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심장을 찌르겠습니다.

 

 

“이봐. 그 소문 들었어?”

 

“뭘 말이야.”

 

“저번에 까마귀한테 갔던 녀석 죽었다는데?”

 

“병신이네. 나였으면 차라리 다른 놈한테 빌렸어.”

 

“그러게 말이다. 멍청한 새끼 왜 그런 미친놈한테 갔을까.”

 

까마귀 

 

최근 제국에 나타난 대부업자다.

 

이름, 나이, 성별까지 불명

 

얼굴에 쓰고 있는 까마귀 가면 때문에 까마귀라고 불린다.

 

“자기 몸에 칼질하라는 놈이랑 상종하는 건 병신이지.”

 

까마귀 그 자식은 다른 대부업자와는 다르다.

 

이자율 없이 거금을 빌려주지만 그 대가로 그놈이 보는 앞에서 자기 몸을 칼로 찔러야 한다.

 

그냥 찌르기만 해서도 안 된다.

 

찌르는 부위, 찌르는 횟수, 상처의 깊이, 출혈량 같은 요소들로 까마귀를 만족시켜야만 돈을 빌릴 수 있다.

 

게다가 돈을 갚지 못하면 갚을 때까지 그놈 앞에서 자기 몸에 칼질을 해야한다.

 

그런 미친놈한테 돈을 빌릴 바에는 차라리 다른 대부업자한테 빌리는 게 낫다.

 

죽으면 돈이고 뭐고 의미 없으니까.

 

“황실은 그런 미친놈 안 잡아가나? 이걸로 4명째인데.”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 까마귀라는 놈은 꽤 높은 신분이라더군, 황실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사실이라면 밑바닥 평민 4명 죽은 걸로 움직일 리가 없지.”

 

“그렇겠지.”

 

“뭐 우리가 그런 놈한테 빌릴 일이 있겠나?”

 

“그것도 그렇지.”

 

그 말을 끝으로 남자들에게서 까마귀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

 

모험자와 용병들이 술에 한껏 취하는 밤

 

나는 조용히 술집을 나섰다.

 

까마귀에 대한 소문을 뒤로 한 채.

 

숙소로 가는 길에 길을 틀어 교회로 향했다.

 

밤이 깊었음에도 기도하는 이들이 많았는지 성당은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교회의 안쪽 방, 저들이 기도하는 대상들이 잠들어 있는 공간에 발을 딛는다.

 

한쪽 구석에 눈을 감고 있는 소녀

 

긴 검은색 머리에 새하얀 얼굴 그리고 지금은 감겨있는 아름다웠던 붉은색 눈

 

아카데미 시절에는 그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고백도 많이 받았었지

 

엘렌 아이린

 

내 10년지기 소꿉친구이자 

 

짝사랑 대상이고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다고 성녀께 진단받은 소녀이다.

 

“엘렌 좀 늦었지?”

 

“........”

 

답은 없다.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랜만인데도 달라지는 건 없구나.”

 

2주일 만에 오늘 병실임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깨끗한 병실과 침상

 

거기에 누워있는 엘렌

 

새하얀 침상 위에 누워있는 칠흑 같은 머리와 새하얀 피부

 

그것이 조화를 일으키는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은 현실을 마치 꿈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이곳이 꿈이어서 저런 얇은 이불 따위는 걷어차고 내게 미소짖는 엘렌은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

 

간간히 들려오는 작은 숨소리가 나를 달콤한 상념에서 일으킨다.

 

그래 꿈 따위엔 의미가 없다.

 

몇천 번을 마음속에서 그리던 꿈은 이제 필요 없다.

 

나는 꿈을 현실로 만들 것이다.

 

 

 

수녀들이 소등 시간이라고 알려주고 나서야 나는 병실을 나섰다.

 

“오랜만이네요.”

 

병실의 문을 닫고

 

교회를 나가려는 순간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모습을 보지 않았어도 알 수 있었다.

 

자애로움이 느껴지면서도 맑은 목소리

 

적어도 이 교회에 이런 목소리를 지닌 이는 단 1명이었다.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챈 순간 나는 뒤를 돌아 한쪽 무릎을 꿇고 이야기했다.

 

“미천한 이가 제국의 성녀님을 뵙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당황한 듯 이야기했다.

 

“한! 내가 이런 거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미천한 이가 어찌 제국의 성녀님ㄲ...”

 

”빨리 일어나라고요!“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녀가 소리쳤다.

 

일어나서 마주친 눈에 비친 것은 

 

엘렌과는 상반되는 투명할 정도로 하얀 머리카락과 푸른색 벽안의 여성이었다.

 

입고 있는 화려한 성복은 그녀가 성녀라는 것을 증명하듯 화려했으며

 

내 장난에 약간 올라온 얼굴의 홍조는 창백한 피부색과 대비되는 조화를 이뤄 생동감을 느끼게 했다.

