하고 뭐가 좋다고 사귀겠나.


여기서 같이 점심을 먹는다고 해도 그저 잠시 동안 내 기분을 좋게 해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예슬의 제안을 거절하려고 했다. 그녀와 만나기 전까지는 다짐 까지 해놓으며 속으로 말하는 연습 까지 했다.


그런데, 이렇게 앞에서 나랑 같이 점심을 먹는 게 뭐가 좋은 지 들떴다는 걸 숨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한예슬을 보니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경섭씨…?”


내가 한참동안 대답이 없자 그녀가 살짝 무릎을 굽혀 나와 눈높이를 맞추더니 내 얼굴을 확인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자괴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한예슬이 나보다 키가 크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무릎을 굽혀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니 더욱이 자괴감이 느껴졌다.


아니지, 지금은 자괴감에 먹히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일단은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는 게 먼저다.


“저..예슬씨 죄송하지만..”


“어? 경섭이 아니야?”


그렇게 없던 용기까지 끌어모아 말하려고 하려니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이름이 들리자 나는 하던 말이 저절로 멈추며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바라봤다. 그러니, 그 목소리의 주인이 유린이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린아?”


갑작스러운 유린이의 등장에 순식간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 이 증상 때문이다. 내가 유린이에게 이렇다 할 대쉬조차 하지 못한 채 다른 남자한테 가는 것을 빤히 보고 있게 된 것이.


나는 중고등학교의 경험 때문에 좋아하는 상대 앞에서는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긴장을 하게 된다.


‘아…나 아직 유린이 좋아하는 구나..’


분명 이성적으로는 마음을 접었다고 생각했지만 감정은 아닌 듯 하다.


“경섭씨 괜찮아요?”


그런 내 모습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아파보이는 걸까 바로 옆에 서 있는 한예슬이 내 식은땀을 보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아, 그게 괘, 괜찮아요..”


“경섭아 옆에 분은 누구셔?”


내가 허둥지둥하며 설명하니 유린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예슬을 바라보며 내게 물었다.


뭐지? 무슨 불만이라도 있나?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유린이의 모습에 순간 당혹스러움이 돌았다.


“아, 이분은 예슬씨고 최근에 복학하신 분이셔.”


“아..그래? 그런데 꽤 친해보이네.”


“어, 그러니까..”


“경섭씨.”


내가 한예슬에 대해 설명하자 더욱 맘에 안 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조금은 가시가 박혀 있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하며 말을 더듬고 있으니 옆에서 한예슬이 나를 불렀다.


“이러다 늦겠어요 이만 가는 거 어때요?”


“예, 아..그러니까..”


“유린씨…맞죠? 저희가 지금 빨리 뭐 해야 되는 게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


한예슬이 나를 부름과 동시에 순식간에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봐온 모습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라 같은 사람이 맞는지라는 괴리감까지 느껴졌다.

내가 갑작스러운 한예슬의 말에 어버버 거리고 있으니 대신 유린이에게 설명한 뒤 내 손을 가볍게 잡았다.


“???!!!”


갑작스러운 스킨쉽에 놀라 순식간에 손을 빼내려 했지만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내 손은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질 못한 채 약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 이만.”


그리고는 유린이에게 꾸벅 숙여 인사를 한 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힘으로 나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한예슬의 행동에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반대쪽 손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여자 맞아? 이해할 수 없는 한예슬의 괴력에 순간이지만 힘센 남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유린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걷고 나서야 한예슬은 내 손을 놓아줬다.


중간에 놓아달라고 말하는 것도 생각했지만 그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못했다. 여자 손 하나에 벗어나지 못해 부탁하는 모습이라니. 아무리 자존감이 낮은 나라지만 그것만큼은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할 정도로 미뤄둔 행동이다.


“후아….”


그렇게 내 손을 놓더니 큰 한숨을 내쉬는 한예슬.