 

엘렌과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눈을 마주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성녀님.“

 

”여전히 고지식하시네요. 제가 분명 그렇게 깍듯하게 대하시지 말라고 부탁드렸을텐데요?“

 

”미천한 제가 어찌 성녀님께 그리 하겠습니까?“

 

내 말에 성녀는 답답한지 한숨을 쉬며 이야기했다.

 

”하아... 한 제가 말했잖아요 당신은 특별하다고 당신이 제 목숨을 구했던 그 순간부터

당신은 제 영원한 은인이에요. 그러니 제발 자신을 낮추지 말아줘요 특히 제 앞에서는.“

 

”...노력해보겠습니다.“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성녀는 환하게 미소지었다.

 

분명 수녀들이 소등을 했음에도 주위가 밝아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걸을까요?“

 

”원하신다면 그리 하겠습니다.“

 

성녀의 요청으로 우리는 교회 바깥의 정원으로 나왔다.

 

성녀가 한밤중에 밖으로 나오는 건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괜찮을 거다.

 

교회 바로 앞이고 여차하면 내가 그녀를 지키면 될 것이다.

 

그녀를 보는 것은 거진 1달만이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한 달간 쌓인 것이 많았던 것 같다.

 

교황 성하와 숨막히는 대면식, 12주교 들과 성경 토론회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3일간 물만 마시며 기도하기

 

겨우 1달만에 10대 소녀가 하기에는 버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그녀가 진정 성녀에 자리에 어울린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긴 이야기 끝에 그녀가 조심스래 물어왔다.

 

”..........엘렌양을 보러 온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2주나 오지 못했으니까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야기를 주도하던 그녀가 말을 멈추자 불쾌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 침묵의 끝이 예상되었던 나는 이야기를 억지로 이어 붙였다.

 

”성녀님깨는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엘렌을 돌봐주고 계신 것은 현재 성녀님이시지요?“

 

”당연한 일을 하는 것 뿐이에요 한“

 

”그 당연함에 저는 늘 기쁨을 느낌니다. 덕분에 늘 안심하고 의뢰에 나설 수 있으니까요.“

 

”한.“

 

하지만 내 노력이 무색하게도 성녀는 그 말을 꺼냈다.

 

”엘렌양은 눈을 뜰 수 없어요.“

 

그녀의 말에 내 발걸음이 멈췄다.

 

”당신이 의뢰비를 모두 치료약을 찾아다니는데 쓰는 건 알아요 한 

하지만 엘렌양의 병은 제 신성력으로도 치료할 수 없었어요.“

 

”........................“

 

”당신이 노력한 건 제가 잘 알아요 하지만 이제는....“

 

”그만하십시오 성녀님.“

 

말하고도 놀랐다.

 

내가 그녀에게 낸 목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이 차갑고 무거웠기 때문이다.

 

”밤이 춥습니다. 그만 들어가시지요.“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섰다.

 

그 때 내 등 뒤로 온기가 느껴졌다.

 

그녀가 성녀가 나를 껴안은 것이다.

 

”......저로는 안되나요?“

 

그녀의 목소리는 울음기가 어려 있었다.

평소의 맑은 목소리가 아닌 울음을 삼킨 목소리었다.

 

”당신이 그녀를 사랑하는 거 잘 알아요 내가 그녀의 대신이 될 수 없는 것도 알아요.“

 

”설령 당신이 날 바라봐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러니 제발 사라지지만 말아줘요.“

 

”지난 1달간 제가 가장 괴로웠던 건 

 

교황성하와의 대면도 12주교와의 토론도 3일간의 단식도 아니었어요.“

 

”당신이 의뢰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것.“

 

내 어깨에 따뜻한 눈물이 떨어진다.

 

”돌아온 당신이 상처입은 것.“

 

”난 그게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요.“

 

”부탁이에요 한 이제 엘렌양을 놓아주세요.“

 

”당신 스스로를 위해 살아줘요 제발.“

 

허리를 두른 그녀의 팔을 내쳐야 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결심을 뒤흔든다.

 

하지만 그녀의 팔을 도저히 뿌리칠 수 없었다.

 

그 팔에 담긴 진심이 너무나 무거워서 도저히 내칠 수 없었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성녀님.“

 

”바래다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시지요.“

 

결국 나는 그녀를 뿌리치지 못했다.

 

그녀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허리를 감은 손을 풀고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성녀를 바래다주고 숙소로 오는 길에서 나는 그녀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나는 내일 ‘까마귀’를 만나러 갈 것이기에

 

 











첫 소설입니다.


솔직히 많이 못 쓴 거 같은데 예쁘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마 1~2편 정도 더 쓰게 될 것 같아요.


참고로 성녀는 얀데레가 아닙니다!