“저, 예슬ㅆ”


“죄송해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어 한예슬에게 말하려고 하자 한예슬이 큰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


“그게..경섭씨가 유린씨라는 분을 조금 불편해 하는 것 같길래…”


“아…”


내 상태가 그렇게까지 안 좋아 보였던 걸까. 좋아해서 긴장하는 걸 불편해서 긴장하는 거라고 착각을 할 정도라니. 속으로 허탈한 웃음이 흘렀다.


“저, 그런데 경섭씨”


“네?”


“아까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셨나요?”


“아, 아. 아니에요. 별 말 아니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아! 그러면 다행이네요 혹시라도 거절하실까봐 걱정했는데, 그러면 진짜로 이제 먹으러 갈까요?”


“....”


ㅡㅡ


“하… 피곤하다..”


점심 먹은 게 왜 이렇게 피곤한 건지 점심을 먹고 난 뒤 한예슬과 헤어진 나는 속에서부터 나오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어째 아까 선배한테 한 대 맞았을 때보다 더 피곤한 거 같다.


“오늘따라 알바가기 더 싫어지네.”


아직 3시 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부터 기가 빨려서 그런지 편의점에 갈 의지가 평소보다 더욱이 깎여 있었다.


그러나, 결국엔 발은 편의점으로 가고 있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돈 벌려면 참아야지 뭐.


“안녕하세요..”


“앗, 경섭씨 오셨어요?”


편의점 문에 달려 있는 딸랑 소리와 함께 카운터 쪽으로 인사를 하자 지연씨가 나를 맞아줬다.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표정이 안 좋은데..”


나를 바라보곤 해맑게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인사를 하던 지연씨가 내 표정을 확인하더니 엊그제처럼 똑같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에요..그냥 오늘따라 피곤해서..”


굳이 설명할 정도로 깊은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얼버무리며 넘어가며 유니폼을 챙기러 안으로 들어갔다.


“?! 경섭씨 볼은 왜 이렇게 됐어요?”


“네? 아.”


생각보다 볼이 부은 게 눈에 띄였나 보다. 내 볼을 보자 화들짝 놀란 지연씨가 내게 다가왔다.


“어떻게…괜찮아요? 많이 아프진 않아요?”


“별 거 아니에요. 그냥 오다가 넘어진 거라서.”


“그래도 약은 꼭 바르세요. 상처 덧나면 안 좋잖아요.”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안심한 듯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슬쩍 내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와…”


그러자 속으로만 내뱉었어야 할 감탄사가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평소엔 그냥 같은 곳에서 일하는 알바생1로만 생각해서 단순히 예쁘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제대로 얼굴을 보니 알 수 있었다.


예쁘다. 한예슬과 지연씨 둘 중 누가 예쁘냐 하면 강아지상을 선호하는 지 고양이 상을 선호하는 지로만 투표 결과가 나뉠 정도로 아름다웠다.


거기다 마치 성모 마리아가 강림한 것 같은 부드러운 미소에 더욱 넋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경섭씨?”


그렇게 넋 놓고 바라보고 있으니 지연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이름을 불렀다.


지연씨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급히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로 가는 시선을 치웠다. 그리고는 어색한 마음에 급히 유니폼을 입으며 카운터 쪽으로 갔다.


그런 내 모습이 어딘가 웃겼는지 지연씨가 키득키득 웃으며 내 뒤를 따라왔다.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져 급히 인수인계를 받으려고 하니, 편의점 쪽에서 종 소리가 들렸다.


“어? 경섭씨?”


종 소리에 저절로 고개가 돌아가 문 쪽을 바라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예슬씨…?”


왜 한예슬이 여기에 나타난 거지.


ㅡㅡ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유린이 심리 묘사는 할 생각 없어서 여기서 설명해줌

그냥 자기만 좋아하던 어장 안에 있던 물고기가 다른 여자랑 있으니까 심기가 불편해서 그랬던 거임

결코 얀데레가 된다거나 그런 건 없으니까 안심했으면 좋겠음


추가로 적당한 곳에서 끊고 싶었는데 끊을 각이 안 나와서 더 쓸까도 생각했는데 힘들어서 여기서 끊음 조금 어색해도 이해해주면 좋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